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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48화 (1,34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48화

귀환(8)

‘눈치 못 챌 수가 없자너.’

대외적으로 명예추기경이 어려졌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명예추기경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

“어… 어….”

“어, 어쩌지 칼턴?”

“…….”

“…….”

‘그래. 시바. 당연히 알아야지.’

“이… 이 꼬맹이 아무래도 어디 귀한 집 자식 같은데?”

“…….”

“…….”

‘기대한 내가 병신이자너.’

성스러운 분위기도 좀 팍팍 뿌려 주도록 하자. 구태여 오버하며 날개를 꺼낼 필요도 없다. 똑바로 녀석들을 쳐다보며 살짝 빛을 뿌려 주는 것 만으로도 내가 명예추기경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누가 보기에도 지금 후광 아닌 후광을 받으며 놈들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놈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빅보이 이 새끼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셋 중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칼턴 녀석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

물론 의문점들이야 남을 것이다.

어째서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어려진 것인지, 도대체 낙오자의 거리는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자신들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깨달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본인이 초월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게 놈들이 깨닫게 하는 가장 큰 방법이겠지만….

‘그건 너무 없어 보이자너.’

조용히 다시 한번 놈들을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넙죽 엎드리는 칼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니, 니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칼턴을 보고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유진 녀석 역시 곧바로 몸을 엎드린다.

“어… 어? 저… 저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빅보이 이 눈치 없는 새끼는 아직도 뭐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

“너… 너희 뭐야? 왜 그래? 왜….”

“닥… 닥치고 엎드려 이 새끼야!”

“어?”

칼턴이 허겁지겁 빅보이의 몸을 누른다.

“왜 그래?!”

“명예추기경님이야!”

“어? 어?”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이라고! 이 새끼야!”

“정신 나갔어? 칼턴? 무슨 저런 꼬맹이가 희생과 부활의 성….”

“…….”

“…….”

찬찬히 내 모습을 살펴보던 빅보이 녀석 역시…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몸을 엎드린다.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아니, 왜 자꾸 죄를 지었다고 그래. 너희들 죄지은 거 하나도 없는데.’

“죽여주십시오!”

“쇤… 쇤네는….”

이제는 쇤네란다.

“쇤네들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 저희들을 생긴 것과는 다르게 그,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닙니다. 물론 나쁜 짓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정말로 나쁜 놈들은 아닙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참회하겠습니다요!”

지들도 지들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용서해 달라느니 죽여달라느니 납작 엎드린 채로 아무 소리나 내뱉고 있는 놈들의 모습이 너무나 황당하게 비쳐온다.

하지만 이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이 새끼들이 내 모습을 실제로 본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운이 좋았다면 기도회를 직접 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마 미디어를 통해 본 게 전부이지 않을까.

갑작스레 상상도 할 수 없고, 너무나 먼발치에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고 하니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거기에….’

본인들이 평소에 나쁜 짓이라고 하는 행동들은 나쁜 짓에 속하지도 않겠지만 녀석들은 자신들의 삶이 그리 깨끗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축복을 내려주러 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을 벌하기 위해 내려왔다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처음 눈을 마주친 이후에는 감히 눈을 마주칠 수도 없을 것 같았는지 고개를 아예 땅에 처박고 있는 모습, 다른 놈들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고개를 드세요. 당신들을 벌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라고 입을 열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리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칼턴과 유진은 그나마 조금 긴장한 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았지만 빅보이 이 새끼는 지가 살면서 한 나쁜 일들이 떠올랐는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

‘시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이 새끼들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본인들의 삶의 터전에 신성한 초월자가 걸어 들어온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속으로 수만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문밖에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구경만 하고 있던 지혜 누나가 수습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여기 계셨군요. 명예추기경님.”

심지어….

‘제르니한 대주교?’

그 제르니한 대주교까지 함께 등장하셨다. 템플러 젠 납치 사건 때 활약해 주셨던 친 교황파의 믿음직스러운 대주교.

이 양반도 믿을 만한 양반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성격이 불같았던지라 이런 사건에는 그다지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성기사단을 이끌고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지난 납치 사건이 다시 한번 떠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다 보니 빅보이 놈들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는 중, 대뜸 이단심문관을 비롯한 성기사들이 좁은 방안을 채우고 있으니 어떻게 몸이 굳지 않겠는가.

하지만 제르니한 대주교의 입에서 나온 대사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눈치챈 것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말이다.

“암행 중에는 혼자 떨어지시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잖습니까. 명예추기경님….”

‘그런 컨셉이야?’

“…….”

“게다가… 교단에 알리지도 않은 채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암행을 나가신다 하시니… 미리 알고 있었다면 성기사들을 준비해 드렸을 터인데… 파란 길드의 길드원들도 동행하지 않으시고… 지난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를….”

“죄송합니다. 제르니한 대주교님. 하지만….”

“명예추기경님께서 조금 더 신도들과 가까워지고 싶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추기경님을 보호해야 하는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건 지혜 누나를 바라보는 것이 옳다. 이 사실을 교황청에 알린 것은 그녀였을 테니 말이다.

“…….”

‘기왕 보상해 주는 거 제대로 해주겠다는 거야?’

직접적으로 교단의 은인으로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멀뚱멀뚱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빅보이 녀석들 역시 그제야 내가 자신들을 심판하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

하지만 여전히 몸이 꼿꼿하게 굳어 있다. 제르니한 대주교의 싸늘한 시선이 그들에게 닿았기 때문이리라.

“…….”

“이분들은… 혹시….”

재빠르게 입을 여는 것은 당연한 수순.

“도움을 주신 분들입니다.”

“…….”

“…….”

“네?”

“저, 저희가 말입니까?”

‘좀 가만히 있으면 반이나 가지.’

“저희가….”

“식사도 대접해 주시고… 좋은 곳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네… 네?”

“저희는… 그냥….”

‘알았으니까 가만히 있어.’

“이분들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으니까요. 제르니한 대주교님께서 생각하시는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제야 제르니한 대주교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은근슬쩍 방 안을 살펴보던 제르니한 대주교의 시선이 선반에 머문다. 베니고어 교단의 상징물과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목각상이 놓여 있었다.

‘이 새끼들 아무리 봐도 신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수도라도 놀러 갔다가 기념품마냥 사 온 것이 아닐까. 제대로 관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있자면 저걸 매일 밤 닦으며 애지중지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목각상이나 상징물이 관리 되어 있나의 여부보다는 그들이 신도인 것 자체가 기쁜 모양인지 미소 짓는 제르니한 대주교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빅보이에게 입을 열기 시작한다.

“신도님들이셨군요.”

“…….”

“…….”

“네? 네! 저, 저희는 베니고어 교단과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의 광신도들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일 뿐입니다. 하… 하하하… 그, 그렇지 빅보이?”

“네. 이, 이 녀석 말이 맞습니다요. 저희는 광신도들입니다요.”

‘뭔 말을 못 하게 하자너.’

이대로 가다가는 교단 차원의 이벤트로만 마무리 지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일단은 제르니한 대주교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정리되었으니 말이다.

“제르니한 대주교. 이만 사람들을 물려주시겠어요?”

“네? 하지만….”

“부탁드려요.”

“…….”

“…….”

‘축복이라도 내려주는 게 맞겠지.’

그냥 눈속임이 아니라 진짜 축복 말이다.

제르니한 대주교와 성기사들, 이단심문관들을 물렸지만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놈들이 눈에 보인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정말로 맛있었어요.”

“네… 네?”

‘솔직히 맛이 없기는 했어.’

“그리고, 짧은 시간 돌봐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 잘 돌봐준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네… 저희가….”

살짝 날개를 펼치자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세 멍청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 어?”

“어….”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광경, 녀석들은 뭔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마치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말이다.

슬그머니 놈들에게 먼저 한 발자국 다가서자 움찔거리는 놈들이 보인다.

살짝 팔을 벌리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이 시야에 비쳐온다.

눈치 없는 놈들이었다. 그나마 가장 눈치 빠른 칼턴의 앞에 서봤지만 여전히 이 새끼들은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

결국에는 내가 녀석을 살짝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놈들의 덩치가 크다 보니 놈에게 내가 안긴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칼턴의 몸은 긴장감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금방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왜 울어?’

수도꼭지라도 튼 것마냥 눈물을 훔치는 놈이 느껴진다. 어느새인가 녀석 역시 나를 꽉 껴안고 있다.

“베니고어 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다음은 유진.

그나마 이 새끼는 쉬운 편이었다. 앞선 행사가 끝난 이후 계속해서 울고 있는 칼턴이 뭘 하고 있는지 지켜봤을 테니 말이다.

내 예상처럼 녀석은 잘 헤매지 않은 채로 이쪽을 꽉 안아온다. 울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대들이 가는 길에 언제나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마지막으로는 빅보이.

가장 긴장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일찍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눈물을 쏟아부은 녀석이었지만 칼턴과 유진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던 얼굴이 눈에 띈다.

그런 녀석이 내가 한 발자국을 내딛자 곧바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샤워도 하지 않은 놈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기는 했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그리운 체취였다.

“어? 어….”

“언제나 행복하기를….”

종교적 미사여구는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진심으로 녀석들을 축복하자 빛무리가 내려온다. 놈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놈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만 있었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

“모두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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