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49화
귀환(9)
“…….”
“…….”
“칼턴… 어제 우리가… 꿈을 꾼 건 아니겠지?”
“…….”
“…….”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그러는데… 어제 정말로 명예추기경님이 여기 계셨던 것 맞지?”
“…….”
“저기 칼턴… 칼턴… 어제 우리….”
“아니, 도대체 몇 번을 물어? 이 새끼야.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구만. 너랑 나랑 유진이랑 같이 봤으면 진짜로 있었던 게 맞는 거지. 저기 사인이랑 사진도 있구만… 나한테 묻지 말고 저기를 보라고 이 새끼야. 저기를….”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처구니없게도 자신과 빅보이, 유진과 명예추기경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비쳐왔다.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는 셋과 활짝 웃고 있는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의 얼굴이 보인다.
옆에는 유진 녀석이 용기 내어 외쳐 부탁드렸던 사인 세 장이 보였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가장 큰 증거였다. 자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 눈으로 저걸 몇 번이나 확인했던가. 아니, 사실은 어제 밤부터 저것들이 눈에 밟혀 제대로 잠들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심지어….’
축복도 받았지.
소문으로만 듣던 명예추기경님의 그 축복 말이다. 언론에서 나돌던, 실제 축복을 받은 이들과는 뭔가 방식이 다른 것 같기는 했지만 분명히 자신들은 명예추기경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 잘난 척하던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알렉스조차 받지 못한 것을 자신들이 받은 것이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당시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는 것. 평소였다면 저 원수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었다.
저놈들도 다 같이 질질 짰으니 말이다.
물론 어째서 자신이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다. 마치 그분과 감정이 동화된 것처럼 슬펐다는 것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 어제 당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나… 나도….”
“칼턴 너는….”
“나도 몰라. 이 새끼들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뭐. 우연히 주워온 꼬… 꼬맹이가 명예추기경님이었고, 우리가 타이밍 좋게 도움을 드린 거야. 뭐 암행 중이셨다고 하더만… 왜 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 필요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이게 꿈인지 생신지… 진짜….”
“그렇지?”
“그래. 이 새끼들아. 운이 좋아서 다행이었지. 만약에 그… 우리가 명예추기경님한테 해코지라도 했다고 생각해 봐라. 나는 어제 우리가 뭐 실수한 거 없나… 그것 때문에 잠이 안 오더라.”
“어? 그러고 보니까… 우리 어제 뭐 실수한 거 없지?”
“아마 없을 거다. 만약에 실수 한 게 있다면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혹은 파란 길드에서 직접 찾아왔을 테니까. 아무튼 간에 내가 너희들한테 당부할 게 있다면….”
“뭔데?”
“어제 일어났던 일은 그냥 묻어두라는 거야.”
“…….”
“물론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냥 묻어두라고, 교단의 사제들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제 우리가 본 걸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걸 좋아할 리가 없을 테니까. 당장 명예추기경님이 어려졌다는 것만 밝혀져도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길걸.”
“그건 그렇겠지.”
“그냥 한 번 정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우리가 그분에게 축복받았다는 것도 구태여 알릴 필요도 없고, 도움을 드렸다는 게 밝혀질 필요도 없어. 어차피 사는 세상이 다르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빅보이?”
“왜 나한테만 콕 집어서 물어봐?”
“네가 난리 칠 것 같으니까 그렇지! 이 새끼야!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닐까 봐. 내 말 알아들어?!”
“아니, 알고 있는데….”
“한 번 정도 꿈같은 일이 일어난 거고, 그게 바로 어제였다고, 인마!”
“뭐.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가 어제 그분과 뭐 수다 조금 떨고, 축복받고, 사진도 좀 같이 찍고 그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오늘 우리는 어제랑 똑같이 일하고, 평소랑 똑같이 행동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랑 변함 없이 살아가면 돼. 그게 우리한테도 더 도움이 될 거다.”
“…….”
“…….”
자신의 말에 왠지 모르게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빅보이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들뜬 상태로 있어도 괜찮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이내 고개를 뒤흔들 수밖에 없었다. 빅보이 녀석은 은근히 감정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실수를 할지 모른다.
그게 말실수가 됐든 행동이 됐든 간에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축복 좀 받았다고, 명예추기경님을 실제로 뵙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사진 좀 찍었다고 뭐 대단한 인간이라도 된 양 행동하면 이후에 넘어졌을 때 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녀석이 풀이 죽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방한다고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장사였다.
입이 쭉 삐져나온 녀석이 불만을 표시하고는 있었지만 본인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다행이려나.’
꼴에 칼밥 좀 먹었다고 뭐가 옳고 그른지 알고 있는 것이리라.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지금 자신들의 처지를 우연치 않게 원정 성공을 거둔 모험가들로 대입하면 이해하기 쉬웠으니 말이다.
기쁜 것은 사실이었지만 한 번의 성공이나 운 좋게 거둔 성공에 너무 취하면 일상을 살아가기 힘든 법이다.
다행히 묵묵히 출근 준비를 하는 빅보이와 유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일어났던 기적을 뒤로한 채로, 똑같이 땀에 전 티셔츠를 입고, 낙오자의 거리로 길을 나선다.
아직 이른 새벽, 거래처에서 온 햄비어 고기를 손질한 이후에, 빅보이 녀석이 거금을 주고 들여온 소스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조금 비상식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뭐야? 새벽부터.’
“저게 뭐야. 칼턴.”
“뭐든지 나한테 묻지 마 유진….”
“저게 뭔데? 칼턴!”
“아! 나한테 전부 물어보지 말라고 빅보이!”
“왜 저렇게 사람들이 많아?”
“무슨 사고라도 난 거 아니야?”
새벽부터 빽빽하게 길에 가득 찬 인파들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저게… 뭐야?’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슨 사건이라고 한다면 기억나는 게 있었으니까.
“너희… 혹시 어제 명예추기경님 만났다고 누구한테 벌써 이야기한 거 아니지?”
“난, 난 아니야! 칼턴.”
“하루 종일 같이 있었구만 그럴 시간이 어딨어?”
“그런데 저게 뭐야?”
으레 낙오자의 거리를 이용하는 놈들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모험가나 용병들의 비중이 많았기 때문에 사냥을 나가야 하는 이른 아침에는 텅텅 비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은 어떠한가.
‘이게… 도대체 뭐야?’
모험가뿐만이 아니다. 낙오자의 거리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요즘 놈들부터, 안경을 끼고 있는 샌님들까지, 모두가 여신의 손거울을 가지고 촬영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는 린델일보나 방송국에서 나온 이들도 시야에 비친다. 그것도 자신들의 가게 앞에서 말이다.
저도 모르게 어색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술에 취한 놈들은 온데간데없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놈들이 그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어 왔다!”
“어?”
“저기다!”
그 모든 이들이 티셔츠를 입은 자신들을 바라보며 달려오고 있었다. 대뜸 질문 세례를 퍼붓는 예의 없는 요즘 놈들이었다.
“장사 언제 시작하시나요?”
“아… 네?”
“장사는 오후부터….”
“네? 네?”
“오후부터 시작하신다는데요?”
“조금 더 빨리는 안 되나요? 오후에는 일이 있는데.”
“아아악! 망했어! 너무 일찍 왔나?”
“아니, 지금부터 줄을 서놔야지. 혹시 여기 대기번호 같은 거 있나요?”
‘그딴 게 어디 있겠어. 이런 허름한 햄비어 꼬칫집에.’
하지만 일단 고객이다. 여기를 매일 드나들던 놈들과는 다른 진짜 고객 말이다.
“저희는 대기번호 같은 거 없는데….”
“미리미리 만들어 놓으셨어야죠?!”
“아니, 파리만 날리는 꼬칫집에서 무슨 대기표를 만들어서 어디다 쓴다고….”
“네? 아저씨들 몰랐어요?”
“…….”
“명예추기경님 개인 계정에 아저씨들 꼬칫집 올라갔잖아요!”
“뭐라고요?”
한 젊은 녀석이 내민 여신의 손거울의 화면 안에는 익숙한 꼬치가 놓여 있었다.
배경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햄비어 꼬치가 눈에 보인다.
‘저게 언제?’
“이게… 도대체 언제….”
“어젯밤에요! 명예추기경님께서 정말 오랜만에 올리신 포스팅이라 지금 여기저기서 난리 났다고요! 방송국 놈들 쫙 깔린 거 보면 대충 감 오시죠?!”
파란 길드 집무실에서? 오랜만에 덕구랑 한 잔? 맛집? 빅보이네 햄비어 꼬치? 이모티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심지어 동영상도 올리셨다고요!”
여신의 손거울을 내민 젊은 녀석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햄비어 꼬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박덕구가 보였다.
파란의 탱커로 이름 높은 그 신념의 방패 박덕구가 자신들이 만든 꼬치를 먹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올라온 것이다.
그게 얼마나 먹스럽게 보이던지, 이미 그 맛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자신이 보기에도 침이 꿀떡 넘어갈 정도였다.
-미치겠다니까! 이거! 와 이게 무슨 맛이요! 형님!
-…….
-크으… 맥주랑도 잘 어울리네! 낙오자의 거리? 빅보이네 햄비어 꼬치? 너무 혼자만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거 아니요?
-…….
-하나만 더 먹어도 되나? 아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라… 아니, 욕심부리는 거 맞다니까! 그것 좀 줘보쇼. 혹시 다른 맛도 있나?
명예 추기경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명예추기경님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중에게 드러내신 건 정말 오랜만이라고요! 거울 연어랑 무지개 솜사탕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용병들이 즐겨 먹는 햄비어 꼬치라니! 그 명예추기경님이 햄비어 꼬치를 드신다니! 너무 신기하잖아요! 얼마나 맛있으면 팔로우까지 하시고 직접 홍보까지 해주셨겠어요?”
“팔… 팔로우? 팔로우가….”
“명예추기경님이 팔로우한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중에! 아저씨네 햄비어 꼬치 계정이 들어가 있다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파란 길드 마스터! 대마법사 정하얀 님! 공화국의 군사 진청! 베니고어 교단 공식 계정! 아, 아무튼 그런 계정들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아저씨네가 떡 하니 들어가 있는 거라니까요! 뭔지 모르면 그냥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게 뭔 소리… 우린 그런 계정 같은 거 없는데….”
“없긴요! 이렇게 떡하니 있구만.”
“어이! 빅보이! 우리 혹시 SNS에 계정 같은 거 만들었어?”
“몰라. 네가 만든 거 아니야? 유진?”
“나도 몰라 이 새끼들아!”
“설마… 아직 맞팔 안 하신 건 아니죠?”
“맞팔… 그,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안 한 거 같은데.”
“명예추기경님이랑 맞팔을 안 하면 어떻게 해요! 그것 때문에 공화국 군사가 아직까지 욕먹고 있는 거 모르세요!? 빨리하세요! 빨리!”
여기저기서 난리가 아니다.
“일단 문 열어요!”
“아 준비는 해야죠!”
“잠깐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아니. 지금은 장사 준비를 해야 되는데… 아! 좀 언론에서 오신 분들은 비켜주세요! 방송 출연 같은 거 안 하니까! 장사 준비 좀 하게! 우리 집은 맛으로만 승부하는 곳인데… 갑자기 무슨 방송 출연은….”
벌써 신난 것처럼 보이는 빅보이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그 더럽게 맛없는 햄비어 꼬치가 이렇게 호평을 받고 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분명 자신이 평소처럼 행동하자고 했지만 어떻게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겠는가.
“가게 문 열어! 빅보이 이 새끼야!”
“어? 벌써? 아직 소스가 준비가 안 됐는데….”
“일단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일단 열어! 열고 번호표 만들고 생각하자.”
“어? 어!”
왠지 모르게 익숙한 후드를 쓴 인형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