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350화 (1,34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50화

귀환(10)

자꾸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야 자신들이 어젯밤에 봤었던 명예추기경님과 같은 후드를 입고 있었으니 말이다. 먼발치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뭐해 칼턴! 장사 준비 안 해? 손님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아, 아니, 잠깐만!”

빅보이 녀석의 목소리에 황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예의 그 후드를 쓴 인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햄비어 손질해!”

“알… 알았어!”

‘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마치 벌떼처럼 몰려든 손님들이 눈앞에 있으니 잠깐 동안 품은 의문에 대해 고민할 틈도 없다.

“유진 번호표 만들고 있어?”

“이거 대충 종이 찢어서 만들면 되는 거지?”

“그래 인마!”

허겁지겁 비장의 소스를 만들기 시작한 빅보이, 공책을 대충 찢어서 번호표를 찢고 있는 유진, 그리고 그 모습을 계속해서 찍고 있는 요즘 놈들까지.

평소보다 활기차고 더 기분 좋아 보이는 빅보이를 바라보며 재빠르게 햄비어를 손질한다.

‘이 새끼들 텐션이 너무 올라갔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아저씨들!”

“최대한 빠르게 하고 있으니까! 기다리세요!”

“제가 먼저 왔어요! 제가 먼저 왔는데!”

“잠, 잠깐 손님들 일렬로….”

“아! 진짜 답답해서 못 참겠네! 그거 이리 줘보세요!”

“뭐… 뭐요?”

심지어 먼저 온 손님 중에 하나가 재빠르게 공책을 낚아채어 알아서 번호표를 발부하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메뉴는 두 개밖에 없죠? 지금부터 번호표 나누어 드리면서 주문 받을 테니까! 알아서 줄 서세요! 인증샷 같은 건 나중에 찍으시고요! 여기 아저씨들은 인터뷰 같은 거 할 생각 없다고 하시니까. 언론에서 오신 분들도 알아서 잘 처신해 주세요! 안 그래도 좁은 길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요!”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은 심지어 통제에 잘 따라주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잘 정리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와중에도 급하게 소스를 만든 빅보이 녀석이 장인이라도 된 양 꼬치를 불 위에 올리고 있었다. 마치 심혈을 기울이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을 보고 있는 손님들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저 새끼 신났어.’

심지어 안 하던 짓까지 하고 있다. 불 쇼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불판에 뭔가를 들이 붓자 화르륵 하며 불들이 넘실거린다.

‘기대감을 갖게 하면 안 되는데….’

“칼턴! 다음은 멀었어?!”

“기다려 이 새끼야!”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걸 세상에 내놓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소스는 너무나도 독특했으며 햄비어는 질기다. 객관적으로 돈 주고 사먹을 맛은 아니었다는 거다.

별미라면 별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낙오자의 거리에서도 외면받는 음식이었다.

린델의 젊은 놈들의 입맛에 맞을 리 만무, 심지어 맛 평론가니 뭐니 하는 녀석들도 전부 와 있는 마당에 이 햄비어 꼬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무엇보다 실망할 빅보이의 얼굴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그 와중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첫 번째 햄비어 꼬치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빅보이 녀석은 아직도 장인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 촉각이 곤두서는 게 당연하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뭐야. 저사람 교이쿠 선생 아니야?”

“교이쿠가 뭔데.”

“맛 칼럼니스트. 실리아 출신이잖아. 종종 언론에도 자주 나오는데?”

‘하필이면….’

자세히 보니 자신도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이 음식은 어쩐다느니 이 음식은 어쩐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쏟아내는 녀석.

질이 안 좋은 놈이기는 했지만 의외로 큰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조용히 녀석이 햄비어 꼬치를 무는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일 지경, 예상했던 것처럼 질긴 햄비어 꼬치를 한입에 씹기 힘든지 질겅질겅 씹어내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 않다. 혹시나 혹평을 하지 않을까 긴장감이 고조된 시점에 녀석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개성 있는 맛이로군요.”

라고 말이다.

꾸역꾸역 질긴 꼬치를 기어코 전부 먹어 치우는 꼴은 가관이다.

“원래 이 햄비어 꼬치의 기원이라는 게 말입니다. 실리아의 용병들 사이에서 유래된 것인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저 새끼는.’

그다음 손님도 마찬가지였다.

“어… 맛있는데?”

“독특한 것 같아.”

‘단체로 세뇌라도 당한 건가.’

“술 안주로 딱인 것 같지 않아? 아저씨! 여기 럼주도 한 잔 주세요!”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 자신이 틀렸던 것이 아닐까. 빅보이 녀석이 옳았던 걸까? 한순간에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여기저기에서는 감탄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다.

“양념이 특이해.”

“어디에서 온 기법을 쓴 걸까. 최소한 지구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왕국연합의 정통요리법인가?”

‘그게 뭔데. 도대체.’

“햄비어 꼬치는 본래 먹을 것 없는 화전민들이나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래된 음식입니다. 식감이 질기지만 잘 상하지 않고, 보관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오랜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적합한 음식이죠.”

‘그랬던 거였어?’

“지금처럼 대륙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더 많은 요리법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전통의 요리 방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 같군요.”

“재미있는 맛이네요. 쓰읍… 이거 재미있는데.”

‘도대체 뭐가 재미있어.’

“개성 있고 재미있고 독특합니다. 여기 이 부분 보이시쥬? 여러분… 여기 이 끝쪽 부분이 가장 별미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도대체. 이걸 도대체 왜 촬영하고 있는 거야.’

“그럼 한 번 더 먹어보겠습니다. 좀 질긴 것처럼 보이실 겁니다. 근데 원래 햄비어는 질긴 맛으로 먹는 거예요. 어째서 명예추기경님이 이걸 좋아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좀… 뭐라고 해야 할까. 추억의 맛이 납니다.”

‘추억?’

“예전에는 명예추기경님도 야전생활을 많이 하셨던 경험이 있으셨으니… 평범한 모험가들과 이런 고기를 즐겨 드셨을 겁니다.”

“…….”

“미치는 맛이네요. 으음… 와… 별미네. 별미야!”

‘이 사람들 혹시 단체로 미친 건 아닐까.’

인지부조화가 온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빅보이 녀석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더 이해할 수 없어진다.

그야 무려 명예추기경님이 이 햄비어 꼬치를 포스팅했다고 했으니 감히 부정적인 말을 면전에 쏟아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들은 비상식적이다. 빅보이 녀석이 어디에선가 프락치라도 고용한 것이 아닐까.

“쓰읍… 하! 이거 군침 도는데. 혼자 먹기 아까운 맛입니다. 감독님도 조금 드셔보세요.”

“아… 다른 사람들 먹는 것 구경만 하니까 미치겠네.”

“여기도 좀 주세요! 여기도 빨리요!”

“여기는 언제 돼요?! 빨리 좀 구워주세요!”

“좀 기다리십쇼. 빨리빨리 하자고 꼬치 퀄리티를 내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빅보이 너무 재수 없잖아.’

“칼턴 유진! 뭣 하고 있어! 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순식간에 재료가 동이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동안 팔리지 않았던 햄비어까지 전부 동원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물량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여기저기에 고성이 오고 갔을 정도.

“새치기하지 말라고!”

“아저씨! 여기 주문….”

“아 좀 밀치지 좀 마세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과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웃돈까지 주며 번호표를 팔거나 꼬치를 사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열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고, 누가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집안의 가신들이 꼬치 하나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빅보이? 이게 마지막인데?”

“뭘… 뭘 어떻게 해! 이 새끼들아! 장사 접어야지. 푸흐…흐흐흐흣. 미안하지만 장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아아아아악! 말도 안 돼!”

“아, 뭐예요! 제발… 제발! 하나만 더 팔아주세요!”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뒷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인파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다 쓸려 나간다.

여기저기에서는 제발 하나만 더 팔아 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빅보이 녀석은 오랜만에 찾아온 권력에 무심히 문을 닫고 있었다.

자기가 이럴 줄 알았다느니, 이제야 세상이 햄비어 꼬치의 진면목을 알아준다느니 하는 개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해.’

물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잘난 척하는 빅보이 녀석이 꼴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었던 타이밍이었다.

예의 그 후드를 뒤집어쓴 인형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

“어디 가? 칼턴….”

“잠깐….”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쩍 인파들 사이로 움직이는 이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후드를 쓴 인형,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다 어느 순간, 홀연히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저도 모르게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외부에 비해 깔끔한 내부가 눈에 보였다.

“안녕하세요.”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이… 지혜 님?”

어제 본 인형 하나가 눈에 비쳐왔다.

“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뒤를 미행하시네요?”

“…….”

“농담이에요. 농담. 오히려 따라와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잠깐 앉으세요.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요. 본래는 모두가 있는 곳에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제 생각보다 더 바깥이 복잡스럽더라고요. 제가 이런 분위기는 딱 질색이라….”

“하… 하하하하….”

“그리고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정산해야 되는 것도 있고….”

“…….”

“…….”

“정산 말입니까?”

“그럼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명예추기경님을 보호해 주셨잖아요?”

“아… 그건 그냥….”

“아마 교단 차원에서 따로 보상금이 나갈 거예요.”

“네?”

“액수는 대략적으로 이 정도… 될 것 같고.”

“네? 네?”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에서도 보상금이 나갈 거고요. 액수는 대략… 이 정도….”

“네? 그… 그게 무슨….”

“지금 사용하고 계시는 상가는 이미 세 분 명의로 바꾸어 드렸고요. 머무시고 계시는 곳도….”

“네?”

“아, 그리고 낙오자의 거리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어요. 근시일 내에 확장사업이 들어갈 예정인데, 그래도 낙오자의 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살리기로 결정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네? 네? 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보상금은 도대체 뭐고, 상가 명의는 도대체 무엇인지, 낙오자의 거리 확장사업은 또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덜컥 겁이 난다.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정말 이 모든 걸 해주신다는 겁니까?”

“조건이 없는 건 아니에요.”

“…….”

뭔가 조건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열심히 살아주세요. 괜히 돈이나 이상한 거에 눈 멀어서 다른 데 정신 팔리지 말고요. 지금까지 쭈욱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장사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

“아! 작은 조건을 하나 더 붙이자면, 앞으로 명예추기경님께서 자주 들르실 것 같거든요. 아마 오늘 저녁에도 들르실 것 같고요. 그때 최대한 잘 대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요.”

“…….”

“…….”

“어째서….”

자신이 내뱉은 그 물음에는 많은 질문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행운이 찾아온 것인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큰 보상을 주는 것인지 말이다.

단순히 길 잃은 명예추기경님을 보호해 준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보상이다.

개인 계정에 맛대가리 없는 햄비어를 홍보해 주신 것만 해도 이미 평생 쓸 행운을 전부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그것으로도 보상은 차고도 넘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에 마치 빅보이라도 된 것마냥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꿈뻑일 수밖에 없었다.

“글쎄요.”

“…….”

“명예추기경님이….”

“…….”

“고마운 게 많은가 봐요.”

대화는 그것으로 끝,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뜨니 그녀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

“…….”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자신의 뺨을 때리고 있는 빅보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

“…….”

“칼턴….”

“…….”

“칼턴! 일어나!”

“…….”

“칼턴! 일어나라고! 이 새끼야! 출근 안 해? 아직까지 쳐 자고 있어?”

“어? 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지만….

“어….”

“빅보이.”

“왜?”

“햄비어 발주 더 넣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대륙에 있는 햄비어들 전부 싹 다 발주 넣으라고. 유진 너는 빨리 번호표부터 만들고!”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팔리지도 않는 햄비어를 도대체 왜….”

“아니, 내 말만 믿고 빨리!”

앞으로 자신들의 인생이 바뀔 거라는 것은 확실했다.

“저녁까지 장사해야 되니까! 린델, 아니, 대륙 전체에 유통되는 햄비어들 싹 다 끌어모으라고!”

“…….”

“명예추기경님이 오신단다!”

아마 녀석들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선반 위, 사진에 담겨 있는 네 사람을 보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