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51화
면회(1)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와요?”
“베니고어랑 다른 애들한테 좀 나누어 주려고 그러지.”
“굳이? 그걸요?”
“왜. 누나도 먹을래?”
“저는 사양할게요.”
히죽거리는 지혜 누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꿀밤 한 대 먹여주고 싶자너.’
표정을 보아하니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낸 단편영화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저건 분명히 만족스러운 상영회를 마친 감독의 얼굴이다.
“표정 좀 풀어요. 오빠.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다 오빠 좋으라고 한 일인데… 결국 잘 풀렸잖아요.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행복하고, 오빠도 오빠 나름대로 정리를 잘한 것 같고…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 아니냐고요.”
“…….”
“그래서… 가끔 찾아가기로 한 거죠? 이미 들렀다 온 것 같기는 하지만….”
“뭐, 생각날 때마다 가끔은….”
‘진짜 얄미워. 이 누나는….’
네 마음은 다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기까지 하다.
어느새인가 장난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감돌기 시작, 한 번은 놀려주고 싶었다는 듯이 다가온 지혜 누나가 갑작스레 이쪽의 엉덩이를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아구구. 우리 기영이 이제 다 풀렸쪄요?”
“하지 마. 누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쪄요?”
“아. 하지 말라고… 뭘 이상한 걸로 장난을 치고 그래?”
“아구 그랬쪄요?”
“아! 하지 마.”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
“…….”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제 조금 기운 차린 게 보여서… 그동안은 좀 예민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잖아요. 아니, 실제로도 예민했었죠. 제가 다 눈치를 볼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어요? 베니고어 님만 하더라도 오빠 괜찮냐고 계속 물어보던데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별일이네요. 그렇게 순순히 인정하는 게.”
“인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저번에도 한번 말했었잖아. 지금 그게 사실인데 뭐 어쩌겠어. 이 지긋지긋한 융화과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는데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감정적인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라고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일을 한두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쉽게 흔들리고, 내 유년기가 잘못됐나 생각해 볼 정도였다니까.”
“글쎄요. 저는 부러운데요.”
“뭐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요. 오빠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불편하게 느낄지는 몰라도,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해결하는 건 성장에 중요한 양분이 되잖아요? 평소에 오빠라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들도 느낄 수 있고,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거니까. 오빠가 지금 이 시점에 1회 차로 가게 된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게 그렇게 돼?”
“저나 진청 같은 인간이 자신의 삶과 유년 시절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 있겠어요?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는 인간들은 그게 안 돼요. 물론 오빠야 불편하겠지만 저는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봐요.”
“남 일 말하듯이 말하지 마. 누나가 내 상황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고, 성장의 양분이 된다는 것 정도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야. 불편한 것 이전에 성격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니까.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것마냥 혼란스럽다고….”
“우리 기영이 사춘기 왔쪄요?”
“아….”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만 놀릴게요. 아, 아무튼 일은 차질 없이 전부 다 처리했어요. 상가 명의도 그쪽으로 돌려놨고, 낙오자의 거리 확장 사업도 금방 들어갈 거예요. 보상금도 넉넉히 들어갔으니 웬만큼 뻘짓 하지 않는 한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걸요. 뭐 그럴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요. 오빠가 제대로 주워온 것 같더라고요.”
“…….”
“혹여나 사기 같은 것도 당하지 않게 사람도 몇 명 붙였으니까. 이제 그쪽은 안심하셔도 돼요.”
“뭐 그렇게까지 해? 걔네가 애도 아닌데.”
“그래도요. 혹여나 나중에 더 귀찮은 일이 일어날까 방지 차원에서… 오빠는 부정하겠지만 또 그쪽 아저씨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한바탕 난리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 뭐예요?”
“…….”
“…….”
“알았어요. 진짜 안 할게요.”
‘이 누나 오늘 진짜 날 잡았자너.’
그만큼 분위기가 풀어졌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느끼고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난 며칠 동안은 정말로 분위기가 안 좋았으니 말이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쪽이 압박받고 있는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쪽이 감성적으로 변하면 한쪽은 이성을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힘들 수밖에 없었겠지.
흔하지 않게 장난스러운 지혜 누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뭐예요? 왜 그렇게 사람을 분석하듯이 쳐다봐요.”
“누나가 매일매일 하던 건데 뭐.”
“그렇게 보지 마요. 그거 기분 나쁘다.”
“아니, 그냥… 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누나도 힘들었을 것 같아서.”
“제가 뭐가 힘들었겠어요. 오히려 오빠가 더 힘들었겠죠. 거기서 고생한 것도 오빠고, 열심히 구른 것도 오빤데. 참… 게다가 아직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맞지.’
아직도 숙제를 미뤄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얼핏 일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리가 필요했으니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의문에 휩싸여 있다. 정답을 찾는 과정 속에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드러난 것이 없으니 계속해서 안개 낀 장소를 헤매는 꼴이었다.
저도 모르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지혜 누나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지켜보자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
“곧바로 들어갈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조금 더 머무를 거예요?”
누나에 질문에는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난번의 출정이 머릿속에 틀어박힌다. 조금 쉬어 가는 걸 추천했던 지혜 누나의 말이 떠올랐던 탓이다.
물론 그게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내가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2회 차에서도 여러 가지로 정리해야 할 문제가 많은 만큼 일단은 조금 더 머무르는 게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말이다.
“조금 더 머무르게.”
“잘 생각했어요. 제가 느끼기에도 그게 맞아요. 이번에는 김현성 얼굴도 보고 갈 거죠?”
“그래야지. 누나가 억지로 연락해 준 덕분에 뺄 명분이 사라졌으니까.”
‘그쪽도 한번 둘러보기는 해야 돼.’
너무 오랜 시간 녀석을 방치했으니까.
물론 현 상황에서 김현성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녀석이 1회 차로 함께 넘어가는 건 가장 지양해야 할 상황 중에 하나였고, 실상 이런 종류의 일에선 방해만 될 게 뻔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쪽에 얌전히 처박혀 있어 주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녀석을 영원히 그곳에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사건 덕분에 조혜진도 계속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 정하얀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 이곳에서의 내실을 한번 다지는 것은 꼭 필요했다. 언제나 이쪽의 계획을 망치는 것은 파란 놈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벤트는 꽤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았던 녀석들을 조금씩 풀어주는 시간이었고, 간만에 모든 길드원들이 한곳에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쓸데없는 수다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흐음….”
별안간 이쪽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지혜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
“뭐야.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
“…….”
“오빠.”
갑작스레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는 그녀가 보인다.
“왜 그래? 누나?”
“거울 본 적 있어요?”
“거울이야 매일 보지. 갑자기 왜?”
또 쓸데없는 농담을 하려나 싶어 막 태클을 걸려고 했을 때, 슬쩍 내 앞머리를 들추는 그녀가 보였다.
“왜?”
“…….”
“…….”
“눈 말이에요.”
“눈?”
“눈 색… 조금 흐릿해지지 않았어요?”
“갑자기 뭔 소리야?”
“착각인가?”
“뭐라는 거야.”
“변한 것 같은데….”
“…….”
“아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눈이 침침해졌나 보네요. 아무튼 저는 이제 좀 쉬어야겠네요. 오빠도….”
“응. 들어갈게.”
“그래요. 들어가세요. 혜진이한테 안부 전해주시고요.”
무언가 찜찜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혜 누나를 뒤로한 채로, 곧바로 집무실을 박차고 나온 것은 당연지사.
흘려듣고 싶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지혜 누나는 평소에도 눈썰미가 좋기도 했고, 사소한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돈다.
때마침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재수 없는 인형 하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에 보는 녀석, 최근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간 모양인지 늦은 시간까지 일터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녀석은 애써 이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며 지나친다.
“진 군사님.”
“제길….”
“진 군사님?”
“재수가 없으려니.”
“아니, 진 군사님… 사람이 부르면 말 좀 해주세요.”
“제기랄….”
“아니, 무슨 말을… 진 군사님 주려고 선물까지 사 온 사람한테.”
“필요 없다.”
“요즘 린델 낙오자의 거리에서 유행하는 햄비어 꼬치예요. 혹시나 입에 맞으실까 가져왔거든요. 드시든 말든 진 군사님 마음이지만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건 좀 아니죠. 전혀 명예롭지 않은 행동이에요.”
곧바로 녀석의 품에 햄비어 꼬치를 처박은 이후에는 말을 이어 나간다.
“진 군사님.”
“용건만 간단히.”
“…….”
“제 얼굴 잘 보세요.”
“?”
“뭐 달라진 거 없어요?”
“…….”
“…….”
“미친놈.”
그대로 나를 지나쳐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기대한 내가 병신인지.’
곧바로 아래로 내려온 직후에는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에 인사를 해오는 길드원들이나 직원들을 받아준 이후에 슬쩍 방 안으로 들어가자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 이쪽을 반겨왔다.
천천히 거울 앞에 선 것은 당연지사. 찬물로 한번 얼굴을 헹군 이후에 앞머리를 올리며 눈을 바라보자 여전히 변함이 없는 금색의 눈동자가 시야에 비쳐왔다.
“…….”
“…….”
“흐릿해졌나?”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금색의 눈동자가 바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흐릿…해졌어.”
이지혜가 착각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쪽 눈동자의 색이 흐릿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