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53화
면회(3)
“…….”
“…….”
“기영 씨?”
“오빠!”
가장 먼저 녀석에게 뛰어든 것은 김예리.
“길드마스터!”
그리고 조혜진 역시 재빠르게 김현성에게 발걸음을 옮긴다. 다른 길드원들 역시 눈에 띄게 반가워하는 얼굴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기야 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동고동락한 이들이 아니었던가. 대륙에서는 가족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다.
물론 김현성이 자의로 멀어지기를 자초하기는 했고, 모든 길드원들 역시 녀석의 결정에 동의했지만 그게 녀석을 아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두가 녀석을 응원하고 그리워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형씨! 그동안 좋았나 보오. 얼굴이 완전히 핀 것 같은데?”
‘그래. 시바. 얼굴이 너무 폈네. 이 새끼.’
“거, 혼자만 너무 푹 쉬고 있었던 거 아니요?”
“하… 하하하… 덕구 씨… 여전하시군요.”
“오, 오랜만… 이에요. 현, 현성 오빠.”
“네. 하얀 씨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길드마스터.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네. 희영 씨.”
모든 길드원들이 녀석을 둘러싸고 있다. 박덕구 녀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김현성의 어깨를 두드리자 녀석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볼을 긁는다.
“좋아 보이시네요. 다행이에요.”
“네. 엘레나 님도….”
김현성은 한 사람 한 사람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대한 의연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말이다.
“길드마스터. 이건 선, 선물이에요.”
“감사합니다.”
알프스가 가지고 온 선물을 받아 들고, 김예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김예리는 본인이 너무 오버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힌 이후 평소의 무표정으로 은근슬쩍 거리를 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김현성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아직까지 김창렬과 박리안이 녀석을 조금 경계하고 있었다는 것.
그야 로헨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그럴 만도 했지만 딱히 녀석을 경계하는 게 김현성에 멘탈에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김창렬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자 조심스럽게 긴장을 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녀석의 주변을 감싸며 이것저것 묻기 여념이 없었던 길드원들이 살짝 물러난 것은 김현성이 은근슬쩍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기영 씨.”
그제야 녀석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도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은 얼굴, 살짝 바람이 불자 녀석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뭔 청량음료 CF 찍냐고.’
만약 내가 광고를 기획한다면 때려죽여도 녀석을 모델로 채용했을 것이다.
푸른색의 초원 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자 괜스레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살짝 주저하는 녀석의 모습도,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청춘 드라마 뭐 그런 것 같자너.’
그 와중에 김현성은 이쪽으로 오길 주저하고 있는 중.
회귀자의 등을 떠밀어 준 것은 능글능글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던 돼지 새끼였다.
“뭣 하고 있는 거요. 형씨.”
“…….”
“가서 인사 안 할 거요?”
“아….”
‘그래. 시바 빨리 와. 네가 와야지. 내가 가야 되냐고.’
그 목소리에 김현성을 용기를 얻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뭔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새끼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특유의 걸음걸이를 본 이후에는 평소의 김현성 그대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
저벅저벅 걸어오다 코앞에 멈춰 선 녀석.
“그러니까… 기영….”
“…….”
“…….”
“오랜만이네요?”
‘왜 그렇게 어색하게 행동하냐구.’
당연히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자신이 내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이곳에 처박혀 있었으니 그런 김현성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그 덕분인지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진다.
흥분하거나, 저번처럼 말도 안 되는 실수가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은 모양새.
정신적인 문제는 차도가 좋아지고 있어도 커뮤니케이션 장애는 어떻게 되지를 않는 모양이다.
마치 발만 동동 구르는 것처럼 느껴진 녀석에게 살짝 손을 내밀자. 김현성이 웃으며 손을 잡아왔다.
‘그래, 악수 말고 포옹도 한 번 하자.’
키가 작아 이상한 포즈가 된 것 같았지만 김현성이 굉장히 안심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기간이라고 할 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함께 겪어왔던 그 많은 일들 위에 쌓인 유대감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녀석은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기영 씨.”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가끔 연락드린 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재미없었겠네요.”
“재미가 없었다고 해야 할지. 물론 외롭기는 했습니다만… 그렇게 나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오기만 했으니 이런 시간이 한 번 즈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기영 씨는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뭐….”
돼지 새끼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거기 형씨. 오랜만에 만나서 쌓여 있는 이야기가 많은 건 알겠는데. 이쪽도 좀 신경 좀 써주쇼. 형님도 말이요!”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래. 지금만 기회가 있는 건 아니니까.’
박덕구의 말대로 모두가 모인 자리였으니 말이다.
“거, 빨리빨리 밥 먹을 준비부터 합시다. 배고파 죽을 것 같다니까.”
결국 저게 목적이었나 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말에 동의하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소라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식탁과 함께 식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정하얀은 그 옆에서 조용히 한소라를 보조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어색함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방해가 되었는지 한소라가 정하얀을 제지했을 정도였다.
“그, 그냥 앉아 계세요. 정하얀 님.”
“나, 나,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괜찮아요. 창렬이 오빠가 도와줄 거예요.”
“으… 으응.”
“부길드마스터랑 같이 계세요.”
“그, 그래도 될까?”
“네.”
결국에 정하얀은 일터 아닌 일터에서 쫓겨난다. 정하얀이 내게 달라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열심히 움직이는 길드원들이 시야에 비쳐온다.
한소라가 말했던 것처럼 김창렬은 한소라와 함께 초원 한가운데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고, 알프스와 벨리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이것저것이 생기는 것은 장관 아닌 장관, 처음에는 그냥 초원이었던 곳이 마치 고급스러운 식당 같은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간이 주방이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할 일이 분담된다. 마치 원정을 나온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선희영을 필두로 완성되어가고 있는 이 디너파티는 예전에 해왔던 것과 방향성이 다르기는 했지만 길드원들 모두가 즐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평소에도 요리하는 걸 즐기는 황정연은 간이 주방에서 벌써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의외로 스미스 대령도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둘의 호흡이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알아서 고기 담당을 자처했던 박덕구 녀석은 자신만의 바비큐 그릴을 들고 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올리고 있었다.
“그거 알고 있소? 형씨? 요즘 우리 형님이 햄비어 꼬치에 푹 빠져 있다는 거 아니요.”
“네? 햄비어 꼬치 말입니까? 기영 씨가….”
“아니, 그렇다니까. 나도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거, 맛이 기가 막힙디다. 린델에서 낙오자의 거리라는 곳에서 대 히트를 친 거 아니요. 완전 히트요. 히트. 형씨도 한번 먹어보면 진짜 좋아했을 텐데 말이요.”
김현성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이 새끼 쓸데없는 이야기 하고 있자너.’
물론 모두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기 호수에서는 낚시도 할 수 있는 겁니까? 길드마스터?”
“네. 기모 씨. 평소에도 저곳에서….”
“크으… 지금 빨리 낚시나 하러 가는 게 어떠십니까? 길드마스터.”
“네?”
“물론 재료들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공수해 온 것보다는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하하. 신선한 생선이라니….”
“…….”
“안기모 씨.”
“선희영 님?”
“따로 할 일이 있으니. 이리로 와주세요.”
“네… 네.”
물론 선희영에게 붙잡힌 녀석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장 난이도가 있는 업무였다.
‘무슨 캠프파이어를 하려고?’
거대한 돌과 나무를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는 안기모 녀석은 모닥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것을 만들고 있는 중.
그 옆에서 어느새 자리를 옮긴 벨리에와 알프스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선희영은 좀처럼 병아리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있다.
이제는 병아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커버린 그녀들이었지만 선희영의 성향이 그녀들에게 일을 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진짜 불편할 것 같자너.’
차리라 전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여기저기 움직이고는 있는데, 막상 도와줄 것도 없고 쉽사리 끼어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에는 발만 동동 구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결국에는 선배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평소에 알프스를 잘 챙겨줬던 조혜진조차 박덕구와 함께 바비큐 그릴에 잡고 있었고, 엘레나는 샐러드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물론 단순히 일하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여기저기서 떠들며 캠핑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저 병아리들의 마음이 편할까.
결국 커다란 술통을 옮기고 있는 유아영에게 달라붙어 일거리를 구걸하듯 얻어내어, 술병을 옮기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모양인지 술병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선희영 디렉터의 싸늘한 눈초리가 그들에게 닿은 것은 당연지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거 비싼 건데….’
물론 선희영은 소리 내어 그들을 책망하지 않는다. 지금은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크게 한숨을 쉬며 그들을 지나칠 뿐이었지만 이미 벨리에는 멘탈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거 한번 먹어봐.”
결국 김예리의 기미 상궁으로 취직에 성공한 알프스, 흰둥이는 세상 행복해 보인다.
“여기 양념 좀 가져다 달라니까! 빨리! 빨리! 거 속도가 생명이요.”
박덕구의 말에 박리안이 몸을 날리고,
“저… 이, 이쪽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홀로 험한 임무를 맡은 안기모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제가 했지만….”
황정연이 계속해서 스미스 대령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모두가 김현성을 향해 한마디씩 던진다.
김현성은 딱히 뭔가 한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모두와 소통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박덕구와 함께 바비큐 그릴 앞에서 햄비어 꼬치에 대해 다시 한번 묻고 있었고, 조혜진과는 그동안 밀린 세상살이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김예리가 야심차게 만든 요리를 한 입 먹어보며 어색한 미소를 흘리기도 했고, 엘레나에게 드레싱을 건네며 에베리아 왕국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스미스 대령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지 눈인사를 나누는 게 끝이었지만 박리안, 김창렬과는 꽤 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그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던 것이 아닐까.
‘진짜 오랜만이기는 하자너.’
낯설지만 무척 익숙하다.
“…….”
“기,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오, 오빠….”
“…….”
“…….”
“응.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