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54화
면회(4)
모든 준비가 끝나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터를 꾸미기에 여념이 없는 안기모를 제외한 모두가 착석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오랜만에 길드원들 모두와 함께 하는 자리가 적응이 되지 않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김현성이 내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새삼스럽지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과 이쪽을 중심으로 모두가 착석하고 있으니 녀석을 포함한 모두가 모였다는 게 느껴진 탓이다.
“…….”
“…….”
물론 무언가가 들어맞는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쪽보다 길드원들이 더욱더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 예였지만 한 지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랜만에 자리한 셈, 길드가 커지고 업무도 다양화되며 개인으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권력과 권한이 길드마스터와 부길드마스터에게 양분되어 있는 파란 길드의 특성상….
‘이게 안정적인 포지션이자너.’
이게 안정적인 포지션이라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물론 가끔은 김현성이 무능력한 가장처럼 보일 수는 있다. 실제로 대책 없이 일을 벌이기도 하고, 무리한 요구를 해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가정에 화가 불어 닥치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김현성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대륙에서 인간들이 집단을 이루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울타리다. 파란의 길드원들은 나와 김현성이 함께 있어야 이 울타리가 더 단단해진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나 김예리의 경우에는 더욱더 말이다.
‘평소보다 텐션이 올라가기는 했어.’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다.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대사도 데시벨이 조금씩 올라가 있는 것 같다.
‘꼬맹이 들떴자너.’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빨리 고기. 빨리 고기. 빨리 고기.”
“아, 거의 다 됐다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라니까!”
“덕구 아저씨. 빨리.”
“원래 이 고기라는 게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빨리 고기!”
‘아마 자기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거야.’
저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추후에 본인에게 보여준다면 아마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까.
한 손에는 포크를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테이블을 탁탁 두드리고 있는 모습, 조금이라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하는 김예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일단 이것부터 좀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느새 자리한 안기모가 슬그머니 스튜를 퍼주자 그걸 양 볼에 채워 우물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자. 일단 잔부터 채우쇼! 형님은 무알콜로 받으시고….”
“우리 현성이 형씨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시바 너는 술 먹으면 안 돼. 이 새끼야.’
“제가 따라드릴게요. 정하얀 님.”
“아… 응. 고마워 소라야.”
“저도 술은 괜찮습니다.”
“거, 현성이 형씨는 그렇다고 쳐도… 딱 한 잔만 받으쇼. 희영 누님. 거. 혜진이 누님도 한 잔 받으시고.”
“…….”
“그리고 다들 동작 그만! 원래 오늘 같은 날은 길드마스터가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요? 뭐 연설 같은 거라도….”
‘너 왜 그래. 얘 부담되게.’
살짝 당황하는 김현성이 보였지만 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살짝 잔을 들어 올린 이후에는….
“거창하게 연설이라고 하시면 조금 부담이 되니… 간단하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냥….”
“…….”
“…….”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지만… 모두 다시 만나 반갑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자자. 빨리 위하여! 합시다! 위하여!”
‘맨날 뭘 위해. 이 새끼야.’
“거, 현성이 형씨의 쾌유와 파란 길드를 위하여!”
“위… 위, 위하여….”
“위하여!”
모든 길드원들이 잔을 치켜드는 모습, 그걸 기점으로 작은 파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선희영이 기획하던 파티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기 한 잔만 더 주시겠습니까!”
“크으….”
“거, 빨리빨리 다들 오쇼! 고기요! 고기 받아가쇼!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기가 왔다니까! 고기요!”
‘조금 더 조용하고 격식 있는 걸 원했던 것 같은데.’
텐션이 올라간 녀석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괜히 박덕구 이 새끼를 티파티나 중요한 자리에 부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고기를 손으로 붙잡고 게걸스러운 모습으로 뜯고 있지 않은가.
식기 도구는 도대체 왜 가져다 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 심지어 숟가락도 쓰고 있지 않다. 옆에 있는 빵을 찢어 그걸로 스프를 퍼먹고 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싸구려 럼주를 들이켜고 있는 중, 비싼 술 내버려 두고 왜 저걸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선희영이 살짝 표정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딱히 제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즐거워 보이자너.’
스미스 대령 역시 나름 격식을 갖추려고 하는 쪽이었지만 어느새 다가온 박덕구 녀석이….
“거 럼주도 좀 드시고! 팍팍 드쇼!”
비어있는 스미스 대령의 잔에 럼주를 가득 채운다. 심지어 넘쳐흐르게 따라버렸는지, 깔끔했던 스미스 대령의 식탁이 금방 더러워져 버렸다.
‘와. 진짜 싫을 것 같은데.’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써 꾸민 디너 파티의 분위기가 주점마냥 변해 버린 것은 당연지사.
알프스의 흰둥이도 그 분위기에 동화되었는지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안기모 녀석도 박덕구 못지않게 즐기고 계시다.
이런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엘레나도 목소리를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신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하하하하하.”
“헤… 헤헤….”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을 옛날이야기를 주고받는 녀석들이 시야에 비친다.
“길드마스터. 기억나십니까? 왜 원정에 나가서 말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배가 아픕니다.”
크고 작은 추억들이 많았던 탓이다.
물론 새로운 소식들도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부길드마스터. 벨리에가….”
“네?”
“매번 시청각자료실에 달라붙어 있는 거 아세요?”
병아리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히꾹… 그때 창렬 오빠가 뭐라고 했냐면요.”
“어머. 어머. 뭐라고 했는데요?”
“난 이미 네게 영혼을 바쳤다. 그러니 힘들 때는 언제든지 기대도 돼.”
‘이 새끼 뭔 대사를 그렇게 쳐? 무슨 악마랑 계약이라도 했어?’
“어머… 로맨틱해라.”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저, 저희 첫 키스 할 때는요.”
‘그래. 뭐라고 했는데?’
“첫… 첫 키스….”
“네 앞에만 서면 어째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까. 혹시… 내 심장 소리가 들리나?”
“그래서요? 그래서요?”
“들린다고 말했죠. 실제로 들렸으니까요. 근데 그러니까 창렬 오빠가….”
“네? 네?”
“암살자로서는… 실격이로군. 이라고 말하면서… 다가와서… 제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꺄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창렬 이 새끼. 옛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
“…….”
“혜진 씨는 요즘 좀 어떠세요?”
“네?”
“연애사업 말이에요. 연애사업. 요즘은….”
“아. 저도 궁금했어요. 조혜진 님. 저희 오라버니 이후에….”
“저… 저는 그냥 나름대로 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은 못 하지만… 아마 제 연애사를 전부 말씀드리면 충격받으실 겁니다. 길드에서는 고상한 척 조신한 척하지만 밖에 나가면 충동적으로… 아무나와 차를 마셔버리기도 하고… 아, 아무튼 독기 가득하게 연애합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야. 얘는….’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길드원들의 연애사를 듣기도 한다.
김창렬은 이미 저 멀리 도망가 버린 지 오래, 그런 대사를 날리는 주제에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홀로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당황한 녀석의 심장 소리가 시바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암살자로서는 실격인 걸까.
물론 이쪽 역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마찬가지. 어느 정도 술에 취한 하얀이와 날뛰기 시작하는 돼지 새끼를 막느라 정신이 없다.
“히끅… 우, 우리 오빠… 영원히 안 자랐으면 좋겠다.”
“거, 지금 형님도 충분히 귀엽기는 하지만 역시 형님은 예전 모습이 더 카리스마 있다니까. 물론 나도 형님이 안 자랐으면 하지만….”
“가, 가끔 집에 보관하고 싶, 싶어져요. 오빠. 그, 그렇게 귀여우면 안 되는데… 히… 히힛… 히히… 히히힛….”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그 와중에 김현성도 뭔가 이쪽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한 액션을 취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많고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인 만큼 그렇게 되기가 쉽지가 않다.
“길드마스터!”
“길드마스터. 그러니까.”
“현성이 형씨!”
안절부절못하던 녀석은 계속해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온 것 같은 느낌.
결국에는 몇몇이 술에 완전히 취한 이후에야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었다.
작게 웃음 지었던 김현성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 것은 가장 시끄러웠던 돼지가 황정연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눈치를 보던 녀석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잠깐… 자리 좀 옮기시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둘만의 대화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길드원들 역시 구태여 그런 김현성을 제지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는 거겠지. 지금 김현성의 상태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럴까요?”
녀석이 눈짓한 곳은 안기모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든 모닥불 지역, 앉기 불편해 보이는 통나무 위에 김현성이 앉으라는 듯 외투를 덮었기 때문에 곧바로 자리를 잡는다.
지 앉으려고 깐 것 같기는 했지만 본래 먼저 앉는 새끼가 임자가 아니었던가.
“…….”
“…….”
계속해서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김현성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뜸 독대를 신청했던 김현성은 갑작스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끌고 오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에는 이쪽이 먼저 운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
“네? 옛날이라고 하시면….”
‘나도 몰라 이 새끼야. 우리가 모닥불 같이 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아… 그때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녀석은 알아들은 것 같았다.
“네. 그때요.”
“사실 저도… 그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통나무 위에 앉은 것도 그렇고… 또 풍경도… 여러모로… 기억해 주고 계셨군요. 저는 저만 기억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몰라 이 새끼야. 기억 안 나.’
하지만 김현성이 행복하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예전 생각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추억 버프 때문에 분위기도 더 편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행복한 기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연 것은 그 직후였다.
“저. 박…ㅅ… 아니… 기영 씨.”
“…….”
“…….”
“…….”
“뭐?”
“…….”
“박… 뭐요?”
“…….”
“…….”
“죄,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