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55화
면회(5)
‘이 새끼… 돌았나?’
“…….”
“…….”
“술 먹었어요?”
“아, 아닙니다.”
‘시바 살다 살다… 그리고 왜, 지가 더 당황해? 이 새끼는….’
“…….”
“잠깐 착각을….”
“…….”
“무슨 착각이요?”
“아니. 죄송합니다.”
물론 어째서 녀석이 갑작스러운 실수를 한 것인지는 이해가 간다. 계속해서 이곳에서만 처박혀 있었고, 대화를 할 사람도 돌팔이 박사밖에 없었으니… 박사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익은 거겠지.
어디까지나 무의식중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거나, 회사 상사를 형이라고 무심코 불러버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라는 게 도저히 놈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모처럼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모닥불을 바라보며 서로의 유대감과 우정을 재확인하려고 하는 타이밍, 심지어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방금처럼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서는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만 분위기가 진솔함으로 넘어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당황스러운 실책이었다.
무려 시바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이해자를,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왔는지 모를 개뼈다귀로 착각한다는 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아이 컬러 이슈도 있었으니….
“…….”
이쪽 나름대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냥 별것 아닌 실수여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첫 번째로는….
‘생각보다 더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김현성이 돌팔이 박사에게 의지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애초에 이런 치료 프로그램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김현성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둘의 관계에 어느 정도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을 확실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새끼… 시바 모닥불 추억은 내 거 맞는 거지? 그것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박사음모론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기영의 자리를 자신으로 덮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현성 이 새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웬 빌런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그게 유대감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가능성이 낮고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 멍청한 새끼가 그냥 무의식중에 실수를 확률이 가장 높았겠지만, 그동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씨였으니 마냥 무시하기 힘들다는 거다.
아주 작은 변수도 차단해야 했으니… 그게 빌런이든, 뭐든 간에 녀석을 베니고어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설 수밖에 없었다.
‘베니고어 님. 한 놈 갑니다. 시바.’
갑작스레 침묵이 찾아온 장내.
다시 한번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제가… 최근에 계속 박사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그만… 하… 하하….”
‘웃음이 나오자너. 이 새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웃음으로 포장하며 슬그머니 넘겨보려는 듯한 모양새.
“그러네요.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그, 그렇게 친하지는 않습니다.”
“…….”
“…….”
“죄송합니다.”
“뭐. 사과할 필요가 있나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이 새끼야?’
“아,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저 아무튼 죄송하기만 하자너.’
“죄송해할 필요 없다니까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을 왜 자꾸 죄송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정말로 괜찮으니까 그렇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박사님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네… 잘… 잘 지내고 있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좋으신 분들이시다 보니….”
“…….”
“정신 상담 외에도…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 그래요?”
“최근에는 스스로가 느낄 만큼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됩니다.”
‘그래?’
“물론 박사님께서는 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힘들 거라고 말씀하시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제 문제를 없애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명대사가 아주 가슴속에 콕콕 틀어박혀 있나 보네.’
“…….”
“…….”
“그런데… 따로 자리를 옮기자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나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한데….”
“아….”
“네.”
“그냥… 딱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대화요?”
“다른 길드원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영 씨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정말 오랜만이니 말입니다. 딱히 다른 할 말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옛날이야기를 나눈다든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냥 기영 씨와 평소에 나누던 대화가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바 박사가 튀어나오셨어요?’
“아니, 굳이 대화가 아니더라도… 그냥 이 시간들이 그리웠습니다.”
녀석이 쑥스러워하며 볼을 긁적인다. 은근슬쩍 모닥불을 뒤집는 모습,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아직까지 길드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지금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든 것처럼 보였다.
“물론 편지나 손거울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건 또 다르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그동안은 잘 지내셨습니까?”
김현성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뻔한 이야기가 오간다.
사실 길드원들과 다 함께 나눈 이야기와도 별 차이가 없었다. 그냥 본래 알고 있었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것저것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김현성이 최근에 낚시에 취미를 들렸다는 것부터 내가 많이 자란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박덕구가 흘린 정보 덕분에 낙오자의 거리 또한 대화 주제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햄비어 고기를 먹어보고 싶기는 한 건지 유난히 꼬치꼬치 물어올 정도였다.
“그럼 낙오자의 거리는….”
“확장사업에 들어갈 것 같아요. 아니, 이미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겠네요.”
“모험가들에게 그런 고충이 있었군요. 린델의 분위기가… 그렇게… 아, 기영 씨 그리고….”
“네. 네.”
녀석과의 대화가 즐거웠다는 것은 이쪽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쌓여 있다.
물론 틈틈이 어필해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눈에 띄게 콜록콜록거리거나, 조금 피곤한 기색을 내보이는 것 말이다.
“사실 최근에 일이 바쁘거든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괜히 면회를….”
“아니요. 그건 괜찮아요. 이렇게 짧은 시간도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저 최근 들어서 현성 씨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길드의 업무야 김미영 팀장님과 혜진 씨가 많이 도와주시고는 있지만, 워낙에 얽힌 일들이 많잖아요.”
“그…렇군요.”
물론 시스템적으로 파란 길드는 김현성이 없어야 더 잘 돌아가기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말을 해놔야 이 새끼가 나 고생하는 걸 알아주지.
“게다가 아무래도 몸이 어려지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생기는 것 같네요.”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시라고요. 기영 씨는 정말… 후우… 제가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래 시바. 이렇게 걱정해 주는 느낌 좋자너.’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제가 혜진 씨와 따로 이야기를 해봐야.”
“괜찮아요. 혜진 씨에게는 정말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그리고… 혜진 씨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직후에는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본래는 계획에 없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으니까.
‘이 새끼… 눈도… 살짝 흐릿해진 것 같은데… 눈치 못 채고 있나.’
돌팔이 박사가 원인이든, 1회 차가 원인이든 간에 여기에 이 새끼를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물론 육망성이니, 유소년 교육시설에서의 테러 사건이니, 시국이 시국인 만큼 귀찮은 일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녀석을 안에 들여놓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기왕이면 눈에 띄는 곳에 말이다.
이제는 슬슬 결론을 말해야 하는 타이밍, 살짝 녀석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슬슬 돌아오는 게 어떠세요?”
“네… 네?”
“사실 이곳에 가신다고 하셨을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어서….”
“…….”
“물론 현성 씨가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구태여 이렇게 먼 곳에서 따로 생활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당시에는 길드원들도 조금 분위기가 과열됐다고 말해야 할지… 이렇게 멀리 떠나올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게다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계시는 거면 린델에서도 가능한 일이니… 만약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으신 거라면 워프게이트를 이용하거나 하얀이에게 부탁하고… 주중에 두세 번 정도로 상담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아.”
“길드원들이 신경 쓰이는 거라면 딱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말을 잘해놓을게요. 아니, 그전에 모두가 현성 씨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근데 뭐야. 이 새끼. 표정 왜 저래.’
“…….”
표정만 봐도 이 새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어처구니없게도 당혹스러워하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띈다.
저건 시바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다. 로헨 사태를 떠올리면 놈이 고민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황당한 감정이 팍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졸지에 시바 바깥으로 나돌고 다니는 양반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안주인의 포지션이 되어버렸다.
‘한 번 집 나가니까. 밖이 더 좋은 것 같아? 시바?’
낚시도 하고, 여유롭게 캠핑도 하고 그러니까. 이제 집으로 돌아오기 싫은 것일까. 김현성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쳐버리고 만 것일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이어나간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한번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이후에 말을 내뱉는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와 주세요.”
그리고,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그건….”
“…….”
“죄송합니다.”
“…….”
“물론 저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파란 길드로 돌아가서 예전과 같은 일상을 즐기고 싶지만….”
“…….”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아… 아직은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영 씨가 어떤 마음으로 제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지는 이해가 갑니다. 너무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부디 그렇게 할 수 없는 제 입장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정말 돌아가고….”
“…….”
“…….”
“…….”
“저… 기영 씨?”
“박사님인지 뭔지, 이 시발 새끼 한번 만나봐야겠네.”
“네? 네?”
“…….”
“데려다 주세요.”
“…….”
“얼굴이나 한번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