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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56화 (1,35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56화

면회(6)

“하,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 이 새끼는 내가 보고 싶다는데….’

“그게 문제가 돼요?”

“…….”

“그게 문제가 되냐고요.”

“…….”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는 김현성이 눈에 띈다. 뭐라고 할 말은 많은 것 같기는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입을 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새끼가 아무리 미쳐 버렸다고는 해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테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분위기가 너무 얼어붙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김현성이… 말대꾸?’

“…….”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내 새끼의 반항에 이가 아득바득 갈린 것은 당연지사.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그간 그렇게 열심히 내조를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도 아니라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어필하고, 빌드업을 한 이후에 친 대사가 아니었던가.

‘근데 그걸 거절한다고?’

당장에라도 이 배은망덕한 새끼를 내쳐야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감히 이 찌질한 놈이 힘든 기영이를 배신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었다.

김현성 이 새끼는 가끔 고삐가 풀리기도 하고… 무조건 예스 예스를 외치는 예스맨은 아니었지만 유대감을 나눈 형제의 아픔을 외면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김현성의 대한 섭섭함도 섭섭함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일이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와 꽂힌다.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자너.’

속사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미친 짓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 단언하건대 김현성이 제정신이었다면 분명히 방금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설마 하던 박사 놈이 실제 빌런이고, 뭔가를 벌였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

눈치를 보던 김현성이 입을 연 것은 내가 막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기영 씨….”

“지금 가요. 제가 얼굴 한 번은 봐야겠으니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박사님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박사님께서 시간을 두라고 말씀해 주시기는 하셨지만 지금 길드로 돌아가기 힘든 이유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아니야 시바. 너 지금 당한 거야. 그 새끼 때문이 맞아.’

“제 자의적인 판단입니다. 기영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뭔데요?”

“그간 계속해서 외면해왔었지만 제가….”

“네?”

“기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한 번 기영 씨에게 상처를 입힌 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됐건 간에 그건 이미 일어난 일이고….”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그러세요?”

“쉽게 잊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또 그때뿐만이 아니라 로헨에서도….”

“신경 안 쓴다니까요?”

‘더 수상하자너. 이렇게 막으려고 하는 거 보니까 시바 더 수상하자너.’

마치 나와 박사의 만남을 최대한 저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울리지 않는 예였지만 마치 불륜녀와 본처의 만남을 막으려고 발악하는 드라마 속 꼴통처럼 보인 것은 당연지사.

누가 보더라도 지금 이 새끼는 나와의 박사의 만남을 저지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타이밍이 갑작스럽고, 이런 종류의 만남을 추진하기 어려운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멍청한 새끼. 이거 세뇌… 당한 건가?’

아니, 김현성이 멍청한 것이 아니다. 이 불안정한 새끼를 이곳에 홀로 내버려 둔 나 역시 멍청했으니까.

“가기 싫으면 거기 계세요. 저 혼자라도 다녀올 테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 차라리 따라오지 마세요.”

홀로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멀지 않은 곳에 돌팔이의 저택이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향해 나아가자 결국에는 쫄래쫄래 이쪽을 따라오는 김현성의 기척이 느껴진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안색이 안 좋은 김현성이 눈에 보였다.

심지어 여신의 손거울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니 정말로 박사 새끼한테 작업을 당했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아마 이쪽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회귀자 사용설명서는 정상인데.’

눈이 흐릿해졌다는 게 오피셜로 밝혀진 이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현성은 멍청한 놈이기는 했지만 병신은 아니다. 놈이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뒤통수를 가지고 있다고는 한들 본질은 노을빛의 검신이라고 불리는 초월자가 아니었던가.

베니고어가 언제나 중얼거리는 대사, 신도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내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었지만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왔는지 모를 정신과 의사가 초월자를 농락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냥 일반인이 아닌 건가?’

놈이 위와 연관되어 있다면, 이번 육망성 사태에도 연관되어 있고, 지혜 누나의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격을 갖추고 있는 녀석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준비를 해야 되나? 아니, 아니야.’

녀석의 목적이 김현성이라고 한다면 녀석이 있는 자리에서 싸움을 걸어올 리는 없었을 테니까.

회귀자 사용설명서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눈동자의 색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김현성과 이쪽과의 유대감은 건재하다. 단순히 노이즈가 낀 것뿐이다.

어쩌면 박사 놈이 원하는 것은 김현성과 내가 가지고 있는 유대감을 자신 쪽으로 옮기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판단이 선다.

긴 시간 공을 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테고, 단시간 안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김현성에게 이쪽과 거리를 두라고 한 것 역시 시간을 벌기 위한 개수작이었을 것이다.

‘누구지? 악마 새끼들인가?’

그렇게, 저택의 앞에 섰을 때,

“…….”

“…….”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박사 새끼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

“반갑습니다. 명예추기경님.”

“…….”

“…….”

이전에 망원경으로 봤을 때와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보이는 더티블론드 머리 색을 하고 있었는데 전에 봤던 것처럼 그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이 그나마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을 정도.

하지만 분위기는 거짓말로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지만 여유가 있었고, 기본적으로 따뜻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선해 보이기는 했으니 김현성이 믿을 만한, 믿고 싶어질 만한 인상이라고 여겨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냥 일반인이잖아? 시바.’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마음의 눈으로 녀석을 살펴봤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다. 고유기벽과 성향도 평범했고, 능력치와 특성도 평범했다. 심지어 전투직도 아니다. 마음의 눈이 막히는 상황을 예상했지만 그런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초월자도 뭣도 아닌 그냥, 말 그대로 인간이었다.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미켈레 박사입니다.”

“…….”

“…….”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박사님. 기영 씨가 꼭 뵙고 싶어 하셔서….”

“…….”

“…….”

“…….”

‘뭐지? 이 돌팔이 새끼?’

뭔가 대단한 새끼를 예상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맥이 빠진다. 분명히 뭔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무너졌다기보다는 녀석이 너무나도 평범한 놈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현성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악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잠깐 고민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 새끼는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김현성이 녀석을 신뢰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외에 다른 초월자가 녀석을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납득하기조차 어렵다.

“그동안 현성 씨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명예추기경님.”

“…….”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미켈레 박사.”

“사실 그렇지 않아도 명예추기경님과는 꼭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실례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어떻게…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일단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현성 씨는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네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뒤를 따른 것은 당연지사. 이윽고 방으로 들어선 이후에는 곧바로 몸을 자리에 앉힌다.

“앉으세요. 미켈레 박사.”

“네.”

“…….”

“…….”

이윽고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녀석은 갑작스러운 권력자의 만남에도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한 미소를 띠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이 정신과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스캔당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진심으로 상담에 임했다면 내게도 궁금한 게 많기는 할 것이다. 김현성이 내게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뭔지, 녀석의 머릿속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할 게 분명했으니까.

“아마 제 생각이 맞다면….”

“…….”

“현성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게 맞으십니까?”

“그게 아니면 이런 곳에 뭣 하러 찾아오겠어요? 미켈레 박사.”

“…….”

“현성 씨의 치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데 혹시 관련 자료나 일지가 있으시면 보여주세요.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는 게 좋겠네요.”

“죄송합니다만 환자 개인의 정보는 공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켈레 박사.”

“…….”

“…….”

“직업의식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알겠는데. 저는 오늘 그걸 보러 왔으니 꼭 봐야겠어요.”

“…….”

“현성 씨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모두 치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명예추기경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현성 씨에게 문제가 있고, 그 원인의 대부분이….”

“저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 같네요?”

“꼭 그렇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판단하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성 씨는 너무나 많은 부분을 명예추기경님께 의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사람과 있을 때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렇게 이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

“물론 제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두 분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고… 제가 판단하기 힘든 여러 가지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현성 씨와 명예추기경님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처럼 말입니다.”

“…….”

“…….”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또 그게 두 분을 지탱하시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제가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최소한 현성 씨가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

“현성 씨 개인이 아니라, 명예추기경님이 함께 노력해 주신다면, 그만큼 일상으로 복귀하시는 시기 역시 앞당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이 새끼한테 문제가 없는 건가?’

아니,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김현성이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하는 이유가 말이다.

‘나는 우리 현성이 믿자너. 믿을 수밖에 없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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