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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58화 (1,35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58화

면회(8)

“…….”

‘이 새끼 지금… 겨우라고 한 거 맞아?’

“…….”

‘그게 어떻게… 겨우가 돼?’

지금까지 김현성과 내가 쌓아온 역사를 생각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이걸 어떻게 만들고 여기까지 성장시켰는지 기억하고 있다면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이 고개를 살짝 돌려 내 눈을 피하는 것이 보인다. 본인도 실수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하리라.

‘게다가… 알고 있었어.’

아마 자신의 눈동자 색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 발언에 저렇게 태연한 반응을 보일 리 없었으니까.

머뭇거리고 있는 표정과 얼굴, 뭐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거리기는 했지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말을 고르고 있다기보다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어 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알고 있었어요?”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 알고 있었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그걸 왜 말을 안 했는데요? 아니, 그것보다… 겨우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

‘실수지?’

“…….”

‘흥분해서 저도 모르게 나올 수 있는 발언이었자너. 우리 현성이 실수한 거 맞지?’

본래 너무 감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일도 벌어지고 저런 일도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단언하건대 이번에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평소에 급발진을 자주하다 보니 이번에도 저도 모르게 핸들을 놓쳐 버린 것이다.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하니까. 게다가 김현성의 생각이 아예 터무니없이 느껴지지도 않았으니까.

정말로 녀석이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뒷방 노인네마냥 취급할 리 없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한번 말해보라는 듯이 녀석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쥔 채로 입을 열고 있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

“…….”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내뱉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 비쳐온 것.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녀석 나름대로의 표현이었다.

당연하지만 서둘러 김현성의 소매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대화를 끝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

“시간이… 늦었습니다. 들어가세요.”

“…….”

“서로 생각을 정리한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시간을 둬?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이야기? 이야기를 할 마음은 있고? 눈이 바래지는 것도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요?”

“제길!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건 기영 씨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그게 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것도, 힘들다는 것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건 오히려 기영 씨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한테 제대로 이야기해 주신 게 있기는 하는 겁니까? 지금에 와서 저한테 이야기를 했느니 안 했느니 따질 입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은 겁니다. 그것뿐입니다.”

“그게 어떻게 좋은 신호가 돼요?! 머리에 구멍이라도 났어요? 누가 봐도 이상한 현상이라는 거 감이 안 와요? 아니면 그 돌팔이가 거리를 두라고 이야기했다고 진짜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눈이 바래지니까. 치료가 되고 있는 것 같았고요?”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둘 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 있다는 게 느껴진 것은 당연지사. 온도를 낮춰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온도가 내려가지가 않는다.

섭섭함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순식간에 터져 나온 이후에는 주워 담을 수 없을 지경까지 내려온 것이다.

‘시바 질풍노도의 시기.’

단언하건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지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계신 거 아시죠? 그래서 여기를 나오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딱 봐도 흔들리고 있는 게 보이니까.”

“기영 씨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못 드릴 말씀을 드린 건 아닌 것 같네요. 그 돌팔이 박사도 믿을 만한 사람은 못 돼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현성 씨가…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여기서 박사님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선택과 박사님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그리고… 저라고 그렇게 하기 싫은 줄 아시는 겁니까? 저라고 길드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그립지 않겠냐고요. 제가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저를 존중하신다면… 믿어 주시는 것도 함께여야 해요.”

“믿을 수 있을 만한 행동을 보여주는 게 먼저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행동을 되돌아보세요. 제가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나. 현성 씨가 스스로 벌인 일들 중에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게 있기나 해요?”

“그럼 기영 씨는요? 그럼 기영 씨가 한 행동들은요? 그거야말로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기영 씨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지는 알고 계신 겁니까?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왜 생각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네 뒤치다꺼리 하다가 그런 거잖아! 근데 지금 와서 뭐라고?”

“제가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그 결과가 이런 거였다면 차라리 도움을 받지 않는 게 나았어요.”

“뭐라고? 뭐라고요?”

녀석이 소리치기도 하고, 내가 소리를 치기도 한다. 서로에게 할 말 못 할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다.

분노와 화가 관성을 타고 있었다. 스스로가 점점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새끼 진짜 졸업하고 싶어 하는 거야.’

녀석의 말처럼, 정말로 김현성이 스스로 발을 내디딜지도 모른다는 게 이쪽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회귀자가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스로 성장해서 독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이 개새끼! 은혜도 모르는 새끼. 지금까지 시바 너 때문에 구른 게 얼만데… 이 흉터도 시바.’

당연하게도 김현성 역시 무척이나 감정적이다. 이 새끼야 원래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놀랍지도 않았지만 누가 봐도 스스로를 컨트롤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영혼이 연결되었다 뭐다 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지금까지 오면서 쌓이고 쌓인 것이 터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미루고 미뤄왔던 업보를 지금 돌려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이런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김현성과 나는 영혼이 연결되어 있기도 했고, 서로 볼꼴 못 볼 꼴 많이 본 사이이기도 했고,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진짜로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이 관계에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또 개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솔직히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첫 단추부터 꼬인 관계다. 첫 단추만 꼬인 것이 아니라 그 뒤로도 줄줄이 꼬여 있다. 주머니 속에 유선 이어폰마냥 꼬여 있었기 때문에 아예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말로 모든 진실을 터놓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아가는 것보다 현상 유지가 더 나은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라는 거다.

‘시바.’

어쩌면 김현성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돌팔이 박사 역시 지금의 갈등을 환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기영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건 김현성과 내 관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김현성이 이쪽을 믿을 수 있나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을뿐더러,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성을 지켜야 하는데….’

“다시 한번 말해봐요.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여기서 끊어야 되는데….’

아마 녀석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제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대륙이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기영 씨가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는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몸이 성하신 곳이 있기는 하신 겁니까? 영혼은요? 정신은요? 그렇게 어려진 모습은요? 그게 정상입니까?”

“그건 제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그걸 현성 씨가 왜 신경을 써요? 누가 현성 씨보고 그걸 대신….”

“저는 함께 하고 싶은 거지, 기영 씨에게 모두 떠넘기고 싶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영 씨를 보세요. 제가 후회하는 게 이상한 겁니까? 못 할 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표현 방법이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대뜸 그걸 후회한다고 잘못 생각했다고 말해버리면 제가 뭐가 돼요? 그리고, 그렇게 함께하고 싶으면, 도움이 되고 싶으면, 제가 돌아오라고 할 때, 제가 필요하다고 할 때 얌전히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내가 괜찮다는데!”

“저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겁니까? 제길! 네가 나를 무서워하고 있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지금 시바 형한테 너라고 했어?’

상황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와중이었다. 자꾸만 인기척이 느껴진다. 서로 계속해서 고함을 치고 있었으니 다른 길드원들이 이 싸움을 눈치채지 못할 리 만무, 급하게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리라.

분위기가 이미 격해질 대로 격해진 상황에서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는 돼지 새끼의 얼굴은 가관.

“아니… 아니, 이 좋은 날 왜 그렇게 싸우는 거요? 좀 과열된 것 같으니까. 진정하라니까.”

내가 미친 치와와처럼 김현성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지 나를 붙잡는 박덕구의 모습이 보여온다.

“거, 왜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그만 하라니까! 거 싸우지 말고 술이나 좀 드쇼. 아니, 왜 갑자기… 잘 놀다가… 도대체 무슨 일인 거요? 아니, 형님이랑 형씨가 날을 세울 일이 뭐가 있다고…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니까!”

“…….”

“…….”

“길드마스터.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는 게 어떠신지….”

조혜진은 김현성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부길드마스터. 왜 이렇게 부길드마스터답지 않게.”

‘나다운 게 뭔데 시바!’

정하얀은 안절부절못한 채로 한소라의 손을 잡고 있는 중, 병아리들이야 두말할 필요는 없다. 나와 김현성의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과열된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다른 길드원들 역시 걱정 어린 표정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김예리의 표정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의 막내딸 같은 얼굴로 이쪽과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나라라도 잃은 표정, 얼마나 놀랐으면 저 꼬맹이가 이쪽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까.

선희영과 엘레나도 계속해서 이제 그만하라는 게 좋겠다며 화해를 종용하고 있었지만 이미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온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물론 갤러리들의 등장으로 인해 아까처럼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상황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현 상태로 화해나 새로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녀석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일단 즙이나 짜자.’

가족들의 지지를 이끌어줄 수 있는 상처받은 기영이의 눈물. 순식간에 안구를 꽉 채운 눈물이 주르륵 떨어진다.

당연히 김현성의 당황한 듯한 얼굴이 보였지만 선희영에게 푹 안겨서 위로를 받으니 녀석의 표정을 더 이상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 와중에 “아….”라고 짧게 대사를 치는 정하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선희영에게 안겨 버린 만큼 포지션을 바꿀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기영 님….”

‘저 새끼가 잘못했자너.’

무조건 저 새끼 잘못이자너.

정확히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 한 길드원들은 다들 이쪽을 정신없이 위로하는 중,

김현성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마음 약한 기영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한 거요? 형씨.”

“울, 울지 마세요. 이기영 님.”

‘슬프다. 기영이는 지금 슬프다.’

“거, 현성이 형씨도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형님한테 뭐라고 말 좀 해보쇼. 대관절 뭐라고 했길래 형님이 이러는 거요?”

“이러지 말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길드마스터.”

“맞, 맞아… 오빠. 기영이 오빠한테….”

심지어 멍하니 있던 김예리마저 사과할 것을 종용한다. 나름대로 궁지로 몰았다면 몰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 살짝 고개를 돌려보자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김현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사과를 할 마음이 있는 건지, 본인이 내뱉은 대사를 정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분명히 형식적으로나마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해오지 않을까.

“저는…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지금….”

“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들어갈 테니, 기영 씨를 부탁드립니다.”

명백한 축객령.

‘뭐?’

이대로 끝이야?

“그러지 말고… 오, 오빠. 이야기라도 해봐.”

“지금 이 상태로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사과하거나 져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지가 실수한 거 알 거야.’

기싸움을 하자는 건지, 아니면 이 갈등을 풀고 합의점을 찾고 싶은 건지, 김현성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김현성과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이야기할 마음이 없다.

아니, 마음이 있다고는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관계가 평등해지는 순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 둘의 관계는 무조건 내가 갑이어야 했고, 김현성이 을이어야 했다.

아주 약간이라도 양보하거나 져 준다는 선택지는 절대로 없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그래야만 했다. 이기영은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네가 굽혀야 돼. 무조건 네가 굽혀야 돼. 무조건 네가 굽히는 거야.’

“…….”

‘난 절대로 양보 안 해. 시바. 절대로, 절대로 양보 안 해.’

그렇게 놈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여신의 손거울은 울리는 일은 없었다.

‘안 그러면 후회할 거야.’

“…….”

“…….”

아침이 될 때까지 말이다.

“김현성… 너 이 새끼. 후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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