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59화
면회(9)
“파티원들은 괜찮아요?”
“네.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있다가 왔으니 여러 가지로 적응할 게 많겠죠.”
“…….”
“마리엔도 주혁이도 전부 나이가 들었더라고요. 형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만날 수 없었겠죠. 고마워요. 형.”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건 제 쪽입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았으니… 라파엘 님은 어떠신가요?”
“저도 괜찮아요. 물론 상황이 좀 어색하기도 하고, 제가 모르는 것들을 파티원들끼리 공유하고 있다는 게 살짝 씁쓸하기는 했지만… 모두 다 원래대로 돌아왔거든요. 주혁이는 여전히 주혁이고, 마리엔은 여전히 마리엔이에요.”
‘시바. 김현성만 여전히 김현성이 아니자너.’
“아! 그리고.”
“…….”
“마리엔이 임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마리엔도 여기에 와서 알게 된 것 같고요.”
“네?”
‘갑자기? 뭐? 갑자기?’
“그곳에 오래 있었으니까요. 사실을 알자마자 주혁이한테 막 주먹질을 하더라고요. 죽일 놈이라고 하면서… 근데 또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아서… 마리엔이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주혁이가 큰 힘이 되어줬다고 들었어요. 저도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된 일이죠. 조카가 생겼으니까요.”
‘별로 그런 낌새는 못 느꼈었는데….’
아니, 생각해 보니 기적의 사제가 사냥개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기는 했었다. 특히나 사냥개가 다쳤을 때 보여줬던 그녀의 반응을 떠올려보니 은근슬쩍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부 다 건너뛰고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이라니 솔직히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참….’
하기사 꽤 오랜 시간을 거기서 보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축복의 말을 전하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라파엘의 모습이 눈에 띈다.
혹시 얘가 마리엔한테 관심이 있었나 싶었지만 반응을 보고 있자면 그건 또 아닌 모양, 그냥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 갑작스레 와닿은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녀석이어도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돼지 새끼와 황정연을 사냥개와 기적의 사제에 대입해보자 라파엘이 느끼는 씁쓸함에 더욱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괴리감을 느끼고 있기야 하겠지.’
라파엘 파티도 꽤 돈독하다. 아니, 돈독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지금까지 계속 한 파티로 활동했었으니 동고동락한 기간만 생각해 본다면 가족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었을 정도.
거기에 라파엘 혼자만 떨어진 채로, 파티원들이 많은 것들을 공유한 상태라는 걸 생각해 보면 녀석이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한 명은 죽었으니까.’
마법사 할배의 죽음은 지켜보지도 못했다. 자기 희생 주문을 외워 파티원들 전체를 구해냈다는 것도 들었을 테니, 그 자리에 자신이 없었다는 게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되지 않을까.
녀석의 눈빛이 살짝 어두운 것은 아마 이런 이유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네.”
“당분간 파티 단위로 하는 공식적인 활동을 멈출 것 같아요. 아직 파티원들한테 어떻게 할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다들 쉬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마리엔의 경우에는 더욱더요. 임신한 사실을 몰랐던 상태에서 싸우기까지 했으니 괜히 더 무서운 거겠죠.”
‘그 정도가 아니지. 그 난리 통에 산 게 기적이었어.’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라파엘 파티가 먼저 세라핌을 죽이려고 파란 길드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라파엘 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는… 파티원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죠. 물론 제가 계속 쉰다는 건 아니고요. 하하하… 그전까지는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해요. 지금 같은 시기에 멈춰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오스칼 님에게 새로 받은 의뢰도 있고요. 육망성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고… 물론 공화국이나 교국에서도 이미 면밀히 이상현상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곳에 다녀온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잖아요.”
‘이 와중에도 노력하는 파엘이 장하자너.’
당연히 라파엘을 위로해 줄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전부 괜찮아질 겁니다.”
“죄, 죄송해요. 형.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해서….”
“아닙니다. 라파엘 님. 오히려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걸요. 저도 돌아온 이후에 워낙 정신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라피엘 님께도, 라파엘 님의 파티원 분들에게도, 오스칼 님도 한번 방문을 했어야 했는데….”
빅보이 패밀리의 일도 있고, 김현성의 일도 있고 해서 전부 들르지 못했다. 마탑, 교국, 공화국에서 따로 연구하고 있는 육망성에 대해 보고도 받지 못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당장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있자니 별다른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애초에 벨리알도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니 필멸자들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찾아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적어도 마법진의 확보와 육망성 자체를 신봉하고 있는 이교도들의 색출은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붙잡힌 이교도들은 시스템, 혹은 초월자의 의지에 영향을 받은 끄나풀 같은 느낌인지라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향하게 하는 데에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예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다.
‘데이터는 데이터니까.’
별 의미가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표본이라는 것은 쌓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육망성에 홀린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공통점은 무엇인지, 최근 특별히 방문한 장소가 있는지, 이런 종류의 데이터들이 계속해서 쌓인다면 위가 아니라 아래쪽에서 먼저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괜스레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라파엘이 말을 이어왔다.
“형 언제 다시 가실 건가요?”
“…….”
“혹시 그냥 여기 남아계실 생각은 없나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모든 걸 자세히 설명드리기는 힘들지만… 지금은 그냥 믿어 달라는 말밖에는 드릴 수가 없네요.”
“저야. 당연히 형을 믿지만… 솔직히 다시 그곳을 방문하는 걸 추천드리고 싶지 않아요. 주혁이랑 마리엔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더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시죠? 그곳은 위험해요. 그리고, 앞으로는 더 위험해질 거고요. 아마 형의 존재를 눈치챘을 수도….”
‘알지 알지.’
“위험하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만약에 다시 방문할 생각이시라면 이번에는 꼭 저도 데려가 주셔야 해요. 절대 방해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약속드릴게요. 형.”
“…….”
“…….”
다시 한번 녀석이 입을 열었다.
“혹… 혹시 실…망하셨나요?”
‘그래 조금 실망하기는 했어. 아무리 그래도 정진호한테 그렇게 개 발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서….’
“아니요. 라파엘 님은 할 수 있는 일을 전부 다 해주셨어요.”
“혀… 형….”
“다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제 판단을 믿어 주셨으면 해요. 물론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여러 가지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던 터라… 라파엘 님을 데리고 가겠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아….”
조금은 아쉽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띈다.
자기 자신에게 닥친 일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할 만하건만 녀석은 여전히 이쪽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새끼와 다른 행보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온다.
대화의 주제는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녀석이 감사의 인사, 라파엘 파티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그 근황을 전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오랜만에 만들어진 만남이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인 것 같았다.
그것도 전쟁통이 아니라 평범한 곳에서 만나는 자리였으니 녀석의 텐션도 조금 올라간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억지로라도 끌어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 시국에 마냥 웃고 즐길 수 없다는 것은 녀석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어떻게 보면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식사가 끝난 이후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또 다른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도 이 새끼는 앵무새마냥 계속해서 말을 이어온다.
별로 관심도 없고, 쓸모도 없는 대화.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빌드업처럼 느껴졌다.
‘이 새끼는 다 좋은데 재미가 없어.’
이쪽을 방문한 처음 목적이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파란 길드에 방문하고, 직접 내 얼굴을 보면 정말로 궁금한 건 따로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 그래서요.”
“…….”
“제가 수련을….”
녀석이 다시 한번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온 것은 카페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을 때. 어느 정도 딱딱한 분위기가 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그런데 형.”
“네?”
“저… 그… 들었어요.”
“…….”
“파란 길드마스터랑 싸우셨다고….”
“누구한테 들으셨나요?”
“안, 안기모 님이요.”
‘이 새끼는 안 끼는 데가 없자너.’
얘랑은 또 언제 친해진 걸까.
접점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여기저기에 끈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길드 분위기도 묘하게 침체되어 있는 것 같고… 또 형도 그렇고요… 길드에 들어오는 길에 김예리 님도 마주쳤었는데… 많이 우울해하시는 것 같아서… 눈이 퉁퉁 부어 있으시더라고요.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것 같고… 무례한 질문을 드렸다면 죄송해요. 그저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심하게 싸우신 건가요?”
“그냥 평소랑 비슷한 다툼이었어요.”
“평소에도 많이 다투시나요?”
“그런 건 아닌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때는 서로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돌아오라고 했을 뿐인데 현성 씨가 많이 흥분하셔서… 의견 조율이 잘 되지 않았던 거죠. 제가 조금 성급했나 싶기도 하고요.”
“아….”
“전부 다 제 탓이에요. 현성 씨가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말씀드리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에요.”
“형 그럼 파란 길드마스터한테는 육망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신 건가요?”
“…….”
“…….”
“네.”
어째서인지는 아마 라파엘도 알고 있을 터였다.
“현성 씨는 휴식이 필요하거든요. 지금 당장 대륙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 아마… 바로 와주시기는 하겠지만, 현성 씨의 힘을 빌리는 건 시기상조라고 봐요. 그간 있었던 일들이나 상처들이 아직 전부 다 아물지 않았으니까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현성 씨에게는 숨기고 싶은 심정이에요.”
“…….”
당연히 씁쓸한 한숨을 내뱉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김현성을 걱정해 주는 듯한 모먼트로,
녀석이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던져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혹시….”
“…….”
“혹시 형 눈 색이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온 것도 김현성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