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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62화 (1,36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62화

면회(12)

단언하건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마무리였다. 아니, 사실 처음은 완벽하지 않았다. 청춘들의 뜨거워진 온도를 낮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써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라파엘을 부축한 것은 당연지사.

눈치는 있었는지 녀석이 날개를 펼치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붙어 있다 보니 날개를 펼친 곳이 맞닿아 불편하기 짝이 없기는 했지만, 결국 놈이 나를 끌고 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 아련한 뒷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

“…….”

“죄… 죄송해요. 형. 괜히 저 때문에….”

‘그래. 너 이번에 선 넘은 거 알지?’

“저는 단지… 단지 화가 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가 끓어올라서….”

“…….”

어째서 시바 내 주변에는 머리가 끓어오르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라파엘을 질책하는 건 하책이다. 오히려 녀석을 위로해 주는 것이 옳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라파엘 님.”

“네?”

“솔직히 라파엘 님의 행동이 옳다는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저를 생각해 주셔서 해주신 행동이라는 거… 알고 있거든요.”

“형… 혀엉….”

“하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해요. 라파엘 님이 이렇게 다치는 것도 보기 싫고…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건 더 보기 싫으니까.”

“혀… 형….”

‘이 새끼 감격하고 있자너.’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번에 있었던 대화에서 김현성과의 싸움을 별것 아닌 것처럼 묘사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 내가 참전함에 따라 적나라한 실상을 알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김현성이 달라졌다는 것, 돌아오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의 신뢰가 정말로 금이 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마지막 안녕히 계세요로 화룡점정을 찍기도 했으니 상황이 정말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집안싸움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끄럽자너… 기영이는 지금 수치스럽자너.’

이를테면 가정의 치부를 드러낸 셈이었으니, 어쩌다 보니 실상을 알아버린 녀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반응이었다. 엄연히 라파엘은 부외자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상황, 오히려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저도 죄송해요. 못 보여드릴 꼴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네… 네?”

“…….”

“형… 형이 왜 죄송해요! 전, 전혀 죄송해하실 필요 없어요. 부끄러워하실 필요도 없고요. 저는 전부 이해해요. 절대로 수치스러워하지 마세요. 저, 저는 형을 남이라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저, 저도 부족하지만 형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도 있… 있다고 생각하고요.”

‘별로… 안 믿음직스럽네.’

터진 만두 꼴로 우물쭈물 대사를 내뱉으니까.

“의지할 곳이 없어지면 저한테 의지하셔도 돼요. 물론 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응… 별로… 신뢰가 안 가.’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국룰이다.

“네!”

당차고 힘찬 느낌으로 말이다.

이윽고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오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김현성… 김현성을 보자.’

어찌 됐건 간에 이 무능력한 녀석이 올린 온도로 어느 정도 득을 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래의 계획과는 살짝 멀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김현성에게 분기점을 만들어줬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라파엘의 수정 펀치와 다시 만난 이기영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본래의 태도를 고수하며 속을 썩이고 있었겠지만, 마치 최종선고처럼 내려진 분기점 앞에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라 잃은 표정의 고독한 김현성이 눈에 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터벅터벅 걸으며 오두막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 이미 부서진 오두막이었지만 지금의 정신상태로 복구 작업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테이블에 앉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누가 보더라도 술이 땡기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차라리 한잔해.’

깔끔하게 한잔하고 다시 돌아오자.

그냥 망나니로 살아. 형이 보살펴 줄게.

‘아 시바 오두막에 없나? 아니. 있을 텐데.’

평소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겠지만 최근에 우리들이 다녀온 직후가 아니었던가. 그때 남긴 술이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녀석이 미처 정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혹은 몰래 챙겨놨을 수도 있다. 김현성이 뒷정리를 한 것은 모두가 떠나고 난 이후였을 테니 말이다.

역시나 구석에서 럼주 한 병을 꺼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 그냥 한 잔 쭈욱 들이켜.’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마시겠냐구. 오늘 우울한 날이자너. 너도 솔직히 마시고 싶자너. 안 그래도 라파엘 때문에 스스로와 하는 약속 못 지켰잖아. 하나 더 깨는 것 정도야 괜찮지 않냐구.

내일부터 다시 금주하면 되잖아.

머뭇머뭇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예전에 나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에 와서 모든 걸 망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은 쉽사리 럼주를 들이켜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 눈을 질끈 감은 녀석이 술병을 벽으로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난 병이 오두막 안에 흐트러지고, 녀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대로 테이블에 이마를 박는다. 뭔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좋지 않다고 느껴졌지만 아쉽게도 지금 녀석을 동정한다는 것은 양보를 위한 일보를 내딛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보다 충격이 큰 것 같자너.’

그냥 한 번만 져줄까.

자문에는 고개를 뒤흔들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시바. 절대로 양보 안 해.’

“형… 형. 다 왔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아. 고생하셨어요. 라파엘 님. 들어가세요.”

“아… 네… 네.”

‘저 새끼… 기 싸움 하는 거야. 시바. 절대 물러날 수 없자너.’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계속해서 회사설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전조는 이미 깔아둔 지 오래였고, 눈 색깔마저 본래대로 되돌아온 상태였으니 조만간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아마 발작을 일으키며 기어올 것이다.

아니, 구태여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얘 유약하니까.’

이대로 완전히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더 이상 김현성과 이기영의 관계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녀석을 조여 오고 있을 것이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겠지만 녀석은 전혀 괜찮지 않다. 스스로의 인생을 혼자 마주하는 것조차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녀석이 아니었던가.

하늘이 무너져도 김현성은 이기영을 떼어낼 수 없다.

절대로.

‘길게도 필요 없어. 딱 3일이면 돼.’

다음 날에 김현성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도 오두막이 보수되어 있지가 않다. 고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무기력증에 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그냥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사실 일상생활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 특히나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번 마음이 약해질 정도였다.

‘아 왜 그러는데. 시바. 마음 약해지게 왜 그러는데에….’

이온음료 광고에는 나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림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스케줄도 없었고, 박사와의 상담도 쉬기로 한 건지, 녀석을 만나러 가지도 않고 있었다.

‘좋아. 시바. 왔다.’

일단 박사와의 상담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 변화였다. 또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말이다.

‘분명히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거자너. 우리 추억 기억하고 있자너. 저거 우리 하늘이자너.’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김현성은 여전히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중.

회색 비둘기가 다시 김현성을 찾은 것은 노을이 지고 있을 때였다.

‘아 시바 저 새끼는 또 왜 갔어. 시바.’

-김현성.

‘아 진짜 그만하라고… 시바 1절만 하라고 뇌절 하지 말라고… 얘 지금 충분히 흔들리고 있다고.’

아직도 살짝 터진 만두 꼴을 하고 있는 라파엘,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대뜸 주먹을 날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돌아가 줘.

-…….

-형한테는 네가 필요해. 돌아가 줘. 제발.

‘그래. 시바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아.’

딱 적당히 라이벌 구도에서 흔드는 것 정도는 괜찮아. 죽빵만 갈기지 마. 그냥. 저번 같은 이벤트는 한 번으로도 충분하니까.

살짝 불안했던 것은 김현성이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 라파엘을 슬쩍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아. 현성아 너도 그러지 마. 저 새끼 또 급발진할라.’

그 모습을 본 라파엘이 부들부들 주먹을 떠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다시 한번 그 청춘드라마를 볼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다행히도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야. 돌아가.

‘저번에도 할 말 그것뿐이라고 하면서 한참을 더 때렸잖아.’

-…….

결국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라파엘이 입술을 꽉 깨문 이후에 발걸음을 돌린다.

그것으로 2일 차는 끝.

그리고 대망의 3일 차.

여전히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눈빛이 조금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정신이라도 차린 것일까. 본인의 행동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일까. 우리의 추억이 녀석의 고집을 꺾어버리고 만 것일까.

노을을 바라본 이후에 녀석은 다시 오두막으로 들어가 갑작스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뭔가 후련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게 어떤 신호인지 깨달은 것은 당연지사.

‘온다.’

“현… 현성이 온다.”

당연히 녀석이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온다. 현성이 온다.”

드디어 녀석이 백기를 든 것이다. 아마 오늘 대충 정리를 하고 내일 즈음에 다시 길드로 돌아오지 않을까.

지금 당장 돌아오고 싶겠지만 이대로 돌아오기에는 조금 쪽팔리겠지. 하루 정도는 거기서 더 비비고 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돌아오겠지.

1회차니, 육망성이니,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에서 있었던 테러니, 정리할 건 많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김현성이 돌아온다. 드디어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오, 오, 오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 정도, 곧바로 방을 박차고 나갈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이고! 우리 귀여운 하얀이! 이리 와! 이리 와!”

“오… 오빠? 갑자기… 헤… 히….”

“뽀뽀! 뽀뽀!”

“헤…히…헤헤헷…히히… 쪽! 쪽!”

“돼지 새끼! 오늘 축제야! 얘들 전부 불러 모아! 예리도 이리로 오라고 해! 빨리!”

“형님? 갑자기 뭐요. 정, 정신 차린 거요?”

‘현성이 온다. 시바!’

드디어 온다!

‘오늘 새벽에 올 수도 있어. 아마. 빠르면 지금 당장 올 거야.’

“…….”

“…….”

그렇게,

4일 차.

“…….”

“…….”

“어….”

“…….”

“어?”

김현성이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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