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66화
뜻밖의 데뷔(1)
이유는 없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놈이 있는 반면에 얼굴만 봐도 짜증을 일으키는 새끼가 존재한다.
녀석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내 멘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놈의 잘난 척하는 표정이 짜증 나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고개를 살짝 치켜드는 모양새, 남을 깔보는 듯한 눈빛, 올라간 듯 만 듯 한 입꼬리. 삼박자가 합쳐 만들어낸 것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수 없음이었다.
‘진 군사 이 새끼.’
녀석 역시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한 모양, 눈을 마주치면 대뜸 욕부터 날리고 싶어질까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는 상태였지만 녀석이 나를 보며 혀를 차고 있다는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쯧. 멍청한 놈.”
‘이 새끼 진짜 마음에 안 들자너.’
“후우…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시바.’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지혜 누나가 어째서 녀석을 불렀는지 깨달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불안한 건가?’
아마 내 상태가 정상이지 않다는 게 녀석을 부른 이유겠지. 진 군사가 재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놈이 지금의 파티와 어울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파티 구성상 정통 마법사보다는 녀석 같은 마법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애초에 벨리에는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니다. 대규모 살상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그 효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고, 애초에 그녀는 다인전보다는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다.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보조 주문들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진 군사는 대인전, 다인전, 원거리, 근거리 모두 가능한 만능캐였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줄 수 있는 인선이었다.
애매모호했던 파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물론, 혹시나 브레이크가 고장 날지는 모르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파티는 좋아.’
녀석이 합류함으로써 파티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바 대체 왜 이렇게 싫은 걸까.’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지혜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조차도 재수가 없다.
“잘 부탁드려요. 군사님. 혹시라도….”
“알고 있다.”
‘또 뭐 해주기로 했나 보네. 시바.’
이윽고 녀석은 파티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 그사이에 내게 다가온 지혜 누나가 조용히 입을 열어왔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요. 오빠도 알잖아요. 진 군사가 딱이라니까요?”
“거래 내용이 뭐야?”
“뭐 뻔하죠. 진 군사가 관심 있어 하는 게 뭐겠어요?”
“다음 프로젝트?”
“네. 그거랑 뭐… 여러 가지 얽혀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이득 보려고… 계약하는 데 얼마나 깐깐하던지, 짜증 나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
“…….”
“근데 오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냥 재수 없잖아.”
“솔직히 재수 없기는 하죠. 근데 능력은 있잖아요.”
“컵케이크 집어 던지고 싶네. 진짜.”
“다음에 같이 집어 던져요. 베니고어 님까지 불러서 셋이서.”
벌써부터 파티의 리더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것이 눈에 띈다.
곧바로 선희영에게 다가간 녀석은….
“파티원들의 특성과 스킬, 능력치에 대해 간략히 보고하도록.”
존댓말 컨셉은 완전히 버린 것일까. 아니면 파티원들 대부분이 파란 길드원들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평소의 녀석이 타인을 대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살짝은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
“내 말 못 들었나? 파티원들의 특성과 스킬, 능력치에 대해 간략히 보고하라고 말했을 텐데.”
“…….”
‘와 희영이 기 욜라 세잖어.’
진 군사의 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담담히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둘이 잘 안 맞을 것 같기는 했어.’
가오가 상해버렸는지 녀석이 괜스레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을 때, 김창렬이 조용히 진청에게 다가와 보고 아닌 보고를 올리고 있는 중. 분위기를 파악한 창렬이가 중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정을 떠나기 전 파티원들의 스펙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는 것은 파티장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이해야 간다.
선희영에게 무시당한 상처가 다 낫지 않은 모양인지,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기서 대뜸 지혜 누나를 향해 입을 여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가지 않겠다.”
“아니, 왜 또 그래요. 군사님… 이미 계약서에 도장도 다 찍힌 마당에. 지금에 와서 무르기 있어요?”
‘아 진짜 이 새끼.’
“명령에 불복종하는 파티원을 데리고 원정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나? 내 권한은 이기영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유사시에는 모든 인원이 내 명령을 따르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지 않았나?”
“그럼요. 누가 감히 군사님 권위에 도전을 해요? 그렇죠, 오빠?”
‘아 누나.’
“아직 희영 씨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그런 거겠죠. 다시 한번 가서 말씀해 보세요. 천천히 설명해 보시라고요.”
그제야 선희영이 살짝 고개를 숙인 이후에 진 군사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다만 여전히 표정은 무표정이다. 진 군사 역시 마찬가지.
괜스레 싸늘해진 분위기에 벨리에와 알프스는 구석에서 오돌오돌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암살자로서 실격하지 않은 김창렬과 하연수는 여전히 묵직한 분위기를 고수하고 있었다.
일만 잘하면 상관없다는 쪽이기는 했지만 그 생각을 퇴색시킬 정도로 파티의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다.
‘괜찮겠지. 쟤네들이 일이랑 개인감정도 구별 못 할 바보들도 아니고.’
지혜 누나에게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이후에는 천천히 파티원들에게 다가간 것은 당연지사.
“조심히 다녀와요~” 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 와중에 또 진 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티의 목적은 김현성의 소재를 파악 및 회수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금부터 향할 장소는 현 대륙의 평행세계다.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할 수 있도록.”
‘아주 지가 리더야.’
당연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설명은 다 끝났나요? 진 군사님?”
“뭐?”
“고생하셨어요. 지금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
“…….”
“웃기는군. 내가 계속 맡겠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네요. 제 권한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진 군사님이 계속 수고해 주시겠어요?”
“…….”
“…….”
“아니, 생각해 보니 네가 맡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나는 정보를 취합하고 올 테니 잠깐 동안 수고해 주겠나? 내 권한으로 파티를 맡기도록 하지.”
‘이 새끼는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하는 짓이 유치할까.’
본인도 본인이 유치하다는 사실을 알까.
그 와중에 혼자는 싫었는지 김창렬을 데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눈에 띈다.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는 파티원들, 사실 병아리들은 어차피 바람이 불면 휘둘리는 이들이라 별로 상관이 없기는 했지만 선희영에게는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기야 했다.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닙니다. 이기영 님. 차마 말하지 못할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배시시 웃기.
‘희영이 기분 좋아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진 군사님에게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들으셨다시피 저희 목적은 길드 마스터의 소재 파악 및 확보 귀환이에요. 파티 구성을 보고 예상하셨겠지만 최대한 신속 은밀하게 움직이게 될 예정입니다. 향후 파티의 방향성은 평행세계에 돌아간 이후에 결정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투가 일어날 확률이 높고요. 질문을 짧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야 뻔했다. 질문은 거의 다 선희영. 육망성과 평행세계의 관계는 무엇인지, 평행세계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지, 어째서 김현성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인지, 혹시나 자신들이 더 알아야 될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라면 알 권리가 있다. 본인 나름대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테고, 유사시에는 파티원들과 따로 움직여야 할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병아리들은 뭔 소리인지도 모를 것 같고.’
하연수는 누나에게 대충 들었을 테니까. 이미 납득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녀를 납득시키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
곰곰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는 이내 알프스와 벨리에를 슬그머니 바라보기 시작, 잠깐 이야기를 하고 온다고 둘을 끌고 간 선희영이 복귀한 이후에야 출발할 채비를 마칠 수가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혹시 방금의 대화에 대해 쪽지시험이라도 한 것일까. 알프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 것만 같다.
이후 진청까지 되돌아온 이후 녀석의 일장연설을 한 번 더 듣고 있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같은 소리를 두 사람에게 서너 번 들었으니 집중력이 흐트러질 만도 하건만 병아리들은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한 명 한 명 전부 신경 써 줄 수 없으니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아마 대륙전쟁일 테니까.’
꽤 잔혹한 전쟁이지 않을까. 그래도 대륙전쟁 즈음이면 파워인플레이션이 그리 높지 않은 시점이라 지금의 파티원들로 큰 무리 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정진호 같은 이레귤러가 존재할 수도 있고, 대규모 전쟁에서는 가장 무서운 게 눈먼 화살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제대로 된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는 벨리에는 침을 꼴딱 삼켜 넘길 정도.
“출발하겠습니다.”
곧바로 주문을 외운 이후에는 시야가 뒤바뀐다. 분명히 같은 장소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이지혜와 검은백조 길드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평행세계로의 이동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진 군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동된 곳은 작은 골목.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폭음이 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움직인다. 선두는 벨리에 네가 선다.”
긴장한 벨리에가 양 주먹을 부딪치며 골목을 나서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퍼엉! 퍼엉! 퍼어어어엉!
“와아아아아아아!”
퍼엉 퍼엉!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눈에 띈다. 마치 축제라도 일어난 것처럼, 아니, 실제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진 군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뭐야. 시바 뭘 봐. 나도 몰랐어.’
파티원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모두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김창렬이 한 발자국을 내디디고 마스크를 벗는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내보이며 폭죽놀이를 구경하던 여성에게 입을 여는 녀석, 누가 보더라도 암살자 실격 모드였다.
“저… 실례합니다만….”
“아이씨 누구?! 어? 네… 네? 아… 네! 잠… 잠시만… 후우… 후우… 무슨 일이신가요?”
“외부에서 이제 막 도시로 들어온 모험가입니다. 혹시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아아. 그러시군요! 마침 잘 오셨네요.”
“네.”
“사실 왕국연합이 자랑하는….”
“…….”
“데뷔탕트 무도회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네?”
‘데뷔탕트 무도회?’
“왕국 연합의 영애들이 사교계에 자신을 소개하고 남편감들을 물색하는 행사예요. 왕국연합에서는 가장 중요한 축제 중에 하나랍니다. 작년에는 114쌍이나 맺어졌다니 모에요? 올해는 제국 분들도 함께 참석하셔서… 규모가 더욱 커지기도 했고요.”
“…….”
“그보다 혹시 어느 여관에서 묵으시는지 여쭈어봐도 될… 될까요? 이것도 인연인데… 마침 축제이기도…하고… 저도 오늘은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랄까… 저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랄까….”
“사실 아직 숙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구 어쩌나~ 지금은 축제 기간이라 방을 잡기 쉽지 않으실 텐데… 아! 혹시 제가 괜찮은 곳을 소개시켜 드려도 될까요?”
“…….”
“…….”
‘데뷔탕트… 무도회…?’
불길함을 감지한 것일까.
진 군사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