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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67화 (1,36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67화

뜻밖의 데뷔(2)

“데뷔탕트 무도회….”

당연히 알고 있었다. 왕국연합에서 데뷔탕트 무도회는 무척 중요한 행사였으니 말이다.

물론 귀족들이나 고위층들치고 이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놈들이 더 드물겠지만, 왕국연합 같은 경우에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 이 행사를 신경 쓰는 성향이 강했다.

딱히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조금만 더 그 배경을 살펴보면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제국이나 공화국과는 다르게 연합은 여러 왕국들의 동맹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각 왕국들의 국력이야 별것 아닌 수준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로 모인 연합은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주변 국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체급 차이와 균형을 혈맹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왕국연합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동맹을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혼인동맹은 그들의 동맹을 가장 잘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당장 가까운 왕국만 방문해도, 타 왕국에서 시집오고 장가온 온 이들이 수두룩하다.

왕국연합에서 태어난 이들은 타 국가의 귀족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들의 시스템은 이 연합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거기에 멈추고 싶지 않았던 연합의 중추들이 아예 데뷔탕트 무도회를 통해 결혼을 목표로 하는 실용적인 사교회장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정론.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교계에 데뷔하는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데뷔탕트 무도회를 동경한다. 연합의 수뇌부들이 이 행사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는 거다.

‘참….’

매번 매번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매 시즌, 매 시즌을 겪을 때마다 더욱더 화려해진다.

작금에 와서는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석할 수 없는 평민들조차 이 무도회를 동경하게 되어버렸다.

어떤 영애가 능력 있네. 어느 가문의 영식이 잘생겼네, 누가 돈이 많네, 하는 소문들도 자연스럽게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이곳에 데뷔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결혼 시장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

“…….”

왕국연합의 귀족들은 이 무도회에 나가기 위해 평생을 훈련을 받는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

지식을 뽐내기 위해 공부하고, 검술과 마법을 배우고, 자신이 교양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악기와 미술을 배우기도 한다.

발목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모를 위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2회 차에서도 이런 데뷔탕트 무도회가 성행하기는 했었다. 물론 연합과 연방이 상대적으로 쇠락한 우리 대륙에서는 이 정도의 규모로 진행할 수는 없었을 테니 그저 그런 행사로 전락한 것 같았지만….

왕국연합의 힘이 건재하고, 한참 올라와 있는 현시점의 데뷔탕트 무도회는 여러 행사를 다녀본 나 역시 입을 커다랗게 벌릴 정도였다.

‘뭔….’

평민들도 축제하고 난리 났자너.

그야 말로 왕국연합에서 가장 큰 행사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신을 에이미라고 소개한 여자가 우리를 여관에 데려다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축제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

방음이 잘 되지 않는지, 여기저기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 군사의 얼굴도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제기랄….”

“또 왜 그래요? 전쟁터에서 안 굴러도 돼서 좋구만.”

“…….”

“오히려 좋은 상황이에요. 이 근처를 떠나지 않고, 안전하게 정보를 모을 수 있으니까요. 계속해서 도망 다니면서 긁고 다니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왕국연합의 명망 높은 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하고, 제국의 인사들도 온다고 했으니 뭔가 건질 게 있겠죠.”

“그럼? 저곳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인가?”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게이트로 진입한 이상, 여기에서 일어난 일들은 해결하는 게 기본이에요. 저희가 지금 이곳에 온 것도 전부 이유가 있는 거고요. 데뷔탕트 무도회가 한 달이 넘게 치러진다고 했으니 그 안에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고 들어가야죠. 아무래도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은데, 진 군사님한테 무도회에 참가하라는 소리 안 합니다. 어차피 진 군사님 춤 실력이야 안 봐도 뻔하기도 하고….”

“…….”

“…….”

“어처구니없군. 기본소양은 갖추고 있다.”

“저기요. 군사님.”

“…….”

“여기 무도회가 장난인 것 같아요? 이거 준비하는 영애들이 뭐 엿으로 보여요?”

“뭐?”

“꼴에 뭐 교양 좀 배웠다고 뿌듯해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 그 정도 아니에요. 진 군사님 수준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솔직히 인정할게요. 근데 여기 애들은 목숨 걸고 이 짓거리 하러 온다고요. 호박에 줄 긋는다고 그게 수박이 돼요? 근본이 도박쟁이고, 안 그래도 파티문화랑 동떨어진 공화국에서 온 양반이 무슨 교양 댄스를 하고 파티를 하겠다고. 귀족 맛은 본 적도 없으면서. 춤을 세 시간 동안 추고 저녁을 네 시간 동안 먹어봐야 와 이 귀족 새끼들이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얘네들은 다른 의미로 시바 초인이라고요.”

“…….”

“검술이랑 체술, 마법만 재능이 있는 줄 알아요? 이것도 다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군사님 재능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솔직히 분위기 있고,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추고 있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알아야 될 건 알고 있고… 뭐 머리가 나쁘지는 않으니까. 예술에 대해서는 박식한 편이고… 근데 그게 훈련이 된 거랑 안 된 거랑은 아예 다른 이야기라니까.”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확인해 본 적은 있나?”

‘안 봐도 뻔하지 뭐. 시바.’

“한번 해볼래요? 재능의 차이가 뭔지 실감하게 해드려요?”

슬그머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시점. 이번에는 블러핑이 아니었다.

‘시바 내가 파티 한두 번 다녀보냐구.’

슬쩍 녀석을 내려다보자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놈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마 진 군사의 눈에는 지금 내 모습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기영은 시바 사교계의 탑독이었으니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또 자신 있자너.’

천성적으로 어그로를 잘 끌고,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몸치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품위와 기품을 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지금의 이기영과 진 군사의 차이는 마치 김현성과 라파엘의 차이라 봐도 무방하다.

‘눈높이가 다르자너. 춤 한번 춰보면 알 거야. 진짜 개 박살을 내줄 수 있는데.’

선희영도 말을 덧붙여 온다.

“이기영님께서는 교국 사교계에서도 매우 유명하십니다. 단순히 명예추기경의 지위뿐만이 아닙니다. 품위와 교양, 지성, 화술, 파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계시죠.”

‘아이, 안 띄워줘도 되는데.’

“교국이 제국 시절이었을 때부터, 피나는 노력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셨죠. 이기영 님께서 주최한 파티는 교국뿐만이 아니라 왕국연합 내에서도 매번 회자될 정도였습니다.”

“그걸 어디 저 혼자 했겠어요? 전부 선희영 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연합 내에서도 티타임을 가지고 싶어 하는 왕족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초대된 이들의 경우에는 돌아간 이후, 연합 내 사교계에서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고요. 단순히 이기영 님의 티파티에 초대된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이기영 님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실감이 나십니까?”

‘희영이가 그렇답디다. 보이십니까? 당신과 저의 눈높이가?’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뭐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이야. 눈 깔아요. 진 군사님.’

꼬우면 한번 도전해 보든가.

‘쓰읍. 눈 안 깔어?’

“…….”

“…….”

‘쓰읍! 무모한 도전 하지 말고 눈 까러!’

결국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진청의 모습이 눈에 비쳐온다.

“나는 그딴 쓸데없는 것에 목매지 않는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분한 기색은 숨기기 힘들어 보인다. 본인도 본인 나름대로 이름 좀 날렸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상대가 나자너.’

공화국에서 온 녀석 주제에 내게 비빌 수 있을 리 만무, 놈이 도박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나는 훈련하고 또 훈련했다.

이 새끼가 블랙마켓을 들락날락 기웃기웃거리고 있을 때, 이기영은 귀부인들과 티타임을 가졌다는 거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마침내 굴복한 녀석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였다.

“너무 상심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까도 말했던 것 처럼 진군사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니까. 노력하면 금방 올라올 거예요.”

“나는 그런 쓸데없는 짓에 목매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을 텐데.”

“아무튼 간에 전권은 제가 가지고 갈게요. 명령에 잘 따라주시면 될 것 같고… 일단 무도회가 며칠 안 남았으니 들어갈 방법부터 찾도록 하죠. 왕국연합 뒤져서 귀족 하나 물어와요. 뭔 소리인지 알죠? 기왕이면 이름 높은 가문이면 좋겠는데 그게 불가능할 테니까. 완전히 사교계에서 단절되어 있는 몰락귀족이면 적당하겠네요.”

“…….”

“영지도 없는 귀족 있잖아요.”

“확인해 보지. 겨우 그걸로 무도회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진 군사님이 알아서 잘하셔야죠. 규모로 보니까 이번에 데뷔하는 애들, 수백 명이 넘을 거고, 참가하는 인원만 천명은 될 텐데… 저번 시즌에 짝을 못 구한 애들도 올 거고요. 이쪽 평행세계는 우리 대륙에 비해서 체계도 뭣도 없고 엉망이라 신분만 확실하면 가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왕국 연합 전체에서 귀족들이 몰려오는 건데 오죽하겠어요? 몰락 귀족들도 하도 많아서 어디에 어느 귀족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걸요?”

“…….”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하면… 굳이 진 군사님을 데려온 이유가 없는 거 알죠?”

“…….”

“아니, 왜 그렇게 싫은 티를 내고 그래요?”

“그런 적 없다.”

“하기 싫은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뭘 그런 적이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쾅 닫는 것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인지 알 것 같은데.

“방 들어가시면서 하연수 좀 불러주세요.”

“…….”

그 말은 또 들었는지 몇 분 후에 하연수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파란 부길드마스터를 뵙겠습니다.”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그러세요. 우리가 남도 아닌데.”

“아… 네.”

“그래서 확인은 되셨어요?”

“네. 하지만 시간이 워낙 촉박했던 터라… 해당 인물들이 전부 도시에 들어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보의 신빙성은 다른 문제라는 거죠?”

“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크게 기대 안 하기는 했으니까.’

슬그머니 정리된 문서를 넘기는 하연수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를 손에 받아둔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빽빽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는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국 참여자 명단.]

이라는 글자 뒤로 이번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가하는 귀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모르는 이름도 있었지만 알고 있는 이름들도 더러 보인다.

‘마를린 영애도 참가하네.’

카트린 부인은 오는 것 같고….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 몇몇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제국에서도 이번 이벤트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연합에 손을 댈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캐슬락의 금지옥엽을 이런 전쟁터로 부르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있다.”

[김현성 백작.]

‘없을 리가 없자너. 무조건 있을 것 같았자너. 없으면 여기로 떨어질 이유가 없자너’

아마 녀석이 이번 시즌, 가장 핫한 매물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귀족 영애들이 녀석을 노리지 않을까.

물론,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봐도 무방했다.

“…….”

“…….”

이기연은 김현성을 3번이나 찬 전적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고백 한 번 받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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