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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77화 (1,37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78화

뜻밖의 데뷔(13)

‘보고 경배하라. 내가 바로 시바 고결하고 순결한 아이나 페넬로티다.’

“…….”

“…….”

“저게… 아이나 페넬로티.”

‘그래. 내가 아이나 페넬로티야.’

“제니스 후작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만하군.”

‘그래?’

“페넬로티 영애.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미안해. 페넬로티는 바빠서 시간이 없네.’

“페넬로티 영애! 제 이름은….”

‘네 이름은 들어서 뭐 하겠니. 못생겨가지고 시바. 저리 안 꺼져?’

“흑장미 살롱의 영애님들 괜찮으시다면 내일 브런치에 저희 살롱의 초대를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소나무 살롱에서 온….”

‘우리 연예인 같다. 얘들아. 그치?’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라 할 만했다. 입장에 힘을 준 보람이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간 흑장미 살롱이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이런 저런 일들로 화제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무슨 유명인이라도 찾아온 것만 같은 반응이다.

흑장미 살롱을 보기 위해 편법으로 무도회에 남아 있는 고위 귀족부터 왕족까지. 모두가 흑장미 살롱을 경배하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지 않은가.

‘페인트 영애가 큰일 해줬어.’

물론 다른 영애들도 모두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흑장미 살롱의 네임벨류가 이 정도로까지 성장한 것은 모두 페인트 영애 덕분이라 말할 만했다.

살롱을 관리하는 것부터, 살롱의 이름을 알리는 것까지. 설정상 움직일 수 없는 페넬로티를 대신해서 그녀가 무도회장에 작업을 친 것이다.

능력 있는 프로듀서마냥, 흑장미 살롱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문을 생성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치밀했던 터라 이쪽 역시 그녀에게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간과한 것이 있다면 흑장미 살롱의 화제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영애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굴러갈 열차에 날개까지 달아버렸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장하지 않고 갑작스레 아이돌 그룹이라도 튀어나온 듯한 분위기였다.

‘당연히 아이나 페넬로티가 센터자너.’

그래도 매체의 발달로 유명인들이 있는 2회 차와는 다르게 1회 차는 셀럽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페인트 영애가 연 파티 역시 무슨 팬미팅을 하는 분위기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밑바닥에서 올라왔다는 스토리텔링이 그들의 심장에 불을 지핀 것이다.

하위 귀족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런 기류에 편승해 몇몇 고위 귀족들도 끊임없이 흑장미 살롱을 입에 담고 있는 중,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게 딱히 이상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 이쪽으로 와. 페넬로티! 오늘 무도회장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으윽.”

“그러게요. 전에 회장을 이용하시던 분들이 아직 나가지 않으신 걸까요?”

“내 손 꽉 잡아 페넬로티. 괜히 사람들한테 둘러싸이면 귀찮아지니까.”

“감… 감사합니다. 파스텔 영애.”

“감사하기는 뭘. 친… 친, 친… 친… 친구끼리…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데 페인트 어디 있지? 페인트! 페인트!”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 역시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시바. 경호원들 좀 불러줘. 이 상황 좀 진정시켜 달라구.’

“파스텔 영애! 잠시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아! 저리 비키세요! 지나갈 공간 좀 만들어달라고! 아잇! 춤을 권할 거면! 줄 좀 서세요! 이렇게 마구잡이로 오지 마시고! 따라와! 팔레트! 브러쉬!”

“네.”

“…….”

“팔레트! 페인트는 어디로 갔어!? 못 봤어?”

‘걔가 뭐 하고 있겠어?’

여기 개판 난 거 보고 수습하러 갔겠지.

아니나 다를까 무도회장의 사용인들이 등장해 귀족들에게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있다. 정황상 페인트 영애가 그들을 부른 게 분명하리라.

그 목소리에 본인들이 어떤 추태를 부렸는지 알아차린 이들은 얼굴을 붉히고 있는 중,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무도회고 나발이고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만했다.

마치 시장 바닥에 어딘가의 공주라도 등장한 것 같은 행태였고, 어디에서도 겪어보지 못할 광기의 현장이라 말할 만했다.

‘왕국연합의 미래가 어둡다. 시바.’

영애고 영식이고 가릴 것 없이 무작정 돌진하던 녀석들이, 이제야 거리를 벌리고 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놈들, 물론 거리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이쪽을 쳐다보는 놈들이 태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걸 자각했다는 게 그 이유이겠지만 아마 더 큰 이유는 제니스 후작 때문이지 않을까.

그나마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과 친분이 있는 놈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아주 여우야. 여우 이 새끼.’

인정하기는 싫지만 알파메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그 외 애매모호한 찌질이 들이 끼어들 수 있을 리 만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방패가 되어준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제니스 후작님!”

“오랜만이네요! 제니스 후작님! 페넬로티 영애. 페넬로티 영애! 이리로 와요! 제니스 후작님 오셨어요!”

“페넬로티 영애?”

“제, 제니스… 후작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잘… 잘 지냈어요. 제니스 후작님은 잘 지내셨나요?”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보다, 목걸이가… 정말 잘 어울리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제니스 후작님… 제, 제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될지….”

“제 주인을 찾아간 것뿐입니다.”

“흥.”

‘얼굴 좀 펴… 파스텔아.’

“그래서 바쁘신 제니스 후작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신가요? 우리 페넬로티한테는 또 무슨 용건이 있으셔서….”

“아잇! 파스텔 영애 오늘 왜 그러세요? 제니스 후작님이라고요! 제니스 후작님! 그 제니스 후작님이라고요! 당연히 제니스 후작부… 아니, 페넬로티 영애를 보러 오셨겠죠.”

“하하. 네. 맞습니다. 브러쉬 영애. 지금 말을 걸지 않으면 오늘의 일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을 붙이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노려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스텔 영애.”

“제, 제가 언제 노려봤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제니스 후작님. 저는 그냥 페넬로티가 걱정돼서… 아, 아무튼 저도 모르게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니스 후작님, 무도회를 꽤 열심히 즐기고 계신 것 같은데 혹시 페넬로티 영애 외에 다른 영애들과는….”

“아직까지 다른 영애들에게 춤을 권하거나 대화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페넬로티 영애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뿐이라….”

‘이 새끼 시선 하나 안 피하고 이딴 부끄러운 말을 내뱉고 있네.’

“아아… 으득. 그러시구나.”

당연히 페넬로티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귀를 붉힐 수밖에 없다. 눈을 반짝이고 있던 브러쉬가 말을 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연이네요! 제니스 후작님! 아직 페넬로티 영애도 춤을 춘 적이 없는데….”

“그렇습니까?”

“아마 페넬로티 영애도 제니스 후작님이 춤을 권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죠? 페넬로티 영애?”

“아, 아니, 저는….”

“하하하하. 브러쉬 영애께서 페넬로티 영애를 곤란하게 만드시는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떠밀리듯 춤을 권하기보다는, 이후 기회가 생길 때, 정중하게 다시 춤을 권하도록 하지요.”

“어머나. 어머나. 혁명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제가 괜히 방해한 건 아닌지!”

‘처음 보는 영애에게서 어쩐지 익숙한 향기가 나나 했더니.’

돼지 새끼를 생각나게 하는 혁명적인 설계였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페넬로티 영애.”

한쪽은 너무 가드가 두텁고, 한쪽은 너무 밀어주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이다 보니 중간에 낀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야 했다.

그래도 1군사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해 준 덕분에 한 발자국 뒤에서 파티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온갖 고위 귀족들이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도회를 즐기고 있는 중, 첫날에 왔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다.

‘고위 귀족들도 많고, 이제 좀 괜찮은 매물들이 눈에 보이네.’

브러쉬 영애는 댄스광인지 쉴 새 없이 춤을 추고 있었고, 페인트는 귀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팔레트는 아마 연초를 피우러 나갔을 테고, 파스텔은 으르렁거리며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얘는 왜 이럴까 싶기는 했지만,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무도회를 살펴볼 수 있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현성이 여기에 있으려나.’

아마 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녀석이라면 무도회를 질색할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셜 활동 하는 것을 강요받은 만큼 어쩔 수 없이 이 장소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찾기도 쉬울 거야.’

영애들이 몰려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내 말 맞잖어. 무조건 영애들 몰려 있는 곳에 있을 줄 알았자너.’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1현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페넬로티 영애는 오늘도 춤 안 추시게요? 어? 김현성 백작이네요?”

“아시는 분인가요? 브러쉬 영애?”

“소환자인데 제국에서 백작 작위를 받은 걸로 유명하잖아요! 저 잘생긴 얼굴도 유명하고요. 이번 데뷔탕트 무도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신 분이에요!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운이 좋네요!”

“아아아아….”

“페넬로티 영애. 혹시 관심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관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신기해서요.”

“역시 그렇죠?! 역시 뭐든지 제국이 한 발 더 빠르다니까요! 소환자에게 작위를 주다니! 그간 없었던 혁명적인 행보라고요. 우리 왕국연합은 아직까지도 정통성이니 뭐니 하는 말로 소환자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결국 보세요! 어느 쪽이 옳았는지. 분란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제국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하니… 제국의 큰 흥복이죠.”

‘그래. 잘생기기는 했어. 분위기도 쩔자너.’

괜히 저 많은 영애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맨날 보던 얼굴이기는 했지만 역시나 어디에서나 먹히는 얼굴, 살짝 차가워 보이는 표정이 마치 외로운 늑대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의외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던 터라 생각보다 허들도 낮아 보인다.

영애들 역시 그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기 때문에 녀석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확인해야지.’

“…….”

“…….”

‘다행히 2현성이랑 퓨전된 건 아닌 것 같네.’

혹시나 2현성이 녀석의 안에 들어가 있거나, 합체했을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눈앞에 있는 것은 온전한 1현성이었다.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물론 김현성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접점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때마침 브러쉬 영애가 파스텔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던 터라, 지금밖에는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다.

파스텔 영애가 빠지는 타이밍을 노린 것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터,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악역을 자처해 줄 사람을 물색하자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핑크 돼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우리가 눈을 두 번이나 마주쳤었네?’

뭔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원래 저런 새끼들은 쓸데없는 것에도 의미부여를 하게 마련이었다. 살짝 웃어주자 지한테 관심이 있는지 알고 웃고 있는 꼬라지도 그렇다.

“페넬로티 영애?”

라고 은근슬쩍 말을 건네는 녀석.

‘도와줄 거지 현성아?’

곤란에 빠진 영애를 그냥 무시하지는 않을 거지?

“괜찮으시다면….”

‘아니, 전혀 안 괜찮은데요?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요?’

“저와….”

‘자기소개도 안하고 대뜸 춤부터 추자고.’

“아… 저, 저기… 네? 그러니까 저는….”

“…….”

“죄… 죄송합니다.”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얼굴. 거절을 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쓰레기의 표본이었다.

뭔가 조금 더 해줬으면 좋을 것 같아 살짝 표정을 찡그리자 아니나 다를까 수치심에 붉게 물든 얼굴이 시야에 비쳐왔다.

사실 녀석이 앞으로 어떤 대사를 내뱉는지는 상관이 없다. 누가 봐도 분위기가 냉각되는 것이 보였으니까.

외부에서 느끼기에는 살찐 돼지 공작이 고결한 아이나 페넬로티를 핍박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

‘모욕해 줄 거지? 나쁜 말 해줄 거지? 기영이 욕해줄 거지?’

“주제도 모르는….”

‘그래 그 말을 기다렸다고! 시바!’

“모자란 것이 작은 관심을 받더니 제 주제도 모르고 미쳐 날뛰는군. 더러운….”

‘전형적인 쓰레기라고… 젠장! 어떻게 이렇게 전형적일 수가 있냐구! 춤 한 번 거절당했다고! 욕 나오는 거 봤냐고! 이딴 새끼가 실존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네? 네? 저… 저는 그러니까….”

슬그머니 김현성 쪽을 힐끔힐끔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우리 현성이의 얼굴이 굳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그 누구도 핑크레인 공작의 권위에 도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회귀하지 않은 사랑스러운 회귀자만이 꿋꿋하게 아이나 페넬로티를 위기에서 구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얼굴, 녀석이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뎠던 바로 그때였다.

“페넬로티 영애가 곤란해하지 않습니까. 핑크레인 공작.”

반갑지 않은 목소리.

‘아니, 시바.’

기다렸던 건 백마 탄 왕자님이었건만, 기다리지도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새끼가 자리해 있었다.

‘아니, 뭐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왔는데.’

“괜찮으십니까. 페넬로티 영애.”

“…….”

“…….”

‘아무리 그래도 너랑 공화국 같이 안 간다고. 이 새끼야.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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