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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78화 (1,37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77화

뜻밖의 데뷔(12)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 말인가?”

“당연히 흑장미 살롱 영애들 소식이지.”

“또 무슨 사건이 터지기라도 했나?”

“…….”

“…….”

슬쩍 와인을 마시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데뷔탕트 무도회에서 가장 떠들썩한 이들의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또 흑장미 살롱이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었다. 최근 어디를 가든지 간에 이들의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는다.

늙은 귀족이나, 영식들이나 모두 흑장미 살롱에 방문한 이들은 영애들과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떠들어대고 있었다.

애연가인 팔레트 영애가 추천한 연초가 마음에 들었다느니, 저 멀리 있는 중립국 라이오스에서 직접 잎을 수입해 쓰고 있다느니, 브러쉬 영애가 읽고 있는 서책들이 수상하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푸하하하하핫! 그게 정말인가? 정말 파스텔 영애의 눈앞에서 페넬로티 영애를 모욕했다 이 말인가?!”

“그렇지.”

“그래서. 그 멍청한 놈은 어떻게 됐나?”

“흐흐흐흐. 놀라지 말게.”

“빨리 말해 보게나.”

“파스텔 영애가 그놈에게 결투를 신청했네.”

“뭐… 하하하하하! 뭐라고? 이 사람이 참 농담도!”

“진짜 농담이라면 내가 이런 말을 하겠나? 그 자리에 내가 직접 있었다 이 말이네! 파스텔 영애의 장갑이 그 개망나니 자식의 얼굴에 날아갔을 때는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아직도 그 망나니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니까.”

“하하핫! 그것참 재미있었겠구만. 그래서 결투는 어떻게 된 건가? 파스텔 영애가 직접 나오지는 않았을 테고, 역시 대리인을….”

“자네는 아직도 파스텔 영애를 모르나?”

“설마….”

“당연히 본인이 직접 나왔지! 상상할 수 있겠나? 파스텔 영애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개망나니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졌는지? 그래도 영애와 직접 검을 맞대고 싶지는 않았는지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파스텔 영애가 그걸 내버려 둘 리가 있나. 그대로 달려들어서 그 망나니의 얼굴에 날아차기를 먹였지 뭔가.”

“날아차기? 그러고 보니까 파스텔 가문이… 무가라고 했었나.”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취미로 권각술을 배웠다고 하더군, 물론 취미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시원하게 발을 뻗는지, 구두도 신지 않은 맨발로 그놈을 마구잡이로 차기 시작하는데… 검술을 배웠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보다 파스텔 영애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뭔가.”

“그럼 그 망나니가 오늘 무도회장을 찾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군.”

“그렇지! 명색이 왕립검술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하는 녀석이 작은 영애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으니 어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나 있겠나. 신관한테 한차례 치료를 받았는데도 아직 얼굴이 부어 있지 뭔가.”

“속이 다 시원하군. 속이 다 시원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무가에서 파스텔 영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참… 사람 일이라는 게….”

역시나 또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한 영애가 왕립검술아카데미를 졸업한 망나니한테 결투를 신청했다고? 그것도 발차기로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고?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저런 어처구니없는 일화들은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었다.

‘체스 사건도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마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명과 동시에 블라인드 체스를 두었다고 했던가. 그 누구라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소문이 퍼지게 된 이유가 있을 테니 뭔가 사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진실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소문이 축소된 것이었단다. 거기에 제니스 후작이 페넬로티 영애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드러나면서 흑장미 살롱이 이번 시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말 그대로 판을 뒤엎어버린 것이다.

문제아 집단이라고 알려진 영애들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영애들에게 구혼하고 싶어 하는 예비 구혼자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장 흑장미 살롱에 방문 신청을 하기도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예약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지금 방문 신청을 넣어도 무도회가 전부 끝난 이후에야 만나볼 수 있단다.

장담하건대 왕녀들이 모여 있는 살롱도 이 정도로 인기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브런치 자리를 따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냥 신청을 넣고 제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쪽은 상황이 더 나은 편, 저녁 식사 같은 경우에는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영애들끼리의 우정도 무척 돈독했던 터라, 큰 일정이 있지 않은 경우에는 보통 영애들끼리 식사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귀족들은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을 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운이 좋아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을 보고 온 이들은 하루 종일 살롱의 영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금과 같이 말이다.

“브러쉬 영애… 보고 싶구나….”

“자네 그 정도면 상사병에 걸린 수준 아닌가?”

“부정하지 않겠네. 솔직히 브러쉬 영애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심장도 꺼낼 수 있다네. 자네는 모를 거야. 그녀가 얼마나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마음 같아서는 제발 우리 가문의 안주인이 되어 달라 빌고 싶은 심정이라….”

“좀 값이 나가는 선물을 보내면 어떤가?”

“그건 그녀를 모욕하는 행위일세!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쓰잘데기없는 재물로 그녀의 환심을 사겠는가! 그런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말일세. 이 왕국연합에 얼마나 큰 병폐가 되었는지… 애초에 이 데뷔탕트 무도회도!”

“알았네. 알았으니까 그만하게. 내가 잘못했네.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하려고 하는구만….”

‘여기도… 저기도….’

“페인트 영애는 요즘 좀 어떻습니까?”

“바쁘시지 않겠습니까? 그 개성 있는 영애들을 한데 모아놓은 살롱을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 아닙니까? 참 머리 아프실 겁니다.”

“그러겠지요.”

“사실…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모두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진짜 가문을 맡길 수 있는 영애를 생각해 보면 단연 페인트 영애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수완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리 생각할 만도 하지요.”

“네… 물론 페넬로티 영애가 흑장미 살롱의 이름을 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무도회가 흑장미 무도회처럼 되어버린 것은 전부 그녀 때문일 겁니다. 그 많은 손님들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맞이하고, 또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살롱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거기에 다른 살롱들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뭐라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혹시 저번에 파티에 대해서….”

“네. 참… 생각지도 못했지 뭡니까. 언제나 데뷔탕트 무도회에서는 소외된 살롱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페인트 영애의 눈에는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흑장미 살롱이 명성을 얻자마자 곧바로 알려지지 않은 살롱들과 파티를 연 것만 봐도 그녀의 심계가 얼마나 깊은지….”

“다른 영애들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로군요.”

“성공적인 파티였죠.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이번 시즌에서 개인으로 주최한 파티 중에서는 가장 퀄리티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 핑크레인 공작의 파티보다도 더….”

‘전부 흑장미 살롱의 이야기뿐이로군.’

물론,

그중에서도 단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아이나 페넬로티였다.

실제로 이 무도회장에 위치한 대부분이 아이나 페넬로티라는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는 중, 영애들이고, 영식이고, 가릴 것 없이 전부 그녀의 이름을 내뱉고 있었다.

그녀의 지성과 미모, 그녀의 행보, 이미 이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무도회장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이유 역시, 그녀를 보기 위함이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나, 명성이 높은 귀족, 심지어 왕족까지 자리해 있다. 소문이 무성하다던 아이나 페넬로티와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제니스 후작… 역시 와 있나… 페넬로티 영애에게 구혼했다 거절당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포기하지 못했나 보군.’

“…….”

‘핑크레인 공작? 거물이란 거물들은 전부 다 모여 있어… 이게 다 저주받은 3녀를 보기 위함이라니….’

다시 한번 생각해도 당황스럽다.

물론 남을 욕할 처지는 아니다. 자신 역시 그녀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자리해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오랜 기다림에 보답하듯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흑장미 살롱의 돌로레스 브러쉬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흑장미 살롱이다.”

“흑장미 살롱이야.”

“흑장미 영애들이다!”

남의 입장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돌로레스 브러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커다란 눈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하지 않은 드레스에 귀여운 모자를 쓰고 나타난 갈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영애의 모습은 수수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그 와중에 꽤 값이 나갈 것처럼 보이는 장신구들을 차고 있었는데, 분명 살롱에서 받은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산처럼 선물이 쌓여 있을 테니 적당히 골라 걸고 온 것이리라.

여느 영애들과의 입장과는 다르게 명랑하고 유쾌한 걸음걸이.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이 파스텔 영애로군.’

브러쉬 영애가 무도회장에 발을 디딘 이후에는 곧바로 다음 타자가 입장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특이하게도 연한 핑크색 머리카락과 연한 레몬색 머리카락이 섞여 있다. 권각술 이야기가 나와 조금 더 골격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파마라도 한 것같이 웨이브 있는 머리를 흔들며 등장했는데 방금의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날아차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뒤통수를 와인병으로 후려쳤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와인병을 손에 쥐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어느덧 다음 영애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아마 팔레트 영애일 것이다. 그녀가 큰 키를 가지고 있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스텔 영애와 대비되는 커다란 키, 키만큼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른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살짝 웃음 짓고 있다.

소문대로라면 입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를 피우러 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춤 대신 연초를 권하려고 대기하는 귀족들이 줄을 서 있다.

“페인트 영애야.”

“페인트 영애다.”

그 이후에 입장한 것이 흑장미 살롱의 관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페인트 영애. 금발 머리에 화려한 착장을 하고 있었다.

살짝 표독스러워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그녀가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째서 많은 귀족들이 그녀를 고평가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뭐라도 할 여인이로구나.’

평범한 영애가 마치 군주에게나 보이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왕녀로 태어났다면, 난세에 태어났다면 영웅이 되고도 남을 상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외모에 가려졌을 뿐이다.

‘여기에 있는 귀족들 중 태반이 페인트 영애를 감당 못 하겠지.’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흑장미 살롱의 아이나 페넬로티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

“…….”

‘아름답다.’

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단순히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이 그러했다.

“…….”

“…….”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장내가 이 무도회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구두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그 빛이 바래버린 듯했다.

걸음걸이에서는 기품과 품위가 느껴진다. 단순히 교육을 잘 받았다느니 귀족으로서의 올바른 몸가짐을 가지고 있다느니 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교양과 기품을 가지고 태어난 듯하다.

더욱이 이질적이었던 것은 그 외모였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등 뒤로 소름이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표현하기 부끄럽지만 외설적으로 생긴 것 같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더러운 욕망이 생기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녀의 걸음걸이와 행동, 그녀의 착장, 그녀의 웃음, 그녀의 손짓,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순수하고 고귀해 보여 차마 그런 저속한 표현으로 그녀를 욕보이고,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나 페넬로티, 그 눈에는 어떠한 욕망도 들어가 있지 않다. 순수함 외에는 그 무엇도 없다.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인외의 생명체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

“하….”

그래. 마치 여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째서 그 누구도 그녀를 대상으로 저속한 표현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 그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가볍게 올리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

“…….”

아이나 페넬로티라는 인간이 너무나도 고결하고, 무결하며, 순결하기 때문이었다.

* * *

‘보고 경배하라.’

“…….”

‘내가 바로 시바 고결하고 순결한 아이나 페넬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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