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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84화 (1,38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84화

뜻밖의 데뷔(19)

길드원들이 보내온 보고서였다.

그중 한 사람은 길드원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창렬이랑 연수자너.’

오랜만에 날아온 소식이었지만, 데뷔탕트 무도회장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둘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보다 더욱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그나마 알프스와 벨리에는 귀족 영애 행세를 하며 나름 편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첩보 활동이 주가 되는 얘네들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무도회장에 사용인으로, 길거리의 부랑자로, 술집의 점원 같은 여러 가지 신분으로 위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자와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한다.

암살자나 레인저들에게 익숙한 환경이라고 한들, 그게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거기에 납치, 고문 같은 뒷공작까지, 왕국연합뿐만이 아니라 제국이나 공화국에도 작업을 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가장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김창렬과 하연수 그 둘이었던 셈이다.

물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만큼 결과는 확실하다. 창렬이의 능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하연수 역시 지혜 누나가 1픽으로 믿고 신뢰하는 인선이라는 것을 언제나 증명해왔다.

그녀의 경우에는 정보전에 특화되어 있는 검은 백조에 몸을 담았었던 만큼, 이 분야에서만큼은 김창렬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둘이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고 있는 거냐구… 편지 두꺼운 거 실화냐구….’

작게나마 놀라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영애들의 관심사는 어중이떠중이들에게서 온 편지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빛내오는 영애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어머. 페넬로티 영애. 제니스 후작한테는 두 통이나 와있네요.”

“…….”

“무슨 내용일까요. 역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두 통이나 보낼 이유가 없겠죠? 어제도 살롱에 들르셨는데 아직도 할 말이 많으신가 봐요.”

제발 편지의 내용을 공유해 달라는 표정들, 물론 같이 읽고 싶다거나 한 줄 한 줄 읽어달라는 표현은 아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어떤 뉘앙스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김현성 백작은 어떻습니까?”

“그, 그래! 김현성 백작은 편지에 뭐라고 쓰여 있어? 페넬로티?”

“네? 네?”

“누구한테 먼저 답장하실지도 생각해 놓으셔야 해요. 페넬로티 영애.”

‘그래. 그것도 중요하겠지.’

본격적으로 창렬이가 보낸 편지를 읽기 전, 1군사의 편지를 펼친다.

왜 내가 편지를 읽는데 지들이 침을 꼴딱 삼켜 넘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애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제니스 후작과 김현성 백작을 저울질하던 컨텐츠가 꽤 흥미로웠던 모양, 마치 자신들에게 온 편지라도 되는 것마냥 몰입하고 있지 않은가.

[싱그러운 봄에 핀 꽃처럼 아름다운 눈을….]

‘아니, 시바 못 읽겠자너.’

이런 느끼한 감성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녀석다운 편지였다.

‘이건 박제 각이야.’

아이나 페넬로티는 지구에서 온 소환자가 아니다. 왕국연합의 감성에 더 알맞은 이 시대의 영애이다 보니 이 시대 수준에 맞는 미사여구를 붙인 것이 분명, 마치 편지가 아니라 한 편의 시처럼 보였던 터라 더 당황스럽다.

‘와… 이거 보고 미소 지을 페넬로티를 생각하고 쓴 거 실화냐고.’

“뭐…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그냥….”

“네.”

“도, 도저히 말씀 못 드리겠어요. 부끄러워서.”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니, 까마귀 소리 그만.’

“그, 그래도 조금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 그냥 잘 지내라는 이야기… 그리고… 보고 싶다는 내용이….”

장장 4페이지에 빼곡히 적혀 있다. 솔직히 글귀 하나하나를 읽는 것 자체가 시간을 버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영애들에게는 이런 감성이 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과 별로 상관없는 미사여구를 읊어주자 갑작스레 브러쉬 영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감… 감동적이에요. 혁명적으로… 감동적이라고요.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림자에 빗대어 표현하시다니…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하셨다고요. 그 편지… 꼭 보관하세요. 페넬로티 영애. 분명히 후대에 남을 거예요. 언젠가는 학생들이 그 편지를 학원에서 배울 날이 올 수도 있다고요! 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요!”

‘아니 그건 좀.’

문학 어쩌고 하기에는 너무 겉멋 들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김현성 백작의 편지는 무척 담백하다. 어떻게든 잘 보이려 기를 쓰고 노력하는 제니스 후작의 감성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물론 편지의 종류는 조금 다르다. 전자가 심혈을 기울여 한 땀 한 땀 적어 나간 연애편지였다면, 후자는 정말로 안부를 묻는 듯한 뉘앙스였으니 말이다.

아직 정원에서의 만남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였으니 잘 지내고 있는지, 기분은 좀 나아졌는지 같은 근황을 형식적으로 물어오는 것 같은 편지였다.

아마 본인도 그저 인사치레를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겠지만….

‘아예 관심도 없는데 굳이 이런 편지를 보냈겠냐구.’

녀석 또한 페넬로티에게 모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살롱의 밖으로 나가 활동 아닌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

“…….”

“저… 그럼 저는 이만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 조금만 더 같이 있지… 아직 들어가기에는 이르지 않아?”

“죄송해요. 파스텔 영애. 답장해야 될 편지가 너무 쌓여 있어서….”

‘너무 친해지다 보니까. 맨날 같이 붙어 있으려고 하자너.’

다섯 명은 하나인 것 같은 느낌으로 붙어 있기까지 하다. 먼저 방에 들어가는 것도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좀 혼자 있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편히 쉬세요. 페넬로티 영애.”

“네. 페인트 영애도 편히 쉬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네. 팔레트 영애. 내일 뵐게요.”

“잘… 잘 자! 페넬로티!”

“네. 파스텔 영애도 안녕히 주무세요.”

살롱의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오고 난 이후에야 편하게 발을 뻗고 편지 뭉텅이를 꺼낸다.

‘일단 필요 없는 건 대충 읽고 버리고.’

침대 밑에 박아놨던 와인을 잔에 따른 이후에는….

“저… 페… 페넬로티!”

“앗! 네?! 저 잠깐만요. 지금 방이….”

“…….”

“…….”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 네. 파스텔 영애. 안녕히 주무세요.”

‘시바 가끔은 혼자 좀 있자. 혼자 좀.’

방문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곧바로 편지를 펼친 것은 당연지사.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보고서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시키지 않은 일들도 해놓은 것이 보인다. 분량은 딱 50페이지 정도, 구태여 내용에 첨언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담으려고 노력했으니 그리 적은 분량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기간 내에 일을 이 정도로 처리해 준 것이라면 많다고 하는 것이 맞다.

첫 번째는 역시….

‘공화국 친구들 명단이네.’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는지, 그 인선은 또 어떻게 되는지, 전투 인원은 몇이나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미 제니스 후작을 비롯한 공화국 놈들이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인 이쪽에서 정확한 인선을 파악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였던 차에 마침 가려운 곳을 김창렬과 하연수가 긁어준 셈이다.

사용인들 중에도 몇몇이 섞여 있고, 경비병 중에서도 몇몇이 섞여 있다. 인원이 적다면 단순한 첩보 임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네….’

당연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정황상 왕국연합과 제국의 동맹 아닌 동맹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 가장 컸겠지만 아마 진짜 목적은 둘 사이에 구멍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이 전쟁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가지 정황들이 눈에 띈다.

[공화국의 보급품과 병력들이 제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

[다완 접견지에서 훈련하고 있는 병력을 다수 확인.]

물론 단순한 군의 움직임을 가지고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시기상조였지만 모든 정황이 하나로 귀결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단순한 억측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2회 차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공화국이 지금 전쟁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제국과 왕국연합이 동맹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이밍도 적절하다.

아마 공화국의 수뇌부에서는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거나, 제국에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고 결론 지었을 것이다.

‘제국에서도 이래저래 일이 많았을 시기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할 만도 하지.’

실리아와 린델의 전쟁이 끝나고, 샤를롯트가 황위를 물려받은 이후, 청소 사건도 마무리됐을 시기다.

당장 샤를롯트가 김현성을 비롯한 사절단을 이쪽으로 보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혼란스러웠던 제국의 정세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왕국연합과의 동맹은 아직은 아슬아슬한 내부를 더욱더 견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공화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공화국 녀석들이 급하게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배경이다.

문제는 이게 언제 터지느냐는 것.

‘데뷔탕트 무도회도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끝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터진다는 건데….’

아쉽게도 정보를 더 얻을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왕국연합 내부로 들어온 공화국의 전투 인원들을 붙잡는 위험을 감수한다면 시기를 움직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도박성이 짙다.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잡힐 수도 있고… 무엇보다 놈들을 잡는다고 해도 고문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 새끼들 전부 광신도 새끼들이자너.’

시기라는 건 언제나 유동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직접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1군사가 이곳에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고, 본인이 직접 신호탄에 불을 붙일 셈이었다.

‘솔직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소름은 끼치자너.’

어쩌면 아이나 페넬로티가 그 시기를 늦추고 있을 수도 있겠지, 뭐. 고작 천재 영애 하나 때문에 작전을 늦춘다는 건 상식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진 군사라면 그러고도 남았으니까.

‘조금 더 정보가 모일 때까지 작업을 치는 게 좋을까. 작전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납치 같은 거라도 하려나.’

하연수가 보낸 보고서를 읽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집어 던진다.

그다음 장에 더욱더 흥미로운 주제가 있었던 탓이다.

공화국 이외에도 신원 미상의 놈들이 주변을 기웃거린다는 것.

“…….”

“…….”

짧은 전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도회장 내부로 침입하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이 정체불명의 놈들이 성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단다.

‘아직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시기에 놈들은 정확한 목적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놈들이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건 그 녀석이 합류한 이후였을 테니 말이다.

타임라인이 살짝 촉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시기에도 합류해 있었던 모양.

김창렬은 도시의 외곽을 조사하던 도중 1회 차의 선희영과 조우했다.

“…….”

여단.

“…….”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놈들도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내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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