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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92화 (1,39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92화

피의 무도회(2)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진실을 고백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도대체… 이 새끼…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진실을 말하면 페넬로티가 모든 걸 용서하고 공화국으로 함께 가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진실을 고백한다면 진짜로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드리고 싶은 말이요?”

“네.”

평범한 거짓말이라면 용서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관계의 근본을 뒤흔드는 거짓에는 예민해지게 마련, 녀석과 이쪽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애초에 제니스 후작과 아이나 페넬로티의 만남은 모든 것이 거짓이고,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작은 유대감도,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도, 전부 거짓이었다는 거다.

김현성이 괜히 회귀자 고백을 그리 벌벌 떨며 준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혹시나 자신이 속여 왔다고 느끼지는 않을지 하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다. 김현성 오피셜로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더라.

한데 이 새끼의 모습은 어떠한가.

‘별로 안 불안해 보이네? 초조한 게 없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이나 페넬로티가 자신을 선택해 줄 거라는 자신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모든 걸 고백하고 제로부터 시작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이 새끼의 오만방자함이 진정 하늘을 찌르는구나.’

“…….”

“…….”

짧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한 곡이 끝나고, 서로 살짝 거리를 둔 이후에 인사를 하는 상황, 당연히 주변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방금 전의 상황을 복기하거나 여운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곧바로 이곳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대… 대단해요! 페넬로티 영애!”

“페… 페넬로티이….”

‘파스텔아 넌 왜 울어?’

“대단했다고요! 혁명적으로 완벽한 춤이었어요! 페넬로티 영애! 그런 춤은 처음 봤어요!”

“헤… 헤헤….”

“교양 있었다고요! 기품이 넘쳤었다고요! 페넬로티 영애는 혹시 어딘가의 공주님이라도 되는 건가요! 이건 재능이에요! 엄청난 재능이라고요! 형편없는 제니스 후작의 춤 실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니까요!”

“아, 아니에요. 제니스 후작님께서 잘 따라와 주셔서….”

“제니스 후작의 춤이 형편없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건 부정할 수가 없자너. 너희들도 눈이 있었으면 봤을 거 아니야. 조금만 템포 올렸어도 바보처럼 꼬꾸라졌을 거라구.’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정말… 곤란해요. 팔레트 영애.”

“농담입니다. 페넬로티 영애.”

심지어 나름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보였었나 보다. 바닥까지 떨어졌었던 제니스 후작의 평판이 약간은 회복된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는 제니스 후작이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들이 쏟아져 온다.

“제니스 후작이 뭐라고 하던가요? 페넬로티 영애.”

“그것보다 왜… 왜 제니스 후작을 선택하신 건가요?! 도대체 어째서? 김현성 백작이라고요! 무려 김현성 백작님의 춤 신청을 거절하고 제니스 후작을 선택하다니요. 물, 물론 페넬로티 영애의 선택에 이래라저래라 사족을 붙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 그래도 제니스 후작은… 페넬로티 영애에게 이미 한 번 상처를 준 전적이 있고… 뭐…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것부터 설명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페넬로티 영애.”

‘그래. 이건 해명해야지.’

“글… 글쎄요….”

물론 이런 종류의 감정은 해명한다고 해서 해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냥… 저도 모르게….”

“…….”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제니스 후작님이 눈에 보여서… 영애들께서 응원하시고 조언하시는 것도 전부 봤었지만 왠지 모르게 제니스 후작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 미친… 미쳤어요. 페넬로티 영애는 어른이군요.”

“페넬로티 영애….”

모든 영애들이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런 이유라면….”

“뭐…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페넬로티 영애. 제니스 후작님이 뭐라던가요? 춤추면서 두 분이서 대화하시는 거 전부 봤어요. 뭔가 결심하신 건가요? 아니면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든가….”

“글쎄요. 저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서… 다만 제니스 후작님께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어요.”

“네?”

“중요한 일이라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건… 역시 그거겠죠?”

“청혼인가요! 드디어 청혼인 건가요! 제니스 후작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움직이시는 흐름으로 가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할 만하자너.’

누가 보기에도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타이밍도 무척 공교로웠고, 그럴 만한 이벤트도 있었으니 말이다.

“가문에 먼저 전달하기보다는 페넬로티 영애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싶으셨나 보네요.”

“무섭습니다. 제니스 후작의 기세 말입니다.”

“페넬로티 받아들일 거야? 응? 이렇게 쉽게? 그 새끼가 페넬로티 너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저,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청혼하실지도 모르고… 또 자리는 언제 어떻게 만드시려고 하는 건지 전해 들은 것도 없어서….”

라고 말했던 순간이었다.

“페넬로티 영애. 잠깐 시간 좀 내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개를 돌린 곳에 자리한 것은 당연히 제니스 후작. 녀석의 추진력에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동시에 입을 가린다.

더 이상 후진하지 않을 거라는 기개가 느껴진 것일까.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으려는 다짐한 한 남자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니스 후작의 모습에 잔뜩 놀란 것처럼 보인다.

“네… 네. 그럼 어디에서….”

문제는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 정도다. 아무리 기정사실화된 관계라고는 해도 단둘이 있기에는 상황이 마땅치 않았던 것. 답을 알려준 것은 페인트 영애였다.

“6번째 발코니에서 이야기들 나누세요. 미리 양해를 구해놓겠어요.”

“감사합니다. 페인트 영애.”

“다만 너무 길게 이용하시면 안 돼요.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을 테니까요.”

“…….”

“…….”

그렇게 제니스 후작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이쪽이 그 뒤를 따라간다. 뒤에서는 힘내라거나, 옳은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거나 하는 영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넓어 보이는 발코니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 와중에 풍경과 분위기가 꽤 그럴듯하다. 페넬로티 영애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고 싶다는 페인트 영애의 진심이 담겨 있는 장소.

선선한 밤공기가 가장 먼저 이쪽을 맞이하고 있다. 달빛과 별빛, 그리고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풍경 또한 인상적이다.

이런 장소라면 누구나 로맨틱해질 수밖에 없다. 페넬로티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할 말이 있다고 했던 제니스 후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분위기를 잡는다. 당연히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콤한 말이 아닐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기대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주는 게 예의였다.

“페넬로티 영애.”

“네… 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깜짝 놀라버린 페넬로티!

“아…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긴장해서….”

얼굴이 새빨간 딸기처럼 붉어져 버린 페넬로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빌드업이 이루어질 것인지, 궁금한 게 당연한 상황.

마치 꿈길을 걷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던 페넬로티였지만 그녀에게 들이닥쳐 오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제니스 후작의 얼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 평소 알고 있었던 제니스 후작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언제나 친절하고 웃어주던 모습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제니스 후작이 아니구나.’

지금 내 앞에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는 사람은 제니스 후작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구나. 저게 저 사람의 본 모습이었구나.

잠깐 동안 느꼈던 설레임과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대신 불안감이 감돈다.

저도 모르게, 아이나 페넬로티는 그 불안감을 입에 담았다.

어제부터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말이다.

“…….”

“…….”

“당신은… 누구인가요?”

“…….”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입을 떼기도 전에 상황을 먼저 알아차린 페넬로티에 대한 놀라움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결국에는 녀석이 못 이기듯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영애. 저는 공화국의 오호대장군의 2좌를 맡고 있는 진청입니다.”

‘그냥 냅다 자기소개 박아버리는 거냐고.’

“무슨 농담을….”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영애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우실 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애. 하지만 제 말을 한 번만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왕국연합은 영애의 꿈을 펼치기에는, 영애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작고 편협한 곳입니다. 페넬로티 영애, 전 당신의 가능성을 보고, 당신을 지켜봐 왔습니다. 이곳은 당신과 어울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제니스 후작님.”

“공화국에서라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 꿈, 미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애.”

울먹울먹 페넬로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어째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제니스 후작님.”

울음이 터져 버린 페넬로티! 이런 건 현실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있는 페넬로티!

“저와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흐윽… 모르겠다고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페넬로티!

녀석이 숨 쉴 틈도 없이 말을 이어온다.

“지금 당장 무도회장에서 나가 살롱에 들어가십시오. 페넬로티 영애.”

“…….”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제 말에 따라주십시오. 영애. 하지만 만약 저와 함께할 뜻이 있으시다면, 정원에서 저를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

“모두 영애를 위한 일입니다.”

“…….”

“…….”

“저, 저 혼란스러워요. 제니스 후작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어째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까 췄던 춤은 도대체 뭐였는지. 왜 구태여 그런 말씀을 꺼내시는 건지, 어째서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건지. 무서워요. 무섭다고요. 제니스 후작님.”

“…….”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차라리 그냥 농담이었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절절한 페넬로티.

이 새끼가 김현성 백작에게서 나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것은 단순히 질투심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당연지사.

‘타겟이랑 가까이 붙어 있으면 피해가 갈까 봐 그런 거구나?’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이거였을 것이다. 페넬로티가 꾸었던 제한적인 미래 예지가 점점 명확해진다.

안개에 가린 것 같은 형체가 슬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도회에서 무언가가 일어날 거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제니스 후작이 다시금 말을 이어왔다.

“제가 영애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아이나 페넬로티는 그대로 허물어진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제니스 후작의 몸. 당연히 커다란 목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발성, 톤, 딕션, 울림,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대사, 온갖 감정이 들어가 있는 연기,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흐윽… 가까이 오지 마…세요. 흐윽… 흐으으윽… 제발… 가까이 오지 마.”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바 실제로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였다.

“가까이 오지 마아아!!”

‘저리 꺼져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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