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04화
피의 무도회(14)
‘마지막 선물은 또 뭐냐구….’
구태여 추측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곧 결과로 마주하게 될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 단원들이 보인다. 이번 동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죄다 죽여 버린 이후일 테니 몸을 빼는 데도 거리낌이 없을 터였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1기영이 1현성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 작전의 구조상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케이크 위 딸기를 가장 나중에 먹고 싶다는 심리가 발동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놈은 현시점의 김현성에게 손을 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복수할 생각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야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기영 씨의 김 백작님이라고 말이다.
최소한 이기영의 목표에 김현성이 제외된 적은 없다. 오히려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판단하는 것이 맞다. 첫 번째 가설보다는 두 번째 가설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머릿속으로 1현성과 1기영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 녀석은 조용히 이상한 물건을 꺼내기 시작, 누가 봐도 불길해 보이는 것을 이기영이 손에 올리자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가루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스틱스강을 건너던 나룻배 잔해 – 전설 등급]
[죽음의 강을 건너다니다 침몰한 나룻배의 부스러기입니다. 저주의 신 에이에스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나룻배의 부스러기는 작은 범위의 죽은 자들을 일으킵니다. 증오의 강을 막 건너던 죽은 자들은 생전의 능력치 이상의 능력치를 부여받게 됩니다. 죽은 자들에 의해 사망한 이들 역시 몸을 일으키게 됩니다. 1회용 소모품입니다.]
직접적으로 소모품 아이템의 설명을 읽어보자 조금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건… 본 적이 없는데.’
2회 차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이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김현성이 한참 돌아다니며 흑마법사들을 조지고 다녔던 시기에 저 물건을 입수하고 폐기하지 않았을까.
물론 저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별 상관이 없다. 위 물건의 행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 물건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라는 사실이었으니까.
위험성이야 차고 넘친다. 엄청난 발전으로 인해 파워 인플레이션이 올라간 2회 차에서는 전설 등급이 어느 정도는 흔하게 볼 수 있게 됐지만 현시점의 1회 차에서의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라는 건 40종, 아니, 어쩌면 20종도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설 등급의 직업이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필연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고, 우리 대륙에서도 강자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전설 등급 아이템의 수혜를 받아왔다.
샤오린이 사용하던 채찍이나, 율리에나 역시 같은 등급이 아니었던가.
저 짤막한 설명이 적혀져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 전설 등급이라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같은 등급을 판정받았다고 한다면….
‘위험할 것 같자너.’
시바 말만 전설 등급이자 죽음의 강, 저주의 신 어쩌구 하는 거 보니까 그냥 봐도 등급 외의 물건이 확실하자너.
순식간에 성을 휘감는 불길한 기운에 인상을 찡그렸던 것도 잠시, 이윽고 눈앞에 보이던 시신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 당연하지만 풋내기 흑마법사들이 일으키는 언데드 따위와는 질이 다르다.
아직까지 이 대륙에 존재할 리가 없는 한소라 정도의 흑마법사가 외운 주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은 즉각적이다.
설명창에 저주의 신, 죽음의 강 어쩌고 쓰여져 있는 게 굉장히 불길하게 느껴졌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설 등급 내에서도 높은 레벨을 판정받고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었던 모양, 아마 저 조각이 조금만 더 컸다면 준신화나 신화 등급으로 분류받지 않았을까.
몸을 일으키고 있는 망자들에게 이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언데드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오롯이 산 자를 향한 분노.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고위 흑마법사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이성을 가진 언데드들을 일으키기도 하니 말이다.
말인즉슨, 저 괴물들은 이성을 부여받는 대신 높은 능력치에 부여받았다는 셈이 된다.
명색이 사제인 1희영은 언데드에 강한 거부감이 있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중.
물론 기분이 나쁜 것은 2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이시여. 저 저주받은 것들을 용서하시옵소서.
“신이시여. 저 저주받은 것들을 정화하시옵소서.”
‘뭐야 너네.’
우연인지 1희영과 2희영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기영 님.
“이기영 님.”
1기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지고 온 결과는 다르다.
“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엑!”
“키…으…아으에에에엑!”
죽음의 강에서 돌아온 망자들은 울부짖는 동시에, 선희영의 눈깔 슬라임들이 놈들에게 입을 벌리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시바 이게 뭔 괴수 대격돌이야.’
철퍽철퍽 소리와 함께 공중과 땅을 오가는 괴물들이 놈들을 집어삼키고 뱉어내고를 반복한다.
공포와 두려움 없이 움직이는 죽음의 망자 또한 괴물을 향해 손톱과 이빨을 들이민다. 녀석들의 눈알을 뽑으며 목적 없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있다.
“크에이이에에엑!”
“키이이익! 키이익!”
‘시바… 징그럽다구.’
“끄이에엑!”
‘근데 우리한테는 성녀급의 사제가 있자너.’
눈깔 괴물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선희영이 조심스레 로자리오를 잡고.
“신의 품으로….”
커다란 발을 한 발자국을 내딛자.
칙칙한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언데드들이 시야에 비쳐왔지만….
‘이 새끼들… 별 반응이 없는데.’
가루가 되어서 저 멀리 날아가야 할 놈들이 상대적으로 멀쩡하다.
타격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 몸을 일으키고 있는 중, 저 언데드들이 흑마법이 아니라 신의 축복으로 태어난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은 효과가 없는 것 같네요. 희영 씨.”
“네. 이기영 님.”
놈들을 처치할 수 있는 수단은 물리력이다. 내 말을 알아들은 선희영이 곧바로 신성력으로 직접적인 형태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거대한 철퇴가 하늘에서 떨어지자 언데드 몇 놈이 피떡이 되어 찌부러지는 중, 하지만 그 숫자가 많다.
하연수 역시 검을 들고 본격적으로 놈들의 목을 날리고 있었지만 이 새끼들은 목을 날려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쪽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는 볼 수 없다. 아무리 우리 파티에 가드가 존재하지 않고, 저쪽은 평범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아니라고 해도, 무슨 목 없는 병사나 악마 기사 같은 새끼들이 튀어나온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예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선희영과 하연수에게는 그냥 수준이 높은 몬스터 정도로 비춰질 것이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의외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형태의 언데드에 금방 적응하고 있는 하연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는 녀석들은 모두 몇 발자국을 밟기도 전에 발목이 잘려 쓰러진다.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보일까 말까 한 가느다란 실, 내 눈이 좋지 않았다면 아마 보지 못했을 정도로 얇은 실이었다.
‘와. 저런 기술도 가지고 있었던 거냐구.’
심지어 모습을 숨긴 그녀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때마다 놈들의 사지가 후두둑 절단되며 땅에 떨어진다. “후우” 하며 숨을 고르는 사이에 녀석들이 다시금 그녀를 압박하며 들어왔지만 당황하는 기색은 없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검을 휘두른다.
“…….”
“…….”
‘지혜 누나가 좋아할 만해.’
저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
“연수 씨 혹시 이거 끝나고 나서도 저랑 같이 계속 일할래요?”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쪽을 경멸하는 듯한 표정이 대답이 되어 주고 있는 듯했다.
‘대답은 좀 해주지.’
한결 편하게 활동하고 있는 눈깔 슬라임들은 이쪽을 향해 기어오고 있는 놈들을 손쉽게 먹어 치우고 있는 중, 시간만 주어진다면 5층에 있는 언데드들을 큰 부상 없이 모두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놈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것.
냉정하게 선희영과 하연수가 전부 커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레벨이 높은 마법사나 다인 전에 특화된 인선이 아니고서야 이 성 전체를 감싸고 있는 언데드들을 전부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손으로 구멍이 줄줄 새고 있는 항아리를 전부 막아낼 수 없지 않은가.
벨리에나 알프스, 김창렬이 합류한다고 해도 이 성을 전부 커버할 수는 없다.
이쪽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쪽은 아니라는 거다.
‘김현성은? 걔는 괜찮나?’
“끄엑!”
“키에에에엑!”
“으…우으에엑!”
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5층뿐만이 아니다. 성에서 가장 혼잡했던 지역은 김현성이 거주하고 있었던 4층, 지금 가장 혼란스러운 장소는 이곳이 아니라 바로 아래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집단이 섞여 개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중에 언데드들이 들이닥쳤을 테니 제대로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터, 심지어 놈들에게 뒈지면 싸워야 할 적들이 더욱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었으니 이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난전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김현성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라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아직 성장이 진행 중인 김현성 백작께서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선희영과 하연수를 보유하고 있는 내가 안전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와 그녀가 성장을 모두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 퀄리티의 언데드라면 현시점의 모험가가 견디기 힘든 수준일 것이다. 계속해서 놈들을 썰어 재끼던 하연수도 은근히 지쳐 있는 것만 같다.
‘하연수가 그냥 픽픽 썰어버려서 그렇지, 이 새끼들이 만만한 새끼들도 아니고. 한 명 한 명이 어디 희귀 등급 던전의 최종보스나 영웅 등급 던전에 중간보스처럼 보이는데.’
생전의 능력치 이상을 추가로 부여받으니 개체에 따라서는 더 강한 개체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신성력이나 성수, 은검이 통하지도 않는다. 보통 언데드가 관련된 던전에 들어갈 때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것저것 챙길 준비물들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이 정면에서 놈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뭐야! 씨발… 씨발! 언데드다! 언데드! 진영 유지해! 제기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여단이 버린 소모품들은 어차피 칼질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들, 순식간에 죽은 자들에게 파묻혀 그들로 다시 태어난다.
커다란 방패를 가지고 있는 왕국 연합의 근위대가 그나마 놈들을 저지할 수 있겠지만 녀석들 역시 여유가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빌어먹을 성에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이고 구분할 수도 없다.
적은 언데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칼을 맞대고 있던 놈들이 언데드가 나타났다고 해서 힘을 합쳐서 싸울 수 있을 리 만무, 당연히 선희영과 하연수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4층으로 내려가요.”
“네. 이기영 님.”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선희영, 그리고.
“목표물은….”
“창렬 씨가 추적해 주실 거예요. 당장 저들한테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네.”
곧바로 죽은 자들을 밀어붙이며 4층으로 내려오자 아니나 다를까….
‘뭔 전쟁 통이자너.’
“아아아아아아악! 도망쳐!”
“키에에에에에에엑!”
“제기랄!”
“죽어! 이 괴물 새끼들아! 죽어!”
“으아아아아아!”
“이리와! 이리와! 횃불 켜! 제기랄! 횃불 켜라고! 마법사들 없어? 기름이라도 가져오라고!”
“신성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성수! 성수는 어때?”
“제기랄 여기서 성수를 어떻게 가져오라는 거야!!”
‘이 무능한 새끼들 하는 짓 한번 가관이자너.’
“도망쳐… 도망치라고!!”
당연히 공포는 전염되기 시작, 뭉쳐도 모자랄 판에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애초 저항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전멸하겠는데?’
“김현성부터 확보해 주세요. 연수 씨.”
“…….”
“…….”
“죄송해요. 이기영 님.”
“네?”
“제가 지혜 언니께 받은 명령은 혹시 모를 상황이 터졌을 때 이기영 님을 지키라는 거였거든요. 선희영 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기영 님과 떨어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평범한 언데드라면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조금 달라요.”
‘아니, 지혜 누나는 왜….’
심지어 선희영도 그녀의 말이 타당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괜스레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진 군사라도 소환해야 되나?’
저 멀리서 별안간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빛을 밝히세요!”
“빛을 밝히세요!!”
“빛을 밝히세요!!!!!!”
“페넬… 페넬로티이이이이이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빛을 밝히세요!! 빛을 밝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