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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06화 (1,40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06화

피의 무도회(16)

“김현성 백작?”

다른 건 몰라도 뒤에 백작이 붙으니 더 간지 나는 건 확실했다.

분노한 모습 또한 그렇다.

‘우리 현성이 화났냐구.’

“후우… 후우….”

‘적들의 잔인함과 용의주도함에 치가 떨리는 중이냐구.’

김현성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근위대가 방패를 들고 이를 악물며 전방을 사수하는 사이 녀석은 측면에서 나타나 죽은 자들의 온몸을 베어버린다. 순식간에 토막이 나버리며 땅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언데드 놈들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방금 전까지 왼쪽에 있었던 김현성이 어느새 오른쪽에 서 있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보다 한 박자 늦게 놈들이 토막이 나 쓰러진다.

아마 레벨이 낮은 이들은 김현성이 어떻게 놈들을 베어내는지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으아아아악!”

아니, 어쩌면 김현성이 자리에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언데드들이 뭉쳐 있는 정중앙에 들어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면에서 보면 녀석이 있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냥 죽은 자들의 팔과 다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만 보고 있지 않을까.

자신들이 닿을 수 없는 장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세 개의 팔과 다리가 공중으로 치솟는다.

화려한 검술의 묘리 같은 것은 없다. 상대는 이지를 상실한 짐승이었고, 단지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김현성이 가장 이해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의 무위를 확인할 수 있는 소수의 전투병력들은 눈앞에 있는 죽은 자도 잊은 채 멍하니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저건 인간인가….”

‘같이 뻔한 소리도 한번 해주고요.’

“들었던 것보다 더 괴물이었구나… 김현성 백작….”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이기는 해. 천재기는 천재야.’

압도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전투 감각, 놈은 무언가를 썰어버리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간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정도 무위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고 느껴질 지경, 물론 강하다는 것 정도야 예상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치 회귀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검을 휘두르고, 이동하고, 검을 휘두르고, 이동하고, 단순해 보이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

죽은 자들은 김현성 백작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려 반응한다든가, 이미 지나간 곳을 향해 손톱과 이빨을 들이민다든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죽은 자들끼리 뒤엉켜 넘어지는 꼴을 보니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놈들에게는 재앙이지만 아군에게는 희망이다. 한 인간이 전술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녀석이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곳에 있는 이들이 김현성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눈치 빠른 페인트 영애가 눈을 빛내며 김현성이 움직이기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 같았지만 완벽하게 김현성을 살리는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김현성을 고립시키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녀석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말이다.

‘분노해서 그런 것 같자너.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일으킨 놈들한테 분노하고 있는 거자너.’

김현성의 눈에 살기가 감돌고 있다. 조금이지만 이성을 잃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죄 없는 이들을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질서 선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주 살짝 애매하기는 했지만 이 새끼는 기본적으로 선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도 있었을 테니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마음 같아서는 놈들을 잡아 족치고 싶은 심정일 터.

‘패기는 좋았는데….’

하지만 너무나 감정에 치우쳤던 탓이었을까. 녀석의 움직임이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덜 여물기는 했네….”

“네?”

“아니요.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연수 씨.”

‘벌써 지친 것 같자너.’

호흡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2현성은 시바 하루 종일 해도 안 지쳤었는데.’

얼마나 날뛰었다고 벌써 퍼지냐고.

산소가 부족한 것 같다. 아까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 분명, 본인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녀석은 이미 한계를 맞이했다.

패기도 좋고, 그만큼의 임팩트도 보여준 녀석이었지만 확실히 지속시간이 짧다. 짧아도 시바 너무 짧다.

날카로움은 무뎌지고 있었고, 빨랐던 발도 이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악인 것은 자기 자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신머리 없는 놈은 계속해서 방금과 같은 속도와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오버페이스였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할 수 있다고, 아직은 더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 하지만 본래 한계라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녀석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게 보인다. 김현성 자신도 모르는 몸이 보내오는 신호였다.

‘길어야 시바 3초 안에 끝나겠는데.’

떨리는 눈가,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 핏줄이 선 목과 팔, 충혈된 눈, 한 것 부풀어 오른 가슴,

“흐읍.”

“…….”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셔보지만.

“푸하아아아아.”

결국에는 거친 숨을 쏟아낸다.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쫙 빠져버린 녀석, 아마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육체는 숨을 토해내는 그 과정에 집중한다. 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휴식이라는 쾌감에 온 신경을 쏟고 있을 것이다.

긴장감, 흥분, 그 모든 것들이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녀석에게 죽은 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김현성 백작!”

이윽고 근위대들이 방패를 들고 김현성에게 향하기 시작, 지금 저기 있는 카드를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지 느끼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영애들이 마법으로 공간을 만드는 사이에 모험가들 몇이 방패의 벽을 뚫고 죽은 자들을 밀어내고 있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온 김현성에게 닿기에는 역부족이다.

당연히 몸을 옮길 수밖에 없다. 일단 김현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니 이쪽을 뒤따라오는 하연수와 선희영이 보인다.

하연수는 이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달리면 지도 달릴 수밖에 없다.

죽은 자고 언데드고 신경 쓰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도 알아서 픽픽 쓰러지고 있는 놈들, 한계를 맞이한 김현성에게 닿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현성 백작님… 김현성 백작님?”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후우… 하아….”

‘이 새끼 아직도 정신 없자너.’

“하아… 으…으윽… 하아….”

“일단 숨을 고르세요. 백작님.”

“페… 페넬로티 영애?”

‘시바 이제 내가 보여?’

“후우… 하아… 하아아… 후우… 후우… 죄송… 합니다.”

‘이 새끼 아직도 퍼져 있네. 시바 진짜 형편없기는 했어.’

어째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지도 분간이 안 되는 모양, 말 그대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억지로 녀석을 일으켜 세운 이후에는 곧바로 몸을 일으킨다. 그사이에 근위대가 방패를 들고 와 이쪽과 김현성을 둘러싸고 있는 중,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상황은 한층 더 긴박해진다.

“여기는 우리가 맡겠소!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오!”

“버텨라! 버텨!”

“방패 밀어!”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방패 밀어!”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키에에에에에엑!”

“주문 지원 부탁드립니다!”

머리 위로 붉은색 화살과 마법이 계속해서 지나간다.

쾅! 콰아아아앙!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상황, 이런 저런 소음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무조건 앞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벽이 닫힌 이후,

가장 먼저 시야에 비친 것은 울음을 참고 있는 파스텔 영애였다.

“…….”

“…….”

“페넬로티이!!!”

김현성을 손으로 밀어버린 이후에 이쪽에 꽉 안겨오는 모습.

“흐윽… 흐아아아아아앙! 페넬로티이!!!”

완전히 탈진 상태에 접어든 김현성이 곧바로 나가떨어진다.

‘누가 쟤 좀 붙잡아줘.’

이윽고 페인트 영애와, 브러쉬 영애, 팔레트 영애까지 전부 모여 다가오기 시작한다. 모두 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고, 흙먼지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모습이었지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내게 안겨오는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페넬로티 영애. 무사하셨군요.”

“미안해. 내가… 내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너 때문 아니에요.’

“도대체 왜 혼자 움직이신 건가요! 페넬로티 영애!”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모두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은 얼굴이다. 어째서 갑자기 사라진 것인지, 4층에는 어떻게 올라왔던 건지,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한 게 많을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동시에 이것저것 물어오는 터라 대답을 해주기에도 힘에 부치는 상황, 적당히 변명을 하려고 해도 이쪽이 말을 할 틈을 내주지 않는다.

“흐어어어엉…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흐윽… 다행이라고. 페넬로티 흐윽….”

‘얘 왜 이래… 왜 이렇게 안 떨어져.’

이제 슬슬 떨어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껌딱지처럼 붙어 있지 않은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호응해 주는 것도 처음이지 이제는 슬슬 감정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슬그머니 그녀를 밀어봤지만 여전히 내 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다른 영애들은 모두 진정한 것 같은데 얘 혼자만 이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쫌….’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근위대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다가온 것이 눈에 비쳐온다. 전투가 약간의 소강상태를 맞이한 상황이었으니 아마도 향후를 논의하기 위해 페인트 영애를 찾아온 것이 아 닐까 싶다.이곳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누가 보기에도 페인트 영애였으니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파스텔 영애도 살짝 몸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는지 눈물을 닦으며 한 발자국 뒤로 벗어나는 것이 보였다.

“…….”

“…….”

“처음 뵙겠습니다. 페인트 영애.”

“저도 처음 뵈어요. 근위대장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신경 써주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터라….”

“전시상황입니다. 당연히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이 왕성을 구해주신 영애들께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과찬이세요.”

“영애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

“…….”

“일단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볼까요?”

근위대장의 콧수염이 올라간다. 계속해서 그녀의 명령을 듣고 있었으니 확신이야 있었겠지만 당당한 페인트 영애의 태도를 보고서는 제대로 찾아왔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전에… 염치를 무릅쓰고 제가 먼저 질문드리겠습니다만… 혹시 현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갑작스러운 습격과 지금 이 언데드들은….”

김현성 역시 페인트 영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중, 조용히 체력을 회복하며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답이야 뻔하다.

구태여 숨길 필요도 없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제니스 후작.”

“네?”

“아니요. 제니스 후작이 아니죠. 그건 그의 가짜 신분이에요.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진청, 그게 바로 그의 진짜 신분이에요.”

“…….”

“…….”

이미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페인트 영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놈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일 것이다.

“그자가… 왕성을 습격하고….”

“…….”

“이곳에 죽은 자들을 일으킨 장본인이에요.”

“…….”

“…….”

“…….”

-진 군사님 혹시 팔자라는 거 믿어요?

-입 다물어라.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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