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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10화 (1,40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10화

아이나 페넬로티(1)

“페넬로티 영애. 어떻게 아셨던 겁니까?”

“네?”

“진청, 그자가 이곳에 죽은 자들을 불러오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

“…….”

“이런 짓을 벌일 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근위대장님께서 그가 명예를 중시하는 자라는 것을 들었을 때부터요. 그리고, 이번 일이 단순히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백작님의 말씀도 도움이 됐고요.”

“그 말씀은….”

“왕국연합과 제국의 동맹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이 벌인 일이라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진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그들이 원한 것은 동맹을 주도하는 요인들의 암살이지, 이곳에 혼돈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에요. 죽은 자들을 불러오는 것은 오히려 제국과 왕국연합의 동맹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귀결되는 행동이에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각 집단에 존재하고 있는 반동맹 세력 역시 두 집단의 동맹을 반대할 수 없게 되겠죠. 반동맹 세력에게 정보를 받고 있는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굳이 죽은 자들을 불러내면서까지 두 집단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이유가 없어요.”

“…….”

‘간단한 이야기자너. 왜 그렇게 이해들을 못 해.’

“공화국의 장기적인 플랜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추측할 수 없으나, 현시점에서 그들의 목표는 친동맹세력들을 암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들의 장기적인 플랜에 대륙전쟁까지 들어가 있다면 더욱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겠죠.”

“그건 어째서입니까? 지금 이 장소에서….”

“전쟁에서 명분은 병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구태여 악역 포지션을 자처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공화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명분과 실리와 법을 중요시해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에요. 대륙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 거예요.”

“과연…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말씀은….”

“대륙에 전쟁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3의 세력이 존재해요.”

“그건….”

“정확히 말하면 전쟁을 앞당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겠죠. 그들이 왕국연합과 제국에 존재하는 반동맹파인지, 아니면 공화국에 있는 급진파 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세력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이 대륙에 전쟁을 앞당기고 싶어 하는 것은 확실해요. 목적도 동기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놈들이 아직 왕성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김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알아들은 척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근위대장이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페넬로티 영애.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굳이 그들과 손을 잡을 이유가 있는 겁니까?”

“일시적인 동맹이에요.”

“네?”

“물론 무리한다면 아군 전력만으로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다수의 희생자가 생기겠지만….”

“…….”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공화국의 군사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분명 이곳에 탈출 루트를 만들어 놓았을 게 분명해요. 그자의 능력이라면 저 죽은 자들을 뚫고 빠져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하지만 이 일시적인 동맹의 목적은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죽은 자들을 불러온 흉수를 찾기 위함이에요.”

“…….”

“…….”

“그게 가능한 겁니까?”

“지금, 하고 있는 중이에요.”

공통의 적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 적의 정체도, 뭣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힘을 합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마 1군사 역시 이곳의 죽은 자를 불러온 녀석들의 얼굴을 보고 싶기야 할 것이다. 놈들이 한 짓은 명백히 선을 넘은 행위였으니 말이다.

이미 암살을 하기 위해 왕성에 진입한 것부터가 에바기는 했지만 그래도 죽은 자를 불러일으켰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겠지.

아마 본인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는 것도 꽤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가장 커다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대륙전쟁의 방아쇠조차 본인이 당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컨트롤프릭으로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만한 상황이었을 거라는 거다.

‘아니면 그냥 이 새끼는 이 게임이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고….’

슬쩍 망원경으로 돌려보자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진짜 행복해 보이자너.’

농담으로라도 상황이 좋다 말할 수 없는 시점, 지혜 누나와 이쪽과는 다르게 놈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반기는 경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진청이라는 인간은 벽이 있으면 그걸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이 게임 중독자는 지 목숨을 배팅할 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분명, 물론 거기에는 대전제가 존재한다.

소통하는 것이다.

적이 됐든, 아군이 됐든 간에 놈은 그럼으로써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연히 아이나 페넬로티라면 녀석의 대화상대로 충분하다 못 해 넘친다.

‘재미있지? 그렇지? 막 흥분되고 그러지?’

“키에에에에에엑!”

“뚫고 가겠습니다.”

“네.”

‘자극적이지? 이런 맛은 어디서도 못 느껴봤을 거야.’

우리 같이 듀오로 게임 하는 중이자너, 체스도 하면서, 전략 시뮬레이션도 하고, 막 막 액션 알피지도 섞여 있고, 거기에 추리도 해야 되자너. 보물찾기하고 있자너.

-움직이겠습니다.

-네. 군사님.

-벽은 그대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 포인트에서 병력을 분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슬슬 기물 숫자도 늘릴 때가 되기는 했어.’

조금 더 스릴 넘치게 게임 하고 싶다 이거자너.

죽음의 공포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발이 딱딱 맞추어지는 연계, 자신의 생각을 따라와 주고 이해하며, 발을 맞춰줄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는 고양감.

놈은 지 잘난 맛에 사는 나르시시스트였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통하는 동물이다. 지금까지 녀석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아군 병력이 움직이면, 녀석의 병력도 움직인다. 언데드들은 두 집단의 움직임에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기본적으로 오감에 의해 움직이는 놈들인지라, 여러 집단들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혼선을 줄 수 있다.

각 집단의 병력들은 어처구니없게 쓰러지는 언데드 놈들에게 의문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이를 악물고 막아내야 했던 놈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쉽게 쓰러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아군에게는 김현성이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분명 벽을 막아가며 아슬아슬하게 놈들을 막아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아무리 전투 인원이 충원되었다고 한들, 이런 변화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공화국의 병력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급진적인 변화에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 비밀은 아이나 페넬로티가 가지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

손가락을 위로 올리며 중지와 엄지로 손가락을 튕기자 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불빛이 반짝이고 다시 한번 손을 위로 올려 손가락을 펴자 이번에는 불빛이 짧은 시간 유지된다. 병력 전체가 이쪽의 손가락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는 셈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계산을 마치고,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으니 영애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놀라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 원래 천재기는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자너.’

페넬로티는 덜 다듬어진 느낌이었지.

이번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아이나 페넬로티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확실하게 이질적이다.

맵 전체를 외우고 활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 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사고능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위대의 몇몇은 마치 괴물을 바라보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중, 아마 1군사와 합작하지 않았더라면 더욱더 이쪽을 이상하게 보게 되지 않았을까.

저들의 눈에는 내가 진 군사를 보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거겠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장면이기는 마찬가지.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파스텔 영애밖에는 없다.

“대단해… 대단하다고! 페넬로티!”

브러쉬 영애도, 팔레트 영애도 모두 놀란 듯한 얼굴이다.

당연히 페넬로티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

‘나 지금 각성한 거야. 애들아.’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각성한 것인지, 갑자기 왜 각성한 것인지 이유를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냥 시바 각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에서 갑자기 저 각성했습니다. 라고 외치면 또라이 취급을 받겠지만 대륙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코피. 코피 흘려줘야지. 각성의 상징.’

평소보다 커다랗게 눈을 뜨는 연기도 해줘야 한다. 중요한 점은 절대로 눈을 깜빡여서는 안 된다는 점, 자신의 코에서 코피가 흐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나 페넬로티의 재능이 점점 꽃을 피워가고 있는 과정은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셔올 지경이다. 그 와중에 페인트 영애만이 허망하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페넬로티 영애….”

“…….”

‘얘는… 그래.’

질투하는구나. 너는.

‘아니야. 너도 제법이기는 했어.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았을 텐데. 이걸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야.’

그 얼굴은 마치 압도적인 재능의 벽에 가려진 범재처럼 보였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마저 비치기 시작한다.

그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영애들 중 그나마 이쪽과 포지션이 겹치는 사람이었으니까. 자기 자신도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 압도적인 격차에 친구가 꽃을 피우고 있는 장면을 마냥 축하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 김현성에 대한 호감이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

‘보고 배워야 돼. 너는. 너는 더 성장할 수 있다니까.’

병력을 사지로 밀어낼 수 있는 결단력, 앞장서서 싸울 수 있는 용기, 페인트 영애에게도 재능이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아마 그녀 역시 나쁘지 않을 수준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걸 잘 보고, 성장의 양분으로 삼아야 해. 이런 거 한 번 봤다고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 안 된다고. 페넬로티는 이게 100퍼센트도 아니라구.’

전술 김현성도 안 썼자너.

1현성이 아이나 페넬로티를 꼭 영입해야 할 인재라고 생각하면, 2회 차에 와서 이쪽을 영입하려 들 확률도 있을 테니 말이다. 적당히 녀석이 날뛰어 줄 환경을 마련하는 것으로 족하다.

병력들은 계속해서 적들과 계속해서 부딪치며 나아가고 있는 중, 조금 더 김현성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일이 쉽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슬슬….

‘외줄 타기 하는 것 같네.’

언데들이 밀려들면 밀려들수록, 아군이 움직일 수 있는 타일은 줄어든다.

한 번만 미끄러져도 곧바로 고립되어 버릴 것이다. 발을 멈추는 순간, 아니, 진 군사와 내가 생각을 멈추는 순간 발목이 잡힌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죽은 자들은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가 아니다. 실수하면 죽는 것은 녀석이나 이쪽 역시 마찬가지. 당연히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당연하지만 녀석 역시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보물찾기하자. 1군사야.’

죽은 자들이 일어난 것은 5층에서부터다,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루트를 계속해서 차단하며 살을 깎아 나간다.

층을 넘고, 5층으로 진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며 죽은 자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고립되어 있을 만한 공간을 수색해 나간다.

범위가 점점 좁혀지며 공화국 녀석들이 시야에 비쳐올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두 집단은 경계의 눈빛을 보낼 뿐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오랜 시간 이어진 전투에 그들을 믿을 수 있게 되거나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전장에 오래 붙어 있는 동안, 서로의 협력 없이는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 와중에 1군사와 눈이 마주쳤지만 이를 악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발걸음을 옮기고, 또 발걸음을 옮긴다. 죽은 자들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며 점점 더 범위를 좁혀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타일. 이 무대를 체스 보드로 치환한다면 A2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에 두 병력이 대치하게 된다.

“…….”

“…….”

“이곳이에요. 남은 곳은 이곳밖에 없어요.”

-지금… 지금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이기영.

“이곳에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운 흉수가 숨어 있을 거예요.”

“…….”

“…….”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2군사가, 아니,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운 언데드 소환 쓰레기가 대기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저… 저 미친놈이….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요.”

-제기랄! 이 미친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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