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11화
아이나 페넬로티(2)
-이 미친놈이 지금 도대체!
‘아니 시바 딱하면 딱 못 알아듣냐구.’
누가 봐도 불길하고 음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마치 이 장소만 시간만 멈춘 것 같은 느낌,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공화국의 병력들과 왕국연합의 병력들은 서로를 견제하거나 의식할 만도 하건만,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로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필멸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이 자리에 자리해 있다.
어둡고 축축하고, 기분 나쁜 장소, 몸을 일으킨 죽은 자들마저도 저 장소로 들어가는 걸 꺼림칙해 할 것이 분명하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해버렸을 정도였다.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였건만 저 기묘한 공간은 필멸자들을 홀리고 있었다.
저 어두운 심연 속에 있는 괴물이 이곳에 이끌려온 인간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그 어떤 던전이나 균열의 입구도 이것만큼 불길하게 느껴지지는 않으리라.
‘열어서는 안 돼.’
저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 책임감 따위의 감정은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것은 원인이 아니었던가.
용기를 낸 누군가가 딸칵 하고 문을 열자 시야에 비친 것은 평범한 집무실이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책장의 너머로 펼쳐져 있는 끝이 없는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는 것.
히든 피스, 이스터 에그, 뭐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다. 왕국연합의 인사들 또한, 왕국에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 같은 것일까요.”
누군가가 중얼거렸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역시 단지 희망 사항을 주절거려 봤을 뿐이다. 이 길의 끝에서 흘러나오는 악의와 적의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으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라고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기감이 둔한 자들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이 저릿저릿 거리는 중, 만약 혼자였다면 발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끊임없이 내려가 있는 통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꺼지고 있는 횃불이 원정대의 불안함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이대로 계속… 내려가도 되는 겁니까.”
“…….”
“단순한 흑마법사 같은 게 아닙니다. 이건… 뭔가 이상해요.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요. 이상하단 말입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이상한 것을 깨운 게 분명해요.”
‘이 새끼 진짜 누군지는 몰라도 전형적인 대사치는 전형적인 단역이네. 네가 제일 빨리 죽겠다. 야.’
“근위대장님!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이건… 위험합니다. 함정이라고요! 너희들이지? 너희들이 저걸 깨운 거야! 어?! 어?! 이 공화국 개새끼들아! 저놈들이 우리를 저곳으로 유인한 겁니다! 근위대장님! 네?!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도망쳐야… 도망쳐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한 짓이 아니야.”
“지랄하지 마!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이잖아!”
“저… 군사님 정말로… 내려가야 합니까? 어차피 저희는….”
‘지금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멍청한 짓이 어디 있겠어. 그나마 이곳까지 길을 뚫고 온 것도 우리 쪽이랑 협연해서 그렇게 된 건데. 게다가….’
1군사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즐기며 게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이 아래에 있는 자가 죽은 자들을 일으킨 것이 맞다면 이 왕성을 빠져나가려 발악하는 행동 자체가 무의미하다. 어차피 주변 지역 전체가 놈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가 어떻든 간에, 이곳에 흘러들어온 원흉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다.
1군사는 이런 것들을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는 중, 그나마 작금의 상황을 이해한 녀석이 공화국에 있었는지, 공포에 질린 녀석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갑작스레 녀석이 이쪽을 바라본 것은 바로 그때,
“페넬로티 영애.”
“…….”
“페넬로티 영애. 일부 병력과 함께 이곳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딜 은근슬쩍 말 붙이려고.’
“말 걸지 말아주세요. 공화국의 진청. 불필요한 대화는 나누고 싶지 않으니까요.”
“…….”
“…….”
“하지만 페넬로티 영애.”
“이 아래에 뭐가 있든 간에 이번 일이 끝나면 당신들은 우리들의 적이에요.”
“…….”
“일시적인 동맹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를….”
‘표정 안 좋아지자너.’
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한 거야. 페넬로티.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는 적이야. 페넬로티.
잠깐 동안 들어간 감정연기.
‘이 새끼 여기서 말 걸어올 줄은 진짜 몰랐자너.’
그만큼 녀석 역시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언제나 오만하고 의연했던 녀석 역시, 자꾸만 표정을 구기고 있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본래 직감이라는 녀석은 수준 높은 모험가들에게 친절한 터라 놈 역시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2회차, 벨리알을 눈앞에서 처음 목도했을 때에도 나름대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녀석이었건만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인지 초조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당연히,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그 불안감을 점점 증폭된다.
행군은 더욱더 느려지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걸음을 옮기기를 주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정대가 나아가는 이유는 아마 모두가 함께였기 때문이리라. 이런 곳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는,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원정대가 복도의 끝에 다 달았을 때, 시야에 비친 것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저게… 뭐야….”
“…….”
“저게… 뭡니까? 군사님… 도대체… 저게….”
“…….”
“저건 대체….”
온몸이 불길한 자색과 흑색으로 뒤덮여 있는 인형, 내 눈에 보기에는 유형화한 마력으로 자신을 감춘 것뿐이었지만,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믿고 있었다구 젠장! 제대로 준비해 주고 있었다구!’
마력을 저렇게 선명하게 유형화할 수 있다는 것도, 그것으로 온몸을 뒤덮을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 이곳의 수준으로는 저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다. 대륙에 떨어졌을 뿐인 필멸자의 시선으로는 저걸 미지의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마치 인간이 행성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기분이 이러할까. 분명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건만, 그리 커 보이지도 않았건만, 마치 거대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나라는 것은 겨우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아 버리게 된다. 녀석이 뿜어내고 있는, 측정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마력은 마력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분석한다거나 가늠질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압도되어 버리고 만다. 압도되어 가만히 시선을 빼앗기고야 만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부족하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존재가 자신들에게, 인간에게, 세상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악… 악마….”
그래. 악마라고,
말 그대로, 저건 악마가 현신한 모습이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리라.
‘방금 변신한 것 같자너.’
“악마…. 저건… 악마인가….”
“말도 안 돼….”
“도대체… 누구야…. 누가… 도대체 저런 걸 이곳에 가져다 놓은 거야.”
“군사님… 저건… 살아 있는 겁니까?”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게….”
대부분의 녀석들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황, 그건 1현성도, 1군사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조용히 서 있었다. 아까와 같은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내며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원정대원들을 바라보는 순간.
“도… 도망쳐!!! 도망쳐!!!”
“도망치라고! 젠장!!!”
“으아아아아아아아! 살려줘!”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비명이 쏟아져 내렸다.
‘시바 전부 다 상태이상 걸리겠네.’
영애들의 몸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은 마찬가지.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근위대나, 공화국의 병력들조차 패닉을 일으키는 상황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현성과 1청 역시 입술을 꽉 깨물고 공포에 저항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바 애들 몇몇은 정신병 남겠는데.’
“전투준비! 전투준비를!”
“전투준비하겠습니다!”
‘시바. 확실히 영웅은 다르긴 달라. 김현성은 진짜 김현성이기는 해.’
여기서 검을 들어 올리자너.
‘이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자너.’
얼핏 보면 둠군사로 보이는 녀석의 수준은 당연히 상상 이상이다. 게다가 대놓고 저렇게 적의와 살기를 내 뿜어대고 있으니 저런 대상에게 검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웅적인 행동이라 칭찬하는 것이 옳다.
2군사는 이미 필멸자를 벗어났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고, 개인 전투력으로 따지고 봐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김현성이나, 정하얀, 차희라 정도로 전투에 특화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짐작하고 있는 놈의 기본 전투력은 특정 상황에서는 반 수 아래, 평소에는 한 수 아래 정도다.
파워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2회 차에서도 괴물 중에 괴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제 포지션에 있는 선희영이 대놓고 적으로 등장해도 현시점의 시대상으로는 재앙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진청 정도의 인사가 그대로 소환된다면 자연재해 수준이다.
구태여 예를 들어본다면 1현성은 지금 폭발하는 화산이나, 밀려드는 해일 같은 것들을 앞에 두고 검을 뽑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정도는 돼야 영웅 하자너. 절대로 물러섬이 없자너.’
1군사 역시 곧바로 주문을 외우는 중,
“전투준비하겠습니다.”
녀석의 조용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몇몇 놈들이 1군사를 따르기 시작한다.
아이나 페넬로티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 마디를 더 보탤 수밖에 없다.
“모두 정신 차리세요! 아직 악마가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어요!”
현실적인 위안이었다.
“소환의식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거예요.”
“그걸 어떻게….”
“말,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하지만 느껴져요. 아니… 보여요. 저 악마의 발아래에 있는 소환진이 아직도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는 중이에요. 보이지… 보이지 않는 건가요?”
“제 눈에는 아무것도….”
“소환되는 걸 막아야 해요. 왕국연합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런 괴물이 뛰쳐나온다면, 대륙 자체가 멸망할 거예요. 죽은 자들은 그 시작에 불과할 거예요. 분명히… 시간이… 시간이 없어요!”
“어디입니까. 페넬로티 영애. 소환진이 시작되는 곳은.”
대충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인 것은 당연지사, 지체 없이 1군사가 몸을 날렸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고 거대한 검은색 불줄기가 쏟아진 것. 지직지직 하는 무언가가 점점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나조차도 이 새끼의 마법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지라,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게 된다.
이게 단순히 분위기를 잡기 위한 마법인지, 아니면 본인의 진짜 오리지널 스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가 어찌 됐건 간에 간지가 나기야 한다.
‘전격마법도 쏠 줄 알았냐구! 특기였냐구!’
녀석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전격은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며 폭풍을 일으키는 중, 심지어 놈이 꿈틀거리자 성의 일부가 휩쓸려 나간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가까이 있던 녀석들은 어떻게든 주변의 것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땅에 엎드릴 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여기저기에서 내리 떨어지고 있는 것은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흑뢰(黑雷)
감성적으로 멋있기야 했지만…
“…….”
“…….”
‘방금 시바 진짜 죽이려고 쏜 것 같은데.’
단언하건대 분명히 1군사를 죽일 기세였던 것 같았다.
-군사님?
파치지지직. 파지지지직.
-군사님?
파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