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12화
아이나 페넬로티(3)
-군사님?
말을 잃은 듯한 두 군사가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2군사도 2군사였지만 그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1군사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근데… 그럴 만하기는 해….’
저 악마가 미지의 괴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잠깐 동안 뇌가 멈추어버린 것이 아닐까.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1군사의 시선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자신의 바로 옆이었다. 딱 한 발자국 정도, 아니, 불과 몇 센티미터를 두고 검은색 번개가 내리 떨어진 흔적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딱히 뭘 설명하고 자시고도 없다. 검은색 번개에 맞은 장소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으니까.
분명히 두꺼운 벽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심지어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마력의 영향 때문에 바깥 풍경이라 할 수 있는 것도 마력의 회오리뿐이다.
아군 병력이 현재 태풍의 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부와도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흑뢰를 맞은 곳은 아직까지도 전격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계속해서 파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는 중, 녀석이 평정을 잃는 것도 결코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방금 죽을 뻔한 게 문제가 아니자너.’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다면 분명히 직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장담하건대 시체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녀석이 상태이상에 빠진 이유는 고작 죽을 뻔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저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힘껏 잘난 척, 위기를 즐기는 척, 세상을 즐기는 척하지만 결국에는 녀석도 인간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더욱더 여실히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틀림없이 천재였고, 타인들보다 훨씬 빠르게 이능에 대해 이해하고, 마법이라는 학문에 보다 본질적으로 다가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건 분석할 수 없는 무언가였을 테니 말이다.
‘한 5년 뒷면 몰라도… 지금은 뇌정지 와도 이해해. 게다가 저건 진짜로 죽이려고 쏜 거자너.’
어떻게 봐도 진짜로 죽이려고 한 거자너.
얘가 진짜 조금만 더 늦게 반응했으면 가루가 돼서 사라질 뻔했자너.
본인이 1회 차를 통째로 날려버릴 뻔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에 있는 2군사는 여전히 카리스마를 뽐내며 손을 뻗고 있는 중.
-군사님?
파치지지직. 파지지지직.
-군사님?
파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당연히 급하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군사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
-1군사 뒈지면 군사님이 얘 자리 메워야 하는 거 알고 있는 거죠?
-…….
-그거 알고 미국 보내려고 하고 있는 거죠?
-…….
-얘 대신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알고 있는 거 맞죠? 지금 이성 잃은 거 아니죠? 아무 생각 없이 막 화풀이하려고 하는 거 아니죠?
-…….
‘이 새끼 진짜로 잠깐 이성 잃었던 건가 봐.’
최근에 스트레스받는 일도 많았고… 솔직히 내가 봐도 1군사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 만하기는 했어.
‘기냥 얼굴 보자마자 바로 발작버튼 눌린 게 확실하자너.’
그만큼 심적으로 지쳐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곧바로 번개를 때려 박아 넣어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혹시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그런 것은 아닌 모양,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본인이 1군사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다.
슬그머니 기세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수순, 그간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도 들려온다.
-당연히… 알고 있다.
-왜 이렇게 답장이 늦어요? 아. 잠깐 동안 통신 장애가 있었나 보네. 그렇죠?
‘지금 놀리면 안 될 것 같자너.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줘야 될 것 같자너.’
-…….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강하게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얘네들 지금은 약해 빠져 가지고 군사님 같은 사람이 조금만 세게 후려쳐도 바로 죽는다고요. 진 군사님이 1군사를 과대평가하는 건 알겠는데. 쟤 아직 그 정도 아니에요. 김현성도 마찬가지고요. 그나마 영애들 쪽은 안 건드린 거 보니까 생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출력 조금만 내려줘요. 쟤들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
-그런데 군사님 진짜 척하면 척이네요. 어떻게 그렇게 곧바로 원하는 걸 딱딱 캐치해서 바로 준비를 해줄 수가 있어요?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는 했는데 너무 완벽해서 나도 깜짝 놀랐네.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마력으로 몸을 휘감은 건 알겠는데, 도대체 원리를 모르겠네. 흑색 전격 마법은 또 뭐고, 군사님 그런 것도 할 줄 알았어요?
-…….
-군사님이 마법에도 조예가 있었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준이 높네. 아니, 이럴 거면 그냥 마법사로 활동해도 됐겠어. 뭐더러 머리 아프게 집무실에 앉아 있었어요? 하얀이 제외하면 비빌 수 있을 만한 애들도 별로 없겠구만.
-기본 소양이다.
-군사님 같은 사람한테나 기본 소양이죠.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는 한 우물만 파도 제대로 된 성취를 못 얻는 게 현실인데, 군사님은 후방도 되지, 전방도 되지, 심지어 머리도 쓸 줄 알잖아요. 혹시 레인저나 암살자 같은 스킬도 쓸 줄 아는 거 아니에요?
-모른다.
-아….
-하지만 궁술 정도라면 기본 소양으로 익히고 있지.
-정말요? 뭐 또 말만 기본 소양이라고 하고서 위란보다 잘 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무기도 다를 줄 알아요?
-기본 소양으로 익히고 있는 정도. 검술이나, 창술, 뭐, 다른 무기들도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지. 결국에는 만류귀종이라는 거다.
-근데 군사님은 무투술을 주로 사용하잖아요.
-딱히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가장 편한 수단을 선택했을 뿐이지.
‘이 새끼 이제 좀 풀어진 것 같기는 하자너.’
-그, 그런데 무투술은 좀 그렇기는 한데.
-흥.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도록.
역시 척하면 척이다.
기껏 인외 같은 느낌을 팍팍 주는 보스로 캐릭터 설정을 마쳤는데 갑작스레 중국무술이 튀어나오는 것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없다.
물론 이미 상태이상에 걸린 아군 병력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디테일이 중요하다.
진 군사가 선택한 것은 활, 마침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나아.’
대뜸 사전준비도 없이 범위 마법으로 휘갈겨 버리면, 이 새끼들이 뭐 어떻게 피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로 쓸려나갈 테니까.
안 그래도 진 군사는 캐스팅이 빠른 편이었으니 차라리 저런 방식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
계속해서 녀석의 주변에서는 검은색 번개가 떨어지고 있는 중, 2군사가 손을 뻗자 검은색 번개가 녀석의 손에 빨려 들어간다.
그대로 화살이 되어버린 듯한 모습,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시위를 당기자 녀석의 몸을 휘감고 있는 마력이 활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궁술은 쥐뿔도 몰랐지만 자세가 꽤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놈의 말이 딱히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윽고, 녀석이 시위를 놓자.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번개가 쏘아져 나간다.
‘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요란한 방패를 들고 있던 근위대 녀석들이 한꺼번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놈이 다시 손을 뻗자. 기다란 번개가 다시 형태를 만들어내는 중, 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 사실 저걸 창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검은색 번개를 잡아 만든 것이었고 형태도 일정하지 않았으니까.
계속해서 파직 파지직 소리를 내며 베거나 찌르기 적합한 형태를 계속해서 바꾸어대고 있었으니 저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겉멋은 오지네. 진짜.’
-아니, 군사님 왜 그동안 이렇게 안 싸웠어요?
-흥. 전부 다 쓸데없는 짓이다. 마력 소모도 마력 소모거니와 시끄럽고 비효율적이지. 간단한 주문 한 번이면 전부 쓸려나갈 녀석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건 그렇기는 해.’
겉멋은 확실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비효율의 극치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당장 자신의 몸을 휘감는 마력을 직접적으로 때려 박아도 웬만한 놈들은 곧바로 전멸이다.
심지어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냥 근접전으로 끌어들여서 필요한 지점에만 마력을 방출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어째서 이 새끼가 검은 번개 같은 걸 소환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녀석의 전투 방식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력의 사용도, 몸도 효율적으로, 필요한 지점에서만 마력을 내보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효율이라는 것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으니 아마 그런 게 습관화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이토록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는 전투 방식은 확실히 진 군사의 전투 방식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원래 좀 이성적인 애들이 나사 하나 빠지면 저렇게 되자너.’
저 검은 번개가 괜히 튀어나온 건 아닌 것 같자너.
아무튼 간에 아군 병력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아예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거라 여겼던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겠지만 지금은 아주 약간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을 테니까.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에만 반응하는 졸렬한 1군사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가는 중, 2군사가 만들어낸 패턴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간단하자너.’
기본적으로는 활을 사용하고, 근접 무기로는 창을 사용한다. 그것도 아주 긴 창, 사실상 원거리 무기라고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기다란 창이다.
이후의 패턴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였지만, 확실한 것은 거리를 좁히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아직 소환 중인 개체자너. 2군사가 참 보스 디자인을 잘해놨어.’
간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쉽지 않다. 일단 저 화살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였고, 품으로 파고들었다고 하더라도 패시브마냥 계속해서 내리치고 있는 번개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과제였으니까.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녀석을 직접 쓰러뜨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아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소환진이 완성되는 것을 막는 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천히 그려지고 있는 소환진 말이다.
“페넬로티 영애. 소환진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페넬로티 영애.”
“8분 24초예요.”
“…….”
“정확하게 지금은 8분 22초가 남았네요.”
내가 보고 있는 상상 속의 마법진과 모래시계가 녀석의 머릿속에서도 그려지는 것은 순식간, 내 목소리를 들은 김현성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한테는 가장 빠른 말이 있자너.’
김현성.
진 군사 역시 녀석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 의견이 없을 것이다.
이를 악문 녀석이 김현성이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1군사 역시 마찬가지. 녀석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공화국의 병력들이 곧바로 움직일 채비를 마친다.
아까와 같은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모습, 놈들이 상태이상에 저항하거나 익숙해진 것이 아니다. 그저 2군사가 녀석들을 놓아준 것뿐이었지만 눈빛이 살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1군사 역시 발을 박차고, 김현성과 함께 2군사가 휘두르는 거대한 창을 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중간중간 공화국의 병력이 대신 방패가 되어주거나, 마법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물론 아예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놈들의 진격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여러 요소 중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아마.
‘이거자너.’
악마가 노리는 것이 녀석들이 아니었다는 것.
실질적으로 가장 위험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뻔했다. 당연히 소환진의 존재를 느끼고, 볼 수 있는….
‘아이나 페넬로티.’
자색의 괴물이 다시 한번 흑뢰를 주워 시위를 당긴다.
순식간에 쏘아진 화살은 방패를 들고 있는 근위대장의 몸을 꿰뚫고 이쪽으로 쇄도하는 중,
눈을 감았다 뜨니 시위를 떠난 흑뢰가 바로 눈앞에 있다.
‘아!’
그렇게 모든 게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파치지지지직!
“…….”
“…….”
“괜찮습니까? 페넬로티 영애?”
“…….”
내 앞을 가로막은 김 백작과 진 군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현성은 팔을 부들거리는 것을 보니 검으로 화살을 흘려낸 것처럼 보였고, 무슨 일인지 진 군사는 이쪽을 한 손으로 안은 채로 팔을 뻗고 있었다.
‘이 새끼… 시바 감히 어따 손을 대.’
아니,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왜 이렇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어?’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흉신악살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