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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13화 (1,41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13화

아이나 페넬로티(4)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흉신악살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새끼 화 많이 났네.’

물론 놈의 반응과 아이나 페넬로티의 반응은 별개다.

이쪽은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군사와 1현성에게 멋들어지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괜스레 얼굴을 붉힐 만한 상황이 그려졌기 때문도 아니다.

사실 진 군사와 김현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죽을 뻔했구나.’

분명히 아이나 페넬로티는 날아오는 화살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1군사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 화살이 심장에 박혀 쓰러지지 않았을까.

몸을 잡은 팔을 놓아달라고 말해야 되는 타이밍이었건만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 아이나 페넬로티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처음 마주하는 죽음의 공포에 질려 버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장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달라졌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아이나 페넬로티는 제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상황 파악을 마친 1군사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괜찮으십니까?”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연출, 새파랗게 질린 페넬로티의 얼굴, 대답할 정신도 없었을 때, 녀석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페넬로티 영애.”

표정 관리를 잘하는 건지, 방금과 같이 일그러진 모습 대신 자리한 것은 빙하도 녹여 버릴 것 같은 따뜻한 미소.

방금 전과 같이 인상을 쓰는 모습도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이런 미소를 짓는 것도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이 새끼가 이 정도로 따뜻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장면이었고 연출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이나 페넬로티는 무척 혼란스럽다.

‘어째서….’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줘야 되자너.

‘어째서….’

어째서 안심이 되는 걸까. 어째서 이토록 빠르게 몸이 진정되는 걸까. 분명히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었는데, 배신감과 허탈함밖에는 느낄 수 없었던 미소에 어떻게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걸까.

물론 감상에 빠질 시간 따위는 없다. 곧바로 다음 발이 쏘아져 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 뒤에 서십시오. 페넬로티 영애.”

“…….”

“김현성 백작. 부탁드리겠습니다.”

녀석이 김현성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아이나 페넬로티를 맡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리라.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김현성 역시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인지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이나 페넬로티가 표적이 되었다면, 오히려 놈의 품에 더 빠르게 파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현성이 검을 들고 발걸음을 옮긴 사이에 이를 악문 녀석이 팔에 마력을 한가득 실은 채로 흑뢰를 맞이한다.

콰아아아앙! 한 차례 요란한 소리가 난 이후에는 벽에 박힌 화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튕겨낸 것인지, 흘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계속해서 손을 휘젓고 주문을 외우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흑뢰를 받아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한 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두 발,

“후우….”

세 발, 네 발, 다섯 발, 여섯 발, 일곱 발, 당연히 쏟아지는 흑뢰는 더욱더 빨라지고, 강해지는 중.

2군사가 약이 바짝 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기관총마냥 쏟아지는 턱에 1군사 역시 모든 화살을 쳐내거나 흘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녀석의 몸에도 상처가 쌓이기 시작한다.

‘와 이 새끼 근성 보라구.’

“후우… 후우….”

당연히 얼굴에 깃은 오만함과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어깨와 다리, 손가락에는 여전히 화살이 박혀 있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격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 물론 가오가 몸을 지배한 녀석의 경우에는 아프다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지는 않겠지만, 몸을 웅크린다거나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거나 하는 액션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자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서 있다. 단 하나의 화살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녀석의 눈동자가 마치 불에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쿨 계열 캐릭터를 고수했던 녀석이 갑작스레 열혈물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 인지부조화가 올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마흔네 번째 화살, 마흔여섯 번째 화살, 쉰 번째 화살, 2군사는 어떻게든 저 새끼가 쓰러져 기절하는 것을 바라보고 싶은 것 같았지만 이 새끼는 당최 쓰러지지도 않는다.

이미 다리에도 몇 개의 화살이 꽂혀 있는지 셀 수도 없다.

“후욱… 후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백.

“으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진 군사답지 않은 기합 소리 내뱉기. 시발 팔다리가 없어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그라들었지만 이 새끼는 진심이다.

당연히 여기서는 한마디 정도를 더 내뱉어 줄 수밖에 없다.

“그만… 그만해요. 이제….”

“으…으아아아아아아아!”

“그만하라고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너무나도 형편없는 모습,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녀석의 몸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손이 들리지도 않을 텐데, 녀석은 느릿느릿 손을 들어 올리며 웃기지도 않은 중국 무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중,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는 게 한계가 아닐까. 아니면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해요. 제니스 후작님.”

“…….”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잖아요. 저는….”

“…….”

“이제… 그만하라고요.”

아마 녀석 역시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아이나 페넬로티는 중요한 패다. 하지만 정말로 남겨야 할 패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소환진을 볼 수 있다는 건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 소환진은 이미 녀석의 머릿속에서도 그려지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녀석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했고, 남은 시간 역시 전달했다. 이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여전히 그녀를 남기는 것이 합리적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전력 중 하나를 내던지면서까지 지켜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나 이성적인 녀석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아이나 페넬로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체스를 할 때도, 그 거지 같은 게임을 할 때도, 녀석은 항상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1군사 역시 자신이 쓸데없는 정을 위해서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입가에 어처구니없다는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보인다. 놈은 자신에게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그 쪽팔렸던 기합 소리조차 내뱉지 못하고 있다. 끄윽… 커헉… 하는 꼴사나운 소리만 들려온다. 결국에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아이나 페넬로티의 앞에 굳건히 서 있다.

“별것… 아니군… 후우….”

‘아니, 시바 대사 실화냐고!’

당연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 타이밍, 손발이 덜덜 떨려온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따위는 없다. 그 대신 머릿속에 든 생각은 녀석과 같은 의문이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어째서 이 남자는 자신을 이토록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지만 본래 주인공들은 눈치가 없는 것이 국룰 중의 국룰,

‘어째서 이자는 자신을 이리 상처 입혔으면서도, 저 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는 것일까.’

예전 감성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고백을 받거나 기습 키스를 받지 않는 이상 놈의 마음을 깨달을 확률은 없다. 하지만 페넬로티는 몸을 일으킨다.

그가 자신을 지켜준 것처럼, 자신 역시 그를 지켜주고 싶다. 죽음의 공포 따위는 없다.

아니, 이겨냈다. 그야 저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계속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페넬로티는 덜덜 떨리는 손과 발을 부여잡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진청의 앞에 선다. 팔을 활짝 벌리며, 더 이상 이 사람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표현한다.

물론 무의미한 저항이다. 저 화살 한 발에 페넬로티는 곧바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직후 1군사의 머리에도 화살이 꽂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진청이라는 인간은, 100번을 넘게 그 무의미한 짓거리를 계속해왔다.

화살을 쳐내고, 흘리고, 몸으로 받아내며, 상처투성이가 된 몸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계속해왔다.

“페넬로티… 영…애… 도…망….”

“싫어요. 흐윽… 싫어.”

“멍…청… 짓… 거… 도망….”

“싫어!”

‘시바 눈물 나오자너. 왈칵왈칵 쏟아지자너.’

다시 한번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지만 1군사의 다리가 움직일 리가 없다. 애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뿐이었으니까.

“이제는… 제 차례예요.”

“…….”

“알고 계시잖아요. 저. 지는 거 싫어한다는 거.”

그렇게 녀석이 다시금 활시위를 당겼을 때, 별안간 튀어나온 연기가 놈의 화살을 붙잡았다.

“팔레트… 영애?”

물론 화살은 연기를 뚫고 들어온다. 하지만 보호막이 눈앞에 생겨난다.

“페인트 영애? 브러쉬 영애?”

마지막으로 화살을 두 손으로 잡고 있는 작은 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파스텔 영애….”

“이이익…으이으이이이익!”

파치지지직! 파지지지지직! 거리는 전격을 두 손으로 잡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장관, 솔직하게 널브러져 있는 1군사보다 멋있어 보인다.

마력의 영향 때문인지, 코와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텔 영애는 잡은 화살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보호막들이 생겨나기 시작, 1군사가 일으켜 세운 것은 아이나 페넬로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겁을 먹고 지켜보고 있었던 영애들도, 상태 이상에 빠져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던 근위대와 영식들도, 몇몇 귀족들 역시 싸울 준비를 마치고 있다.

앞서 싸우고 있었던 공화국의 병력들 역시 마찬가지,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이다. 어디선가 항상 맛보던 그 맛이었지만 질리지 않는 맛,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빌런을 몰아내는 클리셰 그대로,

“미안해… 페넬로티.”

“괜찮으십니까?”

“시간은 얼마나 남았죠? 페넬로티 영애?”

“5분이에요.”

“닿을 수 있을까요.”

“…….”

“…….”

“닿아야 해요.”

아직 김현성도 저기서 죽 쑤고 있지만… 무조건 닿아야지.

‘어차피 길은 열리게 되어 있자너.’

“소환진의 위치는 어때? 페넬로티?”

“변화하고 있어요.”

“뭐… 뭐?”

“복합적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어요.”

말인즉슨, 페넬로티가 직접 녀석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파스텔 영애가 멈칫하는 사이에 재빠르게 입을 열어온 것은 페인트 영애,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본 그녀는 내게 결단을 촉구하는 듯했다.

저기까지 직접 닿을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리라.

“하실 수 있겠어요?”

“할 수밖에 없어요.”

“뭐…? 아니야! 페넬로티! 차라리 내가!”

“제가… 제가 가야 해요. 소환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어요. 파스텔 영애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이건…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길을… 길을 열어드리도록 할게요. 페넬로티 영애.”

“고마워요. 페인트 영애.”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 그녀는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이나 페넬로티가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이다.

“고마워요.”

“어?”

“고마워요. 모두들.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감사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페넬로티.”

“고마워요. 파스텔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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