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16화
아이나 페넬로티(7)
물론, 똥폼을 잡고 있는 1군사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온 흑장미 살롱의 영애들이 더 신경 쓰이기야 한다.
녀석은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지만, 파스텔의 경우에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페인트 영애에게 소리를 치는 파스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죽어버려!!!
-…….
-전부 다 너 때문이라고… 살려내. 페넬로티 살려내란 말이야! 흐윽… 흐으으윽… 네가 죽였어! 너 때문이야!
‘적당히 해야 되자너. 쟤도 심란할 것 같자너.’
-흐윽… 흐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넌 눈물 흘릴 자격도 없어!! 이 악마 같은 년!! 죽어! 그렇게 슬프면 지금 당장 네가 가서 죽어버려! 페넬로티를 데려와!
-그만하세요! 파스텔 영애. 이제 제발 그만… 페인트 영애도 슬플 거예요. 제발 그만해요.
-입 닥쳐! 브러쉬! 너희들 모두 잠자코 있을 거야?! 페인트가 죽인 거야! 페인트가 페넬로티를 죽인 거라고!
-죄송해요. 죄송해요. 파스텔 영애. 페넬로티 영애. 죄송해요… 흐윽….
-연기는 집어치워! 나… 나 다 알고 있어! 다 알고 있었다고! 너… 너… 페넬로티를 질투했었지. 질투했었잖아!!!!!!
‘질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것 때문에 페넬로티를 사지로 내몰았다는 건 억측이자너.’
페인트 역시 딱히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처음 길을 열어준다고 한 건 그녀가 맞기는 했지만 당연히 질투 때문에 페넬로티를 미국 보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살아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다른 무엇보다 그 상황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우리 같은 인간들이 언제나 그렇듯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모두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쪽으로 주사위를 던졌을 뿐이다.
하지만 막상 결과가 이렇게 되고 나니 완전히 멘탈이 붕괴된 것처럼 보인다.
마치 미치기 일보 직전처럼 보이는 모습, 머리를 부여잡고 계속해서 죄송해요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여나 자신이 정말로 질투심 때문에 페넬로티를 사지로 내몰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페넬로티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었고, 심지어 연심을 품어가던 남자 역시 그녀와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얘 진짜 미쳐 버리겠자너.’
-으… 아…으…흐… 죄…송….
-그렇게 죄송하면 지금 당장 죽어!!!! 죽으라고!!!! 이제 속이 시원해?! 어?! 너… 김현성 백작한테도 관심 있었지! 그렇지! 그래서 죽인 거잖아! 페넬로티가 가지고 있는 게 부러워서 그런 거잖아!!!! 페넬로티가 너보다 더 똑똑하니까!! 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페넬로티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페넬로티를 죽인 거잖아!!! 이제 좋겠네!! 전부 다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잖아!!
-죄송…해…요… 제가… 아… 저는… 그러니까….
물론 그녀의 폭언을 다른 영애들이 계속해서 두고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짜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당연지사.
얼굴이 돌아가 있는 파스텔.
그런 그녀의 뺨을 때린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팔레트 영애였다.
-적당히 하십시오. 파스텔 영애.
-…….
-혼자만 슬플 거라고 착각하지 말란 말입니다.
-…….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원망할 대상을 만들어내지 마십시오.
확실한 결단이었다. 그녀 역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페인트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겠지.
결국에 제자리에서 풀썩 쓰러진 파스텔은 땅을 내려치며 눈물을 훔치는 중,
-흐윽… 흐어어어어어어어어엉… 흐어어어어어아아어어어어엉….
-…….
-흐어어어어어아아아아앙. 페넬로티이… 페넬로티이이… 우욱… 으… 페넬로티이… 흐어어어엉… 흐으윽….
-…….
-페넬로티이… 흐어어어엉… 페넬로티… 제발… 돌아와 줘. 제발… 흐으으윽… 제발 돌아와 줘어… 제발… 제바알….
-…….
-제발… 제발 돌아와줘… 흐으윽… 페넬로티이….
브러쉬 영애는 그런 파스텔 영애를 위로하고 있었고, 팔레트 영애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페인트 영애를 꽉 안아주고 있었다.
그제야 조금 진정한 것처럼 보이는 페인트 영애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온다. 옳은 방법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대충은 정리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진 군사 이 새끼는 이 모든 소란이 들려오지도 않는 모양, 꽤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다.
시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이 신기해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게 될 정도였다.
단언하건대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말보다 녀석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할 말은 없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녀석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듯했다.
예전, 둠기영 소환 사태 당시에 김현성이 떠오르는 듯한 표정, 물론 당시에 김현성은 모든 것을 놔버리고 포기한 상태로 진입한 상태였기에 비교하기가 힘들기는 했지만, 얼굴만 본다면 그리 큰 차이점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차이점은 김현성은 멈춰 있기를 희망했다는 것이고, 녀석은 나아가기를 선택했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저걸 앞으로 모든 걸 극복하고 나아가기를 결심했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영애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기에는 녀석은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겨우 그 것 때문에 현재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진 군사에게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다.
녀석은 여전히 공화국의 군사였고, 자신을 믿어주는 수많은 이들을 등에 지고 있으며, 어떤 것이 멍청한 행동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인지 구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멈춰 있는 것보다 더욱더 바보 같고 꼴사나운 행동이 없을 거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치 빛을 잃어버린 것 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나 페넬로티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에, 어떠한 목적성을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든다.
자신을 책망하지도, 울부짖지도 않는다. 감정을 꾹 눌러 담는다는 표현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나가 사라진 순간, 녀석은 완전히 감정을 거세하는 것을 선택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고,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 분명하리라.
녀석은 기계가 되어버렸다.
‘아니 시바. 저렇게까지 될 일이냐고.’
물론 녀석에게는 아이나 페넬로티라는 인물이 무척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이나 페넬로티는 녀석과 동등하게 서 있을 수 있는 파트너였고, 녀석의 지루한 삶에 나타난 빛이었을 테니 말이다.
단순히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로 그녀를 정의할 수 없음이 분명, 그녀는 녀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혼의 이해자였다.
아이나 페넬로티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 저 염병을 떠는 것을 보니 녀석은 그리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시바… 이 새끼는 왠지 복수도 안 할 것 같자너.’
이미 무의미한 행동이라 여기고 있지 않을까.
당연히 근처 공화국 놈들 역시 녀석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 그 누구도 진청에게 말을 건네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가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참기 힘들었는지 누군가 말을 건넸지만, 녀석은 빛을 잃은 눈으로 아이나가 사라진 곳을 잠시 응시할 뿐, 고개를 돌려 터벅터벅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군사님….
-…….
-군사님. 페넬로티 영애께서는….
-…….
황당했지만 제국과 왕국연합의 인사들은 녀석을 붙잡지도 않는다. 잠깐 동안 함께 싸워 위험을 이겨냈다는 동료애가 싹튼 것이 아니다.
그저 그럴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자리한 모두가 부상을 입고 있었고, 애초 제대로 서 있는 이들을 찾아보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나마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페넬로티의 죽음 앞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일 테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 와중에도 가오는 오지게 잡네. 이 새끼.’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도 그렇고, 떨어진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시선도 두지 않는 것도 그렇다.
분명히 시선이 닿았던 것 같은데 녀석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녀석을 불러 세운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1현성이 바로 그 주인공. 왼쪽 어깨와 복부에 난 상처를 부여잡으며 1군사에게 입을 열고 있었다.
-분하지도 않은 겁니까?
김현성의 얼굴에는 지독한 패배감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녀석 역시 아이나 페넬로티의 희생을,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물론 1군사만큼은 아니다. 아무래도 김현성과는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었으니 말이다.
쌓인 서사도 별로 없었고,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로 막을 내린 것 같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영웅적 행보를 보이고 떠난 그녀에 대한 연민과도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경험도 없는 영애가 말입니다. 기적이라고 칭해도 모자랄 정도의 일을 해낸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 새끼 걍 김현성 싫어하나 봐. 대뜸 반말 박자너.’
-이대로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이 대륙에 혼란을 가져오려고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필시 그들이 저 존재를 깨우고 이곳에 불러왔을 겁니다. 그들이 그 누구보다도 제국과 공화국의 전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떠안은 채로 전쟁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라면….
-…….
-당신이라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저 역시 힘을 보탠다면, 오랜 시간 동안 제국과 공화국이 가져온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겁니다. 대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두 집단이 힘을 합친다면 필히 이번 사태를 일으킨 이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
-당신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싶은 거라면… 이만 가도록 하지.
-…….
-…….
-대륙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김현성 백작.
-…….
-넌 생각보다 더 멍청한 인간이었구나. 언젠가 들어왔던 것보다 더욱더 멍청해. 내가 너였다면 이 자리에서 곧바로 날 죽이는 걸 선택했을 거다. 함께 힘을 합치자는 개소리를 내뱉는 대신,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는 곳에 말을 던졌을 거야.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거다. 네놈을 병신이라고 비웃었겠지.
‘그건 맞자너. 진짜 쟤는 꿈 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앉아 있자너. 현실을 모르고 있기는 하자너.’
-대화라는 건 말이 통하는 인간끼리나 할 수 있는 법이다. 네놈과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 머저리 같은 자식.
-그래서 이대로… 이대로 그냥 가신다는 겁니까? 기어코 이 대륙에 전쟁을 불러와야 직성이 풀리신다는 겁니까?
-전쟁은 너나 내가 불러오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네가 정말로 전쟁을 막고 싶었던 것이었다면 이 멍청한 연합동맹과 혼인동맹을 위해 이곳에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게 공화국에게 얼마나 위협이 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닐 터, 게다가.
-…….
-현 대륙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전쟁이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당신!
김현성이 소리를 지르며 검을 빼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곧바로 공화국의 병력들이 전투할 준비를 마친다.
그들의 목표는 김현성이 아니라 이미 쓰러져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들, 진 군사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정말로 싸워보겠냐는 경고, 저들을 전부 죽게 내버려 둘 것이냐 묻는 협박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실제로 전투가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 양쪽 모두 궤멸할 수도 있는 상태였고, 김현성 자신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검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컨디션도 아니다. 저 인질 아닌 인질들을 모두 구하며 전투를 이어나간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결국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김현성은 검을 내리며 전투할 의사가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 네가 위선자라는 소리를 듣는 거다. 김현성 백작.
-…….
-…….
-페넬로티 영애께서는….
-…….
-…….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인간이다.
‘이 새끼 냉혈한이자너.’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리는 녀석, 끝까지 가오를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인지, 멋들어진 포즈가 눈에 들어왔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다.
당연히 이곳에서 죽은 것은 아이나 페넬로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계획에는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없을 것이다. 이 새끼가 뒈졌을 뿐이지.
진청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는 녀석은 계속 움직일 테니 말이다. 전쟁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고, 녀석은 충실히 타임라인을 따라가 줄 것이다.
여단에 대한 복수를 포기한 것인지, 정말로 그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실제로 다시 한번 여단을 마주했을 때,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지금으로서는 돌발행동을 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진청이라는 인간은 이 자리에서 죽었으니까.
“기분 좋게 매콤하네. 군사님… 근데… 괜찮겠죠? 1군사가 지금의 아픔과 슬픔… 극복해 내실 수 있는 거겠죠?”
“…….”
“아니, 뭐예요. 잘 먹고 있는 건 왜 가져가요?”
“…….”
“아! 내놔!”
“…….”
“다시 가져다 놔요! 버리지 마!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