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20화
아이나 페넬로티(11)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보니 얘가 확실하게 맛이 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
얼핏 보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속은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있지 않을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눈동자 속에 비치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송수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녀석이야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니 별 위화감이 없었지만 그 순수했던 파스텔의 모습에서 송수경이 떠오르자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 페넬로티 페넬로티를 불러대며 강아지마냥 뒤를 따라왔던 그녀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얘 이거….’
모르긴 몰라도 아이나 페넬로티가 사라진 이후로 완전히 미쳐 버린 것이리라.
아마 그녀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올바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달라진 것은 다른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바로 그녀였다.
애초에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제정신 아니자너.’
심지어 하루 이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전쟁 초기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동료들을 만났었겠지만, 공화국이 이곳에 발을 디딘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모양.
이 왕성에서 숙식을 전부 이 장소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화국의 병력들이 곧 당도할 상황에서도 이 자리를 지키는 것만 봐도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어쩌면 페인트를 증오하는 것 역시, 그녀의 피해망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페넬로티….”
작은 비석을 꼭 껴안는 꼴은 가관,
“페넬로티… 흐윽… 흐으으윽… 흐윽….”
심지어 울다 지쳐 잠이 들어버린다.
‘시바 쟤를 어떻게 하냐.’
외신전에 큰 힘을 실어줄 용병으로 성장시키고 싶었던 건데 이대로라면 여단이 새로운 멤버를 받게 생겼다. 아니, 분명 그전에 뒈져 버릴 것이다.
그 와중에 파스텔이 잠든 것을 확인한 진 군사는 발걸음을 옮기는 중. 이쪽의 몸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탓에 어디로 향하는지 위치를 특정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왕성은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왕성이 꽤 관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뭐 거창하게 관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이쪽과 진 군사가 죽었던 방을 빠져나가자마자 형형색색한 꽃들이 이쪽을 반긴다.
‘이걸 시바 언제 심었어.’
종류도 무척이나 많다. 방금 전에 파스텔이 꺼낸 꽃은 이 정원에서 꺾어온 모양, 그렇지 않아도 크기가 꽤 큰 공간이었는데, 잘 꾸며진 정원마냥 사방팔방이 꽃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폐허가 된 성을 채운 꽃밭의 모습이 장관인지라 순간적으로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정도, 심지어 진 군사도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어처구니가 없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여기 관리하려고 얼마나 노력한 것 같은데.”
“내 눈에는 쓸데없는 짓에 매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야.”
‘할 말 없자너.’
“…….”
“…….”
“뭐가 어떻게 됐든 간에 이거 망한 것 같은데요?”
“…….”
“…….”
그 누구보다도 엿 됐다는 것을 실감한 진 군사가 내 목소리에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엄청 흥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꽤 의연한 모습, 물론 속으로는 이런저런 욕들을 갈기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거 혹시 진 군사님 작품 아니에요? 아공간에 오류가 생겨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부작용을 살펴보기는 했지만 그런 오류가 확인된 적이 없어.”
“혹시 군사님께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혹시 내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싶은 거라면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군. 이건 내 작품이 아니야.”
“아니, 뭔 이 상황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혹시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는 거지.”
“그건 네놈의 지식 수준이 미천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추론이다. 이기영. 흐르는 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영역이 아니야. 단순히 마력으로 이루어진 공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주문과 주문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부작용을 낳아 아공간에서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고? 소설을 읽어도 적당히 읽는 게 좋을 거다.”
‘이 새끼 왜 이렇게 까칠해?’
“그럼 군사님은 뭐가 문제인 것 같은데요?”
“지금으로서는 함께 온 녀석들이 마법진을 건드렸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군.”
“아니, 걔네들이 마법진을 건드릴 이유가 뭐가 있다고요.”
“그건 지금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정말로 우리가 아공간에 있는 동안 시간이 흐른 것인지, 아니면 아공간 통째로 다른 시간대로 워프해 버린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겠지. 만약 전자라면….”
“나이를 먹었겠네요.”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당연히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통신 채널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곧바로 이곳저곳으로 연락을 남기는 중, 그 와중에 폐허가 된 도시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곳이라 그런지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클린 마법으로 한 번 때를 벗겨낸 이후에 의자에 앉아 똥폼을 잡고 있는 녀석,
“왜요? 연락 안 돼요?”
“아니, 지금 오고 있다고 하는군.”
‘다행히 우리만 떨어진 건 아니었자너.’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슬쩍 문을 여니 곧바로 이쪽을 꽉 안아버리는 인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희영이자너.’
이전의 남성 폼 대신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평소대로의 선희영이다.
“부길드마스터!”
“고생하셨어요. 희영 씨.”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어디 불편하신 곳은….”
“아니요. 딱히요. 진 군사님께서 잘 배려해 줘서 푹 쉬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희영 씨야말로….”
“저 역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부길드마스터를 뵙습니다.”
김창렬.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하연수,
“좋아 보이시네요.”
옆에서 쭈삣쭈삣 인사를 건네고 있는 알프스, 벨리에 병아리들, 처음 선희영을 보고서는 혹시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들 역시 이곳으로 함께 워프해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게이트 건드린 적 있어요?”
선희영이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그럼, 이곳에서 체류한 지는 얼마나 되신 건가요?”
“부길드마스터와 진 군사…님께서 사라지시고 난 이후 그곳에서 5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지는 약 3일 정도가 지난 것 같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당연히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쪽이 사라진 이후에는 곧바로 진 군사가 내린 지시를 따랐다는 것, 왕국연합과 제국이 뒷정리로 시끄러운 와중에 하연수와 병아리들은 페넬로티 가문을 정리하고 복귀했고, 김창렬은 계속해서 여단을 쫓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딱히 특이사항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페넬로티 가문은 적당한 금화를 쥐여주고 안전한 지역에 떠나보낼 수 있었고, 선희영이야 계속해서 도시에서 체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김창렬을 제외한 모두가 이 도시에서 정보를 모으며 대기하고 있었을 때 갑작스레 몸이 이동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어? 그럼 창렬 씨는….”
“저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육망성 게이트의 범위에서 벗어난 듯하여.”
“그럼… 계속 혼자 있었어요?”
“네.”
“몇 년 동안….”
“4년이었습니다.”
‘시바… 마력이 낭낭해서 다행이자너. 그렇게 많이 늙지는 않았자너.’
“괜찮으셨어요?”
“네.”
‘창렬아… 시바….’
너는 대체….
‘잘해줘야겠자너.’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안 쓰겠어요? 여기에 혼자 4년 동안 있으신 건데… 그럼 그동안은….”
“말씀하신 것처럼 여단을 추적하고, 그들의 동향을 감시했습니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대륙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더 이상 그들을 감시할 이유가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전쟁의 배경과 진행을 조사했습니다.”
“그럼 창렬 씨는 전부 다 아시겠네요.”
“네. 정확히 모든 걸 알고 있다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특이사항이 어떤 것인지는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당연히 도움이 되죠. 우리가 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이리 와서 앉아요. 창렬 씨.”
“괜찮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아. 진 군사님 좀 앉아봐요. 창렬 씨 좀 앉게.”
‘고생 너무 많이 했자너. 얘가 얼굴이 반쪽이 됐자너.’
“…….”
“…….”
“여러 가지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전쟁 이야기는 나중에 듣는 게 좋겠네요. 지금은 우리가 어째서 이동되었는지 알아보는 게 먼저니까요. 일단 다시 한번 재확인하자면 알프스 씨나 벨리에 씨나, 희영 씨나 연수 씨나 게이트 근처로 간 적이 없다는 거죠?”
“네.”
‘알프스, 벨리에, 너희도 확실해? 괜히 실수하고 밝히는 게 무서워서 입 다물고 있는 거 아니야?’
“근… 근처도 간 적 없어요.”
“창렬 씨는 어땠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여단원들 중에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이들을 확인한 적 있었나요? 게이트 근처로 이동한다든가….”
확률은 낮지만 1기영이 게이트를 열었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알기로, 따로 활동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왕국연합으로 다시 되돌아간 인원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알프스가 급하게 말을 이어온다.
“제멋대로 게이트가 발동되었을 확률은 없는 걸까요?”
‘물론 가능하지.’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지만 이 게이트가 그간 지 맘대로 염병을 떨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결코 확률이 낮지는 않았다.
게이트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인간이 아공간에 갇혀 있었으니 놈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수도 있고, 이번 게이트가 마무리되었으니 빠르게 다음 게이트로 넘어가라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지.
간혹 육망성 게이트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다. 놈은 언제나 원하는 게 있었고, 마치 자연현상이나 대륙의 법칙마냥 1회 차와 2회 차를 조립하려고 했었으니까.
물론 사고는 하지 않겠지만 놈은 시스템으로 인해 태어난 존재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변덕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한다.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여했던 인선 중 태반이 망가진 상황이라면 이걸 픽스하기 위해 나를 투입시켰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확률이 가장 높은 가설이었지만….
‘이것도 확신할 수는 없고.’
만약 이 가설도 들어맞지 않는다면 남은 답은 한 가지.
“김현성.”
녀석이 게이트를 발동시켰을 경우였다.
“…….”
“…….”
“부길드마스터. 눈이….”
한쪽 눈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
“…….”
당연히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애초 이 원정대가 꾸려진 이유였으니까.
“이 시간대 어딘가에 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