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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22화 (1,42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22화

대륙전쟁(2)

2군사가 인상을 찡그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며칠 전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그래. 시바 그럴 만하기는 했어.’

지도를 제대로 확인했었다면 1군사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 그럴 게 다분히 감정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언뜻 붉은색 물결에 의해 적들이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실제로도 공화국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맞았지만 공화국의 전선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눈에 띄었었다.

이런 종류의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전투에서 이긴 직후가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황을 조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템포를 올리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진 군사 이 새끼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놈의 결벽증은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지도,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곳곳에 보이는 틈새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보급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이거 전선 유지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인간은 기계가 아니자너.

정말로 병력들을 장기말 다루듯 다루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물론 우리 같은 인간들이야 그런 성향들이 조금씩 존재하고, 진 군사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놈은 적어도 고장 나기 직전의 기계에 기름칠을 해주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지금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다른 상황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롯이 효율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

4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라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진격 속도는 비상식적이다.

‘아마 병력들은 한계일 거자너.’

전선의 관리를 위해 필연적으로 착출해야 하는 병력들도 모조리 전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행군 이후에 전투, 행군 이후에 전투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당연히 의문이 남는다.

“이거 포로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 거죠?”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 말씀은….”

“전부 죽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

“…….”

‘1군사 이 새끼 미친 게 확실하자너.’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공화국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특히 레터 고원에서 1만의 포로들의 목을 자르고 매장시킨 사건은 공화국 상층부에서도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1만 포로를 죽여 버렸다고요?”

“네.”

“그냥 죽여 버렸다고요?”

‘제정신 아닌데? 이거?’

물론 포로 관리에 많은 인력과 물적 자원들이 들어가기야 한다.

전쟁놀이를 하는 지휘관들은 때때로 포로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고 싶기는 했지만 본래 세상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지 않은가.

이 대륙은 미개한 주제에 대륙 전쟁법이라는 것도 존재하고, 세상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시대상이다.

물론 1회차가 2회차에 비해 조금 더 야생의 시대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을 저지르려면 세간의 비난과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 어려운 걸 해냈자너.’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포로들이 따로 들고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죽여서 매장시켜 버렸다고요?”

“네.”

‘진짜 시바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명예도 모르는 새끼였자너.’

“공화국 애들은 그걸 또 가만히 따르고 있었고요?”

“공화국 내에서 위치가 굉장히 공고합니다. 물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고 있습니다만, 성과로 증명하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지는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연히 그와는 별개로… 병사들의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당연히 시바 지지율 내려갈 수밖에 없지. 전쟁에서 명분이 괜히 중요한 것도 아니고, 포로들 죽이고 매장해 버렸으면 시바 있던 명분도 사라지겠다. 행군 속도만 봐도 병력들 혹사시키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게 시바 정상이냐고.’

“참수사건도 참수사건 이지만, 마법과 물약으로 무리하게 병력을 운용시키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막장이네요. 행군 중에 사망하는 놈들도 나올 테고, 무슨 포션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작용이 없지는 않을 것 같고… 뭐 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아! 그래서 공화국으로 가자고 한 거군요.”

“네. 물론 여단이 제국과 왕국연합 쪽에 붙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공화국은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게 훨씬 더 빠를 겁니다. 많은 인원들이 현 지도부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부길드마스터께서 원하시는 방향이 무엇이든 간에 이곳에서 활동하시는 게 편하실 거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김창렬의 말에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김창렬, 나, 알프스로 구성된 3인이 공화국의 병영 안으로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제대로 된 신분으로 합류하기도 했고, 모두가 입고 있는 갑옷을 걸치고 있는 이유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얘들 눈이 죽어 있자너.’

심지어 이쪽은 아직도 키가 꽤 작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지금 보니….

‘소년병들도 진짜 많자너.’

이미 빅보이와 함께 1회 차를 돌아다녔을 때, 소년병들의 존재를 많이 봐오기는 했었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또 당황스럽다.

그래도 1군사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 심지어 노인들도 많아 보인다.

공통점은 모두들 하나같이 눈이 죽어있다거나 피곤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포션의 부작용인지, 계속해서 구토를 하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띈다.

아마 체력적으로 약한 이들일 테니 가장 먼저 한계를 맞은 것이리라.

어떻게 봐도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고는 이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병영은 정상적으로 관리되어 있다. 어찌 됐건 간에 병사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급, 무기 관리도 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강박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시바 크리피하자너. 뭔 병사들이 진짜 감정 없이 움직이는 기계 같자너. 이 새끼 이거 포션에 약 탄 거 확실하자너.’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정황상 이제 막 이 전장에 도착한 이들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소문이 사실이야?”

“군사님이 미쳤다는 거?”

“쉬잇.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역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자너.’

다른 곳에서도 간헐적으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그게 중요해? 어차피 우리 같은 놈들은 파리목숨인데.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인 거지. 어쨌거나 전쟁은 이기고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난 몰라 시발.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위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단다. 명분이고 나발이고 이제 그런 게 전부 의미가 없는 지경까지 와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주변을 좀 둘러봐라. 이게 우리 공화국이 맞는지. 소년병투성이에… 검을 들 수만 있으면 무작정 징병해가고, 본토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보급이 부족한 건지 무기가 부족한 건지, 농기구도 전부 쓸어모아서 녹여 버리고 있다는데… 이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이 말이야. 결국 뒈지는 건 우리 같은 놈들이고 새로운 세상 그런 건 개뿔도 없는데.”

“…….”

“윗놈들 생각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념 때문에 싸운다는 것도 딱히 와닿지도 않아. 제기랄.”

“그래도 군사님인데….”

“군사는 개뿔. 그 미친놈이 뭘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 새끼가 공화국민이고 나발이고 신경 쓸 것 같아? 어차피 우리는 쓰고 버릴 장기 말이야. 그 새끼가 만들어놓은 보드에 체스 말들이라고.”

‘지지율 떡락 중이자너.’

“제기랄… 악마 같은 새끼.”

‘이제는 악마 그 자체가 되어버렸자너.’

“야. 움직여.”

“어이 거기! 이리 따라와!”

그 와중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일련의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대충 봐도 직위가 높아 보이는 놈이 삿대질을 해가며 이쪽을 가리키는 터라 일단은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 수백 명의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는 장소는 병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터였다.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중, 알프스가 참지 못하고 코를 틀어막는다.

‘시바.’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구덩이.

“씨발… 씨발… 후우….”

“빨리빨리 옮겨!”

이윽고 그곳에 인형들을 집어 던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와. 시바 진짜였자너.’

당연히 표정들이 좋지 않다. 창렬이마냥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걸로도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이전에 있었던 전투의 사망자들인지, 아니면 방금 처리한 포로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일 가능성도 결코 높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미 이런 풍경에 무감각해졌는지 기계처럼 몸을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고, 눈물을 질질 짜면서 움직이는 놈들도 있었다.

한쪽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 녀석이 있노라면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는 녀석도 있다. 대륙에 있는 동안 별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기는 했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다.

물론 이것보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많이 봤다. 하지만 단순히 피와 혈흔으로 낭자가 되어 있는 곳과는 다르다.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장소에서 보이는 좌절감과 무기력함이 이곳을 더 꺼림칙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우웩 하며 속을 게워내는 알프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얘도 경험이 적은 얘는 아닌데 영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뭐해! 빨리빨리 안 움직여?!”

“네… 넷!”

“오늘 안에 마무리하라는 지시다. 쉴 틈 없이 움직여야 돼.”

‘시바 마법사 쓸 마력도 아깝다 이거자너. 그냥 시바 마법사가 덮으면 되는 걸 가지고.’

“너 이 새끼!”

‘아… 왜 그래 또.’

“그래! 너 이 새끼야! 빨리 빨리 움직이라고!”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이곳에 어린아이는 없다. 모두 공화국의 병사일 뿐이다. 빨리 이쪽으로 이동한다.”

알프스와 함께 낑낑대며 인형을 옮기는 중, 그 와중에 진 군사는 시바 보이지도 않는다.

같이 활동한다느니, 뭐 현장으로 가겠다느니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기는 했지만 모양 빠지는 쫄병 갑옷을 보자마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튀어버렸다.

암살자마냥 주변에서 배회하겠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이야기 했었지만 단순노동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 새끼는 혼자 분노를 삭이고 있을 수도 있다. 혹시 이 새끼가 참지 못하고 1군사를 때려죽이러 간 것은 아닐까.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자너.’

이렇게 꼴불견인 꼴을 보이느니 차라리 놈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 결심한 것일 수도 있다.

“창렬 씨. 진 군사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알아볼 것이 있다고 나중에 합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어마어마한 병력이 체류하고 있는 지역이라 실제로 1군사를 찾으려면 하루 죙일 걸리겠지만 이쪽에게는 만능 망원경이 있다.

다른 부대나 병영들도 이쪽과 그리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내 눈이 쫓고 있는 곳은 가장 크고 화려한 막사. 누가 보더라도 공화국의 상징들이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아 뭐야. 여기 1군사 막사 아닌가.’

허겁지겁 막사 안을 들여다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다. 물론 깔끔하다면 깔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1군사가 머무르는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자너. 이 새끼 막사 맞는 것 같자너.’

구석에 보이는 것은 이미 부서져 있는 체스판 외 잡동사니.

“…….”

“…….”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모형으로 제작된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재미없군.

-…….

-지루한… 전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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