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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23화 (1,42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23화

대륙전쟁(3)

꼴값이었다.

‘뭔 시바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 있자너.’

쿨병 걸린 찐따처럼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저 재수 없는 얼굴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은 분명 고독함과 외로움일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바이브, 지루하고 권태롭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듯한 얼굴,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듯했다.

대충 봐도 이 새끼 멘탈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난리가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거 상황 한번 심각하자너.’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미쳐 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을까.

말 그대로 지금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공화국 녀석들에게도, 제국과 왕국연합에게도 이 장소는 지옥 같은 장소처럼 보인다.

물론 참혹하지 않은 전쟁이라는 건 없지만 지금 녀석의 행보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에는 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화국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었던 놈의 평판이 하루가 다르게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사실 더 이상 이 새끼를 보고 있을 이유도 없다. 말 그대로 1군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쉬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는 건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방 정리나 조금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 한쪽 구석에 버려진 듯이 방치되어 있는 체스보드와 말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게임을 하지도 않은 모양, 저 게임 중독자가 게임을 그만둬 버렸단다.

“…….”

“…….”

‘왜 1기영, 1지혜가 제국이랑 왕국연합 쪽에 붙었는지 알겠자너.’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진 군사는 저들에게 너무나 위협적인 존재다. 컨트롤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 협상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게다가 지나치게 유능하기까지 하다.

내가 1기영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녀석이 몸소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니 더욱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공화국 병력의 진격은 말 그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성과에는 여러 가지 희생이 따라왔다. 진청 자신의 평판, 수많은 이들의 희생, 그리고 불완전해 보이는 전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과가 황당하게 보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기영과 1지혜에게 놈의 존재를 이레귤러 그 이상이었다.

언제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방관할 수가 없는 영역처럼 보였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제대로 활동하지 않고 있나 본데.’

아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 1군사가 지도 한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

-…….

우리 상처받은 1군사의 계획에 변수가 생긴 장소.

‘그래도 죽어도 재미있다는 소리는 안 하네.’

갑자기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는 얼굴, 물론 딱 그뿐이었다. 녀석의 기준에서 변수라고 하기에는, 아니 상처 입은 진 군사를 치료하기에는 그 변화가 너무 미약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모양, 녀석이 갑작스레 전황 판의 말들을 잡아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한 녀석은 왕성에 대기 중인 말들을, 1기영과 1지혜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파스텔과 잠들어 있는 페넬로티를 눈앞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병력을 돌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뭐야 이 새끼? 시바.’

구태여 이곳에 있는 병력들까지 옮길 이유가 있을까. 물론 1기영과 1지혜가 거슬렸다는 것은 나 역시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지만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

혹시 시바 아이나 페넬로티를 볼 면목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제국과 왕국연합, 페인트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새끼의 생각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기까지 온 병력들만 개고생을 한다는 것뿐이었다.

‘졸지에 행군하게 생겼네. 시바.’

“부길드마스터, 뭔가 보이는 게 있으십니까?”

“곧 다른 곳으로 옮기겠는데요?”

“왕성을 코앞에 두고 말입니까.”

“어차피 저 왕성에 전략적 가치는 없으니까요. 물론 전선 전체로 봤을 때는 아예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쟤 생각을 누가 알겠어요. 저러고 있다가 갑자기 하룻밤 자고 나면 왕성으로 진격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는 거고. 지금 완전히 게임하고 있는 것 같다니까요.”

“그럼 저희도 함께 따라가야 되는 건가요.”

“글쎄요.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물론 일부 병력을 전선에 남길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제국이랑 왕국연합의 병력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전선에 남아 있기는 조금 위험하죠.”

“아….”

“본래 이 정도 대규모 병력을 움직인다는 건, 꽤 많은 고민과 확인을 거쳐야 하는 일이니 일단은 이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 멀리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제기랄!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아니.’

“오늘 밤 안에 작업을 끝낸다! 빨리 움직여!”

‘시바 설마.’

“명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바로?’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는 벌써부터 간이 병영을 접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정말로 시바 내일 아침에 행군을 시작할 것만 같은 기세가 황당하게 느껴진다.

무슨 압박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관리자들은 인상을 구기며 작업을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중, 이걸 내일 아침까지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바 밤새우면 가능하겠죠.’

근데 그 상태로 행군이 가능할까는 또 다른 문제다.

‘이 악마 같은 새끼 시바 사람을 기계로 봐도 정도가 있지.’

“너 뭐 하고 있어! 이 새끼야! 내일 이동한다는 말 못 들었어?!”

낑낑거리며 슬그머니 아픈 척을 해봤지만, 이 양심 없는 새끼는 곧바로 이쪽으로 발을 뻗는다.

“이 거북이 같은 새끼!”

“아아아악!”

“내가! 빨리 작업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

발라당 넘어지면 멈출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감독관이 나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작정한 모양, 아예 대놓고 발로 이쪽을 밟고 있다.

뼈 아픈 충격이 기영이를 덮친 것도 잠시, 알프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 충신, 창렬이는 다르다.

곧바로 자신의 몸을 날려 내 몸을 덮어버린다. 자신이 대신 발길질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넌 뭐야! 이 개새끼! 야! 이 새끼 끌어내!”

“아직 아이입니다.”

“이 새끼가!”

당연히 어그로는 창렬이가 받아간다. 감독관 몇몇이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온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창렬이를 매타작하기 시작하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아니… 시바 창렬아….’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있는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싶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 몸을 웅크리며 녀석들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견뎌내고 있는 창렬이가 안쓰럽다 못해 가슴 아프다. 이 무자비한 폭도들은 이제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새끼 끌고 가! 퉤! 미친놈이!”

‘뭐 시바 노예도 아니고 시바 병사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물론 전시상황에 명령불복종은 사형이다. 감독관의 입장에서는 적당히 기영이를 혼내주고 작업 능률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었겠지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정의의 사도의 등장에 오히려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감독관들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일이 너무 커지기를 바라지 않고 있을 텐데 의도치 않게 일이 커져 버린 것이다.

보는 눈도 있으니 창렬이에게 체벌을 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잠깐 고민하던 녀석이 자존심을 위해 선택한 것은 결국 방해자를 응징하는 것이었다.

“이 새끼 묶어!”

다른 놈들도 하나둘 붙더니 창렬이의 웃통을 벗기기 시작, 그리고는 손을 웬 통나무 같은 곳에 묶어버린다. 그 이후 꺼내 든 것은 채찍. 모든 것이 속전속결이다.

황당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채찍이 창렬이의 등에 내다 꽂힌다. 달려가고 싶기는 했지만 창렬이의 눈빛이 신경 쓰지 말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창렬이의 등에 두 번째 채찍이 떨어졌을 때였다.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비친 것은 30대 중반처럼 보이는 여자다.

“이리로 와. 괜히 끼어들 생각하지 말고.”

“아….”

“아마 녀석들도 적당한 선에서 멈춰 줄 거야. 보는 눈이 있으니까. 기껏해야 채찍 몇 대에 물 안 주고 굶기는 정도겠지. 그보다… 아까 맞은 곳은 괜찮니?”

“네? 네… 괜찮아요.”

“이런 말 하기에 조금 민망하지만 쟤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마. 저놈들도 다 사정이 있는 놈들이니까. 위에서 쥐 잡듯이 잡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네게 발길질을 한 것도 정말로 다치게 하려고 하거나 하는 의도는 없었을 거야. 그냥 겁주는 용도였을걸. 어떻게든 오늘 안에 작업을 끝마쳐야 하니까.”

“…….”

“그래서… 저분이랑은 아는 사이니?”

“네? 네… 조금요. 여기에 와서 만나서….”

“흔하지 않은 사람이네.”

‘그래 흔하지 않기는 해. 충심이 남달라.’

“아무튼 더 꼬투리 잡히기 전에 빨리 작업이나 하자. 여기. 물 좀 마시고.”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옥사나라고 해. 네 이름은?”

“저는… 진유라고 해요.”

“진유? 예쁜 이름이네.”

“감사합니다.”

“참… 너 같은 애들이 이런 곳에 오면 안 되는데 말이야.”

“이제는 좀… 익숙해졌어요.”

‘그렇게 느낄 만하자너.’

많아도 고1처럼 보이는 애가 시체나 옮기고 있고, 저기서 창렬이는 채찍이나 처맞고 있고, 여기저기에는 욕설에 고성에, 물약에 중독된 중독자 놈들도 넘쳐나고, 세상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새끼들도 보이고, 아직도 갑옷에 피와 혈육을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새끼들도 보이는데….

평범하게 생각해 보면 나 같은 인물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투입된 임무가 살해된 포로들을 매장하는 일이다 보니 더욱더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는 거겠지.

그녀의 눈에 동정심이 섞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익숙해졌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하기사… 너 같은 친구들이 한둘도 아니고… 제국이고, 왕국연합이고, 공화국이고, 연방이고… 언제부턴가 소년병을 쓰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것 같고… 겨우 4년인데… 전쟁이 완전히 모든 걸 바꿔버렸어. 공화국은 특히나 많은 게 변해버렸고. 군사님께서도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니셨는데 말이야. 적어도 너 같은 애들은… 조금 더 좋은 걸 보고, 듣고, 배울 자격이 있는데….”

당연하지만 이 상황에 사뭇 마음에 들지 않은 듯싶었다. 씁쓸한 미소와, 씁쓸한 표정, 특히나 인형들을 하나하나 구덩이에 던질 때마다 한숨을 쉬거나 기도를 외우고 있었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종종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것 같은 이들도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어려 보일지도 모르는 얼굴들도 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을 보고 있노라면 왜 전쟁이 참혹한 것인지를 저절로 깨닫게 해준다.

지금 나와 그녀가 양팔과 다리를 들고 있는 이 녀석도 잘 쳐줘 봐야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은가. 아마 이곳으로 소환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학교생활을….

‘어?’

“왜 그러니?”

“아… 아니에요.”

“그렇지. 너랑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얘… 안 죽었는데? 깨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 죽은 척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의아해했던 것도 잠시, 녀석의 상태창을 둘러본 이후에는 입을 떡 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

“…….”

[칭호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

2회 차에는 없었던 성검용사가 이런 곳에서 죽은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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