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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27화 (1,42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27화

대륙전쟁(7)

‘미친놈들… 미친 자식들….’

“…….”

‘시바. 이 새끼들 진짜 제정신 아니자너.’

“…….”

‘원래 무자비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 새끼들은 상도덕 같은 것도 없자너.’

하지만 이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녀석은 심성 약한 고딩이었고 어떻게 봐도 대륙에 쉽게 적응하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성지훈을 성검용사로 선택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성검을 다룰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인지, 간단히 말해 적합자냐 아니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했겠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검술만 보더라도 차희라, 김현성, 정하얀 같은 종류의 인간들과 비교할 수 있었을 정도, 녀석은 아직 성장 중이었지만 제대로 된 테크트리만 탄다면 위 4인과 동급의 괴물이 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윗놈들 입장에서 욕심이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라는 거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인재 앞에서는 그 걸림돌은 너무나도 사소하게 비추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필요한 것은 딱 한 가지.

놈이 위화감과 공포심 같은 종류의 것들을 느끼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그게 놈의 눈과 머릿속에 필터가 끼어 있는 이유였다.

솔직히 나였어도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그렇게 해야지 뭐 어떻게 하겠어.’

당장 이 새끼 적응 못 해서 뒈지고, 정신병 걸려서 암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데.

얘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자너. 필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는 하겠지만 초월자급 강자를 한 명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장사고… 외신전을 대비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

‘뭐 크리티컬 대미지 같은 거 뜨고, 상대 HP가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피를 뿜으면서 죽는 게 아니라 다른 효과가 겹쳐서 있는 거고?’

놈의 반응만 보고 있자면 그렇게 보이는 게 확실해 보였다. 본인의 얼굴에 피가 묻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찝찝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때?”

뭔 꽃이라도 꺾어서 가지고 온 것마냥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검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모습은 가관, 놈이 벌여놓은 현장이 징그럽다거나 그로테스크 하다기보다는, 이 새끼의 표정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쌓인다.

당장 김창렬과 알프스도 이 새끼를 경계하는 모습, 저 둘은 아직 영문을 모를 테니 이 새끼가 위험분자로 보이는 모양인 것 같았다.

당연히 이쪽의 입장에서는 멍청한 소리를 지껄일 수밖에 없다. 일단 이 새끼를 떠봐야 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꼭… 죽일 필요까지는….”

“아. 조금 놀랐구나?! 내가 좀 심했나?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전쟁이니까.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공화국 측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을 거고… 어쩌면 너도 다쳤을지도 몰라. 아니면 내가… 조금 무서워 보였으려나…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난 친구한테는 절대로 검을 뽑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을 때만 검을 뽑자는 주의라… 그러니까… 방금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고. 정말… 정말 겁먹은 건 아니지?”

“아니요. 그렇지는….”

“그럼 우리 계속 친구 하는 거지?”

“네. 네….”

“놀라게 했다면 미… 미안해. 나도 조금 흥분해서… 원래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좀… 조금… 좀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괜히 이랬나 보다….”

‘시바 이걸 착하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자너.’

기본적으로 심성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왜 시바 캐릭터들한테도 친절한 건데.’

물론 방금 전에 달려온 놈들을 자비 없이 썰어버린 것을 보면 이 새끼가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쪽을 공격하러 온 저 적들이 선공몹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이상하지도 않은 반응이다.

캐릭터를 움직이다 뭔 같잖은 선공몹이 나타났는데 당연히 스킬 쓰고 제 갈 길 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놀랐어? 내… 내가 차가운 물 줄까?”

‘왜 그렇게 쩔쩔매는 건데.’

적어도 성검용사가 미친놈은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아마 정말로 병신 같은 놈이 저런 힘을 얻고 넘어왔다면 단언하건대 별의별 개 미친 짓을 벌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게임 캐릭터로 보이는 녀석이 주저할 게 뭐가 있을까.

당장 유행하던 갓세계물에서의 정석 루트가 소환된 이후, 이세계로 떨어졌다는 걸 자각하기도 전에 노예시장으로 달려가는 거라는 걸 떠올려보면 성지훈 이 새끼는 병신이기는 해도 모난 녀석은 아니었다.

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뜸 검을 휘두르지도 않고, 선공몹이 아닌 동료 NPC들, 혹은 동료가 될 NPC들을 존중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알프스한테 시답지 않은 개수작을 부렸었겠지. 천성이 바보처럼 순수해 빠진 놈이었다.

“아, 아무튼 내가 용사라는 건 이제 믿을 수 있는 거지?”

“아니, 믿어요. 믿는다고 말했었잖아요.”

“그래도. 못 믿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랬지. 아… 잠깐만… 아니다. 루팅은 할 필요가 없겠구나. 으아… 많이도 죽었네. 우리 팀도 진짜 많이 죽었다. 이거 행군도 늦춰지겠는데?”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것일 테니까요. 조금이라도 이 행군을 멈추기 위해서요.”

‘누가 봐도 뻔하자너.’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짧은 전투에 폐허가 된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아직까지도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성지훈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엄마… 흐으윽… 살려주… 도와….”

“여기! 의무병! 의무병 있나!”

“아아아아아악!”

“흐으윽… 끄으으윽….”

죽어가는 놈들의 비명 소리부터, 주변에 피와 혈육이 낭자해 있다. 나무들은 마법으로 인해 불에 타고 있거나 쪼개져 있었고, 기분 나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공화국이고 왕국연합이고, 제국이고 할 것도 없이 시체들이 뒤엉켜 있다. 보급품을 실은 마차가 집중적으로 공격받은 것이 눈에 띈다. 아마 기습을 받은 것은 이쪽뿐만이 아닐 것이다.

워낙에 대규모 병력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터라, 빈틈도 많을 것이고 놈들의 입장에서는 발을 멈추는 것이 무조건 유리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당장 이 전투를 수습하는 것도 문제다. 바퀴가 빠진 마차들을 전부 고쳐야 하고, 쓰러진 말들을 버리고 가야 한다.

언제 어디서 매복 병력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스트레스도 있을 테니 지휘관들도 조심해서 병력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제기랄! 제길! 일단 불부터 꺼! 살아 있는 마법사 없나!”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자너.’

“도대체 앞 정찰대는 뭣하고 있었던 거냐고!”

아니나 다를까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놈들이 눈에 띈다. 사실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탓에 시야를 확보하기도 힘든 상황, 짧은 시간 안에 병력들을 출발시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이 멍청한 성검용사는 어째서 적들이 병력을 버리는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시간을 끌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행군을 멈춰?”

“네. 단순히 시간을 끌기만 해도 이득이라는 거겠죠. 적 지휘관이 실수만 하지 않았어도 아군 병력에게는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그… 그래?”

조그만 막대기를 하나 가져와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이게 지금 공화국과 제국, 연합이 유지하고 있는 전선이에요. 공화국이 병력을 돌린 이유는 바로 이곳, 텐리아 전선에 힘을 보태주기 위함이고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우리 병력이 탈환할 거라고 예상했던 전선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밀려나고 있는 형국이거든요.”

‘1지혜 1기영 때문이겠지. 뭐.’

“어!”

“이 전쟁에서 텐리아 전선은 허리에요. 적 지휘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진청 군사님께서는 전선을 그렇게 설정하셨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급한 진격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이유도 당연히 이 전선으로 통하는 길을 아군 병력이 먹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전선이 밀려나게 생겼으니 당연히 빠르게 병력을 옮길 수밖에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일 거예요. 당연히 적들도 텐리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니….”

“그래서?”

“아군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더욱더 전선을 공고히 할 예정이겠죠. 아마 적 병력들도 점점 모여들고 있을 거예요. 최후의 결전이라는 말은 조금 시기상조겠지만 이 전선에서 일어나는 전투가 이번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요.”

“진유야. 너.”

“네.”

“지능캐였구나!”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이거 흥미로운데! 뜻밖에… SSR이었던 건가? 과연… 과연 그랬던 거였어.”

‘이 새끼 또 깝치네 진짜.’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건데?”

“저희가 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이 행군이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요.”

‘시바 안 그래도 주린 배 잡고 움직이고 있는데 식량이 다 불탔으니 어떻게 하겠냐고.’

그렇지 않아도 혹독한 행군이었다. 한 번 맞아봤으니 이제는 더욱더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가야 한다.

“아니 내 말뜻은 그런 게 아니라… 아… 일단 다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좋겠는데… 레이디. 알… 알프스. 이쪽으로 와서 같이 대책 회의 좀 하… 하시죠.”

“네.”

“이… 이름 없는 형도….”

“…….”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창렬과 알프스도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 여기저기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여기 넷이 모여 있는 꼴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놈의 말을 따르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성검용사 이 새끼는 벌써 우리가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도 된 듯이 행동하고 있는 중, 이미 이쪽이 자신과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시바 지가 파티 신청하면 NPC들이 그냥 알아서 파티를 맺어주는 줄 아나. 뭔 밑도 끝도 없네 진짜.’

“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용사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

“…….”

“글쎄….”

“…….”

“나는 여기까지 가라는 신탁만 들어서… 사실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신들의 뜻에 전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보안이니 뭐니 자신들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제대로 이야기 해주는 게 없거든. 근데 하나는 알 것 같단 말이야.”

“그게 뭔데요.”

“여기에 와서 너를 만났잖아.”

“…….”

“레이디 알… 알프스랑 이름 없는 형도 만났고 아마 그게 신님들이 원하는 거였을 거라고 생각해. 함께 움직이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으라는 거겠지. 처음에는 성검의 도움 없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라고 하시는 것 같았지만… 뭔가 다른 뜻이 있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지 뭐야.”

‘그래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 성검한테도 버림받았지.’

논리도 없고 뜬금없는 개소리로 들리기는 했지만 그나마 놈의 입에서 나온 소리치고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내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지정해 준 윗놈들이라니, 알타누스를 비롯한 윗놈들이 실제로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런 우연은 없는 법이다.

녀석들이 나에게 성지훈을 떠맡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니, 굳이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육망성이 나와 성지훈을 만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까지 그 이유를 추측하기 힘들었지만 대충 답이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지들 똥 치워 달라는 거자너.’

근시안적으로 봤을 때는 윗놈들의 방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멀리 보면 그렇지 않다. 놈이 처음부터 완전한 상태로 들어왔으면 모를까.

우리 성검용사는 아직 성장 중인 인재였고, 놈들의 방법으로 육체는 성장시킬 수 있을지언정 정신은 성장시킬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째서 성검이 놈에게 응답하지 않는지도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다. 이 새끼는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있다.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고,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놈은 강했고,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한계를 맞이할 것이다.

테크트리를 완전히 병신처럼 탄 셈이었다. 이런 타입에게는 육체적인 성장보다 정신적인 성장이 더욱더 중요하다. 아마 이대로라면… 결코 김현성이나 차희라와 같은 레벨에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는 거는 당연한 거겠고….’

거기에 추가로….

‘필터를 벗겨 달라는 건가….’

겸사겸사 수습도 해주고?

양쪽에서 선택지를 강요받는 것 같아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알타누스에게는 빚이 있다.

다시 한번 조용히 녀석을 바라보자.

“네가 나의 군사가 되는 거야! 그게 신님들이 원하시는 거라니까! 그… 그러니까 정답은 분명 네가 알고 있을 거야! 진유!”

여전히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는 녀석이 시야에 비쳐왔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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