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30화
대륙전쟁(10)
“일어나세요. 용사님.”
“…….”
“용사님! 벌써 한 시예요.”
“15분만 더….”
“빨리 일어나셔야 해요. 용사님 때문에 알프스 님께서 대신 근무도 섰단 말이에요.”
“아니. 조금만… 더 잘래….”
“이렇게 숨어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상급자가 알면 큰일 난다구요. 용사님은 여기 숨어들어오신 거잖아요! 신분도 가짜인데! 괜히 책잡혀서 들키고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저도 위험해진다고요. 침낭 주세요. 빨리!”
“아니!”
‘이 새끼 진짜 개 막장이네.’
침낭에 애벌레마냥 들어가 있는 모습은 가관, 텐트 한쪽 구석에 있는 꼬라지가 녀석의 지구 생활이 어땠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놈의 개인 짐들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들, 도대체 왜 가지고 온 건지 모를 물건들이 쌓여 있었는데 저 사이에서 파묻혀 잠든 녀석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시바 이 새끼한테는 그게 광란의 파티였자너.’
럼주는 딱 두 잔 마셨을 뿐이었고, 모닥불 앞에서 춤 좀 춘 것이 전부이기는 했지만, 파티나 축제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성검용사 성지훈에게는 지상 최대의 파티가 아니었을까.
아마 녀석의 뇌 속에서는 어제의 풍경이 미화될 대로 미화되어 있을 것이다.
끽해봐야 옥사나 패밀리와 주변 부대 녀석들이 어울렸을 뿐이다. 물론 그마저도 규모가 작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장담하건대 이 새끼 머릿속에서는 이 지역에 있는 병사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신나게 밤을 즐긴 것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다. 술과의 궁합이 그리 좋지는 않았는지 숙취가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짜증이 나 침낭을 들춰내자 꾸물꾸물거리던 녀석이 드디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 머리 아파.”
“숙취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마시지 말았어야죠. 술도 약하면서 허세는….”
“숙, 숙취 같은 거 아니야. 그… 그냥 오늘은 좀 컨디션이 안 좋네. 원래 가끔 이런 날이 있다니까. 타이레놀 한 알 먹으면 딱 좋을 텐데 말이야… 여긴 그런 것도 없고… 아무튼 다들 일어났어?”
“아까 못 들었어요? 벌써 한 시라고요. 알프스 님이 용사님 근무까지 서셨는데… 아침부터 난리였다니까요. 근처에 제국 병력들을 발견해서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을 데리고 갔어요. 우리 소대는 임무에서 빠지기는 했는데… 만약에 우리 소대가 임무에 투입되기라도 했었으면 큰일 날 뻔했었다고요. 용사님 때문에 말이에요!”
“아… 아무튼 안 들켰으니까 괜찮은 거잖아. 잔소리는….”
“잔소리가 아니라!”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아… 아무튼 미안하다니까!”
‘이 새끼 이제 좀 친해졌다고 막 대하네.’
“조… 조금 늦게 일어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런 걸 가지고….”
“구시렁대지 말고 빨리 바깥으로 나와요. 용사님이라면서 무슨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안 일어나고 있어요?”
“나… 나도 오랜만에 늦잠 잔 거야. 그, 그래서 다들 몇 시에 나갔는데?”
“여덟 시 정도요.”
“어디로 나간다고 했는데? 이 근처에서 병력이 발견됐다면서… 그럼 슬슬 돌아올 때 됐겠네?”
‘아니야. 걔네 안 돌아와. 거기서 죽었대. 창렬이 피셜이야.’
확실히 이 새끼가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야 한다.
‘분명히 전쟁하러 나갔다고 했는데 태연하게 돌아올 때가 됐다고 말하네.’
지가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를 거다. 자신과 연을 쌓은 동료들은 불행에서 면역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주변인의 죽음은 주인공의 성장이나 생존을 위한 거라고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구태여 그런 커다란 에피소드가 없더라도 언제나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이유로 죽는다.
놀랍도록 허무하게 말이다.
특히나 이런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전쟁으로 인해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다. 대륙 전체에서 하루에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딱히 병사들만 죽어 나가는 것도 아니다. 전쟁의 피해자들은 병사들뿐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제에… 이 새끼는 아예 그들이 죽었다는 가정 자체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슬금슬금 움직일 준비를 하는 녀석, 장비를 입고 있는 모습도 굼뜨다.
“…….”
“…….”
“글쎄요. 아마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저 멀리까지 나가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가벼운 무장만 챙기고 나가는 걸로 봐서는 이 근처였을 거 같아요. 아마 큰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구성된 병력들도 워낙 소규모였고….”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럼 슬슬 돌아온다는 거잖아.”
“네.”
“다들 배고프겠지. 어제 먹었던 스튜나 끓이고 있을까?”
‘응 그럴 시간 없을 거야. 얘들 이미 돌아오고 있거든.’
그렇게 녀석과 함께 텐트를 나섰을 때였다. 타이밍이 좋게도 출정을 나갔던 병력들이 돌아온 것 같았다.
바깥으로 보이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어젯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모두가 웃고 떠들고 즐기던 그 장소가 아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비치는 것은 들것에 실린 채로 들어오고 있는 부상자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제기랄!”
팔과 다리가 절단된 놈 하나가 지르는 비명이 비현실적이다. 필터를 가지고 있는 놈에게는 붉은색이 보이지 않겠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둔감한 놈이라도 분위기로 느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들것이 부족했는지 동료의 등에 업혀 오는 놈들도 부지기수,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살려달라고 외치는 놈들도 있다.
“어?”
성검용사가 짧게 의문을 표현하기가 무섭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제 있나! 아니! 의무병! 의무병!”
“응급처치 좀 부탁해. 제기랄! 포션 남은 거 없어?”
“어제 전부 불탔는데….”
“흐윽… 죽고 싶지 않아… 으으윽….”
“정신 차려. 어이! 정신 차리라고! 카트리나!”
“부상자들밖에 더 있으니까 빨리 데리고 와!”
“뭐… 뭐야! 지금! 뭐야! 이게!”
“…….”
“이….”
“아아아아아아아악!”
“거기서 뭘 멍 때리고 있어! 이 새끼들아! 부상자들 들어오고 있다는 거 못 들었어! 빨리 옮기라고! 사제! 사제!”
“씨발 사제는 개뿔 여기 사제가 어디 있어!?”
워낙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놈들이 많은 탓에 주변을 제대로 식별하기가 힘든 상황,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여력이 없는 성검용사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 달려오는 병사 하나와 부딪친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그대로 뒤로 넘어진다. 분명 저런 충격으로 넘어질 스탯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발라당 넘어간 것이다.
슬슬 현실을 파악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계속해서 “어… 어?” 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중, 당연히 진유가 해야 할 행동은 뻔하다.
곧바로 부상자들을 돕고 싶기는 했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리 만무, 사실 그 아저씨들과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이미 미국을 가버린 이상 슬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용… 용사님.”
“어?”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진… 진유! 진유!”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목소리에 답한 여유 따위는 없다.
일단은 무작정 달리는 것이 먼저였다. 성검용사 역시 정신을 차린 이후에는 나를 따라오는 중, 이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몸이 계속 밀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기분 나쁜 피 냄새와 약품 냄새,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리고 아예 움직임이 멈춰 버린 사람들.
더러운 천이 얼굴 위에 올라가 있는 놈들도 있었지만 시체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이들도 존재한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패잔병들. 이번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비쳐왔다.
“옥사나 누나….”
그녀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어디 한 군데가 잘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와중에 성검용사 녀석은 아직도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향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누… 누나.”
“어….”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누나.”
“뭘 어떻게 되긴… 전투에서 진 거지 뭐.”
“…….”
“…….”
“병신 같은 윗놈들이 잘못된 정보를 물어온 모양이야. 빨리 행군하겠다고 억지로 들어간 거지… 결과가 좋을 수가 있겠어? 이미 우리가 온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어.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화살을 맞고 반 이상이 죽었고… 어떻게 겨우겨우 이렇게 돌아오게 됐네. 차라리 어디 잘린 곳이라도 있으면 전역이라도 했을 텐데….”
“누… 누나는 괜찮으신 거예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좋지 않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듯한 얼굴이다.
분위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녀 역시 더 이상 전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이대로 옥사나를 지나치면 참 좋겠지만 물어봐야 할 것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약간의 불안감을 담고 있는 질문.
“형… 형들은요.”
“…….”
“형들도 괜찮은 거죠?”
“죽었어.”
“…….”
‘숨김 없자너.’
“멍청한 새끼들이…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설치다가 화살 맞고 가버렸지 뭐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놈들이….”
옥사나는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도 수없이 말이다. 그 모든 죽음에 모두 슬퍼하고, 공감했다면….
‘이미 제정신이 아니겠지 뭐.’
옥사나는 슬픔을 묻어두는 것을 선택했다. 아마 그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전한 것 역시 우리들도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물론 그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 많은 진유가 그들의 죽음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드라마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는 옥사나의 표정이 더욱더 씁쓸해지기 시작했다.
“흐윽….”
“…….”
“흔한 일이야.”
“흐으으윽….”
‘좋은 사람들이었자너. 좋은 추억을 선물해 준 아저씨들이었자너.’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 진정되지 않는 호흡,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옥사나가 조심스레 이쪽을 껴안아 준다.
당연히 망원경으로는 우리 성검용사를 살펴본다.
아직까지도 아까와 같이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표정,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을 거라는 얼굴이다.
예상했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즐겁게 웃고 떠들고 함께 놀았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죽어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던 녀석이 걸음을 옮긴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처음에는 도망치는 건가 싶었지만 놈이 걸어가고 있는 장소는 빛을 잃은 인형들이 있는 장소였다.
‘너 시체가 시체로 안 보이지 않았어?’
녀석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마냥 한 구의 인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더러운 천에 덥혀 있는 인형 하나, 옥사나의 옆에 있는 그 인형을 감싸고 있는 천을 드러내자 얼굴 한쪽이 뭉개져 버린 찰리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지금 저 모습이 녀석에게는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 어… 으….”
“…….”
흔들리는 동공,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식은땀, 바들바들 떨리는 손과 발.
‘벗겨진 거야? 아니면 벗긴 거야? 아니면 그냥 인지하기 시작한 거야?’
“우욱… 우우웁….”
“…….”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엑.”
“…….”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성지훈은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게워내고 있었다.
“으… 우욱… 우웨엑!”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