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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31화 (1,42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31화

대륙전쟁(11)

이전까지가 12세 아동용 액션모험활극 이었다면 지금부터는 18세 고어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아니, 사실 단순히 장르가 바뀌었다 표현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이건 라이트 노벨도, 만화도, 게임도 아닌 명백한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필터가 벗겨져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이곳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단순히 핏덩어리나 징그러운 것들을 봤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이 아니다. 녀석은 찰리의 시신을 본 이후에 그간 자신이 죽였던 이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구토를 멈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 이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바깥으로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어김없이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당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상태인 건지 모르겠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웨에에에엑.”

‘이 새끼 어떻게 하냐.’

“아… 우욱….”

‘완전히 고장 나게 생겼자너.’

아니나 다를까 온몸에 힘이 풀린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망가진 놈들을 많이 봐오기는 했지만 이 새끼만큼 위험한 상태로 돌입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실금했네….’

물론 본인은 자각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온몸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팔다리는 연신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허리를 굽혔는지 폈는지 모를 자세로 변함없이 구토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상태, 과호흡이 왔는지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놈의 몸은 놈의 편이 아닌 모양이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 놈이 넘어진 곳은 찰리 옆에 놓여 있었던 또 다른 시체.

자연스럽게 놈의 팔에 말라붙어 버린 혈액과 식어버린 인형에 닿는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난리 났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넘어진 상태로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모습은 가관, 본인은 빠르게 떨어지고 싶은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제자리를 기는 꼴이 되어버린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아니, 우연이든 아니든 벗겨진 건 벗겨진 건데….’

기왕이면 이쪽이 타이밍을 알았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로 보여주는 반응이 격정적이다.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 역시 멍하니 놈을 바라보고 있다.

도와줘야 한다는 자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생소한 모습이었던 탓이다.

물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놈들을 많이 봐왔던 놈들이었지만, 갤러리들 역시 저런 건 처음 본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사람마냥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이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던지라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옥사나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시바 질 수 없자너.’

당연하지만 옥사나에게 밀릴 수는 없다. 이미 달릴 준비를 한 상태였고, 언제든지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던지라 허겁지겁 성검용사에게 뛰어나간다.

경험상 여기서 제일 먼저 위로해 준 새끼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알을 막 깨고 나온 생물이 처음 본 이를 부모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일단은 이 새끼의 손을 꽉 잡는 것이 먼저.

“용사님! 용사님!”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용사님! 정신 차리세요! 용사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새끼 돌아버렸자너.’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맹인이라도 된 것마냥 허공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 적어도 손을 뿌리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뿌리칠 여력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다. 본인 나름대로는 버둥버둥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마치 신생아가 발버둥 치는 꼴이었으니까.

“용사님!”

“어이! 정신 차려! 어이!”

후발주자로 따라온 옥사나가 대뜸 놈의 뺨을 후려갈기기는 했지만 역시나 효과는 없다.

“정신 차리라고!”

“용사… 용사님! 저 보이세요? 저 좀 보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악!”

‘와 이 새끼 여기서 미쳐 버리면 시바 라파엘 땜빵시켜야 되는 거 아니냐고….’

지혜 누나와 로노베도 없었기 때문에 이 새끼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심지어 김현성처럼 자의로 숨어든 것도 아니다. 이대로 영혼이 육체를 출타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기 때문에 포션 병을 열고 입으로 들이 부어봤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다.

‘아… 시바 이 새끼 진짜 귀찮게.’

결국에 선택한 것은 신성을 일으키는 것. 물론 날개를 뽑아내거나 주목받을 만한 쇼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밀도가 높은 신성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놈에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이 정신을 부여잡는 것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 자부할 수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느끼게 해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놈의 몸을 꽉 껴안아 주는 것 역시 필수.

“용사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출력 조금만 더 올려야겠다.’

아무래도 조금은 모자란 듯싶어 출력을 조금 더 올리자 그제야 놈의 떨림이 멈추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용사님. 이제 괜찮아요.”

‘뭐가 괜찮은지는 시바 하나도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괜찮다고 하는 게 국룰이자너.’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

“괜찮아요. 전부 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전부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용사님.”

“…….”

미치광이 정신병자들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체온이라는 것 역시 국룰, 아니나 다를까 성검용사 성지훈도 이쪽을 바스러지도록 껴안는다. 마치 내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본인이 살기 위해서 나를 껴안는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의 비명도, 구토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윽… 으으으윽… 으윽….”

“네. 네. 괜찮아요.”

‘아니야. 안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아. 너 엿 됐어.’

“흐으윽… 끄응… 으으윽….”

“네. 저 여기 있어요.”

‘물론 내가 여기 있는 게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야.’

“흐어어어어어어엉… 으… 으아어어어어엉….”

‘아예 대성통곡을 하자너.’

“할아버지… 흐으윽… 할아버지이….”

‘여기 네 할아버지 없어.’

보통은 엄마를 찾아야 하는 타이밍인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할아버지를 찾고 있는 모양.

“집에 가고 싶어… 흐으윽… 집에 갈래… 흐어어어어어어어엉….”

“네. 집으로 가요. 용사님.”

‘이 새끼 진짜 꼴불견이자너.’

“으어어어엉… 흐아어으으응… 흐윽… 끄으으으윽….”

‘이걸 어케 써먹지.’

“흐윽… 흐으으으윽….”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여기는 안전한 곳이에요. 용사님. 조금 쉬세요. 쉬는 게 좋겠어요.”

“흐윽… 흐으으으윽….”

이대로 계속해서 있기에도 민망한 상황, 이제는 조금 떨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 슬쩍 놈을 밀어봤지만 이 새끼는 새끼 코알라마냥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가지 마. 가지 마… 흐으으윽….”

“네. 어디에도 안 가요.”

물론 미성년자라는 걸 생각해 보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너무나 많이 망가진 듯한 모습, 심지어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렸는지 색색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잠이 든 건지, 기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퓨즈가 끊겨 버린 것이다. 아마 육체가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

그 와중에도 이쪽의 소매를 꽉 잡고 있는 모습, 살짝 몸을 일으키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주변인들과 당황하는 듯한 옥사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성검용사 녀석이 보여준 추태보다는….

“너… 너… 뭐야….”

“네….”

방금 이쪽이 뿜어낸 신성력을 더욱더 궁금해하는 모습들.

“…….”

“방금 그 신성력은… 뭐야.”

“신성력… 이라니요.”

“자각도 없었던 거야? 아까 그건 도대체… 아니다. 아니. 일단은 지훈이부터 챙겨…. 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인 것 같으니까.”

“네? 도대체….”

“이곳에 있는 사람들 입은 내가 막아줄게. 그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이렇게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걸 계속해서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아마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윗놈들이 전부 알아채겠지만… 제길… 난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일단 텐트로 돌아가. 아니… 내가 데려다줄게.”

‘출력이 조금 강했나? 아니 그래도 살짝 평범하지 않았나? 성자, 성녀급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네….”

얘들 표정이 무슨….

‘니들 구원자라도 만났어?’

몇몇은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 대신 옥사나가 성지훈을 들어 올리고 쭈삣쭈삣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에도 전투에서 돌아온 이들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마치 작은 목소리라도 새어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미쳐가는 애새끼 좀 진정시킨 게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해가 가는 부분은 있기야 하다. 극한의 상태에 몰린 것은 성지훈뿐만이 아니었을 테니까.

본래 이런 상황일수록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게 마련이었다. 동료나, 친구, 가족, 미신 같은 것이나 신념, 그것도 아니라면 종교.

아마 내가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준 것이 아닐까. 지치고 힘든 이들이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기자.

“성… 성자다.”

하는 개소리를 누군가가 내뱉고 있었다.

“성자.”

‘아. 또 무슨 개소리야. 시바. 빨리 텐트 들어가서 이 새끼 제대로 완치됐나 봐야 돼.’

이건 옥사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빨리 들어가자고 이쪽을 재촉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별안간 웬 마약중독자처럼 생긴 새끼 하나가 철퍼덕 무릎을 꿇기 시작한 것. 실제로도 약물과 마법에 중독되어 있는 녀석이었다.

빛을 잃어버렸던 눈깔은 온데간데없다. 녀석은 마치 김현성을 숭배하는 송수경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에바야. 진짜. 좀 꺼져.’

이윽고 마약중독자의 반대편에 있었던 녀석 역시 털썩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는다.

‘아! 진짜! 시바!’

“…….”

“…….”

‘군중심리 에바야. 진짜.’

기다렸다는 듯이 몇 놈들이 뭉텅이로 무릎을 꿇는다.

‘아!’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와 성지훈 옥사나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이 길을 비키기 시작한 녀석들은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파도라도 타는 것마냥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부대 전체가 시바 개 난리가 난 상황에 도주각을 잡은 것은 당연지사.

여기에는 지치고 힘든 새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대를 관리하는 지휘관들도 수십이 넘는다.

부대에 이런 개지랄이 일어난다면 필시 그 새끼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김창렬과 알프스를 찾고 있었는데 심지어 이 새끼들도 선두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아. 시바 이거 진짜 성검용사 들고 도망쳐야겠다. 곧 윗놈들 몰려오겠다.’

그렇게 인상을 구기고 있었을 때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부대의 지휘관들마저도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다음 페이지에 송수경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송수경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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