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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39화 (1,43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39화

대륙전쟁(19)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딱 그 말이 어울린다. 말 그대로 어젯밤에 일어났던 작은 사건 이후에 녀석이 180도 변해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였던지라 나조차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을 정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난 이후에 보이는 광경에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게 된다.

“어. 일어났어?”

‘늦잠 안 잔 거 실화냐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용사님.”

“아니, 별, 별로 일찍 일어난 건 아닌 것 같은데? 평소대로인데 왜 그래?”

자신의 심경이 변한 것을 들키기 싫은 모양인지 말을 돌리기는 했지만 무려 4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기상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해가 중천에 뜬 이후에 일어나던 것이 바로 성검용사 성지훈의 종족특성이 아니었던가.

어젯밤 이런저런 사건 때문에 평소보다 더 늦게 잤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놀라운 일이다.

심지어 벌써 환복을 마친 것 같은 모양새, 최소 한 시간 전에 일어나 씻었는지 얼굴도 말끔해 보였고….

“배식받아 놨으니까 천천히 일어나서 식사해. 아! 커피도 있으니까 데워 먹고… 아침에는 꼭 커피 먹어야 된다고 했었지?”

‘이 새끼. 누구냐고. 성지훈이 맞냐구….’

“용사님은요?”

“나는 한참 전에 먹었지.”

“왜 이렇게 일찍부터 일어나셨어요?”

“그냥 이런저런 할 일도 있고… 일, 일단 먼저 밖으로 나간다.”

‘시바 해가 서쪽에서 뜨겠자너.’

아무래도 본인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게 부끄러운 모양인 것 같았다. 아니면 이쪽 말 몇 마디에 흔들렸다는 게 부끄러운 것일까.

하루아침에 열심히 발버둥 치기로 결심했다는 게 왜 쪽팔리는 게 되는 건지, 왜 그걸 숨겨야 하는 건지, 이 새끼의 감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는 했지만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예의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 네.”

“그럼 이따가 봐.”

“네….”

‘보름달 되기로 결심한 게 확실하자너.’

지금 커피나 아침밥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녀석을 뒤따라 나선다.

물론 준비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터라 놈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디 간 거야?’

“편안히 주무셨나요? 부길드마스터.”

마침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는 알프스에게 말을 건넨다.

“알프스 님. 혹시 성검용사 어디 갔는지 봤어요?”

“아아. 창렬 선배님이랑 같이 나가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선배님한테 들었는데 어제저녁에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지도대련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성지훈이 찾아갔었다고요?”

“네.”

“혹시 어디에서 하는지는 알고 계세요?”

“네. 아마 저쪽으로 간 것 같은데… 안내해 드릴까요?”

“네.”

알프스와 함께 길을 걷는 와중, 저 멀리서부터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평소의 흑장미 살롱에서는 들리지 않는 굉음, 누군가의 몸이 벽에 처박히거나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자연스럽게 소리를 따라 걸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이름 없는 형과 검을 부딪치고 있는 성검용사 성지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우아하고 고상한 검술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우리 창렬이가 그리 손쉽게 당해줄 리 만무, 성검용사가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2회 차 기준 탑티어 암살자의 랭크되어 있는 우리 창렬이를 당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녀석도 마냥 봐주면서 대련을 할 수 없었는지 언뜻언뜻 진지한 얼굴을 내비치는 중, 사실상 평범한 지도대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이야악!”

“…….”

퍼억!

“집중해라.”

“허억… 허억… 허억….”

‘창렬이 시바 무자비하자너.’

“뭘 그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군. 혹시나 해서 말해주지. 내가 네 검에 베일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카리스마 장난 아니자너. 암살자 자격 재발급되기 일보 직전이자너.’

“하아… 흐으윽… 허억.”

“죽일 생각으로 덤벼라.”

“허억… 흐으… 이… 이름 없는 형…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어, 어떻게 이렇게 강해요?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도….”

“…….”

퍼억!

“아아아악! 잠깐, 잠깐만요. 뼈 맞았어요! 뼈 맞았다고요! 아프다고!”

‘이제 제대로 고통도 느끼는구나.’

말은 저렇게 해도 훈련용 검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내가 보기에도 꽤 아파 보이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몸을 일으키는 녀석,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검용사 성지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를 악물고 달려들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다.

‘천재는… 천재네.’

김창렬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직접적으로 티를 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창렬이의 눈썹이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다.

물론 저런 정면승부는 암살자인 김창렬의 장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어린 녀석에게 따라잡히고 있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니라 성검용사 성지훈이면 더욱더 짜증 나지 않을까. 김창렬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간 녀석의 추태를 전부 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재능이라는 게 참 야속하기는 한데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자너. 창렬이가 전위도 아니고….’

물론 김창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천재에 대한 질투심이 본인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 또한 잘 깨닫고 있는 모양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녀석을 잘 이끌어 주고 있다. 창렬이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한 적 없었지만 눈치가 빠른 만큼 성지훈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기는 해.’

갑작스럽게 훈련이 멈춘 것은 성지훈이 다시 한번 땅바닥에 처박혀 있을 때,

“오늘은 이만.”

“벌, 벌써요? 조금 더 해요. 아직 뭐 배운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얻어맞기만 했잖아요.”

“그렇다면 저녁에 다시 하지.”

내가 판단하기에도 좀 이른 타이밍 인지라 조금 의아한 상황이었다.

혹시나 김창렬이 회의감이나 질투심 따위를 느껴 수업을 종료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저 멀리서 녀석을 기다리는 인형을 보고서는 다른 볼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시바.”

김창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묘령의 여성이다. 잔뜩 뿔이 난 성검용사 성지훈을 지나친 김창렬은 조심스레 자신을 기다리는 여성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시바 암살자로서만 실격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영의 연인으로서도 실격하는 것일까. 드물게 복면을 벗은 것으로도 모자라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알프스 역시 저런 김창렬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지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 저 혼자 “저… 나쁜 새끼….”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드러난 인형의 얼굴을 보고서는 괜스레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시바… 유아영이자너.’

“…….”

“…….”

그녀에게는 1회차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는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대장장이로 전직하지 않았다. 뒤늦게 적성을 발견한 것인지, 흑장미 살롱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언제 전직할 수 있을지는 그녀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전직을 하더라도 문제였다. 1회차는 생산직들의 지옥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김현성 역시 대장장이 유아영, 아니, 탱커 유아영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으니, 그녀가 이 시점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했다.

‘아영이 쟤 분명히 병신 같은 전 남친이랑 같이 활동한 것 같았는데.’

이번 전쟁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한참 전에 던전을 탐험하다 죽었을지, 김창렬이 직접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왠지 모르게 의심이 가는 것은 가장 후자, 심지어 김창렬은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정 줘서 어쩌려고 그래. 어차피 다 죽을 건데….’

여기까지 와서 곧 죽어버릴 아영이랑 바람을 피우면 어떻게 해.

“부… 부길드마스터. 저거 아영 선배 맞… 맞죠?”

“그런 것 같은데요.”

“…….”

“뭐 공과 사는 구분하는 성격이니까. 알아서 잘 처신하지 않겠어요?”

“…….”

이미 나한테 보고하지 않은 시점부터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보고할 필요를 딱히 느끼지 못한 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곳에서 평행 세계의 유아영을 만났는데 신경이 쓰인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녀를 챙겨줘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애도 아니고 시바 지가 알아서 하겠지.’

근데 너 너무 웃는 거 아니야. 밥도 같이 먹으려고?

아마 혜진이나 다른 놈들이었다면 제법 신경이 쓰였겠지만 그래도 김창렬은 김창렬이었던지라 슬쩍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려 버린다.

녀석의 합법과 비합법 사이에 펼쳐지는 외도보다는 성검용사 성지훈의 다음 행선지가 신경 쓰인다.

창렬이에게 퇴짜를 맞은 모태솔로 녀석은 괜스레 김창렬과 유아영을 흘겨본 이후에 자리를 떠나는 중, 그 이후의 녀석이 도착한 곳은 옥사나가 있는 장소였다.

“일찍 오셨군요. 용사님.”

“이름 없는 형이 연애하느라 바쁘더라고요. 혹시 너무 일찍 왔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이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이후에 시작된 것은 이론 수업, 그래도 옥사나가 공화국에서 한 가닥 하는 유력 가문의 출신인지라 조기교육을 빡세게 받았는지 그녀에게 기본적인 병법에 관해 배우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용사님.”

“…….”

“용사님!”

“아! 죄… 죄송….”

그래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지라 꾸벅꾸벅 조는 모습은 내가 아는 성지훈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눈치를 받은 이후에는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억지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어째서 김현성이 녀석을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라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여기서 만들어지는구나.’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사실 이미 예상하기는 했었다. 놈이 흑장미 살롱에 도착한 이후부터, 이곳 분위기에 감화되고 영감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이었으니까.

특히나 브러쉬 영애를 동경하고 그녀에게 영향을 받고 싶다는 온몸으로 외치는 듯했으니 말이다.

물론 단순히 동경하고, 영감을 받고, 감명을 받았다고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레벨 업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주어진 것을 녀석이 얼마나 활용하느냐,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움직일 생각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놈은 단순히 망상하고 생각하는 것 만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네.”

옥사나와의 만남이 끝난 이후에는 브러쉬 영애에게로.

“글쎄요… 제가 뭘 가르쳐 드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거나 괜찮아… 요.”

“그럼… 제가 읽었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리는 게 좋겠네요.”

브러쉬 영애와의 만남이 끝난 이후에는 다른 영애들과도 어울린다. 병영의 지휘관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고, 병사들이 받는 훈련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대열이 어떻고, 방진이 어떻고, 지금껏 녀석이 배우지 못했던 가장 기본적인 것들, 약한 이들이, 무리 짓는 이들이 어떻게 싸우는 것인지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는 일은 없다. 너무 오버페이스로 뛰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다 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 대장간에 들어가 무기를 손질하는 법도 배우고 계시다. 야영하는 방법도 새로 배우고, 간단한 연고를 만드는 생존술도 배우는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다.

‘첫날부터 저러면 금방 퍼질 텐데….’

저 지친 몸을 이끌고 김창렬과 다시 대련을 시작할 테니 아마 그때 즈음에 현타가 찾아오지 않을까.

“…….”

아니나 다를까….

“흐윽… 끄으윽….”

한참이나 얻어터진 이후에 질질 짜는 녀석이 시야에 비쳐온다.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서 이렇게 개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왜 여기서 이렇게 구르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 성검용사는 그리 부지런한 성격도, 열심히 사는 성격도,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놈은 편한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고생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놈이 하루아침에 변해야 했으니, 서러움에 눈물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

“…….”

벌써 새벽 두 시네. 진짜 열심히 하기는 해.

“나… 나왔어.”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용사님.”

“…….”

“…….”

“달… 달 보러 갈까?”

“저 오늘은 조금 피곤… 아니… 그냥 나가요.”

솔직히 시바 바깥으로 나가기 싫기는 했지만 이 새끼를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다음 날도.

“달 보러 가자….”

그다음 날도.

“달 보러… 갈까? 검 뽑는 연습도 해야 되니까.”

그다음 날도,

“보름달이 떴데! 보름달이야! 달 보러 가자.”

또 그다음 날도 시바 새벽 산책을 나가야 했다는 것이었다.

“진유야. 일어나. 초승달이래… 달 보러 가자. 그리고 나 검 좀 뽑아줘.”

“…….”

“달 보러 가자. 응?”

눈물이 마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청소년의 얼굴로 부탁해 오는지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흐으으윽….”

“후우….”

“흐으어어엉….”

“하아… 달 보러 갈까요?”

“으응… 보러 가자.”

달을 부수는 자, 더 문 브레이커 쌍둥이들에게 의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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