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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41화 (1,43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41화

대륙전쟁(21)

‘역시 서로 대충 알고 있었구나.’

지금 이 시점에는 1기영과 1지혜가 직접적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진 군사는 한참 전부터 녀석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기사 데뷔탕트 때에도 여단을 인식하고 있었으니 지금 자신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게 제국이나 왕국연합의 인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제국이나 왕국연합에 이 정도로 유능한 놈들은 없을 거라고 판단해 내린 결론이겠지.

물론 연합군에도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머리를 마주하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더 나은 전술이나, 더 나은 전략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진 군사만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녀석은 이 모든 과정을 대화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구태여 이곳으로 병력을 돌린 이유도 아마 그런 게 그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커뮤니케이션을 이딴 짓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1군사에게는, 녀석들이 페넬로티 이후로 처음 만난 대화 상대일 테니까.

“…….”

“…….”

‘그 와중에 참… 유능하기는 하네.’

아마 내가 1회 차를 통해 이번 이야기의 결과를 알지 못했더라면 공화국 쪽에 손을 들어줬을 것이 분명했다.

언뜻 보면 양 병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압도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진청이 지휘하고 있는 공화국의 병력들이다.

물론 손해를 보는 지역도 결코 적지 않다. 전쟁이라는 것이 체스처럼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 지라 생길 수 있는 오류였다.

결국 전투를 하는 것은 병사들과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부 네임드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이런 종류의 사소한 오류들까지 전부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시점에서 녀석은 1기영이나 1지혜보다 더 유리한 고지에 있다. 병력에 대한 통제력, 지휘체계의 단일화 등등, 녀석이 공화국의 군사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도 있겠지만 단순히 전술가의 영역으로써도 둘보다 더 위에 있다고 느껴진다.

‘저러니까. 무조건 죽이려고 하지.’

나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새끼가 미쳐서 날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어디 있겠냐고.

‘이거 진짜 어떻게 뒤집은 거지?’

양 집단의 승률을 그래프가 한쪽은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고, 한쪽은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상황.

전선에 병력이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이 그래프는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가면 듀오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1기영이나 1지혜 역시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뭐가 됐든 간에 변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거다.

‘1군사가 뒈지는 시점이 지금이 아닌 건가?’

“…….”

“…….”

‘아니면… 우리 성검용사가… 흑장미 살롱이 변수가 되는 건가.’

망원경을 접고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비친 것은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얼굴, 방금 전까지는 분명 준비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그럼 어떻게 해? 이제 조금 있으면 큰 전투가 벌어진다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그 많은 병력들이 전부 다 모인다는 소리야?”

“…….”

“정확히 언제야? 언제인 거냐고… 진, 진유 어떻게 해야 돼? 큰일 난 거 아니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진짜.’

“제길… 이, 이렇게 그냥 여기서 손 놓고 있어야 되는 거냐고.”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새끼가 마냥 도망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겁먹은 얼굴이 눈에 띄기야 한다. 하지만 전쟁을 막고 싶다는 진유의 목표 아닌 목표가 녀석에게도 목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 역시 녀석의 심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아니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어?”

‘막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그러니까. 겁 먹었자너.’

“진… 진짜?”

‘아니, 그럼 시바 진짜지 가짜야?’

“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분명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펠릭스 님 모두를 불러주세요.”

“네. 성자님.”

‘급한 척해야 하자너.’

최대한 긴박한 척, 최대한 급한 척, 마치 상황이라도 터져 민방위 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부부처 일원마냥 말이다.

사실 뭐 그냥 빠르게 걷는 것뿐이었지만 불안해하는 놈이 있으니 이런 거라도 보여주는 것이 맞다. 적어도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줘야 하니까.

물론 이쪽은 실제로도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중이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부대의 지휘관들이 하나둘 이쪽에 달라붙고 있다.

물론 옥사나도 재빠르게 합류한 사람들 중 하나다. 아마 대부분이 곧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였을 테니 사실상 대응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부르셨습니까. 성자님.”

“병력들이 준비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두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기본 보급 물품들은….”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간… 잘 준비해 주셨어요.”

“…….”

“…….”

“공화국의 병력들이 전선으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라 들었어요.”

“네.”

“제국과 왕국연합의 병력들도 마찬가지고요.”

“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보급창고가 우리들의 목표가 될 거예요.”

“…….”

“…….”

“당장 큰 전투를 막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최대한 두 진영이 부딪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어요. 소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는 병력들을 막거나, 아직 전선으로 진입하지 못한 예비 병력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들을 해방하는 것에 중점을 두도록 해요.”

“최대한 공화국 병력의 눈을 이쪽으로 돌리겠다는 거군요.”

“네.”

“무력충돌은….”

“피하지 않겠어요. 아니, 피할 수도 없어요.”

애초 전쟁을 막기 위해 전투를 한다는 논리는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원래 이쪽 감성은 이런 법이다.

정의와 빛이 이쪽에 있다는 것만 상기시켜 준다면 무엇이든지 용인이 되는 것이 이런 종류의 감성의 특징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마침 여기에는 성자와 용사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당연히 두 달간 세뇌된 우리 내 충성스러운 병사 여러분들께서는 정의와 빛이 이쪽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옥사나 누나를 비롯한 지휘관들과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하며 걸어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인파들은 모여들고 있는 중, 최초에 준비가 두 시간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성자가 뿜어내는 빛에 감화되어 미리 준비하고 나온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았다.

살롱 안이 기본적으로 어두운 공간이었던 지라 세 놈 중의 하나는 촛불을 들고 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분위기… 죽인다. 진짜.’

뭐가 됐든 간에 성검용사 성지훈 역시 모여들고 있는 병사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옥사나에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데시벨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위험한 여정이 될 거예요.”

“성자님….”

“누군가 죽거나 다칠지도 몰라요. 혹은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무모하고 바보 같은 일처럼 보일 거예요. 실제로도 바보 같은 짓이 될 가능성이 높고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고 일이 끝날 가능성도 높아요.”

“…….”

“저는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자 같은 게 아닐지도 몰라요. 아니, 확실히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한 번도 없고요. 신님의 목소리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제가 이 전쟁을 막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에게 받은 사명 따위가 아닌 저 스스로가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

“허울뿐인 성자라는 이름에 휘둘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저 휘둘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신의 뜻이 아니라 이 대륙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 현실을 겪어야 하는 우리들의 뜻임을 인지해 주셨으면 해요.”

“…….”

‘조용한 거 봐라. 한마디 한마디 받아 적으려는 신도들의 모습이 이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자너.’

“저는 성자로 불리며 신의 말씀을 따르며 그들의 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싸우고 죽을 거예요.”

“나… 나도.”

‘아니, 그냥 넌 조용히 있어 지훈아. 말솜씨 없으면 걍 입 다물어야 돼.’

“나도 너와 함께 싸우고 죽을 거야.”

‘그건… 좀 고맙네. 눈빛 보니까. 많이 용기 낸 것 같자너.’

“용사님….”

“나, 나도… 신한테 선택받은 용사가 아니니까… 보, 보름달이 될 거니까.”

‘맥락 없이 시바 사람들 다 듣고 있는데 보름달 이야기는 왜 꺼내. 쪽팔리게. 흥분해 가지고 목소리 커지는 것도 꼴사납다고.’

당장에라도 도망칠 것 같은 얼굴로 말은 잘하고 있다. 물론 도망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검용사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점점 모여든 우리 하루살이 병사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흑장미 살롱에서 체류하고 있었던 녀석들 중에서도 무기를 들고 있는 새끼들도 눈에 보인다.

어디서 또 본 건 있었는지 발을 구르기까지 한다.

이토록 살롱 안이 개 난리가 난 상황이었으니 우리의 브러쉬 영애가 튀어나오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간 조금씩 호감도 작을 한 보람이 있었는지 꽤 놀란 것 같은 표정이 눈에 띈다. 그야 이미 우리들이 언젠가 밖으로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이토록 갑작스레 전쟁터로 향할 줄 그녀가 예상했겠는가.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두려움이다.

아이나 페넬로티를 잃을 때와 같은 두려움이었다. 물론 진유와 아이나 페넬로티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어디 트라우마라는 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었던가.

“말, 말도 안 돼요.”

“…….”

“지금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살롱의 밖을 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계신 건가요. 자, 자살 행위예요. 이건 말도 안 된다고요.”

“…….”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요. 제국과 공화국, 왕국연합이라고요,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세 집단이 부딪치려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고작… 고작 이 정도 병사들로 전쟁을 막겠다고요? 이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브러쉬 님.”

“조금 더 힘을 모아야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그, 그때는 저도 도울게요. 얼마 안 되는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을 돕겠어요. 지금 얼마나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

“…….”

“아니요. 기다리면 늦을 거예요.”

“…….”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너희들도 그랬잖아.’

“그… 그건… 그건!”

‘너희들도 기다리지 않았잖아.’

“위험을 감수해 주시고, 저희들을 돌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대답은 듣지 않는다. 여기서 괜한 설전을 펼칠 필요도 없었으니까. 살롱 안에서의 두 달, 준비를 마친 병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곳에 있던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기 시작한다.

몇몇은 이곳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장소에 있었던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이런 미친 짓거리를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저들이 가장 실감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성자와 용사가 혼란스러운 대륙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마도 이번 이야기의 시작.

물론 이 이야기는 성자와 용사, 마왕만 등장하는 뻔하고 뻔한 동화책이 아니다.

‘브러쉬 영애… 생각 많아 보이자너.’

-파스텔….

-…….

-파스텔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래. 분명히 도와줄 거야.

-…….

-파스텔이라면… 분명히….

파스텔이 남아 있는 버려진 성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브러쉬 영애의 모습이 망원경 속에 비쳐왔다.

-제발… 제발…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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