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42화
대륙전쟁(22)
“이걸로 벌써 3번째입니까.”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겐가.”
“비숍 상급 사제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연히 알고 있지. 후방 부대 소속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지 않나. 예브 카리나.”
“…….”
“…….”
“달빛을 따르는 자들.”
어둡다면 어둡다고 할 수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촛불을 조명 삼아 비숍 상급 사제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이미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한번 들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는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마 소식을 들은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을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공화국의 보급창고를 습격한 것으로 모자라 병사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있다는 이야기였지… 아마.”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심지어 갑자기 성자가 나타났다고 선언하며 전쟁을 막겠다고 하고 있다지. 본래 그들은 공화국에서 탈영한 병사들이고… 아직까지도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고 말이야.”
“네.”
“다시 한번 들어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야.”
저게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물론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병사를 일으킨 반동분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명백히 상식의 선을 벗어나고 있었다.
소규모 병력으로 계속해서 성과를 내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앞세워 내세운 가치였다.
전쟁을 막는다.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이지 않은가. 더 황당했던 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 가치를 따르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세 번의 전투에서 생겨난 사망자는 겨우 100여 명 남짓,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수치였다.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보급품들을 파괴하는 것, 병사들을 무장을 해제시키고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이다.
심지어는 왕국연합과 제국 측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니, 정말로 목적이 전쟁을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그들이 내세운 가치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이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다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여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 여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자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 그들에게 정말 신의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정말로… 달빛을 따르는 자들의 중심에 있는 자가 신에게….’
“예브카리나.”
“예. 말씀하시죠.”
“자네는 정말로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보나? 공화국의 병력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들에게 벌써 3차례나 당하고 있다는 게 말이야. 차라리 왕국연합이나 제국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들려올 지경이야.”
“아니요. 그건 아닐 겁니다. 연합군이 따로 움직였다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
“대 공화국의 보안국에서 내려온 정보입니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보안국이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
“…….”
“물론 저 역시 이번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성자라는 것이, 용사라는 것이, 달빛을 따르는 자들의 실체가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냐를 논의하기 이전에 그들의 성과를 보면… 이게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그들은… 굉장히 정교합니다.”
“정교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그들이 세 차례 동안 보여준 전투가 굉장히 정교하단 뜻이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부대 내에 유능한 지휘관이 함께하고 있다는 말인가?”
“단순히 유능하다는 말은 부족합니다.”
“…….”
“…….”
“마치 군사님을… 보는 것 같은….”
“그건… 그들을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제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지만,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시작이 몇천에 불과한 탈영병 집단이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대공화국에서 소모품으로 사용하던 병사들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바닥으로 꺼져버린 병사들이, 지금은 위험한 사상과 대의를 안고 명분까지 챙기며 들고 일어섰다는 겁니다.”
“…….”
“그들의 사상에 감화된 병사들이 이미 병영 내에 존재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 병사들의 규모도 결코 적지 않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덩치를 키우고 있는 중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들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우리 공화국에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이 안건은 군사님께 정식으로 올리는 게 합당해 보여, 회의에서 건의했지만….”
“뭐…?”
“무능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됐더군요.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여기저기에서는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작 탈영병 집단에게 군사님께서 그 귀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으니까요. 최근 군사님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후우….”
“…….”
“솔직히 군사님께 더 이상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
“…….”
“예브 카리나… 그렇다면 자네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무슨 말씀인지….”
“공화국의 일원이라는 것을 놓고, 지금 달빛을 따르는 자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 이 말일세.”
“…….”
“…….”
“글쎄요.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틀림없이 이상적이지는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상적이라… 그게 무슨 뜻인가.”
“그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비숍 상급 사제님. 전쟁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4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전쟁터에서는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요.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군사님께서는 어느 순간부터 변하셨고… 많은 게… 너무나 많은 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언제나 군사님께 충성하고, 공화국에 충성하고 있는 공화국민이지만… 제가 생각했던 전쟁은 조금 더….”
“품위 있고, 명예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니요. 고통이 따를 거라고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역시 의미 있는 죽음 같은 것은 없더군요. 이 자리에서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하다 보니… 그들의 사상에 감화되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힘이 있었다면….”
“…….”
“힘이 있었다면, 제게 주어진 것들이 없었다면, 제가 등에 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없었더라면… 이 전쟁을 막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포근한 미소를 보이는 비숍 사제님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저도 모르게 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앙이 그리 두터운 편은 아니었지만 사제에게 속내를 풀어냈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는 것 같은 느낌, 눈 앞에 있는 사제는 언제나 저렇게 지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이었다. 자신 답지 않게 너무 많은 걸 쏟아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숍 상급 사제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간 것은 부담스러워질 정도의 침묵이 길게 이어졌을 때였다.
“만약에….”
“네.”
“만약에 말일세. 예브 카리나.”
“…….”
“진짜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네? 그게 무슨….”
“정말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냔 말일세. 물론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비숍… 사제님?”
“…….”
“…….”
백발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 목소리가 들린다네. 계시… 말일세.”
“…….”
“달빛의 성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들린다 이 말일세. 그래. 웃기는… 말이지. 참으로… 말도 안 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달빛의 성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네. 이 무의미하고 추악한 싸움을 끝낼 수 있다고 말이야. 그가… 정말로 성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나….”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까. 비숍 상급 사제님.”
“내… 내가 보기엔 말일세. 예브 카리나. 그는 신이 내린 성자가 확실하다네. 이 무의미하고 추악한 전쟁을 끝내러 온 성자 말이야. 내가… 내가 직접 그의 모습을 봤….”
“비숍 상급 사제님?”
“달빛을 따르는 자들에게 합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걸세. 예브 카리나. 만약 이 전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고통의 연쇄를 진심으로 끊고 싶다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바른 선택일지도 몰라.”
점점 눈이 변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진청 군사는 미쳐가고 있네. 이 대륙은 혼란과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 공화국도!”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왕국연합도! 제국도! 모두가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버리고 파괴하고 망가뜨리고 있다 이 말일세! 이런 상황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나….”
자신이라고 저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예브 카리나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달빛을 따르는 자들에게 합류해야 하네. 그게 유일하게 대륙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야.”
왠지 모르게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비숍 상급 사제의 말에 쉬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힘이 있다면, 등에 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전쟁을 막고 싶다고 했나. 가능하네! 달빛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라면, 분명히 이 폭력과 살육을 멈출 수 있을 게야. 이 대륙의 평화와 희망, 그리고 빛을 우리 손으로 다시 되찾는 걸세. 예브 카리나! 그자는 말일세. 어쩌면 바리안 님의 신도 일지도 몰라. 바리안 님이 직접 보내신 신도 말일세!”
“나… 나가 주십시오. 비숍 상급 사제님.”
“전쟁을 막아야 해! 이 미친 짓을!”
“나가 주십시오! 비숍 상급 사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예브 카리나!”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한 걸음 성큼 다가오는 백발의 노인이 시야에 비친다.
“자네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막고 싶다고 분명히 그 입으로! 그 입으로!”
“떨… 떨어지십시오. 상급 사제님.”
“…….”
“떨어지라고 말했습니다! 비숍 상급 사제!!!! 당장 그 미친 소리를 그만두란 말입니다!”
커다랗게 소리치자 정신을 차린 듯, 몇 걸음 뒤로 물러서는 비숍 사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축 처진 어깨가 괜스레 눈에 아른거린다. 늙은 노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미안하네… 흐윽… 미안해.”
조금이지만 그의 심정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이 백발의 노인 역시, 전쟁의 참혹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흔들린 것이 아닐까.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떨리는 어깨, 다시 한번 그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순간적으로 우악스러운 두 손이 목을 꽉 잡아 온 것.
“켁….”
숨을 쉬기가 힘들다.
“미안하네… 예브카리나… 흐으윽… 미안하네. 이 늙은이가 진심으로 사과함세.”
“켁…. 켁… 윽….”
“모든 게 대륙을 위한 일이야. 대륙을… 바리안 님을 위한 일이야. 흐으윽… 이 대륙에 다시 빛을, 평화를 찾아오게 하기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해 주게나.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 아아아아! 이 모든 것이 신의!”
“이… 이거… 놔… 놔….”
“이 모든 것이 달빛의 뜻이라!!!!”
그렇게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을 때.
별안간,
비숍 상급 사제의 목이 날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콜록! 콜록!”
“…….”
“콜록! 콜록! 콜록!”
누군가 뒤에서 그의 목을 친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허물어지는 비숍의 모습 뒤에 보인 인형을 확인한 이후에는 입을 커다랗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
“…….”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형, 공화국의 다섯 기둥 중 첫 번째 기둥,
“진청이 정말 광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오호대장군의 1좌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