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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43화 (1,44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43화

대륙전쟁(23)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형, 공화국의 다섯 기둥 중 첫 번째 기둥,

“진청이 정말 광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오호대장군의 1좌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유난히 검고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동공, 마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은 물론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지금 자신의 몸이 떨리는 이유가 방금 전에 있었던 비숍 사제와 있었던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그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인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죽을 것 같다거나,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거라는 느낌이 아니다. 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인간의 거죽을 쓴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너무나 무례하게도 눈앞에 있는 인간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종류의 인형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

정신이 번쩍 든 것은 좀처럼 깜빡이지 않았던 눈이 깜빡이는 게 시야에 비쳤을 때였다.

“도,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

“그… 늦었지만 공…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래서. 진청이 광증에 시달리고 있는 게 확실합니까.”

“…….”

“…….”

‘무슨 의도인 거지.’

당연히 말을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실제로 그가 어떤 목적을 위해 이곳으로 왔는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조금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혹 그가 진 군사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찾아왔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 말할 수 있을까.

공화국의 총통에게 모종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다. 아니면 그냥 그가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그에 대한 데이터가 있었다면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첫 번째 기둥에 대한 정보는 없다시피 하다. 그의 모습을 본 것도 저 먼발치에서 확인한 것이 전부였다.

공식적인 행사에도 쉬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심지어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에서도 그가 어느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었던가.

총통보다도 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혹자는 그가 총통과의 한시적인 계약을 통해, 오직 직계의 명령에만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혹자는 그가 공화국에서 유일하게 살인 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그가 진청 군사님과 튜토리얼 던전의 동기였다는 사실뿐이다.

심지어 그런 진청 군사님께서도 첫 번째 기둥을 따로 언급한 적이 없다. 자신이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그가 괴물처럼 강하다는 것 하나였다.

방금 전처럼 긴 침묵, 다시 한번 그가 눈을 깜빡인 이후에 다시금 말을 이었다.

“…….”

“…….”

“헛, 헛소문입니다.”

“…….”

“…….”

“그렇습니까.”

“네… 네. 물론 주변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군사님께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공화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작전을 완수하고 계십니다. 현재 군사님의 작전은 80퍼센트 이상 진행 중이며, 곧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실 수 있을 거라 사료됩니다.”

“그렇습니까. 진청답군요.”

“혹시… 본국에서… 나오신 겁니까.”

“본국의 지시로 조사를 내려온 것은 맞으나 생각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적어도 진청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네.”

“그에 관해 물었던 것은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말 그대로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사이가 나쁘지는 않으신 건가.’

둘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정보는 없다. 공화국의 모든 기둥들이 모일 때에도 첫 번째 기둥은 자주 참석하지 않았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괜스레 힐끔 그를 바라본다. 잘 정리된 검은색 머리, 자기 자신이 정리했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정리해 준 것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깔끔해 보이는 복장과 얼굴이다. 심지어 얼굴에도 흉터나 잡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면 창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결벽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군사님과는 다르게 그가 결벽증을 앓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타고난 것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학습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을 억지로 갖추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평균보다 훨씬 커다랗게 보이는 키, 아마 군사님보다 조금 더 크지 않을까.

말라 보이지만 잘 단련된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 모를 탄탄한 몸까지.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아무 특징도 없는 검, 눈에 띄는 장식도, 문양도, 글귀도 새겨져 있지 않다. 일반 병사들이나 쓸 법한 그런 싸구려 검처럼 느껴졌다.

“혹시 군사님께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

“…….”

“괜찮습니다. 아마 제게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네. 그게… 무슨… 아마 이곳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신다면… 분명히….”

“제가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진청은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

“…….”

“그럼. 설명 부탁드립니다.”

“네? 어떤 설명을….”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 저, 저도 확실하게… 설명을 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째서 갑작스레 비숍 상급 사제님께서 변절을 저지른 것인지… 도대체 달빛을 따르는 자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혹시 그들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습니까?”

“…….”

부정의 표시였다.

“현재 공화국의 보급창고와 소규모 부대를 습격하고 있는 탈영병들입니다. 전쟁을 멈춘다는 사상을 필두로 테러 아닌 테러를 일삼고 있으며… 현재 그들의 위치와 정확한 정체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성자라고 부르고 따르고 있으며….”

“비숍 상급 사제는 그들과 접촉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숍 상급 사제는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미루어보아… 정신계 마법에 당한 것은 아닌지… 한번 조사를 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조사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제게 일일이 허락을 받고 보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네.”

“그보다 바깥으로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심지어 목소리의 높낮이도 느껴지지 않으니 어떤 의도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던 터라 더욱더 그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다.

딱히 이곳을 통제하려고 찾아온 것 같지도 않다. 어째서 바깥으로 나가자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을 보고서는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적습이다!”

“적습입니다! 예브 카리나 님!”

“달빛을 따르는 자들입니까?”

“제국군입니다! 제국군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즉, 즉각 대응하겠습니다.”

“네.”

이곳저곳에서 화마와 함께 포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적들이 벌써 안으로 진입한 것인지,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언제, 어떻게 이곳으로 당도할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해야 할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니, 후퇴를….”

‘병력을 물려야 해.’

시야는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적 병력과 아군 병력이 뒤섞여 있다. 일단 병력들을 뒤로 물린 이후에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진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렇게 곧바로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첫 번째 기둥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게 시야에 비쳐온 것.

‘어떻게 해야 하지? 후퇴를? 아니…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하지?’

그는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었지만, 그가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이상 최종결정권은 그에게 있다. 내 판단대로 움직여야 하나? 아니, 애초에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이 있는데 도망칠 이유가 있나?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다시 집어넣었을 때였다.

“죽어라! 공화국의 개들!”

첫 번째 기둥이 검을 휘두른 것이다.

아니,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의 몸에서 잠깐 잔상 같은 것이 생겼고, 달려들던 제국군의 병사의 목이 날아간 것이 눈에 보인 전부였으니까.

자신은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단지 병사의 목이 날아간 결과를 보고 그가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인지했을 뿐이었다.

‘저게 도대체….’

그다음에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수 명의 병사가 창을 들고, 검을 들고 방패를 들고 그를 향해 돌진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같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목이 날아간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니라 정확히 목만 날아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목과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 병사는 자신이 베였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의 몸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걸음을 옮긴 그는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중, 분명히 검이 닿지 않은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기저기에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적군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 튀는 피도, 군화와 군마들이 튕겨내는 흙도 그에게 닿지 않는다.

이미 전투가 시작된 지 한참이나 흐른 것 같은데 그의 얼굴과 몸은 너무나도 깨끗하다.

“…….”

“…….”

누군가 주문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많은 강자를 봐왔다. 4년간 참혹한 전쟁을 겪어오면서,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전투를 겪어오면서 말이다.

제국 유명한 길드의 일원, 다완의 안개소환사와 저격수, 연방의 천재라고 불렸던 귀족, 심지어 같은 오호대장군까지.

여신을 벌한 채찍 울드의 주인 샤오 린과 로나프의 싸움꾼이라 불리는 발렌틴 알렉산드로, 물론 그들의 전투 모두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그들이 싸워왔던 전장에 함께 있었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적어도, 적어도 그들의 강함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해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강하다는 것은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다르다.

‘지금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과장해서 말하자면 검을 펼치고 있는 것 같지도, 전투를 펼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이 베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베는 것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있었다.

‘뭐야.’

그러다 우연히 그의 눈을 바라본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한 얼굴, 심지어 표정이 변하지도 않고 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쟁터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살인이 주는 쾌감에 취해 있었다면 이런 종류의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한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아무것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쟁의 열기도, 병사들이 토해내는 살고자 하는 외침도, 두려움과 공포도, 달려들고 있는 이의 투쟁심도 모두 그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는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것도 닿지 않는다.

그는 그냥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무감각하게, 마치 간단한 일과라도 하는 것처럼, 예의 그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눈으로.

어째서 진 군사님께서 그에게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건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한 줌의 피도 묻어 있지 않은 검을 다시 집어넣은 첫 번째 기둥이 눈을 깜빡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달빛을 따르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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