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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44화 (1,44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44화

대륙전쟁(24)

음침하고 친구 하나 없을 것처럼 생긴 미친 사이코패스 살인기계 새끼였다.

-군사님.

-…….

어처구니없지만 앞선 표현 외에는 지금 보이는 광경을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시바 군사님….

솔직히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조차 녀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정진호였기 때문일까. 자연스레 녀석과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소한 정진호는 살인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쾌락 살인마라고 부르기에는 좀 애매하기는 했지만 녀석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호기심을 탐구하고자 하는 성향이 존재했다.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회성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무리를 만들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로 꾸려진 팀을 말이다. 아직도 그 새끼가 뒈질 때 들려왔던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지워지지 않는다.

시바 근데 그 살인마 새끼도 거를 것 같은 인형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쟤는 정진호도 거를 것 같자너.’

“…….”

‘쟤는 여단, 입단심사에도 떨어져서 못 들어올 게 분명하자너.’

저 미친 살인기계에게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목적도 아니고 수단도 아닐 것이다. 녀석은 저 행위에 그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만약 녀석이 검이 아니라 다른 것을 들었다면, 이런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소환됐었다면 구태여 저런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예로 정진호는 현대에서도 사이코패스 살인마로서 살아왔겠지만 녀석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년 시절의 정진호가 작은 동물들을 죽이는 미친 짓거리로 본인의 호기심을 탐구했다면 소년 시절의 저 새끼는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죽어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번외로 우리 현성이는 시바 울고불고 불쌍하다고 무섭다고 염병을 떨었겠지.

진 군사는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세 부렸을 확률이 높겠고, 우리 하얀이는 큼지막한 눈물을 흘리며 묻어주지 않았을까. 박덕구는 범인을 잡겠다고 설치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희라 누나는… 상상이 안 가네….’

물론 번외 버전은 전부 다 쓸데없는 이야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있는 녀석 ‘류한’이 아닐까.

소문만 무성했던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이요, 오호대장군의 1좌였다.

‘공화국의 첫 번째 기둥은 시바 그냥 공기인 줄 알았는데….’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의 1좌는 2회 차에서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사라졌었고, 1회 차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1회 차를 전부 알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김현성 역시 1좌에 대해 크게 언급한 적이 없다. 대륙전쟁에서도, 외신전에서도 말이다.

물론 1좌가 강하다는 것 정도야 인지하고 있기야 했다. 같은 오호대장군인 목 조르는 누나가 녀석을 정말로 강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으니까.

‘근데 시바 강하면 뭐해. 보이지를 않았는데.’

정보도 없고,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공화국의 템플러마냥 총통가문을 지키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것.

심지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공화국의 총통, 나 역시 그 여자를 직접 마주친 적도, 본 적도 없었으니 그 추측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졌다.

그녀와의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음침한 공화국 놈들이 총통의 보안에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 터라 공화국의 1좌도 그녀의 보안을 위해 소비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은근히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나 보네.’

최소한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 총통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나름의 재량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던 모양.

도대체 이 정도 되는 새끼가 1회차 2회차 통틀어서 뭘 하고 있었는지, 도대체 시바 인류가 힘을 합쳐서 싸웠던 외신전에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때는 제거당한 상태였나? 아니면 자살이라도 했나?’

물론 대륙전쟁 당시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고맙기는 했지만, 지금도 딱히 대륙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없어 보이지 않은가.

‘대륙전쟁은 1회차 때도, 2회차 때도, 내부에서 말이 갈렸던 거였나.’

사실 이것저것 추측하고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언제나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가까운 곳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군사님. 시바. 군사님.

-…….

-군사님!

-…….

-군사님 진짜 급한 일이라서 그러는데요.

‘내가 뭐 시바 또 잘못했나? 얘 왜 이래?’

아무래도 혼자 1진청이 폭주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이지? 이기영.

‘다행히 그건 아니었자너.’

-…….

-…….

-저… 잘 지내셨어요?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하는 말이죠. 요즘 뭐 하나 싶기도 하고… 본 지 오래됐잖아요.

-김창렬을 통해서 이미 내 동선과 계획을 전달했을 텐데.

-아니, 사람 하나 거쳐서 이야기를 듣는 거랑, 직접 대화를 하는 거랑은 좀 다르죠. 공화국에 썩어빠진 지휘관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군사님을 생각하니까 걱정이 들 수밖에 없죠. 뭐 군사님 거기 애들 답답하고 하드캐리 해주고 그러는 거 아니죠? 적당히 알아서 잘하고 있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맡은 일 외에는 딱히… 네놈도 알다시피 그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게 가장 중요하니 말이다.

-아아아. 그렇구나. 선희영 쪽은 좀 어때요?

-김현성의 행방에 대해서 묻는 거라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더군. 내 쪽에서도 최대한 찾고 있는 중이다. 일단 공화국 내부에는 보이지 않아. 이번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상황에 전쟁 안 하고 있으면 뭘 하고 있겠어요?

-글쎄. 어쩌면 진입하고 싶은 시기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벨리에에게는 최대한 육망성 위주로 조사를 하라고 지시해 놓은 참이니… 네놈은 네놈이 할 일이나 똑바로 하도록.

‘이 새끼 왜 이렇게 까칠해.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맞불을 놓고 싶었지만 궁금한 게 있으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튜토리얼 동기라고 했었고.’

일면식은 없을 리가 없으니까.

뭔가 사정도 있어 보였으니까.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말하기 싫다고 강짜를 부린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진짜 궁금한 게 있다니까요.

-…….

-여기 지금 1좌와 있는 것 같다고요.

-…….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여기 와 있다니까요. 지금. 우리 부대랑 가까운데. 군사님 쪽에서는 몰랐어요?

-…….

‘알 리가 없자너. 1진청도 모르고 있었는데. 네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아니, 어쩌긴 뭘 어째요. 지금 그 새끼가 여기 가까이 와 있다니까. 지금 그 살인기계 때문에 이쪽 계획 다 망가지고 발 묶여 있다니까요. 빨리빨리 이동해야 위치가 특정이 안 되는데, 여기 계속 발 묶여 있게 생겼어요. 비숍 상급 사제 계획도 전부 날아갔고… 제국군은 전멸… 심지어 류한한테 발견되면 여기 얘들 다 죽은 목숨인데… 성지훈이고 나발이고 몇 초도 못 버티겠구만. 아니,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걔는 왜 그렇게 세요?

-…….

-살다 살다 진짜 그런 괴물 같은 새끼는 처음인데. 그리고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군사님이랑 튜토리얼 동기라던데… 뭐 정보 없어요?

-딱히. 그다지 접점은 없다.

-어떻게 1좌랑 2좌가 접점이 없어요? 튜토리얼 동기면 더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튜토리얼 던전 안에서 함께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접점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군사님 던전에서 걔가 하드캐리 했죠? 군사님은 걔 뒤만 쫄래쫄래 쫓아다니고.

-어처구니가 없군. 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엄연히 내가 주축이 돼서 공략조를 운영했었다.

-…….

-어차피 튜토리얼에서 나오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평범한 성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니 어려울 것도 없지 않나?

‘여전히 재수 없자너.’

-지레 겁먹은 멍청이들이나 쓸데없는 짓거리에 심력을 소모하는 놈들이 아니고서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최다 인원에 최단 시간이었다.

-공화국 내에서 말하는 거죠?

-…….

-…….

-거기에 녀석의 활약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젓겠지만….

‘가볍게 무시하자너.’

-녀석도 처음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고 이야기해 주지.

-네? 겁먹고 있었다고요?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군.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다. 여기서 죽어도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이었지. 실제로 하는 행동도 그랬고 말이다. 살고 싶은 의욕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는 욕구도, 도망치고 싶다는 두려움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나 탐구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기영 네놈도 그 녀석을 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뭔 말인지는 대충… 알 것 같기는 한데요. 살고 싶은 의욕이 없다는 것치고는 잘 살아 있는데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니… 아무것도 없는 그 멍청한 머리로도 생각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거겠지. 솔직히 말하지. 나는 놈을 인격체라고, 인간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새끼… 시바 아무리 그래도… 말 한번 심하게 하네.’

-놈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필히 선천적이겠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종류야. 놈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목소리에서도 마찬가지지. 짧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튜토리얼 던전 때부터, 가끔 마주쳤을 때에도… 놈에게서는 아무것도 느끼지도 보지도 못했었다. 놈은 그냥 텅 비어 있어. 최소한 내가 마지막에 녀석을 봤을 때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마지막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겠군. 놈이 변할 리가 없을 테니까.

‘진 군사 성격에 걔 면전에 대고 똑같이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얘… 천재 정도가 아니잖아요. 얘 정도면 그냥 괴물급이라고 봐도 되는데. 살살 구슬려서 써볼 생각 안 해봤어요? 군사님 어차피 인간을 말로 보잖아. 얘보다 완벽한 장기 말이 어디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고 명령만 내리면 내 적은 알아서 썰어주는데.

-세 가지만 말하지. 첫 번째로, 인간을 장기 말로 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다. 두 번째로 전쟁을 치르는 것은 말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다. 세 번째로… 기계라는 건 언젠가는 고장 나는 법이다. 난 언제 고장 날지 알 수 없는 물건을 사용하는 취미는 없다.

-왜 갑자기 어쭙잖게 인간, 인간 거려요? 솔직히 말해서 군사님 때문에 뒈진 병사들이 한 트럭일 텐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잖아요.

-껍데기만 움직이고 있는 놈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가볍게 무시하네.’

-무력이 나쁘지 않다는 건 사실이지. 교국 1좌라는 허울뿐인 명칭도 얻었고, 나름 명성도 쌓아가고 있고. 네놈 말대로 강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군. 순수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그래….

-군사님보다 센 거 아니었어요?

-어이가 없군.

‘이번에는 무시 안 하네.’

-1좌니 2좌니 하는 것들은 전부 허울이다. 총통이 내린 직위일 뿐이지. 누가 더 강하냐 강하지 않느냐를 재단하는 수단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

-그리고… 나는 딱히 네 옆에 있는 그 머저리, 성검용사가 류한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

-네놈이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도, 징징 거릴 필요도 없다는 거다.

‘이 새끼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눈깔 삐었어요?

타이밍 좋게 텐트 안에서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이 살짝 튀어나온다.

“나… 잠이 안 오는데… 빨… 빨리 들어오면 안 될까?”

‘오늘은 괜히 더 한 대 치고 싶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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