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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45화 (1,44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45화

대륙전쟁(25)

“나… 잠이 안 오는데… 빨… 빨리 들어오면 안 될까?”

“…….”

“사, 사실 살짝 잠들었는데 또 악몽을 꿔서….”

어쩌면 진청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성검용사의 저런 모습을 보니 저절로 신뢰가 사라진다.

추위도 잘 타지 않는 주제에 텐트 밖으로 얼굴만 튀어나온 모습에 주먹이 꽉 쥐어진 것은 당연지사. 카리스마 있었던 류한의 모습과 저절로 비교하게 된다.

심지어 훈련한 것에 비해 활약이 지지부진한 것이 문제, 아니, 활약이랄 것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투에서도 놈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마음가짐은 달라진 것이 확실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 결과를 볼 수가 없으니 이쪽에서도 애가 탈 지경이었다.

‘아니, 시바 아무리 달라졌어도… 쟤는 못 이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진 군사가 소년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은 아닐까. 그야 이런 찐따 열혈 캐릭터가 저런 종류의 빌런을 만난다면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이 국룰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만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현실은 냉혹하자너.’

기합과 열정 같은 게 아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레벨이 맞아야 정신력도 논할 수 있는 법이다.

데이터상으로 평가하더라도 적어도 두 수는 아래에 있다. 유리엘의 도움이 있다면 그 격차를 조금은 줄일 수야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성지훈이 녀석의 검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물론 이 새끼도 놀라울 정도의 천재이기는 하다.

‘근데 걔는 천재라고 부르기도 부족하게 느껴지자너.’

과장해서 말하면 어디서 검을 배운 것 같지도 않다. 분명히 우효 녀석마냥 가장 효율적인 검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우효 새끼와는 달리 검을 휘두르며 깝치지도 않는다.

물론 우효 자식은 본인의 유연함과 탄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지만 암만 그래도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면 요란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

모든 동작이 간결하고, 불필요함이 없다.

“이제… 악몽 안 꾸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나도 몰라. 갑자기… 네, 네가 자다가 몰래 바깥으로 나가니까 그런 거잖아!”

“제가 언제 몰래 나갔어요? 그냥 용사님이 주무시는 것 같아서 바람이나 쐬려고 나온 거죠. 제가 무슨 베이비시터예요? 용사님 자는 거나 지켜보고 있게.”

“미… 미안….”

‘저렇게 바로 기죽으면 좀 불쌍해 보이자너.’

“근, 근데 갑자기 바람은 왜… 왜 쐬려고? 혹,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그래도… 얘는 착해.’

“무… 무슨 힘든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래… 착하기는 해….’

슬그머니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녀석, 괜스레 옆에 앉는 꼴이 비 맞은 소동물처럼 보인다.

“아니요. 그냥…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불안해서요.”

“응?”

“열심히 발버둥 치고는 있는데 뭔가 큰 진전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물론 천천히 하나씩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 병력이 발각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니까요. 이 전선에 갇혀 버린 지 벌써 며칠째잖아요.”

“…….”

“그렇게 큰 소리 뻥뻥 친 주제에…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거 알지? 출정식 떠날 때, 뭔 같이 죽는다고 하지 않았었냐고. 보름달 된다고 하지 않았었냐고.’

아무리 아는 게 없는 놈이라고는 해도, 매일매일 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었으니 현재 상황을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달빛을 따르는 자들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맞다. 실제로 이 정도 규모의 병력으로는 믿기 힘든 성과들을 연일 갱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국과 공화국군 둘 모두를 상대로 5번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고, 보급품을 탈취하고 징집병들을 해방시켰다.

뜻을 함께하기로 한 많은 병사들로 인해 덩치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전쟁을 막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있냐고 한다면 고개를 젓겠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달빛을 따르는 자들은 계속해서 놈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고 있어도, 결국 공화국과 제국이 부딪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실제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계속해서 소규모 전투를 펼치고 있었던 두 집단의 기 싸움은 점점 격렬해 지고 있는 중, 사실 이미 기 싸움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몇몇 전투들은 대규모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고, 사상자의 숫자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합군이 마지막 전투를 위해 준비했던 병력을 분할해 버렸다. 아무래도 진 군사처럼 병력 전체의 통제권을 가진 게 아니다 보니 한 번에 부딪치는 것보다는 여러 곳에서 찌르는 게 맞다는 가면 듀오의 판단이었다.

1군사 역시 1기영과 1지혜에게 대응하기 위해 병력을 분할하고 합치고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 1진청은 상황을 지켜보며 간을 보고 있었으니 사실상 아직까지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달빛을 따르는 자들 때문이 아니라 가면 듀오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전장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그 변화가 너무나도 정신없었던 터라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 즉각 대응할 수 있을 리 만 무, 사실 이 시점에서는 김창렬이 가지고 있었던 정보 길드도 무의미해져 버렸다.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야지.’

블러핑이나 구라핑이 하도 많다 보니 들려오는 소식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넘 치열하게 싸우고 있자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유의 입장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들이 괜한 짓을 해서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즈음은 현타가 올 타이밍이었다는 거다.

“아무것도 하는 게 없기는! 네, 네가 아니었으면 벌써 엄청 큰 전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다 죽었을걸?!”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기는 해. 위로하려면 똑바로 해.’

희미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진유가 할 수 있는 전부. 이 새끼는 지 들으라고 한 소리인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큰 소리를 치며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 올린 성과를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이쪽이 녀석의 어설픈 위로로 기운을 차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네. 용사님 말이 맞아요.”

말은 맞다고 하고 있지만 절대 맞지 않다.

“그럼 들어갈까요?”

“정,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 괜찮겠냐고.’

“전부 다 괜찮아진 거 맞는 거지?”

‘아, 괜찮아졌겠냐고.’

성검 용사 역시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광대 짓을 하다 보면 곧 기분이 풀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새였다.

자기 전에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는 것부터, 개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성대모사, 심지어는 언젠가 SNS에서 돌아다녔던 댄스를 선보이는 것까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아마 물품보관소에서 일본문화를 즐기던 녀석들이 추던 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에 들었던 녀석이었지만 아마 그다음 날까지 이쪽의 기분이 풀어지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

아니나 다를까 흔들리는 동공이 눈에 띄었다.

“먼, 먼저 일어나 있었네.”

성검용사의 입장에서는 괜스레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잠은… 잘 잤어?”

‘아니. 진 군사랑 이야기하느라 한숨도 안 잤는데. 너는 쿨쿨 잠만 잘 자더라.’

“너… 괜, 괜찮지? 괜찮은 거 맞지?”

“네. 괜찮아요. 오늘은… 전선이 풀려 있기를 기대해야겠어요. 저번에 꼬리를 밟힌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잖아요.”

“어, 어제도 분명히 말했지만 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라니까. 회의도 많이 했고, 전술 훈련도….”

저 멀리서 옥사나를 비롯한 몇몇 인원들이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꽤 다급해 보이는 얼굴, 그 얼굴을 보고서는 진청이 일을 제대로 해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새끼들 치워줬구나.’

제국군에게 습격을 받았으니 본인들의 위치가 발각되었다고 판단하고 발을 내뺐거나, 전선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합류한 것이 아닐까.

2군사의 재량인지, 아니면 예브 카리나의 병력들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쪽을 둘러싸고 있던 전선에 구멍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다가 제일 꺼림칙했던 예브카리나가 알아서 사라져줬으니….

‘조금 더 활동하기 편할 게 분명하자너.’

대충 어떤 용무로 이쪽을 찾아왔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옥사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옳다.

“옥사나 님?”

“성자님.”

“네. 혹시 무슨 일이….”

“멀지 않은 전선에서 제국군과 공화국군의 전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일단은 깜짝 놀란 척.

“이미 병력은 이동한 것 같습니다만,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전투였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제국군이며, 현재는 레인저들이 현장 파악과 조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근처에 다른 제국군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기다리고 있었던 충격적인 소식이다.

“생존자는 있나요?”

“확실히 파악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근처 다른 병사들이나 병영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일, 일단 구조대를 보내겠어요. 아니, 저도 함께 가겠어요. 옥사나 누나는 공화국군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파악 부탁드려요.”

“네.”

언제나 그렇듯 다급히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 지금 이 순간에도 구조대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병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본래 흑장미 살롱이 하는 활동과 더 어울리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달빛을 따르는 자들 역시 전쟁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나름대로 무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새끼도 예브 카리나랑 같이 전선을 이탈한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예브 카리나와 함께 떠났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았지만 애초에 혼자 활동했던 녀석이었던 터라 위치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한번 해당 지역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혹시 알겠는가.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느낌이다. 김창렬과 알프스, 심지어 성지훈까지 구조대에 편입시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류한 녀석이 본대를 습격할 가능성도 있으니 몸을 내빼려면 소규모 인원으로 움직이는 게 편했으니 말이다.

‘아… 시바 왠지 불안한데.’

“…….”

“…….”

‘왠지 불안한데.’

“…….”

“…….”

‘왠지 만날 것 같은데.’

“…….”

“…….”

‘왠지 시바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마주칠 것 같은데… 아니 시바 안 가고 기다리고 있어도 여기로 찾아올 것 같은데….’

이유 없는 불안함은 없다고 했던가.

“…….”

“…….”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가리고 있던 복면으로 한쪽 팔을 지혈시키는 김창렬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울지 마라. 알프스.”

“어… 어… 으… 그치만… 저, 저 때문에… 선배님… 선배님 팔이!”

“…….”

난데없이 바다 괴물에게 한쪽 팔을 뜯긴 것이 아니다.

파란 길드의 전투력 측정기의 팔을 잘라낸 것은 류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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