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46화
대륙전쟁(26)
초기 파란의 전투력 측정기는 박덕구였지만, 현재 가장 전투력 측정기에 어울리는 것은 단연 김창렬이었다.
박덕구야 애초에 처맞기만 하는 역할이었으니, 전투력 측정기라기보다는 펀칭머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우리 창렬이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전투력 측정이 가능하자너.’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들 중에서는 최강인 것 같은 느낌.
김창렬은 괴물 같은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몸을 극한의 극한으로 단련한 모험가였다.
김현성이나, 우효열, 차희라, 쓰로누스, 바하무트, 같은 녀석들과 비교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위에 나열한 놈들은 애초에 어디 한 군데 정도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김창렬은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특출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노력으로 일구어낸 신체. 상태창을 잘 이용하고, 강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친 결과로 위로 올라섰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암살자치고는 유난히 화려한 신체 스펙이 녀석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해준다.
심지어 몸을 살펴보면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 근육을 계속해서 압축해 몸에 꽉 담아놓은 느낌인지라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그래도 약한 내구는 어쩔 수 없었지만 녀석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한 것이다.
혹시나 전면전이 펼쳐질 것도 고려해 암살기술뿐만 아니라 따로 배워놓은 잡기도 수두룩하다.
얼마나 잡기들이 많은지, 마음의 눈으로 읽다 보면 김창렬의 상태창보다 긴 상태창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단언하건대 녀석은 자신이 재능이 허락해 준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소지품 안에 채워 넣었다. 녀석의 주머니가 터지지 않을까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녀석의 상황이 이러했으니, 어중간하게 벽을 넘었다 깝치던 놈들도 김창렬을 넘을 수 있을 리 만무, 적어도 창렬이는 잡아줘야 진짜 괴물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김창렬이 벽을 넘은 인간과 벽을 넘지 못한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다.
“…….”
“…….”
당연히 김창렬의 팔을 잘라낸 류한에게 놀라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현시점의 1회차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김창렬의 팔을 잘라낼 수 있는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상황을 바라본다면 아마 이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조대가 진입하고 나서….’
성검용사 이 새끼가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목이 잘린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을 때, 알프스가 주변을 살피며 기웃거리고 있었을 때였다.
저벅저벅 음침한 사이코패스가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 알프스는 상대방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고 경계하기보다는 검을 뽑았다. 흰둥이도 보유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멍청한 행동처럼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녀의 판단도 이해할 수 있다. 저런 괴물이 갑작스레 등장할 거라고는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알프스도 틀림없이 강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인재였고, 본인도 본인 스스로가 강하다고 인지하고 있었을 터, 당연히 방심의 대가는 죽음이다.
목이 날아갈 뻔했던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창렬이 팔을 내주는 대가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좀… 뭐… 애매한 상황이기는 하기는 했어.’
하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는 법이다. 알프스가 방심했고, 김창렬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녀석이 김창렬의 팔을 잘라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녀석은 파란의 전투력 측정기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에 성공했고, 자신이 벽 너머에 있는 괴물들과 동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인재라 선언한 셈이었다.
“…….”
“…….”
다시 한번 앞을 바라보자, 망원경으로 한 번 본 적이 있는 인형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끄러미 김창렬의 잘려져 나간 한쪽 팔을 바라보고 있는 류한, 다시 한번 봐도 미치광이 살인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녀석의 주변에만 비상식적으로 공기가 내려앉은 것 같은 분위기, 실제로 보니 녀석의 얼굴과 모습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이쪽도 당황스러울진대 녀석을 처음 본 이들이 느끼는 당황스러움이 어떨지는 뻔했다.
‘소름 끼치자너.’
들려오는 것은 호들갑 떠는 알프스와 김창렬의 목소리밖에는 없다.
“선배님… 흐으으윽… 어떻게 해요. 선배님!”
“호들갑 떨지 마라.”
“선, 선배님 팔이… 부, 부길….”
“입조심 해라. 알프스.”
“아… 죄, 죄송합니다….”
‘알프스 멘탈 나갔자너.’
그 많은 구조대의 인원들 중에 둘 밖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부 몸이 굳어버렸다.
눈앞에 있는 이질적인 인간을 보고, 또 눈앞에서 일어난 참상을 보고 잠깐 동안 생각하는 것을 멈춰 버렸다.
심지어는 성검용사 이 새끼의 반응도 다른 엑스트라들과 다르지 않다. 류한의 동공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성검용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위축되고 있었고 작아지고 있었다.
“…….”
“…….”
‘다들 질렸다는 표정이자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대체 눈앞에 있는 인형은 뭔지, 제대로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도망치거나, 비명을 지르는 게 더 나을 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누군가 대신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한 모습, 예상외로 정적을 깬 것은 류한도, 성검용사도 아닌 엑스트라 병사 하나였다.
“이…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이 너무나 공포에 질리면 저럴 수도 있는 거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녀석을 바라봤지만 당연히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툭.
하고 떨어지는 머리.
“이… 이 개새끼가!!!”
동료의 죽음을 보고 분개한 엑스트라 병사 2의 머리도 곧바로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첫 번째 병사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 용기에 감화된 이들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는다.
비현실적이라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평화로운 장소에서 갑자기 살인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현시점에서 함께 활동하던 동료의 머리가 하늘로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음이 분명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김창렬이 녀석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
팔 한쪽이 나가떨어져 녀석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창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시야에 비친다.
‘화났구나. 창렬이.’
팔 한쪽이 날아가서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내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게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초월자를 눈앞에 둔 괴물을 시험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김창렬이 곧바로 녀석에게 대응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판 해보고 싶은 거구나.’
당연히 곧바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방금 정신을 차린 것처럼 말이다.
“도… 도망치세요.”
“네?”
“도망치라고요! 지금 당장 후퇴하겠어요!”
“성… 성자님?”
‘어차피 엑스트라들은 싸워봤자 개죽음이기는 해.’
물론 무리한다면 녀석을 이곳에서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창렬, 알프스, 그리고 성검용사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성검용사와 알프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잡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쪽의 출혈도 뼈 아플 것이라는 게 문제, 알프스는 몰라도 솔직히 저 상태의 성검용사가 칼에 맞아 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녀석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김창렬이 남은 팔마저 잘려 나가는 날에는 아예 모든 균형이 무너진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긁힌 김창렬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이유도 있기야 했지만 사실 류한을 현시점에서 제거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만나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 만났으니 일단은 몸을 뒤로 빼는 것이 상책이다.
이쪽의 명령에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순식간에 전열을 정비하고 몸을 뒤로 빼기 시작, 이쪽은 김창렬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게 맞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김창렬은 버리고 가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리액션이었다.
당연히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알프스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부… 부길… 성자님?”
‘부길 성자는 또 뭐야.’
“저… 저도 남겠어요! 성자님!”
‘와. 얘는 아직도 창렬이를 모르네.’
시바 창렬이가 너랑 같이 그냥 웃어주고 편하게 대해주니까 얘가 진짜 그냥 전투력 측정기인 줄 아냐고, 팔 하나 없다고 당황할 군번이었으면 내가 괜히 우리 창렬이한테 무한 신뢰를 보냈겠냐구.
“방해예요.”
“네?”
“방해라고요.”
“아….”
“명령이에요. 지금 당장 후퇴하겠습니다. 알프스 님은 떨어진 팔이나 챙기세요.”
“네… 네.”
직후 멀지 않은 곳에서 검과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류한,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녀석을 마주하고 있는 김창렬, 전투 시작과 동시에 입안에 있는 암기 하나를 쏘아내는 우리 창렬이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그 모습을 보고서는 김창렬이 놈을 만만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물론 한쪽 팔이 없이 시작하는 페널티도 이유 중에 하나였지만 암기를 사용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발로 모래도 차는 것 같자너.’
물론 저 정도 수준에 이른 이들에게는 크게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전투라는 건 이런저런 경우의 수에 의에 승패가 갈리는 법이다.
다시 한번 모래를 발로 차는 척하면서 암기 쏘아 보내기. 검을 쥐고 있는 손으로 어떻게 암기를 던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녀석이 계속해서 류한을 압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와중에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성검용사 이 새끼가 몸을 뒤로 내빼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바 빨리 도망가야지. 지금 뭐 하고 있어.’
방금 전까지 위축됐었던 모습이었는데, 분명히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성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못 해….”
‘뭐….’
“용서 못 해.”
‘아니, 갑자기 이 새끼 왜 이래? 어디서 발작 버튼 눌렸어?’
“절대로 용서 못 해!”
‘아니, 뭐야? 시바 왜 이래? 이 새끼는 갑자기!?’
“용사님!”
“너만큼은 절대로 용서 못 한다고!!”
‘아 시바 저 감성은 또 뭔데. 시바. 이거 만화 아니라고 시바! 너 창렬이 그렇게 좋아했었어?’
김창렬의 팔이 날아가자마자 발작 버튼이 눌렸다면 의문을 표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갑작스레 폭주한 성검용사가 검을 꽂아 들고 김창렬과 검을 부딪치고 있는 류한에게 쇄도하기 시작한다.
시바 아무 전조도 없는 무식한 돌진이었던지라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그 흥분한 상태에서도 제대로 검술을 펼치면서 달려들고는 있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흐름을 깨는 격이 되어버렸다.
파티 플을 해본 적도 없었던 녀석이었던 지라 오히려 김창렬에게 방해만 되는 움직임.
알프스 때와 같다. 류한은 성검용사의 목을 날려 버릴 것처럼 검을 휘둘렀고, 김창렬은 성검용사를 밀쳐내느라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악!”
베인 건 김창렬인데 비명을 지른 건 엉덩방아를 찐 성검용사. 김창렬의 얼굴에 짜증이 깃드는 것이 당연했다.
“당장….”
“아… 이… 이름 없는 형?”
“당장 꺼져!”
‘그래 시바. 좀 꺼져! 진짜! 아니!’
퍼뜩 정신을 차린 성지훈은….
“아… 아… 형… 형?”
“일어나서 꺼지지 못해! 이 모자란 새끼! 제길!”
‘우리 점잖은 창렬이 입에서 욕 나오게 할 거냐고! 진짜! 속마음 튀어나오게 할 거냐고!’
다시 한번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만화 속 주인공의 절규마냥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으…흐으으윽… 흐윽…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창렬이 안 죽어. 이 새끼야. 멀쩡히 돌아올 거야.’
“…….”
‘그렇지? 창렬아?’
“…….”
“…….”
김창렬이 놈을 떼어놓고 귀환할 것이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나저나 이 새끼는… 도대체 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시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우리한테 집착하고 있어?’
놈이 어째서 달빛을 따르는 자들을 쫓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진 군사 이 새끼… 나한테 이야기 안 한 거 있는 거 아니야?’
합리적인 추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