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47화
대륙전쟁(27)
‘애초에 진 군사한테 솔직함을 기대하는 것부터 어리석었자너.’
내가 아는 이들 중에 가장 솔직하지 않을 것 같은 놈들을 꼽아보자면 당연 진 군사라 자부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새끼의 개인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없다. 딱 업무적인 관계를 칼같이 유지하고 있었던 녀석, 절대로 본인에 대해서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성격이었으니, 사실 이전에 녀석의 방에 들어간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디스패치가 와도 이 새끼 사생활은 못 캐낼 것 같자너.’
심지어 사생활이 있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 일과 도박을 제외하고서 뭘 하는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딱히 친한 지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에게 과거를 캐물었으니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리 만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진청과 류한 사이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친 사이코패스 살인기계가 녀석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대충 우리한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거랑 결이 비슷하기는 하겠지.’
이유가 뭔지 예상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본래 인간 같지 않은 새끼들일수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는 법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인간이 아니었던 외신들이 그러했다.
세라핌, 케루빔, 도미니온스, 쓰로누스.
녀석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것을 부러워했다. 물론 창조주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든가, 인간을 질투했다든가, 각각이 가지고 있는 이유가 차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들은 놈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는 것 하나였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인 류한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 아니었던가.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이 모종의 사건을 겪고 난 이후 진청을 통해 무언가를 봤고, 달빛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도 같은 것을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한 추론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흐으윽….”
‘그 와중에 진짜. 개 시끄럽네.’
“흐윽… 흐으으으으윽….”
‘아 진짜.’
“어째서 형을 내버려 두고 온 거야!”
‘네가 갑자기 열혈 만화 주인공 빙의해서 시바 창렬이가 옆구리에 칼침을 맞았는데, 그걸 왜 내 탓을 해?’
물론 본인의 무력함에 화가 나 아무렇게나 지껄인 외침으로 보이기는 했다. 성검용사가 아무리 멍청하다고는 해도, 그때 그 상황에서는 내가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둠기영 때 선희영이랑 희라 누나 생각나자너.’
“전부… 다 죽일 수는 없어요.”
“뭐… 뭐?”
“용사님이나, 다른 분들을 거기서 허망하게 잃을 수 없었다고요. 저라고… 저라고…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눈물샘에 눈물을 가득, 평소보다 더 약한 모습을 선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저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 내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던 성검용사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당연지사.
심성이 악독한 새끼는 아니다 보니 내 표정을 본 이후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결국 녀석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윽… 흐으으으윽… 나 때문에….”
‘그래 다 너 때문이야.’
“흐으윽… 아직 이름도 듣지 못했는데… 흐윽… 끄윽… 나만 아니었어도….”
‘근데 시바 돌아올 거라니까.’
성검용사뿐만이 아니다. 눈에 띄게 침울해져 있는 병사들이 보인다. 분위기가 복구되지 않을 것처럼 축 처진 듯한 모습, 심지어 나까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보니 의도치 않은 오해까지 사게 된 것 같았다.
알프스가 상황이 심각하다고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은 얼굴,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김창렬의 팔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온갖 감정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어쩌면 정말로 김창렬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도울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결국에는….
“흐으으윽… 흐윽… 흐으으으으윽….”
떨어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아니, 절대로 안 죽어. 도대체 왜 저렇게 창렬이를 과소평가하는 거야.’
알프스 역시 나름 성검용사 프로젝트 때부터 험한 꼴을 보면서 커온 인선이 아니었던가.
산전수전 다 겪어온 창렬이가 팔 하나 날아갔다고 비명이라도 지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고통 내성 훈련은 기본으로 수료하고, 대륙 탑티어에 손을 올린 암살자를 뭘로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김창렬이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상대가 우리 현성이가 아니고서야 어지간하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는 즉시 병력을 출발할 준비를 해주세요.”
“…….”
“우리를 잡으러 온 이가 그자 한 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
“그리고… 형은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살아 돌아올 테니까요.”
“뭐?”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
‘일단 튈 준비부터 하는 게 맞아.’
물론 류한 혼자 남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미 한 번 밟힌 꼬리가 두 번 밟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갑작스럽게 전투가 일어났고, 그 전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흔적도 지우지 못했으니 어찌 됐건 간에 달빛을 따르는 자들의 위치가 노출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쓸데없이 장기 말들을 잃고 싶지 않다면 일단은 해당 위치를 벗어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지휘관들 역시 내 지시에 다들 공감할 수 있었는지 본대에 도착하자마자 병사들을 닦달하는 중, 이미 여러 번이나 반복했었던 행동이니만큼 철수 과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느껴진다.
어디에선가부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적들입니다!”
‘아… 시바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성자님!”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어요!”
“네.”
“최대한 빠르고, 병사들을 안전하게….”
겁에 질린 이들의 표정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알프스 역시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 인지 팔을 가방에 넣은 채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지금 김창렬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곧바로 이쪽을 보좌하려는 듯한 모양새, 혹시라도 김창렬이 돌아왔을 때, 아니, 목숨을 바쳐 지킨 부길드마스터에게 상처 하나라도 생기게 하지 않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자너.’
“꼭 붙어 있으세요. 성자님.”
“알프스 님?”
“제가 지켜드리겠어요.”
이윽고 쏟아지는 마법과 화살들. 아직 적들의 모습은 육안으로 비치지 않았지만 하늘을 수놓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놈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예상이 가는 상황.
콰아아아아아앙!
하는 굉음이 귀를 때리고, 여기저기로 튀는 파편과 비명들이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전투라고는 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이쪽은 도망치는 입장이었으니까.
반격할 수단도,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몇몇 병사들이 맞고 비명을 내지르고, 화염에 휩싸인 녀석이 춤을 추듯 몸을 꼬며 쓰러진다.
아군 병력이 부상자들을 최대한 수습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다. 심지어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적들이 아군 병력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뒤섞이겠는데.’
“성자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검용사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는 것.
함께 싸우고, 함께 했었던 전우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곧바로 검을 꺼내 들고….
“모두 도망쳐!”
어쭙잖은 김창렬 흉내를 내고 있다.
방패와 창을 든 병력들이 쏟아지며 아군에게 닿기 시작하자 성검용사는 더욱더 이를 악물고 놈들을 베어내는 중,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녀석이 적들을 죽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유!”
“용사님! 빨리 오셔야 해요!”
“제길! 빨리 가!”
‘네가 안 가는데 내가 어떻게 가! 시바!’
“알프스 님!”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우리 성검용사가 적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달빛을 따르는 자들은 징집된 병사들도 전쟁 피해자로 분류해 살인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급하게 만든 규정에도 분명 그렇게 써져 있기는 하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규정이나 쓸데없는 규칙을 지키라 말한 적은 없다.
마법과 화살을 검으로 쳐내면서도, 수십 명이 달려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녀석은 절대로 병사들에게 치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부상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다. 무기와 방패들을 베어내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를 입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전부다.
녀석이 방금 전 일로 흥분해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름 없는 형을 잃은 분노로 공화국 놈들을 신나게 썰어 제껴 버릴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녀석 혼자서는 밀려드는 병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공화국의 병사들을 저지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검용사는 결코 병사들을 죽이지 않는다. 요리 조리 몸을 움직여가며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무기들을 두 동강 내고 있다.
‘뭐. 시바 저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고 앉아 있어.’
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째서 이 새끼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방금 전 어째서 류한에게 급발진했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
“…….”
‘닮아 보였나 보구나.’
확신을 담아 이야기하건대 류한에게서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했던 자신과 말이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녀석은 이 대륙을 게임이라고 생각했었고, 자신이 죽인 이들이 NPC일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유는 다르기는 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다. 류한이나 녀석이나 사람을 죽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아아아아아악! 성자님!”
‘아니, 내 이름 좀 그만 부르라고.’
류한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 역시, 예전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무리해서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역시, 자신과 류한은 다르다는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누구보다도 예전의 자신을 지워 버리고 싶지 않을까.
녀석은 지금 그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제길! 도망치라니까! 도대체 뭣 하고 있는 거야!”
“용사님!”
‘근데 그러다가 우리 팀 애들 다 죽겠다 이 새끼야. 뭔 시바 전쟁터에서 불살루트를 타고 자빠졌어.’
꼬리를 잘라야 되는데, 잘라지지가 않고 계속 따라붙고 있잖아. 시바.
적어도 팔다리라도 좀 확실하게 자르든가. 그래야 의무병이든, 사제든 나타나서 쟤네 수습하느라 시간이 끌리지. 전쟁터에서 과다출혈로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자연사라고 생각하라고. 시바 네 탓이 아니라고.
그렇게 점점….
“제기랄! 3시 방향에서 적 출현! 전원 전투준비!”
발을 내뺄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았을 때였다.
“어….”
별안간, 뿌연 안개가 주변을 뒤덮기 시작한 것. 신이 이쪽을 돕기라도 한 것인지, 혹시 안개 소환사라도 튀어나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을 때,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스으으으으읍.”
“…….”
“후우우….”
“…….”
“후우우우우우우….”
희미한 연초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쓰으으으읍. 후우우우우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