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452화 (1,45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52화

대륙전쟁(32)

‘창렬이는 어디 가고… 왜 저 새끼가 저기서 저러고 있어?’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던 것도 잠시, 마음의 눈으로 놈의 몸을 살펴보자 역시나 대미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제를 만나 치료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지, 스스로 포션으로 치료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워지지 않은 피로와 대미지는 여전히 눈에 남아 있다.

절단되거나 심각한 대미지를 입은 부분을 이어붙이거나 급속치료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래 저런 종류의 대미지라는 것은 치료가 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완전히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체력 스텟과 내구 스텟이 높은 탱커들이야 그나마 회복이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전위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거다.

그 와중에 가장 눈에 두드러졌던 것은 놈이 현재 중독 상태였다는 것. 당연히 저게 누구의 작품인지는 뻔했다.

‘우리 파란의 자랑, 파란의 암살자 창렬이 작품이자너.’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독은 아니었지만 놈은 지속적인 대미지를 입고 있을 터, 해독한다고 해독을 한 것 같았지만, 원시적인 1회차 놈들이 창렬이의 독을 해독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김창렬 본인부터가 독에 해박하기도 하고, 내가 종종 넘기는 샘플을 개량하고 또 개량했을 테니 솔직히 나도 녀석이 무슨 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전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물론 녀석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독에 대한 공통점은 알고 있다. 평범한 큐어 주문이나 평범한 해독제는 따위는 절대 듣지 않는다는 것.

큐어 주문으로 해독을 시도하려고 하면 최소 성녀급의 신성력이 필요했고, 해독제는 메이드인 기영이나 연금술에 정통한 이들의 것이 아니면 아마 듣지도 않을 터였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아무리 약한 독을 썼다고 한들, 녀석이 중독 상태를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고통을 줄이는 것 정도가 한계였을 거라고 본다.

‘창렬이… 화 많이 났었나 보네.’

“…….”

“…….”

모르긴 몰라도 꽤 고통스러운 걸로 놓아준 것 같아 보인다. 신경독 계열로 보이기도 했는데, 저 살인기계니까 죽는소리를 안 내는 것뿐이지 다른 놈이었다면 온몸이 갈려 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이미 예상하기는 했지만, 팔 하나가 날아가고 옆구리까지 베인 게 여간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 심지어 그게 내 앞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으니 더욱더 화가 나지 않았을까.

아무리 알프스와 성지훈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한들, 김창렬의 프라이드가 깎여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살아 있기는 한 것 같자너.’

아이러니하지만 류한의 모습을 확인하자, 김창렬이 어디에선가 무사히 살아 있을 거라는 걸 조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김창렬은 녀석을 죽여도 되는지 아니면 살려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릴 만한 상태가 아니었겠지만 정말로 여유가 없었다면 놈을 살려놓지 않았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급한 상황이었다면 류한은 이미 독 때문에 온몸이 녹아내려 없어져 버렸을 수도 있다.

구태여 저런 독을 남겨놓은 것은 녀석에게 있어서는 소심한 복수인 셈.

‘소심한 복수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아플 것 같기는 하지만….’

아마 중간에 몸을 빼야만 하는 사정이 생겼을 것이 분명, 한참 공화군이 4-2전선으로 들이닥쳤을 시기였을 테니 일단은 몸을 숨겨야 한다 판단하지 않았을까. 겸사겸사 류한을 중독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류한은 4-2전선에 들어오는 병력들의 수혜를 받은 셈이었다.

물론 지금은 병력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이쪽에게는 불행하게도 아직도 녀석의 목표물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공화군들 역시 드디어 이쪽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 미꾸라지인 줄 알았던 녀석들이 알고 보니 커다란 구렁이였으니,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설치고 있는 꼴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 리 만무, 류한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형 하나가 더 시야에 비친 이후에는 괜스레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발렌틴 알렉산드로.’

-…….

‘로나프의 싸움꾼.’

-천하의 1좌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건가? 아니면 못 본 사이에 약해지기라도 한 건가?

또 다른 이명은 로나프의 학살자.

언젠가 중립국 라이오스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희라 누나에게 얻어맞았다고 전해지는 이마의 상처, 커다란 덩치, 심지어 가래가 끓는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류한을 비웃고 있었지만 마치 겁먹은 개가 짖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 두 눈은 왠지 모르게 류한에게 겁을 먹고, 녀석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듯했지만 의외로 분노 조절을 잘하고 있는 녀석의 성정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저 새끼. 진 군사한테도 꼼짝 못 하기는 했자너.’

-옆구리에 깊은 자상, 왼팔은 절단, 심지어 중독까지 된 상태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때마침 병력들이 들이닥치지 않았었다면 넌 죽었을 거다. 류한… 도대체 상대가 누구였지?

-…….

-…….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름은 묻지 못했습니다.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지금 저 연기 속에 있는 녀석들을 말하는 건가. 뭐, 소문으로는 용사가 있다고 들었다만… 그 용사한테 당하기라도 했나?

-아니,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핫. 어처구니가 없군, 용사도 아니고, 그냥 떠돌이에게 당했다는 건가?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쟤가 어딜 봐서 농담할 군상이냐고.’

발렌틴 알렉산드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중간에 말을 멈추어버렸다. 류한이 장난을 치거나 엉뚱한 정보를 입에 담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재미있군.

-…….

-달빛을 따라는 자들이라는 놈들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해서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있는 놈들이었는데… 듣기로는 마탑, 그리고 공화국의 일부 지휘관들, 심지어는 연합군의 놈들까지 녀석들에게 합류했다더군. 개인적으로는 제국에서 작업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진짜로 전쟁을 막는다고 설치는 놈들이 있다니….

-…….

‘발렌틴 저 새끼… 머리에 똥만 찬 타입이 아니었다고?’

어째서 1군사가 발렌틴 알렉산드로를 이곳으로 보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그렇지 않아도 제국 놈들과 붙기 전에 여흥이 필요한 참이었지.

‘아니야. 여흥 필요 없어. 걍 조용히 거기에 처박혀 있어.’

류한이 입을 열어온 것은 발렌틴 알렉산드로가 막 등을 돌렸을 때였다. 별안간.

-성자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도 잠시였다. 로나프의 학살자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류한을 바라보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싫다면.

‘왜 도발해.’

-…….

-…….

그리고 시작된 기 싸움. 대기가 떨릴 정도의 살기가 느껴진다. 그냥 저대로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여줬으면 싶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발렌틴 졸렬산드로는 류한과 살육전을 벌이기에는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아마 분명히 강자에게만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감정이 없는 검은색 동공과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로나프의 꼬리 내린 개.

기 싸움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창렬이에게 당한 류한을 무시했던 건지, 다시 한번 1좌의 힘을 재단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 꼬리를 내리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자존심은 챙기고 싶어 하는 것 같자너.’

-농담이다. 흐흐흐흐….

‘농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성자 따위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내 먹잇감은 네 놈을 그렇게 만든 녀석과 용사라고 불리는 녀석 정도니… 나는 강자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이 말이다.

‘강자한테 관심이 있으시면 류한이랑 치고받으세요. 시바.’

-…….

-네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 필요는 없겠지. 또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이유일 테니… 뭐. 그게 네놈의 부탁이라니 들어주지. 물론, 전투 중에 일어나는 피치 못 할 사고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흐흐흐….

-…….

-차희라 이후로 재미있는 상대가 나타난 것 같군.

‘너 희라 누나한테 개발렸었잖아. 만나면 도망칠 거잖아.’

비열한 웃음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 졸렬한 새끼는 아마 절대로 이쪽을 건드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장담하건대 분명히 부하들에게 언질을 해놓지 않을까.

저 새끼의 졸렬함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류한에게도 만족스러운 대답이 된 모양인지, 녀석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연기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빛이 터져 나오는 곳을 스토커마냥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지경.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몸이 전부 회복되지 않았다 느끼는 모양인지, 스스로 자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 쉬어봐라. 그게 쉽사리 회복이 되나.’

문제는 회복이 되든, 되지 않든 간에 녀석과 이쪽은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류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호대장군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발렌틴 졸렬산드로가 상대라는 것에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졸렬하다고는 해도, 녀석이 로나프의 학살자라고 불리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새끼가 약자에게 강할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솔직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류한은 부상 중이니까. 어떻게 지훈이로 비빌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그래. 시바 이건 기회자너. 우리 성검용사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는 기회. 이 새끼를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

현재 열심히 성검에서 빛을 뽐내고 있는 이 새끼가, 제대로 된 류한과 마주했을 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창렬이가 큰일 해주고 있는 거야.’

이길 수 있는 타이밍이라면 딱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몸이 회복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독되어 있는 지금이 유일한 타이밍이다.

성지훈 자체가 녀석에게 괜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으니, 여기서 녀석을 넘어서는 것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게 될 터였다.

“이야아아아아앗!”

“용사님!”

“알고 있어!”

‘성검 출력도 나쁘지 않고, 컨디션 좋고.’

“팔레트 님!”

‘연계 괜찮고. 멘탈 이슈 없고. 몸도 제대로 풀려가고 있어.’

아직도 불살루트는 좀 선 넘긴 했는데….

‘지도 급하면 알아서 하겠지. 뭐.’

일단 류한이 살아 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면 김창렬이 죽었다고 지레짐작해 분노하기 시작할 테니 큰 문제는 없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페인트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주변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 병력들이 계속해서 공화군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망원경으로 놈이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한다.

괜스레 그녀의 주변에서 맴돌다 타이밍을 노려 녀석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지만,

“…….”

“…….”

사실 딱히 경고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서부터 계속해서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기울어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으니 말이다.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부류. 결국에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를 지닌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성질 급한 새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확인한 페인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로나프의 학살자.”

“…….”

“발렌틴 알렉산드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가래 끄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

“…….”

“쓰으으으으읍.”

“…….”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

직후 팔레트가 쏟아낸 연기가 창이 되어 놈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