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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53화 (1,451/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53화

대륙전쟁(33)

직후 팔레트가 쏟아낸 연기가 창이 되어 놈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발렌틴 알렉산드로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팔레트가 주문을 외운 것이다.

아니, 이미 놈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는 녀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문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으며 위협적이었다.

당연하지만 팔레트 역시 많은 손해를 감수한 주문, 그녀는 이 병력에게 은신처와 안전을 제공하는 입장이었고,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많은 마력을 남겨야 했으니 말이다.

필요 이상의 마력을 쏟아부은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선택이 멍청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다. 오히려….

‘최선의 선택이었어.’

팔레트 역시 공화국의 소속되어 있었던 만큼 녀석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 기습을 해서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발렌틴 알렉산드로를 처리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아마 그녀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었겠지.

하지만,

모든 게 그녀의 생각대로는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온몸에 창이 박혀 대미지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팔레트의 창은 놈의 거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상처를 아예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피부를 뚫고 들어가던 창은 높은 내구 수치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얼굴과 목 쪽으로 떨어지는 창은 손으로 잡기까지 한다. 본인의 내구 수치를 믿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일까.

‘진짜 멋없자너. 완전 멋없는 타입이자너. 이 새끼.’

씨익 웃고 있는 꼬라지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환영 인사가 거칠군. 흐흐흐흐.”

다시 한번 들려온 러시아산 박덕구의 기분 나쁜 목소리에 장내에 침묵이 감돌기 시작한다.

녀석이 현재 상태에서는 이쪽이 감당할 수 없는 강자라는 것을 새삼스레 모두가 깨닫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성마저 좋지 않아 보인다.

‘연기로 가득 찼는데도 불구하고 이쪽 위치를 정확히 특정했으니까.’

감지계열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야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것을 녀석은 가지고 있다.

둔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민첩하고, 멍청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영악하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앞선 두 조건보다 양학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치가 어디 있을까.

‘시발 올 거면 혼자 오지. 말단 부하들까지 다 끌고 온 것 같자너.’

류한처럼 혼자 다닐 타입은 결코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명령에 맞춰 연기 속을 뚫고 들어오는 병력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조무래기들에게는 관심 없다. 흐흐흐. 용사는 어디에 있지?”

그 누구보다도 조무래기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 성지훈이 막 이빨을 갈며 몸을 일으켰을 때, 녀석의 앞을 가로막는 인형이 시야에 비쳐왔다.

‘알프스!’

류한에게는 발렸지만 발렌틴 알렉산드로 정도는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슬쩍 그녀를 의심하는 시선을 보내자 곧바로 검을 들고 뛰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두르는 모양새.

자신의 육체를 과신하고 있었던 발렌틴 알렉산드로는, 알프스의 겉모습을 보며 그대로 팔을 벌린다. 어디 한번 벨테면 베어보라는 듯한 마인드 같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비치는 예기를 보고서는 황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쾅!

하는 굉음. 점프해 뛰어 들어가는 알프스의 검에 놈의 팔과 부딪치자. 졸렬산드로의 다리가 지면을 움푹 파고들었다. 거기에 졸렬한 대사.

“흐흐하하핫! 대륙은 정말 넓구나! 넌 누구냐! 계집!”

‘저 새끼 왜 저렇게 마음에 안 들지. 진짜.’

그 와중에 적 병력이 다시 한번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밀집대형으로!”

“4시 방향에서 공화군!! 밀집대형으로!!! 온다!!!”

“모여!!”

“주문 외워!!!”

“이쪽으로 오세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병력과 병력이 부딪치는 충격이 이쪽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발렌틴 알렉산드로의 휘하에 있는 덩치들이 탱크마냥 질량으로 몸을 부딪쳐 온다.

이윽고 섞이기 시작하는 병력들, 계속해서 연기가 놈들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많아. 팔레트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죽어! 이 쥐새끼들!!”

“이 변절자 새끼들! 죽어! 죽어라!”

“함가르디아!”

“저도 알고 있어요!”

‘시바 이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루스빌라아아아아!!!”

“죽어라!!!”

“움직여! 발을 멈추지 마! 움직이면서 밀어내!! 명령에 따라! 당황하지 말라고! 놈들을 따돌릴 거야! 여기서 고립되면 전부 죽는 거야!”

“발렌틴 알렉산드로는?”

“그녀한테 맡겨요.”

전투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페인트는 직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훌륭한 판단.’

중요한 것은 발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용사님! 길을 뚫어요!”

“하지만 알프스는….”

“알프스는 괜찮으니까 길을 뚫어달라고요! 앞장서서 일단 길을 열어요!”

‘잘 싸우고 있자너! 시바!’

쾅!!! 콰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흐하하하하하하핫! 제법이군! 이름이 뭐냐!”

‘넌 시바 흰둥이만 있었어도 원큐에 갔어. 이 새끼야.’

“이런 강자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지?!”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유리엘!!! 성검이여!”

“미… 미친!”

“화살 떨어진다! 화살!!”

‘역대급으로 정신없네. 진짜.’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병기가 병기들을 부딪치는 소리, 마법이 떨어지는 폭음 소리, 이리저리 뒤섞이는 병력들과 계속해서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연기들….

여러 전장을 굴러다녔지만 이 정도로 혼란스러운 전장은 오랜만이다. 심지어 이런 시간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중, 그 와중에 발렌틴 알렉산드로의 커다란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부 죽이고! 성자는 생포해라!”

혹시나 류한과의 약속을 어기게 될까 걱정이라도 되는 모양, 놈의 졸렬한 외침에 녀석들이 노리는 게 이쪽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성검용사의 얼굴이 한층 초조해진다.

‘근데 류한 이 새끼는 도대체 날 언제 봤다고….’

이쪽이랑 튜토리얼 시절의 진 군사랑 뭐 공통점이 있나 싶기도 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류한 나름대로의 기준에 이쪽이 충족된 모양.

아마 사람들이 모이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튜토리얼 당시의 진 군사도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튜토리얼 던전을 이끌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달빛을 따르는 자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으니 말이다.

명령이나 권위, 힘이나 폭력이 아닌, 신념이나 인간적인 매력에 사람들이 이끌리고, 궁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녀석과 마주친 것은 잠깐이었지만 그때 당시에 꽤나 올곧은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 혹시나 그 올곧은 눈빛이 신경 쓰였던 것일까.

‘진 군사 이 새끼. 튜토리얼 때 좀 스윗하게 행동했었던 거냐구.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들을 휘어잡았던 거냐구.’

그게 아니라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녀석과 만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녀석이 1군사나 이쪽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류한을 내가 키울 것도 아니고.’

무력적인 면에서 보면 녀석은 1순위 매물이기는 했지만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면 녀석은 경험치 자판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녀석이 1회차에서 눈에 띄는 족적을 남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들은 기억도 없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녀석이었으니 그 끝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걸로 마무리되는 것이 옳다.

구태여 녀석에게 시간을 할애해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거나, 정신적으로 한 단계 진일보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놈의 부모님이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놈이 무언가를 깨닫고 계단 하나를 더 올라가 미래를 바꾸는 걸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놈의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당장 놈과 검을 부딪쳐야 할 성지훈을 걱정하는 것이 더 이롭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는 전장, 슬슬 야생의 류한이 냄새를 맡고 기어 내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쟤도 양반은 못 될 것 같자너.’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인형이 시야에 비쳐온다. 뒤섞이기 시작한 사람들 틈으로, 서로를 향해 검을 부딪치는 사람들 틈으로, 자욱하게 낀 연기 사이로, 기분 나쁜 눈을 하고 있는 인형이 발걸음을 옮겨오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나만 녀석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길을 여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던 우리 성검용사 역시, 검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우연치 않은 장소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 같은 느낌이었지만 아쉽게도 이건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용사님?”

으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를 갈고 있는 녀석. 두 눈은 틀림없이 류한에게 고정되어 있다.

혹시라도 본인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잠깐 눈을 비비던 녀석은 자신이 본 게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평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눈에서는 눈물까지 차오르는 중, 그야 저렇게 류한이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 ‘이름 없는 형’의 최후가 어땠는지 상상할 수 있겠지.

이름 없는 형은 죽었다.

알프스를 구하기 위해 팔을 다쳤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옆구리를 다쳤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름 없는 형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을 확률이 높다.

성지훈은 바보가 아니었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름 없는 형은 어디에 있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 당연하지만 류한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대답 같은 건 하지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지훈은 마치 류한이 자신의 옆에 있는 양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름 없는 형은 어디에 있냐고.”

“…….”

“…….”

“이름 없는 형은 어디에 있어! 이 개새끼야!!!!!”

슬슬 추억도 떠오르고 있겠죠? 이름 없는 형과 함께 했던 신나는 검술 수업부터, 있는 추억 없는 추억 전부 소환할 때가 됐죠.

사실 둘 사이는 훈련한 것 외에는 별 다른 추억이 없겠지만 본투비 찐따인 성지훈의 머릿속에는 아마 별별 장면이 다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냥 물 마시라고 물병을 던져준 것부터, 꽤 는 것 같다고 담담히 칭찬을 해주는 것도, 심지어 단답형으로 자신의 말에 대답했던 모습까지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눈에서는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눈물이 흘러나오는 도중, 성지훈의 주변으로 신성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어둠 진화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이 나쁜 새끼!! 너만은 절대로 용서 못 해!!!!”

언제나 그렇듯 어디에선가 나올 것 같은 대사를 내뱉고, 녀석은 류한을 향해 돌진한다.

마치 날아가듯 튕겨져 나가는 엄청난 속도, 힘과 신성력이 넘치는 녀석답게 그 충격만으로도 몸이 흔들린다.

녀석과 류한의 사이로 길이 열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에는 유리엘도 있자너. 2차전이자너!’

“이름 없는 형은 어디에 있어!!!”

“…….”

으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지에 금이 간다. 그 충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놈과 류한을 위시로한 작은 결투장이 만들어진다.

혹시나 둘의 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병력들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린 것이다.

‘보이나 봐.’

류한의 스펙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어처구니없게 끝났던 1차전 때와는 다르게 성지훈의 눈에도 녀석의 검이 보이는 듯했다.

계속해서 검을 부딪치기 시작하는 둘.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성지훈의 팔이 베이기는 했지만 성검 유리엘의 효과로 녀석의 상처가 곧바로 회복된다.

‘시바. 성검 효과! 개굿!’

각성했나? 우리 성지훈이 각성했나?

원래 분노한 찐따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때.

“어?”

푸화아아아아악!

성지훈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바… 무슨 30초 컷….’

“…….”

“…….”

‘사무치게 그립다. 현성아.’

집 떠난 김현성이 다시 한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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