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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55화 (1,45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55화

대륙전쟁(35)

“넌… 뭐지?”

“…….”

반말이었다.

“넌 도대체 뭐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자너.’

녀석 같은 사이코패스 살인기계가 순수하고 정의로운 자를, 마치 백색의 도화지 같은 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인도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신념으로 똘똘 뭉친 우리 빛기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장담하건대 이렇게 깨끗하고 순수한 종류의 눈빛은 진 군사에게도 찾아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넌….”

“…….”

물론 빛기영은 미친 살인기계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노려볼 뿐이었다. 성지훈을 보호하듯, 여전히 두 팔을 활짝 벌린 채로 말이다.

다시 한번 녀석의 팔이 휘둘러진 것은 당연지사. 언제나 보이지 않게 검을 휘둘렀던 녀석치고는 꽤 느려 보이는 움직임이다.

나를 벨 의도가 아니라 겁을 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 당연했다.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뺨이 조금 베인 것 같은 느낌, 피가 주르륵하고 흘러나왔지만 여전히 빛기영은 겁을 먹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특유의 눈은 더욱더 빛나고 있다. 상처 입고, 더럽혀질지언정 안에 들어 있는 신념의 불꽃만은 꺼지지 않는다는 바이브.

다시 한번 녀석이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는 목에 자그마한 실선이 그어지지만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 새끼 나 죽일 생각 없자너.’

이번에는 팔, 이번에는 다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

녀석의 눈가가 다시 한번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뭘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놈이 동요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거 슬슬 빼야 되는데.’

솔직히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프스가 발렌틴 알렉산드로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전투가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는 상황, 성검을 들고도 떡실신 중인 성검용사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직 크게 밀리지는 않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영애들이나 병사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군이 불리해진다는 것은 뻔할 뻔 자, 여기에서는 어떻게든 몸을 빼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진… 진유?”

“…….”

“진유야?”

잠깐 동안 선 채로 정신을 잃었던 성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록 생채기뿐이었지만 피에 젖어 있는 옷을 본 이후에는 깜짝 놀란 모양새.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린 녀석이….

“도망쳐….”

“…….”

“도망쳐…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까. 어서 빨리 도망쳐….”

‘누가 봐도 네가 맡으면 죽을 것 같자너.’

“이… 이… 이익….”

‘하얀이 추임새 시바. 자제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녀석의 눈도 아직 죽지 않았다. 성지훈 안에 있는 불꽃 역시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다시 한번 눈가를 꿈틀거린 살인기계 녀석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기 시작, 아까처럼 실속 없는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평소보다 더 어두운 동공을 본 이후에는 녀석이 성지훈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지훈의 행동 중 하나가 놈의 발작 버튼을 누른 것이다.

‘뭐야. 나 통과해서 벨 수 있어? 그런 것도 가능해?’

절대로 이쪽을 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목표는 내 뒤쪽에 있는 녀석, 계속해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는 성검용사는 본인이 목표가 됐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언제나 그렇듯이 일단은 시바 빛을 내뿜을 수밖에 없었다.

“안… 안 돼!!!”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품 안에 있던 빛폭탄 물약이 깨지며 사방으로 빛이 뿜어져 나간다.

달빛 버전으로 개량된 빛폭탄 물약은 환한 달빛을 뿜어내며 그 범위를 넓혀가는 중, 다친 아군의 몸이 순식간에 회복되고, 적들은 언데드라도 되는 것마냥 빛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안 돼에에에에에에!!!”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너무 출력을 높였나?’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적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심지어는 팔레트 영애가 깔아놓은 연기들까지 순식간에 흩어진다.

순간적으로 병력이 벌거벗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상황, 마치 흐린 하늘이 개는 것처럼 빛이 떨어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게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기적에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딱히 나쁠 건 없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빛에 더 이상 전투가 지속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영향을 받은 이들도,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도, 세상을 밝히는 달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류한과 발렌틴 알렉산드로도 말이다.

이쪽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은 알프스의 얼굴도 창백해지기 시작, 싸움에 몰입하느라 잠깐 동안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 같았다.

김창렬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서는 곧바로 이쪽으로 튀어 오른다.

“어딜 가는 거냐! 계집!”

“…….”

“치잇!”

발렌틴 졸렬산드로도 굳이 이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알프스를 막지는 않는다. 전투가 지속된다면 본인이 발릴 거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일까. 분명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놓아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다는 리액션이 포인트, 하기야 저 빛이 대미지를 주고 있기야 할 테니, 전투를 포기한 놈의 심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강자와의 극한의 승부를 벌이는 것을 즐기는 놈치고는 형편없이 졸렬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알프스는 류한에게 검을 겨누기 시작, 심지어 품 안에 있는 휘슬을 꺼내 든다. 언제든지 흰둥이와 합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응 아니야. 우리 여기서 계속 싸우려고 하는 거 아니야.’

성검용사를 부축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자, 그제야 알프스 역시 이쪽이 후퇴하려고 하는 것을 깨달은 모양새.

페인트 영애 역시 지금이 몸을 내뺄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는지 병력들을 독려하기 시작한다.

이쪽이 성지훈을 부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용사님! 정신 차리세요! 용사님!”

“어… 어….”

‘완전 녹초가 됐자너.’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지만, 몸은 이미 탈진상태.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깜짝 놀란 것 같은 얼굴.

“방금 그 빛은… 뭐야.”

‘이 새끼 도대체 뭔 소리 하는 거야. 빛은 빛이지. 이 새끼야.’

“방금… 그 빛은 뭐냐고… 진유. 방금 그…건….”

‘이 새끼. 정신 못 차리는 상태자너.’

“대… 대답해. 진유. 그 빛이 대체 뭔….”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충격받은 듯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이라 해야 할까.

물론 놀랍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는 했지만 조금 오바해서 놀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대답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있는 상황, 도망치기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새끼는 내 몸에서 나온 빛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빛에 의해 대미지를 받은 류한보다 내게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새끼 드디어 돌아버린 건가? 시바 류한이 쫓아올까 걱정하는 게 먼저 아니냐구. 이 새끼야.’

빛폭탄 물약 때문인 건지, 아니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류한은 멍하니 멀어지는 이쪽을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자 점점 멀어지는 놈이 시야에 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류한은 여전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말이다.

단체로 상태 이상에 빠져 버린 공화군 역시, 이쪽을 쫓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 다시 한번 연기에 뒤덮인 상태로 몸을 빼고 있는 아군 병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야 성자, 성자 말로만 들었지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공화군도, 아군병력도 저런 얼굴을 하는 걸 보니 성검용사 이 새끼가 오바하는 게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성지훈의 표정은 뭐라 말하지 못할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뭐야. 이 새끼 도대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성검용사 녀석이 넋이 나간 것마냥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정말로… 성자였군요.”

“…….”

“기적…인 건가요. 방금 우리가 도대체 뭘 본 건가요. 함가르디아.”

“생각은 나중에. 일단은 멀어지는 게 먼저예요. 아직 적 병력들이 근처에 있을 테니까요.”

“아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네?”

“추격대는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팔레트?”

“연합군이 움직였습니다.”

“…….”

“…….”

“…….”

“…….”

‘개꿀이기는 하자너.’

하지만 장내에는 큰 침묵이 들어선다.

그야….

“…….”

“…….”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군요.”

애초 달빛을 따르는 자들의 목적이 전쟁을 막는 것이었으니 큰 관점에서 본다면 원정에서 실패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팔레트의 목소리에 모두가 내 눈치를 보고 있기까지 하다.

“작은 연기들을 분쟁지역에 뿌려놨었습니다. 현재… 연합군의 대규모 병력들이 그 연기들을 뚫고, 공화국 전선으로 넘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저희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겁니다. 지금부터는 총력전이 벌어질 테니 말입니다.”

“…….”

“그렇다면… 4-1 전선도 마찬가지겠군요.”

‘1군사랑 1기영도… 서로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고 있겠네.’

천천히 망원경을 위로 올린다. 팔레트의 말처럼 대규모 병력들이 전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치러왔던 전투들이 어린아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숫자.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과 전쟁무기들, 긴장으로 얼굴이 굳은 어린 병사들과 휘날리고 있는 깃발들, 장관이라면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발견한 몇몇 이들의 얼굴이 눈에 띈다.

‘여단.’

4-2전선에서 연합군의 편에서 싸우기로 결정한 모양, 그야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을 녀석이었으니 군침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하니 정체를 숨긴 채로 냉큼 참가하지 않았을까.

4-1전선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4-2전선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전면전에 들어섰다.

엄청난 숫자 병력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4-1전선에서는 1현성과 1기영이 1군사와 부딪쳤고, 이곳 4-2전선에서는 류한과 정진호가 부딪치게 되는 셈이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사이코패스 빌런들 간의 격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리기는 했지만 티를 낼 수 있을 리 만무.

지금은 최대한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에는….

‘전쟁을 막지 못한 거야.’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슬픈 아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뭐야 아까부터 이 새끼 도대체. 왜 이래?’

“흐윽… 끄윽… 흐으으으윽….”

본인의 무력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가 입은 상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괜스레 성검용사 이 새끼가 내 팔을 꽉 잡아 오는 게 느껴진다.

“진유….”

‘아니, 뭐야? 왜 이래? 시바. 이것 좀 놔.’

“…….”

“…….”

“…….”

“네가 유리엘이었던 거지?”

‘이 새끼는 갑자기 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

“네가… 네가… 유리엘이었던 거지?”

“?”

‘그러니까.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고. 이 미친 새끼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개와 흐름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흐윽… 네가 유리엘이지?”

이 새끼가 만화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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