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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71화 (1,46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71화

대륙전쟁(51)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물론 영애들이 여단원들을 깡그리 잡아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애초 전력 차가 상당하기도 했고, 브러쉬에게 검은 장미의 신봉자라는 직업을 내린 것만으로 전황이 완전히 뒤바뀐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영웅 등급치고는 클래스 디자인이 꽤 가성비 좋고, 괜찮게 나온 편이기 때문에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그 직업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문제였다.

애초에 브러쉬는 전투에 그리 밝은 스타일은 아니다. 만약 밝다고 했더라고,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

물론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애들에게도 동기부여 아닌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했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어울리는 표현은 아마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전투에서는 사제의 존재가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은가.

단희영으로 인해 전력을 보존할 수 있는 살인여단 녀석들과는 다르게, 영애들은 대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싸구려 포션으로 회복하는 것도 한계에 다 달았던 상황.

심지어 단희영은 죽은 놈들도 일으키고 있었고, 어찌 된 일인지 죽은 놈들은 본신의 힘을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시점에서 브러쉬 영애의 각성 아닌 각성을 하며 날아올랐으니, 캐리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영애들을 받쳐줄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겸사겸사 언데드들도 처리되고 말이다.

놀란 눈빛으로 브러쉬를 바라보는 영애들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들에게 승기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우리 영애들 많이 취한 것 같자너.’

극단적으로 말하면 만에 하나라도 패배한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다.

그야 페넬로티가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하기야 했지만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의 믿음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보통 지나친 자신감은 전투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의 영애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없는 힘도 끌어 모아 전투에 임하고 있는 모습, 오만이나 자만이 아닌, 확신이었다.

물론 청신호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녀들과 대치하고 있는 여단원들도 아마 머리가 아파오는 상황이 아닐까.

여단원들은 이 전투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잠깐의 여흥으로써는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서로 죽자고 달려들 이유는 없다는 거다.

아니, 여단원들이야 여기서 영애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단의 머리들은 이렇게 상황이 꼬인 걸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남겨놓은 나머지 조각이 아쉽기야 하겠지만 이 이상 주사위를 던질 이유가 없다. 현시점에서 1지혜의 심기를 가장 건드리는 것은 당연히….

‘말썽꾸러기 진호 형이자너.’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찢어발기고 있는 정진호이지 않을까.

“…….”

“…….”

“저러니까 손절 당하지….”

한참 전에 여단원과 합류해, 다음 작전을 진행해야 하는 녀석이 완전히 정신이 나가 미쳐 날뛰고 있는 중이다.

말을 들을 생각도 없어 보이고, 자기 자신을 통제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우리를 완전히 부숴 버렸다.

녀석은 평소에 머리들의 말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머리들은 녀석을 강제할 수 없다.

애초 정진호가 여단의 창설자라는 걸 떠올려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어디까지나 정진호가 그들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머리들의 지시가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

지금 정진호가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완전히 폭주하고 있는 것은 1지혜에게 이후 작전은 모두 취소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피 맛 좀 보고 싶다고 전부 다 망치고 미쳐 날뛰는 새끼랑 어떻게 계속 갈 수 있겠냐구.’

4-2전선, 아니, 어쩌면 4-1전선까지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모든 작전은 취소, 정진호의 폭주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그 영향은 영애들과 전투 중인 여단원들에게 향하기 시작한다. 아마 곧 전언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단희영이 입을 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전은 취소입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선희영!

-저도 정확한 이유는 다시 전해 들어야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 중… 아마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게 뭔데!

-단장이 폭주 중이라고 하는군요.

-…….

-머리에서의 전언입니다. 전원 퇴각 이후에 복귀하라. 더 이상 이 전선에 볼일은 없습니다. 이 쓸데없고 무의미한 싸움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4-1전선으로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온전히 또 다른 머리에게 맡긴다는 판단입니다.

-제길!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해!!! 어차피 지금 가나 30분 후에 가나 똑같잖아!!! 그, 그리고 4-1전선은 지금 진청이 맡고 있는 거 아니었어? 혼자는 무리라고!

-머리에서부터의 명령입니다.

-웃기지 마! 이걸 그냥 이렇게 끝낸다고? 뭐… 뭐야 그 와중에! 이 미친 쌍둥이들 너희는 갑자기 어딜 가는 거야!

-머리가 볼일이 없다고 하잖아.

-응. 머리가 볼일이 없다고 하잖아. 빨리 복귀해야지. 그래야 칭찬 받는다고.

-칭찬은 개뿔 제길! 뭐야. 다들 이렇게 끝낼 거야? 그야 머리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 햇병아리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젠장! 이대로? 인정 못 해! 인정 못 한다고!

-당신이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그렇게 결정이 났으니….

-제… 제길…. 제길!!!!

-움직입니다.

-제… 길… 뭐… 뭐야 다들 진짜 가는 거야? 잠… 잠깐! 후퇴하려면 마법사부터 챙겨야지! 마법사부터 챙기라고!!!

마스크녀의 외침에 한숨을 쉬며 그녀를 품에 안는 평범한 인상의 남성이 시야에 비쳐왔다.

-후우… 참 손이 많이 가는 여자라니까. 뭐… 잠깐은 즐거웠습니다. 그쪽 분들도 말입니다.

-뭐야! 허리 잡지 말라고! 이 미친 음흉한 새끼야!

-아니. 분명히 방금 전에 마법사부터 챙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도와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분명히… 아… 근데 당신은 이름이 뭐였더라?

-미로라고 부르라고 몇 번이나 말 했잖아!!

-아아. 네. 확실하게 기억했습니다. 미로 씨.

-웃기지 마. 어차피 또 몇 분만 지나도 금방 까먹을 거면서… 아, 아무튼 너희들도 잘 기억해 둬!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진짜 마도가 뭔지 나중에 확실하게 보여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됩니까? 그러니까… 미로 씨?

‘둘이 은근히 케미 좋자너.’

사실상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우리 영애들은….

‘쫓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아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여단원들을 쫓는 것이 정답인지, 복수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물론 한순간에 여단원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사라지지야 않는다. 페인트 영애만 하더라도 그들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다른 영애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끝까지 추격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들과 대적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페넬로티의 목소리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를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주었다는 것이 첫 번째, 함께 빛을 밝히자고 이야기했던 그녀의 앞에 서 있으니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물론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 번에 정리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파스텔은 페넬로티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고, 다른 영애들 역시 이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 각각 한 차례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계속해서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몇 마디를 더 해주는 게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그녀들에게 시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한마디 정도는 해줘야지.’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언제나 함께! (0/1)]

[파스텔 외 18인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그래… 페넬로티. 언제나 함께.

-언제나… 함께….

-언제나 함께! 흐으으으윽… 흐윽….

-흐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감동 모먼트기는 해.’

괜스레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언제나 함께! (0/1)]

[파스텔 외 18인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응! 응! 페넬로티! 흐으으윽… 흐윽… 언제나 함께!

-네.

-네!

-네… 네….

칠칠맞게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비쳐온다. 귀족영애 때와 비교해 보면 터무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전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걸음을 주저하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 발을 뗀다면 페넬로티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것일까.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발걸음을 떼기를 주저하고 있다.

누군가가 영애들을 스쳐 지나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거운 걸음을 들어 올리고 발을 지면에 내려놓는다.

‘브러쉬.’

-가요.

언제나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영애가 가장 먼저 걸음을 옮긴 것이다.

-빛을 밝혀야죠.

-…….

-…….

팔레트 역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초를 입에 물었다. 평소의 모습이었지만 눈빛에 조금은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네. 떠납시다.

페인트 영애 또한 눈물을 더러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며 몸을 움직인다. 가장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를 꺼낸 만큼 후련하게 짐을 벗어 던진 것 같은 얼굴.

그녀의 무의식 속에 있는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약간이나마 얼굴에 진 그늘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함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파스텔 영애 뿐이다.

-흐윽… 흐으으으윽… 언제나… 흐으으으어어어엉….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로, 하늘만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아마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페인트 영애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머뭇머뭇거리며 파스텔을 향해 손을 뻗는 페인트가 보인다.

당연히 그녀로서는 무척이나 많은 용기를 낸 행동이었을 터다. 물론 함께 싸우며 서로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겠지만 겨우 그걸로 그간 쌓인 오해들과 4년이라는 시간이 채워질 리는 만무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페인트는 떨리는 눈과 손으로 파스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손을 주기를 주저하고 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그녀의 등을 밀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언제나 함께! (0/1)]

[파스텔 외 18인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아 빨리 화해하라고.’

페인트의 손을 꽉 잡는 파스텔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 것은 당연지사.

-페넬로티…. 흐으으으으윽… 흐윽….

이윽고 영애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무슨 작당 모의를 하는가 싶었지만 일단은 대충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인지라, 다른 곳으로 시선을 계속해서 돌리게 된다.

아직까지도 4-1전선의 전장을 거닐고 있는 김현성, 녀석을 지켜보고 있는 김창렬, 드디어 류한과 만난 성지훈, 그리고 다시 한번 영애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뭐야 다 어디 갔어?’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빈 공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이미 전쟁터로 떠난 모양,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남겨져 있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저도 모르게 바위에 적혀 있는 글귀를 읽어 나간다.

“빛을 밝히기 위해 싸운 20인의 영애들.”

‘너희 이제 영애 아니잖아. 그리고… 빛을 밝히려고 싸운 게 아니라 복수하려고 싸운 거잖아….’

“페인트, 브러쉬… 함가르디아. 파스텔….”

“…….”

“팔레트, 라이넬피아. 루스빌라….”

“…….”

“그리고….”

“…….”

“아이나 페넬로티와 함께.”

아무래도 그녀들은 계속해서 전통을 이어나갈 작정인 것 같았다.

“…….”

“…….”

입꼬리를 올린 것도 잠시,

“…….”

“…….”

눈은 성지훈이 있는 4-2전선으로, 다리는 김현성이 있는 4-1전선으로 빠르게 옮긴다.

‘지훈이만 처리하면 돼.’

류한과 검을 맞대고 있는 성검용사가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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