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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75화 (1,47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75화

대륙전쟁(55)

고통에 주저앉는 것보다,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커다란 빛이 유리엘에게 담긴다.

“너한테는 죽어도 안 져!”

그 빛이 녀석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류한에게 공격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있을 리 만무, 다시 한번 발로 땅을 박찬 이후에는 횡으로 검을 휘두른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순간적으로 멈칫했을 때, 눈앞에 보였던 것은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참격.

시야를 꽉 채운 검의 파도가 다시 한번 밀려 들어오고 있었지만 막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 멈추지 말고 어깨를 비틀어 다시금 하나하나 참격들을 튕겨낸다.

물론 모든 공격들을 피해낼 수는 없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검로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참격들은 몸으로 받아낸다. 피슉!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유리엘.’

얕은 상처는 모조리 회복된다.

‘유리엘!’

그리고,

푸화아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으윽!”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이 머릿속을 뒤흔들기는 했지만, 판단은 빠르다.

‘보이지 않았어.’

지금까지 보였던 것들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놓친 것이 아니다. 류한이 하고 있는 것은 매번 똑같다.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거나, 참격들을 날리거나 하는 것이었다.

놈은 검을 배운 적이 없다. 아마 검이 아니라 다른 무기를 쥐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녀석은 분명 검을 잡았을 뿐이었다.

평소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비도 충분하기는 했지만….

“베였….”

그것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쪽으로 말이다. 당연히 진유가 예전에 했었던 말이 떠오른다.

류한의 검이 공간을 가를 수도 있다는 터무니없는 말. 진유도 확신하지 못했었지만 실제로 겪게 되니 정말로 검이 공간을 가르고 자신에게 닿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륙에 수만 가지 이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정표를 따르며 많은 능력들을 마주해 왔고, 맞서왔었지만, 공간을 가른다는 터무니없는 능력은 듣도 보지도 못했다.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하지만….

해내야 했다.

아니.

이길 수 있다.

류한은 진짜 천재다. 사실은 괴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적이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류한이 어떻게 저런 경지까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신과 다른 방식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강해지기 위해, 수백 번은 넘게 땅바닥을 굴렀다. 녀석보다 더 강한 사람과 수백 번은 넘게 검을 부딪쳤다. 이를테면 복면을 쓴 그 남자와 함께 말이다.

‘승부를 가르는 수단이 검술이라고만 생각하지 마라.’

“후우… 후우….”

‘전투에서 승패를 가르는 요소는 수없이 많아. 어차피 네가 내가 하는 것들을 똑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지만 일단 그 머릿속에 집어 넣어주지.’

“후우… 하아… 하아….”

그래, 류한은 검사의 능력치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투방법은 암살자에 더 가깝다. 어디에서 날아 들어올지도 알 수 없는 참격과, 보이지 않는 검, 자신이 매번 상대했었던 이름 없는 암살자의 공격은 녀석의 것보다 더 날카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이지 않아도, 막아낼 수 있고, 피할 수 있다. 멍청한 머리로 전부를 배우지 못했지만 기습에 대비하는 방법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네놈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신성력이 전부 폼은 아니겠지. 막지 못하겠다면 방패를 만들어라. 신성력을 유형화하는 정도는… 뭐? 제기랄….’

곧바로 신성력으로 방패를 만들고 몸에 딱 붙인다.

‘불편하다고? 누가 검술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적 있나? 내가 네 무장을 바꾸라고 이야기했던가?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공격을 막고, 거리를 좁힐 때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급소만 보호한다고 생각해.’

“이야아아아아아악!”

‘집중해라. 네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해서 네가 안전해진 게 아니야. 방패를 들었다고, 검을 들고 있는 손을 놀고 있지 마라. 어차피 검술이라는 건, 검이라는 건, 점과 선이야, 네놈은 주로 곡선을 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방패를 들었을 때는 점을 더 사용하라고 말해주고 싶군… 후우… 찌르기를 사용하라는 이야기였다. 네게는 부족한 부분이니, 이건 내가 가르쳐 주지.’

최대한 방패로 몸을 가린 이후에, 유리엘을 신성력의 방패 위에 올리고 몸을 날린다. 공간을 가르는 검이 계속해서 신성력의 방패를 두드린다. 확실히 이름 없는 형과의 대련과는 다르다. 암기들을 무리 없이 막아줬던 신성력의 방패였지만 검격을 계속해서 받아내기 쉽지 않다.

떠오른 것은 방패와 철퇴를 사용했던, 라이넬피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다.

‘방패로 공격을 흘려내는 방법이요? 용사님께서 검으로 하는 거랑 똑같이 하시면 되는데요… 딱히 요령이랄 것도 없고요. 잘 안되신다고요? 안될 리가 없는데… 그럼 일단 가르쳐 드릴게요. 그것보다 제 얼굴에 흉터 안 남았죠?’

“흘린다!”

‘무기가 닿는 순간 무게중심을 뒤로, 비스듬히! 저기 함가르디아랑 같이 연습해요. 함가르디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도 말입니까? 흐음… 저는 딱히 알려드릴게… 아. 교양검술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양검술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것을 주목적이니… 검을 방패처럼 사용하는 방법이라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흘렸다! 하하하하! 흘렸… 으아아아악!”

방패와 검으로, 공간을 가르는 검을 막아냈던 것도 잠시, 내구도가 다해버린 방패는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사그라든다.

잠깐의 방심에 옆구리와 다리가 베인다. 순간적으로 멈춰 설 뻔하기는 했지만… 갈색 머리를 한 이의 목소리가 떠올라 다시 한번 땅바닥을 박차 올렸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냐고요? 저를 과대평가 해주고 계시네요. 용사님.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친구들 덕분… 네? 아… 그 이유는 아마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 계속!”

다시 한번 방패를 만들고, 검의 파도로 몸을 날린다. 아까보다 더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쉬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브러쉬 님처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류한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중, 흔들림이 없었던 녀석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서리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옥사나 누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눈입니다. 네. 지금 보고 계시는 눈입니다. 저는 용사님이나, 다른 분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결국 밑바닥 싸움에서 전투를 결정짓는 것은 눈입니다. 그것보다… 용사님… 오늘 병법 시험은… 아! 어디 가십니까! 용사님!’

“이긴다! 넌 내가 반드시 이길 거야!”

밑바닥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기백이다. 이길 수 있다고, 나는 네게 질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해서 상처 입어도, 눈앞에서 피가 튀어도, 어깨가 베이고, 다리가 고장 나도, 나는 너를 뚫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류한이 뒷걸음질 치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른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막아낼 것이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녀석의 검과 손은 나보다 빠르다. 하지만 다리는 내가 더 빠를 것이다. 물론 미세한 차이겠지만 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 용사님. 죄송해요. 계속 말씀드렸지만 용사님은 제 타입이 아니라서… 그리고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아… 네? 아… 작은 체구로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울 수 있냐고요? 그렇게 빠르지도 않으면서요? 그야… 스텝이죠. 기본이잖아요. 가르쳐 달라고요? 지금요?’

멍청하게 검으로만 받아내려고 하지 않고, 얼마 있지 않은 강점을 내세우자. 수백 번 밟아봤던 발자국들이 바닥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왼쪽, 오른쪽,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서 이미 코앞, 한 번도 선점하지 못한 포지션을 선점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까지는 선공권이 녀석에게 있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지금은 검을 휘둘러도 되는 타이밍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내리찍는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려, 자신의 검을 막아내는 류한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얼굴이 닿을 것처럼 느껴지는 거리. 부들부들 떨리는 손. 힘겨루기는 내가 우세하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을 때, 류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싸우는 겁니까.”

여전히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류한의 눈이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어떤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어째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전투 중이었지만 괜스레 저 의미 없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러 가지 대답이 입가에 맴돈다. 대륙을 구하기 위해서, 소외된 자들을 지키기 위해,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내가 용사니까.

하지만 결국 떠오른 얼굴은 하나다.

“친구.”

“…….”

“친구!”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약간의 거리가 벌어진다.

류한의 검이 더 복잡해지고 날카로워진다. 녀석이 검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검과 함께 녀석의 검이 목을 노리고 달려든다. 계속해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신경 썼었던 녀석은 이제는 먼저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입가가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평정심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검은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진다.

점점 더 자신이 밀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방패를 꺼내고, 스텝을 밟고, 기합을 내질러도 이 격차는 벌어지지 않는다.

레벨이 다르다. 녀석은 진짜 강자였고, 자신은 이제 막 싸우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초짜였다.

점점 몸이 구겨지고 있다.

자꾸만,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이길 수… 있나?’

“이야아아아아아아!”

‘내가… 저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건가.’

“흐…으으아아악!”

‘여기서 더 뭘 해야… 어떻게 해야지 이길 수 있는 거지.’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치켜올리고, 자세를 다잡는다.

언제나 들어왔던 목소리를, 표정을, 얼굴을 떠올린다.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어주던 그 얼굴을 떠올린다.

‘할 수 있어요.’

“그래… 흐으으윽… 흐윽… 할 수이써!!”

유리엘에게서 거대한 빛이 쏟아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무척이나 포근한 빛이다.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흐윽…. 흐으으으으윽….”

진유가 함께 검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틀림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듯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빛에 삼켜진 듯한 느낌, 마치 하얀색 공간 위에 자신과 진유만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진유의 모습이 눈에 보여 왔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사님.’

멈춰서 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물이 쏟아진다.

“으응… 으응! 흐…으…으…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틀림없이, 틀림없이 진유가, 유리엘이 자신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가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준비되셨나요?’

“으응! 응! 준비… 흐으윽… 준비….”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다. 어째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린 거냐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냐고, 하지만 그런 말들을 내뱉을 시간도 없다. 한눈을 파는 순간 검에 목이 날아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아아아아아아!”

“…….”

“흐으으윽… 흐아이야아아아아아!”

달빛이 검에 담긴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빛이 모여든다.

류한의 검에도 일렁이는 기운이 스며든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을 때,

“하아… 하… 흐으으윽… 흐어어어어어엉….”

“…….”

“…….”

쓰러져 나가떨어져 있는 류한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두 번 다시,

두 번 다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

“흐어어으으어어으응… 흐으으으윽… 흐어어어어엉….”

아직도 유리엘은 계속해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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