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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82화 (1,48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82화

무대의 뒤편(3)

단순히 김현성의 반응으로 유추한 것은 아니었다.

그야 김현성이 이토록 두려워하고, 숨기고 싶어 하는 이유가 가장 크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딱히 김현성의 반응이 없었더라도 저게 청소시절의 김현성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녀석의 얼굴만 보더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저건 내가 아는 김현성이 아니다.

물론 그간 봐왔던 1회차 김현성도 충분히 이질적이기는 했지만… 북부대공 김현성이 아닌지 의심하고 그러기는 했지만….

‘쟤는… 너무… 너무… 다른데.’

표정이 굳어 있다. 눈은 사이코패스 살인마들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극단적으로 말해 여단의 김현성이라고 생각해도 어색함을 찾을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혹시 김현성이 내게 말 못 할 비밀이라는 게 여단으로 활동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차가운 것을 넘어 프로 살인마처럼 보일 지경, 정진호 옆에 세워놔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시기상으로 생각해 보자면 대충 23살, 혹은 24살의 김현성으로 추측되었기에 더욱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울고불고, 숨고 도망치고 순수했던 그 날의 22살 김현성, 형을 외치며 아귀들에게 돌진했던 김현성은 대체 어디로 가고… 갑자기 사이코패스 김현성이 남게 되었단 말인가.

물론 그 몇 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김현성이 22년을 살아오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겠지만 일순간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속에 화를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은 얼굴, 차가워서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

그 속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재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부연설명이 무색하리만큼 냉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누가 보냈지?

-케흑….

-누가 보냈냐고 물었다.

-…….

-실리아? 아니면 제국의 귀족인가?

-말… 못… 금… 금제가… 살… 살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김현성이 한밤중에 찾아온 암살자의 목에 단검을 밀어 넣은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놀랍도록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김현성이 사람 죽이는 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그리 충격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측면에서 보자면 당황스러운 광경이기는 하다.

심지어 숨통을 끊지 않은 채로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단번에 숨통을 끊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김현성의 방 안으로 추정되고 있는 장소에서 단검에 목을 찔린 암살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김현성은 녀석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 이미 일어날 채비를 마친 것인지 그대로 세면대 앞에서 거울을 바라본다.

-켁… 켁…크….

-…….

-끄르륵….

피가 끓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간단히 세안을 마친 녀석이 곧바로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약 새벽 4시 즈음인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일어난 김현성임에도 불구하고, 별 위화감이 보이지 않는다.

길드의 직원들은 이미 김현성이 일어날 시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안에 암살자가 있습니다. 정리 부탁드립니다.

-아… 네… 네. 죄… 죄송합니다. 길드마스터.

-식사 부탁드립니다.

‘밥이 넘어가기는 해?’

-네… 바로… 준비하겠… 습… 습니다. 저… 저… 식사는….

-집무실에서 하겠습니다.

-네… 네.

‘분위기 왜 이래?’

-특이사항 있습니까?

-없…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살벌해? 가족 같은 파란 길드 어디로 갔냐고….’

-…….

-…….

‘여기 파란 길드 맞냐구.’

묘하게 가라앉아 있다. 아니, 일단 길드 직원들의 얼굴에 김현성을 향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김현성의 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든가 걸음걸이에 흠칫흠칫 놀라는 듯한 모양새가 눈에 띈다.

김현성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마 책잡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폭군이야. 현성이가.’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고.

-저… 저 길드마스터… 매일 드시던 것으로 식사를….

-먼저 드셔보십시오.

-네… 네….

봐. 암살자가 저리 많으니까. 얘가 예민해져 가지고 이러는 거지.

-…….

-……

-그…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분명히 직원으로 신분 세탁하고 들어온 암살자들도 있을 거고, 기존의 직원이었지만 매수된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여러모로 야생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길드 꼬라지만 봐도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직도 전투의 상흔이 채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길드 하우스, 그래도 내가 막 들어갔을 당시의 파란 길드는 제 한 몸은 건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드 하우스를 보수할 골드도, 여유도 없어 보였고, 이미 많은 직원들을 감축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린델이 완전 개 박살이 나 있는 모양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린델 전체가 빈민촌이 되어버린 듯했다.

길드 직원들이 김현성을 저리 두려워하면서도 파란 길드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밖에도 개판이구나.’

상처를 받은 곳은 파란 길드뿐만이 아니다. 린델 전체가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길드 밖으로 쫓겨난다면 곧바로 빈민촌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일.

어째서 갑작스레 린델 전체가 망해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었지만 답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전 끝난 지 얼마 안 됐나 보네.’

실리아의 이토 소우타와 친 실리아파, 린델의 삼대 길드와 친 린델파로 나누어진 제국 내전이 종료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내전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내전이 종료된 것으로 처리가 되었겠지만 여전히 남은 잔당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요인 암살이나 테러와 같은 사건에 누구나 노출되어 있는 시기였다.

제국 내 외부적으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정세.

김현성은 그런 정세 속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 속에 제국 내전의 영웅으로 인정받아 파란 길드마스터로 취임했을 것이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권력의 한복판으로 천천히 걸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주목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재미있는 소식을 가져왔어요.

-…….

-잠깐. 잠깐… 적이 아니에요! 아무리 불쑥 찾아오기는 했지만 다짜고짜 검부터 들이미는 짓 좀 자제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누굽니까. 당신은….

-검은 백조의 정유라라고 합니다. 우리 구면이죠?

-…….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내전 터지기 전에 같이 던전 갔었던 거 기억 안 나세요? 제가 분명히 쩔 해준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로 기억 안 나나? 내가 그렇게 잊기 쉬운 인상은 아닌데… 아, 아무튼 간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니 더 좋네요. 제가 그때 조금 무례하게 행동한 게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서… 갑자기 폭풍의 눈이 되신 우리 파란 길드마스터께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거든요. 제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이유도, 사과의 선물도 전할 겸… 겸사겸사….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너무 차가운 거 아닌가요? 그래도 내전 때 함께 싸운 전우라면 전우인데… 물론 활동지역은 달랐지만….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흠… 흠… 아마 곧 아시게 되겠지만… 조만간 샤를롯트… 아니, 이제는 황제 폐하셨지… 아무튼 폐하의 소집이 있을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우리 여왕님께서는 모험가 인권에 꽤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지금 제국 꼴을 보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칼을 빼 드신 거죠. 아마 모험가들과 자유도시들, 모험가들이 많이 체류하는 도시들을 지원해 제국을 다시 키운다는 생각이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단순히 지원에만 그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에요. 폐하께서는 모험가들이 정말로 제국의 일원이 되길 바라시고 계세요. 물론 일부 귀족들은 모험가들이 일선에 나서게 되는 상황을 불편해하고 계신 것 같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런 반대들에 강경하게 대처할 정도로 의지가 깊으신데….

-…….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으시겠어요?

-…….

-작위를 준다는 거예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제국의 작위를… 주신다는 거라고요.

-…….

-사실상 제국민과 모험가를 차별하지 않고 공정히 대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니까요. 아니, 단순히 공정히 대우하겠다는 것 정도가 아니겠죠. 평범한 제국민이 작위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이게요? 근데 우리한테는 이제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앞으로 다가올 제국은 사실상 우리 모험가들의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게 대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왜 파란 길드마스터께 이런 말씀을 드리겠어요?

-…….

-폐하께서 파란 길드마스터를 꽤 눈여겨보고 계시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붉은용병의 차희라나… 우리 검은 백조에도 인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길드는 지금 제가 일선에서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고… 차희라는 아예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제국의 일에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겠다 이거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내전 동안 빅터하르트 그 영감님이랑도 사이가 멀어진 것 같아서… 이래저래 모험가들만 고통받는 상황에 질렸다고 해야 하나… 뭐… 그 사람 성격에 도시 대표니 귀족작위니 하는 것들은 관심 없을 것 같지만….

-…….

-바깥을 둘러보세요. 뭐가 보이는지.

-폐허.

-네. 말 그대로 폐허죠. 빈민들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죠. 솔직히 제가 인권이나 이런 것들에 딱히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저 패배자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긴 소리이기는 하지만….

-…….

-적어도… 린델을 대표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낸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겠어요?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힘이. 뭘 하든지 간에 힘이 생긴다는 거라고요.

-…….

-내전 때 있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내전 같은 게 일어났겠어요? 제국 귀족들의 분쟁에 휘말려서 엄한 모험가들이 방패들로 사용됐겠어요? 실리아요? 그쪽이 린델에 먼저 이빨을 드러낸 게 과연 그놈들의 뜻이었을까요. 자유도시니 뭐니, 모험가들을 존중해 주니 뭐니 하지만 뒤를 봐주는 쪽이 없었으면 전쟁 같은 게 일어났을까요?

-…….

-점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이토 소우타였지만… 이건 실리아와 린델의 싸움이 아니었어요. 제국 귀족들 사이의 아귀다툼이었죠. 심지어 내전이 지속되는 동안 샤를롯트가 아버지와 언니를 제끼고 올라섰잖아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 몸을 맡긴 거라고요. 고작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말이에요. 우리도 힘이 생기는 거라고요. 당신이… 당신이 귀족이 되기만 하면 말이에요.

-…….

-물론 작위는 공짜가 아니겠지만… 린델은 힘이 필요해요. 린델에서의 당신의 평판이 어떻든, 외부에서 보기에 파란 길드마스터는 훌륭한 자원이고요. 젊고, 유능하고, 강하고, 신선하고, 폐하와 안면도 있으시고….

-…….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은 린델을 대표하게 될 거예요. 제국이 그렇게 정했고, 시대의 흐름이 그래요.

-…….

-당신도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대제국의 김현성 백작, 어떻게 들리시나요?

-…….

-…….

-원하는 게 뭡니까.

-찬성표를 던져 주셔야 해요.

-뭘 찬성하라는 겁니까.

정유라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

-청소?

*다음 페이지에 디아루기아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디아루기아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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