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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88화 (1,48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88화

무대의 뒤편(9)

“라고 할 줄 알았어? 이 저주받을 위선자 새끼야.”

“기영 씨…?”

“…….”

“…….”

“왜 내가 널 잊을 거라고 생각했어?”

“…….”

“이 역겹고 추악한 새끼. 더럽고 위선적인 새끼. 그래… 저게 네가 속죄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였구나…. 라헬의 죽음이… 우리 모두의 죽음이… 네 성장의 발판이 된 거구나? 무슨 결심을 하게 된 거야 도대체….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

“이… 저주받을 새끼야. 네가 감히… 감히… 누구를 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진심으로… 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거냐고…. 아니면 겨우 그걸로 네 죄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건가. 네가… 한… 행동들이… 정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아니, 너… 너… 이미 속죄받았다고 생각했구나. 이 구역질 나는 새끼. 우욱… 우으욱….”

“기… 기…영 씨….”

“그래서… 그렇게…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녔던 거구나. 너는….”

“그… 그게 아닙니다.”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미 전부 속죄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녔던 거야.”

“…….”

“비록… 이미 떠나간 자들을 어쩔 수 없지만… 그걸로… 자신의… 실수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 그게 아니… 절대로… 그런… 게….”

“정말로 아니야? 너 자신한테, 네 가슴에… 다시… 한번 물어보고 대답해 봐. 정말로…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지… 물어보라고…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어? 네 선행들이 네 죄를 덮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겠냐고… 아니, 네 목적이 어떻든 간에 그걸로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흐… 흐… 으윽….”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그게… 네… 본성이거든… 그게 너라는… 인간이거든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는 거… 그게 네 특기였잖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는 거 말이야. 너는 너 자신이 저지른 짓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거야… 결국 네가 한 모든 행동들은… 대륙의 영웅이라는 건…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네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와 죄에서 도망치기 위한 병신 짓거리였다는 거지….”

“흐…으…으으으윽….”

“합리화에 합리화를 거치면서… 네가 망가지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거라고…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널 잘 알아… 나는 그 누구보다, 심지어는 너 자신보다도 너를 잘 알고 있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너도 지금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날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는 거잖아…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어서… 내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있는 거잖아.”

“저… 저는… 하…흐윽… 흐……. 아….”

“눈… 똑바로 쳐다봐야지.”

“…….”

“나를… 똑바로 쳐다봐야지.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해야지.”

“…….”

“이 저주받을 새끼.”

“흐… 으으으윽… 흐으윽….”

“똑바로. 쳐다. 보라고. 말. 했잖아.”

“…….”

“울지 말고 내가 똑바로 쳐다보라고 이야기하잖아.”

“흐…으…아으…으윽… 으으윽….”

“내가! 내가! 똑바로 쳐다보라고 말했잖아! 이 역겨운 새끼야!!”

“…….”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도대체! 이 멍청한 새끼는! 네가 그래서 병신인 거야. 네가 그래서 병신 새끼인 거라고!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니까! 병신인 거라고! 이 새끼야! 뭣 하나 제대로 하질 못하는 병신이니까! 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거라고! 씨발! 지가 한 짓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니까! 어? 콜록! 콜록! 이 개새끼! 회피할 수 있었던 거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너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 것 같아?! 어떻게 개새끼야! 네가 대륙을 구하는 게! 씨발!! 네가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고 다니는 게!! 네 죄에 대한 속죄가 될 수 있는 거냐고!! 제기랄!!!”

“흐…아…흐….”

“네가 동의한 것도!!! 네가 씨발! 날 기만한 것도!!! 네가 한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인 것도… 전부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네가 그렇게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거라고!!! 진지하게 네가 받은 고통에 대한 복수 같은 걸 하겠다고 설치고 다닐 수 있었던 거라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너같이 추악한 생각을 하는 새끼가! 또 있을 것 같아!? 어떻게!! 너 같은 쓰레기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제기랄!! 어째서 너 같은 추악한 인간이!! 모두에게 선망받는 짓거리를 하면서 추앙받을 수가 있는 거냐고!!! 라헬을 구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던 것도, 결국에는 너를 위해서였잖아! 개새끼야!!! 네가 했던 모든 짓거리들이! 결국에는 전부 다 너를 위해서였던 거잖아!!!!”

“아니… 그게 아닙니…. 기….”

“하아… 하아… 하아….”

“…….”

“그래도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이 학살극을 막아보려고 했다는 게, 네 유일한 위안이었을 거야. 근데 그게 아니야. 현성아. 나는 네가 진심으로 이걸 막으려고 했다는 걸 믿지 않아.”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마음속 어디 한 구석에서는 청소가 예정대로 진행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나는 네가 얻기로 한 것들을 잃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고, 여겼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하지만… 저는… 다해서….”

“왜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어?”

“네…?”

“왜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냐고 했어. 현성아.”

“…….”

“그냥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었잖아. 너 스스로 이유를 만들었을 거라고…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고 싶었어?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네가 안전해지고 싶었던 걸까. 언제든지 너도 저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무서웠던 거지? 네 손으로 직접… 죽인 이들과 같은 신세가 될까 봐… 그게… 두려웠던 거 아니야? 24살의 너는… 죽음으로부터 가장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암살자도 지긋지긋했을 거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인들 못 했겠어?”

“절대… 절대 아닙니다. 기영 씨… 그건… 절대로… 흐으윽… 흐윽… 믿어주세요. 저는 그런 게 무서웠던 게 아니었습니다.”

“네가 나라면, 널 믿을 수 있었을까.”

“…….”

“…….”

“너는 끝까지 네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널 믿었다가 어떻게 됐는지… 방금 봐서 알고 있잖아. 널 믿은 게 내 생의 최악의 선택이었어. 조금이라도 네게 의지했던 게, 내가 한 최악의 실수 중에 하나야. 조금이나마 네게 희망을 걸었던 선택이 내 모든 걸 빼앗아 간 거야… 내게 남은 단 하나도 네가 빼앗아 간 거라고….”

“…….”

“그런데 내가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흐…으윽… 흐으으윽… 흐윽….”

“널 믿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이렇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널 다시 믿을 수 있겠어. 차라리 넌 나를 외면했었어야 했어. 그게 차라리 더 나았을 거야. 이 저주받을 새끼. 네 기억 속에서는 이미 흐릿해진 옛 이야기일지 몰라도, 나는 전부 똑똑하게 기억해. 그날의 공기와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비명 소리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과, 저항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지만 허무하게 죽어 나간 병사들… 숨 죽여서 도망치던 아이들과 노인들, 불이 붙은 채로 도시 한가운데에서 발버둥 치던 사람들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죽어간 이들 모두를 기억해. 아직도 눈에 생생해.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를 업고 달렸던 내 동생과, 결국에는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로 죽어갔던 우리 돼지 새끼.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어째서 내가 이걸 잊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

“전부 다 네가 죽인 거야.”

“…….”

“저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네가 죽인 거라고… 네 미숙하고 멍청한 판단으로, 네 욕심과 네 꿈을 위해, 네 안전을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야. 그래. 어쩌면 너도 억울할 수도 있겠지. 왜 네가 모든 쓰레기들을 대표해야 하는지도 의문일 거야. 근데 그 이유가 중요할까. 왜 하필 자신이었냐고 의문을 가질 자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네가 죽게 내버려 둔 저 라헬의 모든 주민들은 어째서 자기가 죽어야 했는지 모르고 죽었을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모든 게 저의….”

“어떻게 해야지 네가 속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제발… 흐윽….”

“되돌리고 싶어?”

“…….”

“네가 저지른 실수들을 바로잡고 싶어?”

“네… 네. 제가…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이걸 바로잡을 수 있다면….”

“…….”

“…….”

“근데 왜 아직 살아 있어?”

“…….”

“바로잡고 싶다면서… 근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냐고… 이 개새끼! 찢어 죽일 새끼!!! 이 저주받을 새끼가!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거냐고!”

“켁… 케윽… 하아… 흐윽… 하아… 켁… 켁….”

“괴로워? 정말로 이게 괴로워?! 나는 더 괴로웠어. 이 자그마한 손으로,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는 네 목을 제대로 조르지도 못하는데! 겨우 이런 게 괴로워?! 이 염치 없는 새끼! 쓰레기 새끼! 역겨운 새끼! 빌어먹을 위선자 새끼! 지금에 와서 죽는 게 무서운 건 아니지? 오히려, 지금의 네게는 더 잘된 일 아니야? 왜… 너 나중에 가서는 죽고 싶어 했잖아.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남으려고, 모든 걸 다 버리고 달려든 주제에! 결국에는 그 누구보다도 죽고 싶어 했잖아! 이 쓰레기 새끼야! 네게는 오히려 포상 아니야? 네게는 잘된 일 아니냐고. 그게 네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결말이지? 어? 내 말이 맞지? 할 줄 아는 거라곤 검 놀리는 것밖에 없는 쓸모없는 새끼야.”

“케헥… 켁…. 하… 후우… 후우… 켁… 켁…….”

“혹시 기대했어?”

“켁…. 헤…켁… 하…아… 후우… 켁….”

“…….”

“하아… 하아… 켁! 콜록! 콜록! 콜록! 하아… 하아… 하아….”

“넌 절대로 편해지면 안 돼.”

“콜록! 콜록! 콜록! 하…아… 흐윽… 흐으으으윽… 하아….”

“내가 어째서 너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현성아.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 나는 너를 평생 괴롭게 하기 위해서 널 선택한 걸 거야. 넌 절대 행복해지면 안 돼는 사람이거든… 넌 속죄할 자격도, 누군가를 위해서 살 자격도, 영웅이 될 자격도 없지만….”

“후우… 하아… 후우… 후우….”

“넌… 넌… 영웅이 될 거야. 내가 그걸 원하니까.”

“하아… 하아… 하아….”

“모두를 구하고, 대륙을 구하고, 나를 구하게 될 거야.”

“후우… 후우… 하아….”

“넌 내 회귀자야.”

“아….”

“너는 내 회귀자라고. 김현성.”

“으….”

“내가 널 선택했으니까.”

“…….”

“넌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테지만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할 거야.”

“하아… 흐으윽… 흐윽….”

“좋은 결말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하아… 흐으… 흐윽….”

“절대로, 네가 그 어떤 것으로 속죄하더라도, 네가 구원받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흐윽… 흐으윽….”

“넌 평생 괴로움과 고통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게 될 거야.”

“하아… 흐으윽… 흐윽….”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게. 현성아.”

“…….”

“…….”

“…….”

“아니, 할게요. 현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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