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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89화 (1,48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89화

무대의 뒤편(10)

“아니, 할게요.”

“…….”

“…….”

조금 동화됐었던 것 같다고 느껴진다.

“현성 씨.”

순간적으로 밀려들어 온 열을 막아보기 위해 차갑게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아직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나마 지금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방금 느꼈던 감정이 일부 잔존해 있는 것마냥 기분 나쁜 감각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

갑작스레 1회차 이기영에게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빙의당한 것이 아니다. 아까 전, 돼지 새끼의 죽음을 바라본 이후에 남아 있었던 잔존사념과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리라.

아직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상태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1회차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적어도 슬픈 감정은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완전히 감정에 삼켜진 상태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김현성을 몰아붙이기로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쪽이었으니까.

당연하지만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성이 눈에 보인다.

이미 한 차례 눈물과 콧물을 다 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현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방금 무슨 상황이 터진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이 날 보는 눈에 복잡함이 비친 것은 당연지사. 본능적으로 내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몸은 나를 꽉 잡기에 여념이 없다.

하기사 내가 목을 조르고 있을 때도 나를 떨쳐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작은 손과 악력으로 김현성의 목을 조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김현성은 정말로 자신의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놈은 실제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었지만 김현성은 결국 이 1회차의 파도 속에서 나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쪽이 1기영과 동화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

“…….”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넨 것은 당연지사.

“근데 저희는… 이제 어떻게 돌아가야 될까요?”

살짝 눈가를 휘며 입을 열자 뭐라 설명하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

“…….”

약간의 침묵이 감돌고 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할 리 만무.

‘방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제가… 어떻게 돌아가면 되는 건지 물었잖아요. 현성 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라고.’

방금 있었던 작은 사건을 묻어두자고 이야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

“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

“…….”

“저… 기… 기영 씨….”

“네?”

“…….”

“…….”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궁금하잖아요.”

“…….”

농담으로도 김현성이 현재 편한 상태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감히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기영은 평소와 같이 웃어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 웃음이 결코 기분이 좋아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몸은 괜찮으신 거 맞죠?”

“네… 네….”

“네. 괜찮으시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걱정했거든요. 많이 다치셨을까 봐. 심지어 지금도….”

‘기가 많이 죽기는 했어.’

“그래도 이렇게 현성 씨가 함께 있으니까.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만약 저 혼자 떨어졌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뻔했는데 말이에요. 구하러 와주셔서 다시 한번 정말로 감사드려요.”

“당…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아 또 왜 울어. 진짜. 시바.’

“저는… 으윽….”

“울지 마세요. 현성 씨.”

‘아… 진짜.’

“울지. 마시라고요.”

평소와 같이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내가 자신을 믿지 않고, 같은 유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증오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고통스럽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새였다.

이기영이 삶의 목적으로 변해 있었던 녀석에게는 아마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터였다. 나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다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이게 김현성의 목줄을 가장 확실하게 움켜쥘 수 있는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중간에 조금 흥분하기는 했고, 김현성이 정서적으로 무너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면 1기영과 합쳐지고 있다는 컨셉은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김현성이 실제로 1기영을 만나러 갈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했다.

김현성이 해야만 하는 일을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보기는 했지만,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뽑으라면 아마 녀석이 1기영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가서 사과를 하고 싶은 건지, 따로 합의를 하고 싶은 것인지, 용서를 받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1기영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던 녀석이라면 아마 분명히 1기영과 마주할 만한 상황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딱히 목적이 그게 아니더라도, 과정 속에서 분명히 1기영과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내가 1기영이면 어디 갈 일도 없는 거잖아.’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김현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구태여 이쪽에 있는 1기영을 찾아가 합의를 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김현성이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을 1기영이 아니라 이쪽에 돌려 버린 것이다.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담하건대 1기영이 녀석을 용서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아니, 결국에 김현성을 회귀시킨 것은 녀석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사과를 받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회귀를 시킨 이유도 베일에 싸여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기영이 혼자 녀석을 이해하는 것과, 녀석이 직접 용서를 빌기 위해 이기영을 찾아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없던 분노도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자너.’

여러모로 1기영과 김현성의 문제는 내가 가져오는 것이 맞다. 김현성의 상황을 직접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에야 김현성이 혼이 나간 것처럼 눈치 보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금방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극단적으로 목이라도 매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번 일이 전부 끝나면….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면서 조금씩 원래 상태로 되돌리면 돼.’

시간과 정성을 천천히 들여서 말이다. 언젠가 1기영의 자아는 결국 사라질 거고 결국에는 이기영과 김현성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스토리텔링으로 가는 것이 맞다.

시간이야 꽤 걸리겠지만, 아니, 어쩌면 평생 동안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김현성을 완전히 쳐내는 것보다는, 녀석을 빼앗기고 떠나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이미 넘칠 만큼의 기회를 준 상황이었다. 장담하건대 김현성이 아니었다면 진즉 내쳐졌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다른 새끼였으면 진작 쳐냈어.’

로헨에서 우효 새끼라도 잡아 와서 여기 박아놓을까 진지하게 고민해 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정말로 녀석을 이곳으로 데려오게 되면 자그마한 문제 몇 가지가 생기기야 하겠지만, 손가락 몇 번 휘두르면 진압이 될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튼 간에 쟁점은, 그 금발 태닝 양아치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최근 김현성이 엉망이었다는 것. 적절하지 않은 예였지만 당장에라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물론,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영은 도장을 찍기보다는, 허울뿐인 가정이라도 지키고 싶다.

비록 서로 간의 믿음이 부서지고 신뢰가 무너져,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닌 상태로 진입하기야 하겠지만, 특히나 김현성 입장에서는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지옥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장을 찍는 것보다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더 낫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결국에 상처는 봉합될 것이다.

‘너도 좋자너.’

“…….”

“…….”

‘엄마 아빠 이혼 안 해. 너만 보고 살기로 결정했어. 시바. 이제 문제 전부 해결된 거 아니야? 쟤가 충격받아서 좀 이상해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가정을 제대로 지킨 거라니까.’

“…….”

‘이제 떼쓸 명분도 없을 거야. 그렇지?’

대륙의 입장에서는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괜찮은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녀석은 결과를 중요시했으니 말이다.

물론 가정에 냉기가 풀풀 풍기기는 하겠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안전하고, 풍족한 가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이 대륙의 의지라는 건 자아도 없는 새끼인지라 정서적으로 보호해 줘야 할 의무도 없다.

내가 김현성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상관없다는 거다.

“…….”

결국 녀석은 자신의 양육자를 잃지 않는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배경들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마치 되감기를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김현성은 그 와중에도 이쪽을 보호하기 위해 내 몸을 꽉 껴안고 있는 중, 생각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던지라 괜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성 씨….”

“네… 기… 기영 씨….”

“절대로 벗어나지 마세요.”

“네….”

“…….”

“알고 계시죠?”

“네….”

“제 옆에 있어야 할 이유가, 아니, 의무가 있다는 거.”

“네. 물론입니다.”

조금이지만 녀석이 이쪽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

“…….”

‘이해해 줬구나.’

“…….”

잘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너도 내 뜻을 이해해 줬구나.

그리고,

“…….”

노을빛으로 폐허가 된 린델이 시야에 비쳐왔다.

“…….”

“…….”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자 모래가 되어 흩어지는 김현성의 모습이….

“어… 어… 어… 어?”

“…….”

“어? 현성아…?”

“…….”

“어? 어… 어!!”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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