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90화
무대의 뒤편(11)
“어… 어어!!”
모래가 되어 흩어지는 김현성을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녀석에게 손을 뻗게 된다. 하지만 이미 흩어지고 있는 녀석이 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사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현성이었던 것은 내 손을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간다.
“어… 어어어… 어?”
한 움큼 쥐어보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모래는 내 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가 눈에 보인다. 심지어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졌을 정도.
그야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해 보기는 했으나, 이런 상황에 처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현성이 모래가 되어 흩어지는 것부터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종료되었다는 것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예상했던 것이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환상이나 악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튜토리얼에 처음 진입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욱더 현실감이 없다.
“어… 하지 마… 하… 하지 마! 하지 마!!!”
“…….”
“어… 어어!!”
허우적거렸지만 어느 것 하나 남는 것이 없다. 김현성이 입고 있던 옷도, 장비도, 마치 처음부터 김현성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마냥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이전에도 한 번 본 것 같은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아마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있는 생각들 때문일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었더라?’
“어….”
‘내가 뭐라고 했었지?’
“…….”
‘김현성이 사라지기 전에 내가… 이 새끼한테 뭐라고 했더라….’
“아… 아으… 윽….”
너무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녀석을 찔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로 녀석을 계속해서 난도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순히 예를 들어서 표현한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김현성이라면 분명히 내 폭언에 칼로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아마 정신이 망가지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터였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사람이 자신에게 증오를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녀석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을 터였다.
마지막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마지막에 어떤 말들을 쏟아냈는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김현성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점점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어… 흐… 으….”
“…….”
“거… 거짓말이었어. 현성아….”
“…….”
“거짓말이었다니까… 이 새끼야… 전부 다 거짓말이었는데… 어?… 어… 전부 다 꾸며낸 거였는데….”
헤엄이라도 치는 것마냥 모래 잔해를 계속해서 휘젓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 씨발… 씨발! 전부 그냥 한 소리였다니까! 김현성! 일어나… 일어나!!”
“…….”
“아… 아! 맞다… 맞아! 내…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니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
“어… 아아! 아!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니 일어나라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알타누스!!! 콜록!! 콜록!! 회귀자여!!!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흐… 윽….”
“…….”
“일어나라!! 일어나라아!!!! 알타누스의 회귀자여!!!! 제발… 제발 일어나라!! 제발!!! 그리하면 내가 네게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일어나라!!! 제발! 제발!! 제발!!!”
“…….”
“왜… 왜 안 되는 거야! 왜!!! 제길! 씨발! 일어나라! 김현성! 일어나라!!! 제길!!! 왜 안 되는 거냐고!!!! 일어나! 이 개새끼야! 전부 거짓말이었으니까! 그냥 일어나라고!!! 제길! 일어나라고!!!!! 일어나면… 전부 다 네 마음대로 하게 해줄 테니까! 제발… 이게 그만 일어나라고!! 이 개새끼야!!! 이 멍청하고 쓸모없는 새끼!!! 일어나! 일어나!! 씨발!! 일어나!!! 일어나…아….”
“…….”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
“일어나기만 하면….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
“하… 아… 하…으…. 제대로… 이야기할 테니까… 제발….”
“…….”
“내가… 잘못했어… 흐윽… 전부 다 내 잘못이라고… 그러니까… 씨발…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장난 그만 치고! 일어나라고!!!!”
“…….”
“…….”
“…….”
“…….”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문득 머릿속이 차가워진 것은 눈물이 손등과 모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였다. 거울로 내 모습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꼴불견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은 가관, 돼지 새끼를 잃었던 것과 비슷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 감정적이 되어버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둘러 눈을 쓱쓱 닦은 것은 당연지사.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시바… 후우… 하아… 후우….”
지금 내가, 김현성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씨발… 진짜… 흐윽….”
“…….”
“후우… 후우… 후우……후우우….”
가까스로 호흡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한 광경이 시야에 비쳐온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 말이다.
김현성의 꿈속에서도, 방금 전 1회차의 파도 안에서도 이미 봐왔던 모습이었다. 폐허가 된 린델, 끝나지 않은 노을, 마치 세계가 정지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살짝 몸을 일으켜봤지만 바람 한 점도 불어오지 않는다. 생명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대륙의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기괴했던지라 오한이 들 정도였다.
말 그대로 아주 자그마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벌레 새끼가 기어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가장 크게 들려오는 게 이쪽의 숨소리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시간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세계를 관장하는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곳에서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내야 했을 김현성에 대해 떠올리자 괜스레 입안이 쓰기는 했지만 쓸데없는 생각들은 머릿속 한쪽 구석으로 날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일단은….’
어째서 김현성이 사라졌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퀘스트… 퀘스트가 문제였나.’
“씨발….”
미래를 선물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였던 건지, 아니면 죄를 사하지 않은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이 저번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애초에 먼지가 되어버린 김현성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오게 된 것이 시스템의 오류를 이용한 편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쪽에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오류가 수정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녀석을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무언가 일이 꼬인 것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심이 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우….”
황급하게 녀석과 이쪽을 이어줬던 퀘스트들을 재확인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일시적인 오류로 인해 퀘스트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오류로 인해 퀘스트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오류로 인해 퀘스트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시바.’
뭔가 오류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게 김현성이 사라짐으로써 오류가 생긴 건지, 오류가 생겨서 녀석이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한쪽만 열어두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어쩌면 두 가지 경우 모두가 해당되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김현성이 존재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김현성이 어떤 경위로 존재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를테면….
‘김현성은 불사인지 아닌지조차….’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정확히, 김현성은 미래를 받기 전까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는 김현성에게 미래를 준 적 또한 없다. 같은 의미로 김현성의 죽음을 아직 허락해 준 적이 없다.
물론… 미래를 선물한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고, 죄를 사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의 말에는 무게가 실린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으나, 단 한 번의 말로, 그간 김현성을 존재하게 했던 수천 개의 퀘스트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오류가 수정되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대륙은 분명히 나와 김현성을 대륙의 양육자로 인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퀘스트의 오류가 문제가 되었다면, 녀석은 김현성을 양육자로 인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류의 수정으로 인해 김현성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보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 대륙의 신으로 인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현성은 분명히 이곳에서, 대륙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했을 터다, 그래서 대륙이 김현성을 이곳에 초대했을 터다.
대륙 역시 분명히 김현성이 이토록 허무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터다.
김현성은 2회차의 대륙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나와 함께 1회차 대륙의 개연성을 부여해야 할….
“결국….”
“너….”
“…….”
“미켈레 개새끼야!!!!!!!!!”
그리고,
암전.
“…….”
“너 때문에!!”
퍼억!
“…….”
퍼억!!
“전부 다! 네! 어째서!”
퍼억! 퍼어어억! 퍼어어억!
“…….”
“…….”
“왜 씨발 우리 앞에!!! 흐윽… 흐아아… 이!”
“…….”
“그냥!!”
퍼억! 퍼어어억! 퍼어어어어어어어억!
“…….”
“하아… 하아… 개새끼!!!!”
퍼억!! 퍼어어어억!
“죽어!!! 죽어!!! 죽어!!!!!!!!”
퍼억! 퍼어어어어억!
“죽어어어어!!!!!!!!!!!!!!!!!!!!!!!!”
콰직! 퍼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억!
“흐윽… 으윽… 흐으으윽….”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어어억! 콰직!
“돌려내! 살려내!!!!”
퍼억! 퍼어어어억!
“흐윽….”
퍼어어억! 퍼억! 퍼어억! 콰직! 콰직! 콰직! 콰득!
“다시 돌려내!!!! 이 개새끼야!!!!!!”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다시 눈앞에 빛이 들어온 이후에는.
“하아… 하아… 하아….”
피투성이가 된 내 손에 들려 있는 돌과,
“후우… 하아… 하아아… 하아….”
머리가 으깨진 채로 죽어 있는 미켈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김예리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김예리 일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