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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98화 (1,49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98화

소실(8)

정확히 외신 전쟁 어느 시점으로 오게 된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오자마자 갑작스레 전쟁터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후반부는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최소한 린델, 캐슬락, 에베리아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인류 최후의 저항전선이라 분류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반 즈음은 성공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여긴 공화국인가.’

주변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어 건축양식을 특정하기 어렵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복식을 보고 있자니 공화국 어딘가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 것은 당연지사.

조금 더 현 상황을 정확하게 체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시간은 없다.

‘시바. 시바. 시바.’

하늘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금빛의 검 때문이었다. 전열을 다듬거나, 병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저기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어떻게든 금빛의 비를 피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몸을 피하고 있는 병력들이 시야에 비친다.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주문을 외운다거나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쉽고 무력하게 병력들의 몸을 보호할 수단들이 파훼된다.

그사이에 하늘에서는 비둘기들이 떨어지기 시작, 백병전 아닌, 백병전이 시작되고, 다시 한번 전장에는 혼란이 들어선다.

“제기랄!! 대항해라!! 저 비둘기 새끼들을 떨어뜨려!!”

“죽어!!!”

“화살!! 화살을 계속 쏴라!! 마법사들은 최우선으로 보호해!! 온다!! 비둘기 새끼들이다!!”

“제길!! 전열을 사수해! 사수하라!!!”

심판과 천벌이 떨어진 직후라 곧바로 오합지졸마냥 무너져 내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꽤 적극적으로 놈들과 대항하고 있는 모양새, 녀석들과의 싸움이 하루 이틀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허구한 날 비둘기들과 전쟁을 해왔던 만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요령이 쌓인 것이 분명하리라.

‘중반부 즈음으로 봐도 되는 건가?’

화살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나름대로 비둘기 사냥에 특화되어 있는 무기들도 곳곳에 보인다.

커다란 발리스타가 발사되자 그물도 함께 쏘아져 올라가는 진풍경도 보이고, 마법사들은 비둘기들을 위해 개량된 마법을 쏘아 보내고 있다.

오히려 몇몇 모험가들은 눈에 띌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간혹 보이는 몇 놈은 파워 인플레이션이 미친 듯이 올라간 우리 쪽 모험가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전술 체계 같은 것들은 원시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계속된 실전으로 단련된 경험치를 마냥 무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스펙이나, 아이템 파밍 상황 같은… 이를테면 캐릭터 스펙은 2회차보다 부족했지만 실전 경험치는 압도적이다.

현시점의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레벨링과 템파밍 상황을 컨트롤로 커버하고 있었다.

줘도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누더기 갑옷을 걸친 노병이 죽창 한 자루를 들고 비둘기의 뚝배기에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

“…….”

‘여기서부터는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그동안 위험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나, 류한 같은 규격 외의 괴물들을 만나기도 했고, 실제로 라파엘과 회색용사 파티 같은 경우에는 꽤 고전한 전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비둘기들과 한참을 치고 붙었던 지금부터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알프스나 벨리에 같은 이들이 강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양 떼 속 늑대가 된 것마냥 설칠 수 없다는 거다.

녀석들도 방심하면 죽는다. 물론 진 군사가 함께 있을 테니 그쪽은 괜찮을 테지만….

‘도대체 시바 돼지 새끼는 왜 있는 거야? 시바.’

카스가노의 유노와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돼지가 문제였다. 아니 사실은 이쪽도 문제다.

미카엘 이 새끼는 틀림없이 여러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는 소환수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미켈레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만큼 내구 수치가 종잇장이었으니까.

“이기영 님. 제 손을!”

심지어 이렇게 혼전 속에서는 나를 지키기 쉽지 않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꽤 다급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곧바로 이쪽을 껴안은 직후에는 몸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저리 꺼져!!!”

“공격해!! 공격!!! 물러서지 마라!!!”

“피해! 피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난리 났네.’

저 한 몸을 건사하기가 쉽지 않다. 난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병사들이 소리를 칠 때마다 얼굴에 침이 튈 정도였다.

심지어 비둘기들이 바로 옆에서 창을 휘두르고, 놈들의 피가 여기저기 흩뿌려진다. 4D로 이 미친 전쟁을 직관하고 있었으니 몸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겠습니다.”

‘빠져나갈 수 있겠냐고.’

완전 포위 섬멸당하기 일보 직전인데….

세라핌이 이곳을 찾아 움직였다면 마음을 먹어도 제대로 먹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여기가 공화국 어디 즈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녀석들 중에서도 전쟁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녀석들도 있다는 거겠지.

실제로 지금 이렇게 훌륭하게 버텨주고 있는 공화국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외신 측에서 느낄 초조함도 이해가 간다. 모르긴 몰라도 진 군사만 있었더라면 공화국은 더 오랜 기간 동안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 전체 전황 자체를 뒤집어 버렸을지도….

문제는 지금 녀석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

당연히 한두 번 전쟁을 뛰어본 이들이 아닌 만큼, 이곳에서 저항하고 있는 이들도 자신들의 운명을 실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

악에 받친 듯 소리를 내지르며 시위를 당기고 창을 뻗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만, 모든 전쟁이 그렇듯 미는 놈이 있으면 밀리는 놈이 있는 법이고, 사는 놈이 있으면 죽는 놈이 있는 법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이다.

하늘을 수놓고 있는 비둘기들이 끝끝내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닿는다. 이후에는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전열 전체가 무너지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캐슬락이다!!! 캐슬락에서 지원군을 보냈어!!!”

어딘가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를린 캐슬락!!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하… 하하하!!”

“진짜로 왔어!!!! 제국 놈들이 진짜로 왔다니까! 안개 소환사, 원거리 저격수도 함께다!!!”

‘천관위? 위란도 같이 왔어?’

구태여 설명이 필요가 없다.

순식간에 전장 전체에 안개가 가득 들어차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마냥 전장 전체에 안개 폭탄이 떨어진다.

“안개다! 이게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

‘확실히 원조 맛집은 다르기는 해.’

물론 시가렛트 영애와 천관위는 그 종류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확실히 규모 면에서는 천관위가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장을 꽉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지역 전체를 안개로 뒤덮어 버렸다.

이종족들과 신 흑장미 살롱, 달빛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던 에베리아, 김현성과 차희라 강자들이 즐비했던 린델과는 다르게 어떻게 캐슬락이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물론 캐슬락 성벽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어력도 한몫하고 있겠지만 아마 캐슬락 역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로 뒤덮여 있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천관위는 안개 뿌리기 원 툴이기는 했지만, 원 툴도 저 정도면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 옳다.

심지어 하늘까지 전부 다 안개로 덥혀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비둘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공중에 떠 있는 놈들이니만큼 더욱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리고 놈들에게 쏟아지는 가느다란 빛줄기, 천관위의 오랜 파트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을 유일하게 제집처럼 바라볼 수 있는 원거리 저격수였다.

시야를 막고 원거리에서 조진다.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 같지만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조합이다. 저것밖에 할 줄 모르는 애들이기는 했지만, 저것 하나가 웬만한 전술보다 더욱더 효과적이고 파괴적이다.

안개를 뚫고 나가는 화살들에 비둘기들이 하나하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중, 심지어 당시 찌질이 롤을 맡고 있던 세라핌 역시 크게 당황해 무조건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간다.

눈앞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은 후퇴하고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안개 하나는 기가 막히자너.’

어처구니없지만 서도 아군에게는 안개로 만들어진 길이 보인다. 안개 속에 안개가 있는 게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천관위 이 새끼는… 1회차가 더 센 거 아니야?’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새끼의 전력을 처음 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기모 녀석이랑 비슷하게 눈치를 보는 녀석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전력의 2할, 아니, 4할은 숨기고 살고 있었던 만큼 2회차의 천관위도 이 정도의 범위를 커버할 수 있을 확률이 높다.

‘여우 같은 놈이자너.’

잘 성장한 모험가 하나가 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시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천관위를 나름 잘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녀석을 굴려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을 정도.

확실히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는 녀석의 안개는 상상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적이었을 때는 이 안개가 그렇게 무서웠었는데… 아군이 되니까 엄청나게 든든하구만… 제길….”

‘쟤들도 똑같은 생각하자너.’

“정말로 제국 놈들이 우리를 도우러 와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대륙 전체가 난리가 난 상황이니 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알아서 잘 묻어두자는 거겠지. 지금은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워서 좋을 게 없으니까… 대륙전쟁이 끝난 지도 이미 한참이고… 서로 남은 앙금은 있지만… 지금은 힘을 합쳐야지. 지긋지긋한 흑마법사 놈들도 전부 사라졌고, 저 비둘기들만 사라지만 이제 진짜 끝이니까.”

“언제는 뭐, 제국 놈들은 죽어도 안 믿는다더니… 캐슬락에서 원군을 진짜로 보내면 성을 간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때는 그냥 술에 취해서 한 소리였고….”

“…….”

“…….”

“어이! 그만 떠들고 부상자들이랑 피난민들이나 빨리 보내.”

“그래. 일단 부상자들부터 옮기자고… 이 안개가 영원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빨리빨리 움직이기는 해야 하니까 말이야. 비둘기 놈들은 어때?”

“소리가 안 들리는 거 보니까. 진즉에 내뺀 모양이다. 금색 비둘기여서 다행이야. 파란색 머리였으면 이렇게 쉽게 안 끝났을 텐데….”

세라핌이 찌질하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 같고….

‘외신들에 대한 정보가 좀 풀린 시점이라는 거네….’

중반부가 아니라 중후반부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슬쩍 망원경을 위로 올리자 전반적으로 폐허가 되어있는 공화국이 시야에 비쳐온다.

물론 아직까지도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약 삼 분의 이가량이 파괴된 것처럼 보였고, 남은 지역 역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다른 곳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연방과 연합 같은 경우에는 남아있는 생존자들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크게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수준, 제국의 경우에도 많은 도시들이 재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가 속한 병력들이 처한 상황처럼 점차적으로 인류 최후의 저항전선으로 옮겨지고 있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리라.

조금 더 전으로 떨어졌어야 했나 싶기도 했지만….

‘아냐, 그럴 필요는 없어.’

아직 현성이가 노을이 되기 전이다.

미카엘도 나와 별반 생각이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부여잡는 내게 말을 걸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 녀석 역시 이 시점에서 김현성을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은 함께 캐슬락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미카엘… 님.”

“네. 이기영 님 혹시….”

“…….”

“…….”

머리가 아픈 척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냥 녀석과 말을 섞기 귀찮은 것뿐이다. 홀로 생각할 것도, 둘러봐야 할 곳도 많았으니까.

어째서 박덕구와 카스가노 유노가 이곳에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했고, 지금 이 상황에 김현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미카엘은 또 어떤 식으로 희생시킬지도 생각해야 했다.

다행히 병사들 사이에 섞인 피난민들이 우리뿐만은 아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 행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캐슬락까지 편하게 안겨서 이동하면 될 것처럼 보였다.

‘딱히 신원 확인 같은 것도 안 할 테니까.’

그렇게 망원경으로 피난민들과 패잔병들의 행군을 지켜보던 중에,

“여보, 이제 안개는 슬슬 걷어도 될 것 같은데?”

“아직….”

“제가 걷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잖아요? 여보?”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천관위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위란이 보인다.

“…….”

“…….”

‘너희… 왜… 여기서는 결혼했어?’

분명히 2회 차에서는 서로를 고까워하고 징그러워하는 듯한 느낌인 것 같았는데….

다정하다면 다정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음 페이지에 미카엘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미카엘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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