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499화
소실(9)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기는 해.’
기적의 사제 마리엔과 사냥개 이주혁의 소식도 놀랍기는 했지만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었다.
하지만 1회차와 천관위와 위란이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운 감정이 앞선다.
물론 둘을 내가 자주 만나거나 본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꽤 앙숙 같은 것이었던 걸로 기억, 구태여 설명하자면 조합이 잘 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활동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혐오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저런 모습이 더욱더 이질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꽤 화통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원거리 저격수가 아니었던가.
간혹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눈치만 살살 보는 천관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속으로는 서로 관심 있었던 거냐고, 들키기 싫어서 서로 싫어하는 척했던 거였냐고…’
하기사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계속해서 치고받고 있었으니 정이 들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기야 하다.
특히 1회차는 2회차보다 압도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을 테니까. 술 먹고 어쩌다가 보니 사고 쳤을 수도 있고… 뭐 사실 조금 흥미로웠던 것뿐이지 크게 관심을 기울일 일도 아니기야 했다.
천관위에 옆에 있는 작은 꼬마가 아니었다면 그냥 신기한 일이 생겼구나 정도로 인지하고 관심을 꺼버렸을 것이리라.
눈에 비치는 것은 천관위와 위란의 미니미 버전으로 보이는 꼬맹이 하나,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더 활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유전특성 안개 화살?’
“…….”
‘유전특성 안개화?’
“…….”
‘마력 능력치, 민첩 능력치 성장 한계치 전설 등급 이상?’
잭팟 아닌가?
본래 상위 모험가들의 2세가 나오면 그들의 특성을 일부 물려받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는 했지만 나 역시 저 정도의 괴물 같은 특성과 재능을 물려받은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어딘가 한편에서는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더욱더 깊숙하게 들어가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아예 문을 닫게 해버렸다.
일부 모험가들이 2세 대박을 노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간에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파트너의 궁합이나 조합이 중요하다는 것.
안개 소환사와 원거리 저격수의 궁합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1회차는 유전 계승 확률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실례가 되는 표현이지만 엄청나게 낮은 확률을 뚫고 별 다섯 개짜리 2세를 뽑아버린 셈이었다.
‘아니, 시바.’
아직 중학생도 되지 않아 보이는 꼬맹이를 전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딱 봐도 답이 나온다.
물론 저런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이겠지만, 이미 저건 고사리손이라고 볼 수도 없다.
벌써 한 사람의 모험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위를 당길 근력이 부족해 아이템의 보조를 받고 있기야 했지만 흐릿해 보이지 않는 화살들을 쏘아 보내는 모습은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힘을 좀 빼는 게 좋을 거야.”
“네. 어머니.”
적당히 눈치를 잘 보는 게 인성도 훌륭해 보인다.
‘쟤네는 시바 대륙를 위해서라도, 거국적인 이유로 맺어져야겠는데?’
물론 놀라웠던 것은 천관위와 위란, 그들의 2세뿐만은 아니었다.
‘마를린 영애.’
2회차에서는 그냥 철부지 영애였었는데, 캐슬락 백작이 사망한 뒤 그 유지를 훌륭히 이어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그녀가 캐슬락 백작이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신뢰받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천관위와 위란도 그녀에게 제법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
작은 바위 놈들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송정욱 사망 이후에 캐슬락의 블랙마켓도 그녀 쪽에서 처리한 것이 아닐까.
언제나 다과회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모습, 새로운 캐슬락 백작은 이전의 캐슬락 백작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피난민들과 패잔병들을 돌보며, 캐슬락으로의 행군을 지휘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색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모두 물러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캐슬락 백작님.”
“다행이군요. 혹여 전투가 길어질까 걱정했었는데, 돌아가는 길은 조금이나마 편해지겠어요.”
“이렇게 먼 길을 와주셔서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당연한 일이에요. 물론 공화국과 저희 캐슬락은 오랜 시간 동안 악연으로 묶여있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그런 과거의 일들을 들춰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겠죠. 대륙전쟁으로 고인이 되신 아버지 역시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
“도움이 필요한 것은 여러분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캐슬락 역시, 여러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싸울 수 있는 병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하지만 캐슬락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공화국 여러분들이, 어디까지나 인류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저항해 주셨으면 합니다.”
“…….”
“…….”
“솔직히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
“이미 공화국이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희에게 다른 선택지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리 말씀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연히 저희들 전원 모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캐슬락 백작과 함께 항전하겠습니다.”
‘훈훈하기는 해.’
두 집단의 수장이 서로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어째서 김현성이 마를린 영애를 중요 인물로 다루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뭐 걔 입장에서 보면 쟤는 그냥 마스코트처럼 보였겠지.’
마를린 캐슬락은 뛰어난 지휘관도 아니고, 뛰어난 전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캐슬락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싸운 영웅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전술이나 개인의 강함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캐슬락의 상징이다. 캐슬락의 병사들은 그녀를 위해 싸우고, 그녀를 위해 죽는다. 그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녀를 바라보며 힘을 얻는다.
여전히 김현성은 이해하기 힘들어할 수도 있겠지만, 캐슬락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에는 그녀의 역할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다.
‘지금만 봐도 딱 답 나오잖아.’
공화국의 내로라 하는 권력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피난민들이 제대로 길을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요.”
라든가.
“힘드시겠지만, 이 앞에 설치되어 있는 캠프까지만 버텨주시길 바랍니다.”
라든가.
단순한 말뿐이었지만 현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는 잘 깨닫고 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유능한 부관들이 충언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을 잘 경청하며, 취합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캐슬락 백작이다.
패잔병뿐만이 아니라, 피난민들도 함께 이동하고 있었지만 딱히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숨을 죽이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화국 병력과 캐슬락의 병력이 잘 섞이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캐슬락까지는 무난하게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은 것은 당연지사.
괜스레 이쪽을 꽉 더 껴안아 오는 미카엘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녀석의 질문이나 관심에 응해줄 시간이 없다.
조금만 더 가면 캠프가 있다고, 곧 편히 쉴 수 있을 거라고, 신성으로 머리를 매만지기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른 차도가 없으니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으니 그냥 끙끙 앓고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응. 마음고생 좀 하시고요.’
이후에는 계속해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물론, 이미 한 차례 대륙 전체를 훑어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 계속해서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
“…….”
‘진청.’
“…….”
‘박덕구.’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이 시점에서 오랫동안 체류하겠다고 결정했으니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후퇴한 비둘기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세라핌을 제외한 다른 비둘기들은 어디에 있는지, 현시점의 1기영의 위치도 계속해서 특정해야만 하는 만큼 눈을 쉴 수가 없다.
특히나 박덕구와 카스가노 유노가 이곳에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에는 더욱더 녀석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돼지 새끼가 여기 혼자 찾아 왔을 리는 없자너.’
어떻게 육망성을 넘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라파엘 파티도 나 없이 이곳에 닿은 적이 있는 만큼 카스가노와 돼지가 이곳에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어째서 이곳에 와 있느냐는 것이었다.
‘카스가노 걔는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물론 주종계약 아닌 주종계약이 걸려 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그녀의 속내가 의심이 갈 때가 많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지나치게 알고 있는 것도 많았고, 그녀가 1기영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신경 쓰인다.
그녀가 정말로 따르는 것이 1기영인지, 2기영인지도 이제는 의심스럽다.
‘시바 하도 의심하다 보니까 끝도 없자너.’
사실 그녀를 의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기는 하다. 언제나 의뭉스럽고, 말을 아끼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카스가노 유노가 했던 일들을 항상 내게 이롭게 다가오지 않았던가.
그게 지금의 순간을 위한 빌드업 일 확률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믿자.’
그러고 보니 육망성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전에, 카스가노 유노가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카스가노 유노가 적일 확률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6할 정도는 그녀에게 신뢰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
지금 흩어져 있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해줘야 할 일들을 해주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문득 내가 이렇게 남을 잘 믿는 성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방금 전부터….
계속 이쪽을 따라오고 있는 까마귀들을 보고 있노라면….
‘믿을 만하기는 하자너.’
적어도 한 팀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진 군사.’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까마귀의 눈이 틀림없이 자색을 띠고 있었다.
‘많고 많은 새 중에 꼭 지 같은 거 골랐자너.’
사역마 같은 것은 아니다. 잠깐 동안 놈의 몸에 통제권을 빼앗아 온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까마귀 외에도 다른 까마귀들 역시 눈알이 자색이다. 아마 녀석 역시 이쪽을 계속해서 찾아 왔던 것이 분명, 발견하자마자 허겁지겁 이쪽을 쫓아온 것처럼 보였다.
‘여신의 손거울은 파손됐나?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몇 년 동안 있었던 거지? 진 군사가 있으니까 게이트를 이용했으려나?’
아니.
‘우리 창렬이 팔은 붙였나?’
여러 가지 궁금증이 남기는 했지만, 곧바로 대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진 군사 역시 까마귀들을 이쪽에 접근시키지 않고 있다. 저것과 소통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현시점의 모험가들의 기감이 뛰어난 만큼 괜히 무리해서 까마귀들을 잃어 이쪽을 다시 찾아 헤매는 불상사를 겪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주변에는 안개가 쫙 깔려 있었고 앞으로도 깔려 있을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대신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부리를 딱딱 부딪치기 시작, 당연히 저게 내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쓸데없이 안부를 물어오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나 녀석답게 용건만 쿨하게 전할 모양인 것 같았다. 김현성의 위치, 혹은 자신들의 위치, 혹은 접선할 장소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지만….
‘현….’
“…….”
‘자….’
“…….”
‘현자의….’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현자의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