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507화
소실(17)
-뒈져라. 패배자 새끼.
“뒈질 것 같냐? 패배자 새끼.”
‘난. 절대. 안 뒈져. 이 새끼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후드득. 후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문이 벌컥 열리고 병사 몇 놈이 이쪽으로 들이닥친 것은 당연지사. 깜짝 놀란 척 녀석들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이미 전부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이 난리가 났으니 미카엘이 소중히 여기는 이쪽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을 리 만무, 아마 눈앞의 병사들은 오직 호위 임무만을 위해 이쪽에 배치된 병사들일 것이다.
대충 봐도 수준이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네임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단순 호위를 위해 배정받았다고 하기에는 과할 정도로 스탯이 좋다. 이 정도면….
‘쓰다가 버릴 만한데.’
잠깐 동안은 저 넷과 함께 이동해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다. 창 한두 번은 대신 맞아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저 정도 전력이라면 아슬아슬하게 일반 비둘기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그르륵… 그륵… 죽… 죽어라!”
한 놈은 끄나풀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정신계 마법에 당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씨앗이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에서 개 거품을 물며 다짜고짜 검을 들고 돌진하는 녀석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한다.
물론 녀석의 검이 이쪽에 닿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앞선 놈들에게 대놓고 힌트를 보내줬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병사 한 놈이 돌진해 오는 녀석의 목에 단검을 밀어 넣는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 분수가 내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 시바. 드러워.’
“방금… 방금 목소리 들었어, 조지?”
“그래. 나도 확실하게 들었네….”
“신의 목소리… 여기서 갑자기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알렉스… 너도 들었어?”
“그래. 나도 분명히 들었다. 벨링엄 녀석이 간자라는 목소리였어.”
“제기랄… 이해가 안 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피 분수에 엉망이 된 이쪽은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던 모양이다.
갑작스레 토론 아닌 토론을 하는 모습은 가관, 어처구니없지만 그 모습이 꽤 익숙해 보인다. 녀석들이 서로를 부르고 있는 이름도 말이다.
“…….”
“…….”
‘이 새끼들… 이거… 빅보이 친구들 아니야?’
심지어 2회차에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던 새끼들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이 익숙하다.
특히 저 알렉스라는 녀석은 분명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 놈 모두 2회차 낙오자의 거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파란 길드의 이름으로 포상도 해줬던 기억도 희미하게나마 존재한다.
‘이 정도면 이 새끼들이 대륙 역사의 산증인이자너.’
어째서 린델 태생이었던 놈들이 캐슬락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쟁 통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니 여기까지 닿지 않았을까.
2회차 때에도, 1회차 때에도 여기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생존능력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일 테니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얼떨결에 여기에 닿은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시바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돼?’
세 놈 중에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녀석이 깜짝 놀라며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다시 한번 폭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캐넌이라는 녀석은 “죄,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며 내 얼굴을 헝겊으로 쓱쓱 닦아주기까지 하고 있다.
“모두 밖으로 나와! 밖으로 나와!! 전원 전투준비 한다. 비전투 인원들은 빨리 지하로 내려보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후드득. 후드득.
“…….”
“…….”
“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무, 무, 무슨 일인가요?”
“적습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지하로 내려간 이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캐넌, 조지. 준비해.”
“알겠네.”
“그래. 제기랄. 한번 가 보자고… 이것도 임무는 임무니까. 근데….”
“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왜, 빅보이가 데리고 다니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움직여. 캐넌. 제기랄. 괜히 죽은 새끼 이야기 꺼내서 사람 심란하게 만들지 말고.”
“그… 그렇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디 공화국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더라. 총통이 숨겨놓은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고….”
‘뭘 너희들끼리 그렇게 속삭여?’
“아무튼 간에 빨리 움직이자. 이번에는 정말로 비둘기 새끼들이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니까.”
“보통 작정한 게 아니야. 알렉스.”
“…….”
“…….”
“도미니온스야.”
“뭐?”
“그 도미니온스라고. 제기랄. 드디어 캐슬락을 끝장내기로 결정한 건지. 아니면 다른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총공세에 가까울 정도로 공습을 퍼붓고 있는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이쪽 본대가 공화국으로 향했다는 정보가 새어 나간 건지….”
“아니, 아니, 다시 한번 말해보게.”
“…….”
“도미니온스라고 했나?”
“제기랄 뭘 들은 거야. 조지. 그 도미니온스라니까? 잘못하다가는 여기서 다 뒈져나가게 생겼다고. 조금 있으면 금발 비둘기도 올 텐데….”
“…….”
“…….”
‘그래도 생각 있는 놈이 하나 있기는 하네.’
알렉스와 캐넌은 호들갑을 떨며 도미니온스와 세라핌이 와서 자기들을 전부 죽일 거라느니, 비둘기들이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느니, 듣고 있는 이쪽이 다 불안해질 정도의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조지라는 녀석은 도미니온스가 이곳에 병력들과 함께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하지?’
도미니온스가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어째서 도미니온스가 이곳에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기영이 캐슬락으로 도미니온스를 보낸 것은 훌륭한 기습이기는 하나, 현 대륙의 전선을 생각하면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 자체는….
‘멍청한 판단이자너.’
그보다는 도박에 가까운 전략이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리라. 이 종족 연합군과 달빛을 따르는 자들, 흑장미 살롱이 버티고 있는 에베리아 전선을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마 녀석의 입장에서도 생각이 많기야 했을 것이다. 도미니온스를 이곳에 불러올지, 불러들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거쳤을 테고,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만한 것들을 재단해 봤겠지.
결과적으로 녀석은….
-나… 나… 목소리가… 들려… 페넬로티의 목소리가!
-도미니온스가 사라졌어요.
-출진! 성문을 열어요!!!
-출진하라!! 출진!!!
-출진하라!!!! 성문을 열어라!!!!!
-신의 목소리다!! 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어!!!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운 셈이었다.
‘응. 도미니온스가 자리를 떴으니까. 세계수 전선의 균형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밖에 없겠죠?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아마 평소대로였다면 전선이 크게 밀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병력들이라면 세계수를 조이고 있던 놈들을 풀어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병력의 질 자체가 낮은 것은 아니었고, 특히나 이종족 연합과 살롱의 영애들이 쓸 만하게 성장해 주었으니 말이다.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연합군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아예 린델까지 길을 뚫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뚫어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뚫어내야 한다. 이쪽도 잃은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걸로… 망원경이 있다는 건 들킨 거네.’
“…….”
“…….”
‘불특정 다수한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들킨 것 같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했지만, 입안이 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기영은 에베리아 전선과 세계수 쪽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보다 이쪽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이미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조금 더 확신할 수 있는 정보를 원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 정보에 집착할 이유도 없기도 했고… 결국 서로 간에 교환할 수 있는 것을 교환한 셈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가져갈 수 있느냐에 대한 것.
1기영은 더 많은 정보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이쪽을 아예 지워 버리고 싶겠지만, 타임루프가 가능하다고 예상되는 이쪽을 쉬이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고 있겠지.
하지만 알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2회차의 이기영은 명백하게 필멸자를 벗어나 초월에 닿은 것처럼 보였으며, 숨기고 있는 것도 많은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심지어 현자의 돌이라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시간여행에 어떠한 조건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정말로 아무런 페널티 없이 가능한 것인지.
그 밖에도 알아낼 수 있을 만한 걸 전부 알아내고야 싶겠지. 하지만 놈이 아무리 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더라도 도미니온스를 허구한 날 캐슬락에 처박아 놓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어차피 원정 떠났던 병력들은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 짧은 시간 동안 얻어낼 수 있는 걸 전부 얻어내야 한다. 도미니온스를 전장에서 뺀 게, 얼마나 큰 실수인지 깨닫게 해줘야 한다.
‘너도 이런 건 처음 봤을 거야.’
1기영은 유능하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녀석이 나보다 나은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녀석보다 가진 것도, 경험도 더 많을 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코 자만하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전선을 밀고 들어가는 에베리아 왕국의 이종족 연합군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아마도 녀석 역시 내가 자신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을 터였다.
마치 잘 제련된 하나의 창처럼 전장을 찌르며 나아가는 병력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인상적이다.
딱 3시간, 단언하건대 딱 3시간만 주어진다면 에베리아 왕국과 린델을 잇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국에 처박혀 있는 연합군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숨을 죽이고 있는 크고 작은 게릴라 부대까지 끌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공화국 전선 역시 마찬가지, 허무하게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했던 공화국의 병력들은 어느새 전열을 정비해 메슬라 성에 닿아 비둘기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준비하고 있다.
“…….”
“…….”
‘넌 잘못 걸린 거야.’
물론 캐슬락에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원정군이 회군해야 한다는 것은 뼈아프다. 덕분에 공화국과 메슬라 성에 실어줄 수 있는 힘이 반감될 테니까.
한편으로는 1기영 역시 집결되고 있는 공화국과 캐슬락이 연결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무리하게 도미니온스를 불러 원정군을 끌어들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녀석이 다소 감정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래?’
“…….”
“…….”
각 전선에서 나가 뒈졌던 비둘기들이 몸을 일으킨 것이 시야에 비쳐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래. 네크로맨시? 이걸로 시간을 끄시겠다.’
질이 낮은 것처럼 보이는 언데드들이다. 물론 개체 자체가 훌륭하니 저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여전히 녀석의 진짜 목적은 이쪽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직 도미니온스가 회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증거. 심지어 세라핌까지 찌질한 표정으로 캐슬락에 내려앉은 것이 시야에 비친다.
서로 배짱 싸움 아닌 배짱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 적절한 예는 아니었지만 8톤 트럭이 서로를 향해 액셀을 밟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를 향해 네가 핸들을 꺾으라고, 부딪치기 전에 네가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난 절대 양보 안 해.
“나도 절대 양보 안 해. 새끼야.”
언제나 이럴 때는 작은 변수 하나가 전체적인 그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마련.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음과 굉음이 들려오는 성의 지하.
그곳에서 작은 변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
‘행운의 여신은 나한테 손을 들어준 것 같자너.’
“…….”
‘얘를 여기서 만나네.’
“…….”
폐인처럼 구석에 쪼그려 앉아 죽은 눈으로 벽을 쳐다보는 인형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